제임스 본드가 미스터 화이트를 찾아가면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은 끝난다.
제임스 본드가 자신의 이름을 'Bond, James Bond'라고 소개하는 장면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 유일한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뻔 했지만 바로 그것이 '카지노 로얄'의 마지막 대사였다.
이렇게 '카지노 로얄'은 끝났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후속작 '본드22' 스토리가 '카지노 로얄'과 이어지는 것으로 밝혀진 것. '본드22' 스크린라이터 폴 해기스는 '본드22'가 '카지노 로얄'의 엔딩 2분후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2분후?
간단히 말하자면 '본드22'는 '카지노 로얄' 엔딩에서 제임스 본드가 미스터 화이트를 찾아간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바로 그 '본드22'가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다.
얼마 전 소니 픽쳐스가 공개한 '콴텀 오브 솔래스' 티져 포스터를 보더라도 영화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007 제작팀의 속셈이 대충 들여다 보인다는 것.
1) 무슨 이유에서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이어지도록 했을까?
다니엘 크레이그를 '진지한 스타일의 원작형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한 만큼 '카지노 로얄' 후속편에서도 같은 스타일을 유지해야겠는데 어지간한 이언 플레밍의 소설들은 죄다 영화화 됐으니 플레밍 원작에 더이상 기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떻게서든 '카지노 로얄'에 미련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플레밍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줄거리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2) 왜 '콴텀 오브 솔래스'란 제목을 택했을까?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이어진다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플레밍의 소설엔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이어붙이려는데 제목까지 생뚱맞으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 제목 대부분이 이미 영화에 사용됐으니 아직 사용하지 않은 플레밍의 숏스토리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콴텀 오브 솔래스'가 영화제목으로 그다지 섹시하게 들리지 않지만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아는 본드팬들에겐 친숙한 제목이라는 이유로 밀어부친 게 분명해 보인다. 정작 영화 줄거리는 플레밍의 '콴텀 오브 솔래스'와는 전혀 상관없더라도 말이다.
3) 왜 자꾸 베스퍼 타령을 하는 걸까?
'카지노 로얄' 소설에도 나왔고 영화에도 나왔다: "The bitch is dead."
본드가 베스퍼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녀의 자살로 인해 충격받은 건 맞지만 책에선 곧바로 냉정을 되찾는다. 베스퍼에 대한 감정은 'The bitch is dead'로 정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영화에선 베스퍼를 놓아주지 않을 모양이다. '콴텀 오브 솔래스'에 등장하는 범죄조직이 베스퍼와 관련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본드는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도 여전히 베스퍼를 기억하고 있으며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간 배후조직에 복수를 한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사랑하던 여자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한다'는 설정이 왠지 낯설지 않다.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이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는 소설 '여왕폐하의 007'에서 결혼식 직후 블로펠드 일당에게 아내 트레이시를 잃게 되고 후속편 '두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에서 거진 폐인처럼 생활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본드는 블로펠드를 찾아내 결국엔 복수를 하고야 만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트레이시가 죽는 것만 나올 뿐 본드가 블로펠드를 찾아가 복수하는 건 나오지 않는다. 본드가 '사랑하던 여자를 잃는 것'만 나올 뿐 '복수'를 하는 건 영화에 나오지 않은 것. 그런데,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베스퍼의 죽음'과 '복수'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고 있다. 007 제작팀이 스토리와 캐릭터만 바꿔치기한 '언오피셜 두번 산다'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트레이시 대신 베스퍼의 죽음으로 어설픈 복수극을 꾸리려는 게 아니냔 생각이 드는 것.
4) 진지하고 사실적인 것만으로 충분할까?
'카지노 로얄'의 키워드는 '진지한 제임스 본드'와 '사실적인 액션'이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다는 걸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카지노 로얄'의 내용이 소설과 100%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이언 플레밍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을 영화화 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플레밍이 책에서 묘사한 제임스 본드의 모습과 영화배우 다니엘 크레이그의 모습이 천지차이가 나는 데도 불구하고 원작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배우라는 찬사가 쏟아진 것도 플레밍의 유명한 소설 '카지노 로얄' 덕분이 컸다. 하지만,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이러한 것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제목만 이언 플레밍의 숏스토리에서 따왔을 뿐 스토리 자체는 100% 새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암울하고 진지하고 사실적이긴 하지만 제임스 본드다운 것은 부족한 액션영화가 될 수도 있다. 줄거리가 '카지노 로얄'과 이어지는 만큼 관객들이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것을 잊을만 하면 베스퍼 이야기를 꺼내면서 리프레시 시켜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흐흐흐 너무 부정적인 쪽으로 예상하시는 듯...
답글삭제전 좀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 복수의 경우 원작 소설에서는 본드의 캐릭터와 소설 구성(블로펠드 3부작)을 위해 중요한 내용으로 사용되었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넘어갔고, (DAF에서나 FYEO에서 블로펠드를 죽이는 장면에서 전혀 복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2. 제대로 복수극을 그린 LTK는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영화였으니
제대로 그래지고, 리얼한 그러면서도 이제라도 사랑받을 수 있는 복수극을 다시 그릴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스토리가 빤히 보인다는 공통점은 어쩔 수 없군요. -.-;;;
걍 냉정하게 보는 '척' 한 건데요...ㅋ
답글삭제본드 시리즈가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가는 방향은 올바른 것 같은데 왠지 자꾸 불안한 기분이 듭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느끼는 부담도 2배일 거라 생각되거든요.
그렇다보니 저도 약간 내거티브해진 것 같습니다...ㅋ
헐 콴텀오브 솔래스가 복수극이되는군요.
답글삭제일단 저는 카지노로얄정도만 수준이 된다면 대만족이에요.ㅋ
복수극까진 좋은데 억지로 짜맞춘 복수극처럼 보일까봐 걱정입니다.
답글삭제왠지 좍 들여다보이는 것 같은게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