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8일 금요일

'킹덤', 어색한 테러의 총합

테러와의 전쟁, 이란, 이라크 문제 등 그쪽 동네 이야기를 듣기 싫어도 강제로 듣다시피 하고있는 미국인들에겐 중동문제만큼 친숙한 게 없다. 게다가, 자폭테러, 매복공격, 납치, 참수, 비디오 촬영 등 와일드한 것들은 죄다 모여있다. 여기에 이런 것들을 청소할 '영웅'만 보태면 곧바로 그럴싸한 액션영화가 완성된다.

역시, 중동문제는 섹시한 영화소잿감이다.

기왕에 중동 테러문제를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김에 실제 발생했던 테러사건까지 갖다 붙여 더욱 리얼하게 만드는 것도 과히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다.

'킹덤(The Kingdom)'이 딱 여기에 해당되는 영화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역사를 간추린 다큐멘타리식으로 거창하게 시작하는 '킹덤'은 얼마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리야드 자폭 테러사건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사우디에서 테러사건이 터졌고, 이를 수사하기 위해 미국서 FBI 에이전트 4명이 출발했고, 현지서 만난 사우디 수사관들과 함께 범인을 추적한다는 게 전부인 영화다. 처음에는 거창하게 보이지만 실제론 아주 뻔한 내용인 것.

잔뜩 분위기를 잡으며 시작한 '킹덤'은 계속해서 '힘'을 풀지 않는다. 알고보면 단순한 줄거리의 영화지만 무지하게 폼을 잡아가며 역사적이고 정치적이고 사실적인 영화인 것처럼 보이도록 포장한다. 워싱턴 D.C가 나오고, 사우디 왕자들이 나오고, 뭔가 복잡미묘한 외교적인 이것 저것들이 꼬여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열심히 노력한 게 보인다.

그런데,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장식용으로 갖다놓은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폼잡기' 다음으로 나오는 건 '뻔할 뻔자'다.

사우디에서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FBI 4명이 출발했다, 그런데 사우디에선 미국 수사관들이 오는 걸 달갑지 않아한다는 것 정도는 중동문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예측할 수 있을만한 얘기다.

달갑지 않은 FBI 에이전트들이 도착하자 사우디측에서 까다롭게 굴며 FBI 에이전트들과 크고 작은 충돌을 빚는다는 것도 새로울 게 없다.

미국과 사우디 수사관들이 함께 수사를 진행하면서 서로 친해진다는 것 역시 생전 처음 보는 설정인 것도 아니다.



유머도 어디서 보던 것들이다.

'킹덤'에 나오는 유머는 미국인과 사우디인 사이의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오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미국인이 외국에서 외국인들과 협력하는 영화'에서 항상 나오던 그런 것들이 전부라는 것. '킹덤'에서도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든지, 잘 나가다가 살짝 손발이 안맞는다든지 하는 미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것들로 웃기는 게 전부다.

그렇다고 웃기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예측했던 유머지만 그래도 몇몇은 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줄거리 전개방식부터 유머까지 새로울 게 없는 뻔할 뻔자라는 게 신경 쓰인다. 처음엔 뭔가 엄청난 게 들어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포장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하니까 '비슷비슷', '뻔할 뻔자'만 들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것들을 다 넘어서도 또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모든 종류의 테러수법들을 모조리 영화에 넣으려고 한 것.

중동 테러리스트에 대한 영화인만큼 뉴스에서 보던 모든 테러수법들을 최대한 넣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앞뒤 분간 안하고 마구 집어넣은 것처럼 보이는 게 문제다. '저 상황에 저런 짓을 할 때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약간 어처구니없게 보이는 부분도 눈에 띈다. 자폭공격, 매복공격, 납치, 참수, 비디오 촬영 등을 마치 '뽕짝 메들리'처럼 만들어놨으니 어색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

테러리스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수법들이 나오는 건 사실이므로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회를 만났다는 듯이 달려들 필요는 없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들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다 알고있는데 새삼스럽게 자폭공격, 매복공격 하는 것들을 줄줄이 보여줄 필요가 없었단 것이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거지를 쓰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무리해가며 테러수법들을 모두 보여주려고 할 필요는 없었다. '테러공격이 이렇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영화를 참 유치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게 느껴지면 문제있는 게 아닐까.



그래도, '킹덤'의 마지막 액션씬은 볼만하다. 어찌보면 이 영화에서 볼거리라곤 마지막 액션씬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사과정은 기억에 남을만한 게 없지만 마지막 액션씬 하나는 볼만하다. 볼만하다고 해봤자 전쟁영화에서의 시가전 장면을 옮겨놓은 게 전부지만 이것 마저도 없었다면 '킹덤'은 볼 게 거진 없는 영화가 됐을 것이다.

테러사건 수사하다가 갑자기 '블랙 호크 다운' 같은 전쟁영화로 둔갑하다보니 살짝 어이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보려주려 한 건 이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 영화의 테마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테러사건 수사만으론 테러리즘 퇴치에 불충분하게 보일테니 어떻게서든 한바탕 붙도록 만들 게 뻔했다. 아랍 테러리스트를 때려잡는 장면 없이 그냥 끝나면 섭섭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테니 말이다. 항상 인디언들이 적으로 나오고, 인디언 공격을 물리치는 카우보이가 '영웅'으로 나오던 옛 서부영화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언제부터인가 미국영화에 아랍인들이 테러리스트로 자주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무 생각없이 아랍인들을 적으로 몰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서부영화에서 인디언을 무조건 적으로 묘사하면서 인디언에 대한 건 하나부터 열까지 요상하고 거부감이 들게끔 만들던 수법을 다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랍인과 아메리칸 인디언이 피부색부터 비슷하고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의상이 눈에 띄는 것도 비슷한데다 '건조한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까지 비슷하다보니 수십년 전 '웨스턴'에서 사용했던 수법을 '미들 이스턴'에서 다시 부활시키려는 것으로 보이기 딱 알맞다. 아랍인들을 적으로 하는 안티-미들 이스턴 트렌드가 계속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랍인 전체가 무조건 나쁘게 묘사된 건 아니다. 사우디 군이 FBI 에이전트에게 도움을 주고, 나중엔 친구가 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아랍인 중에도 '친구'가 있다는 정도는 잊지않고 넣어둔 것. 하지만, 여전히 일방적인 영화로 보인다. 20세기엔 인디언을 무조건 적으로 몰았던 '웨스턴 영화'가 있었다면 21세기엔 아랍인들을 적으로 모는 '미들 이스턴 영화'라는 새로운 쟝르가 탄생한 걸로 보일 뿐.



'킹덤'은 잘 만들었다고 하기 힘든 영화다. 제이미 폭스와 제니퍼 가너 등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한다지만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으며, 줄거리도 억지로 짜맞춘 것처럼 보일 뿐이다. 시작부터 엄청나게 분위기를 잡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느껴지는 게 없다. 그래도 마지막은 어떻게서든 감동적으로 장식하고 싶었는지 꽤 노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내내 느껴지는 게 없을만큼 맹탕인 영화에서 무슨 감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선 무지하게 심각하지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선 피식 웃음만 나올 뿐.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며 전투를 벌이는 액션영화로 만들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다. 액션이 전부인 영화는 아니라지만 결국엔 마지막 클라이맥스 액션씬 빼고는 볼 게 없는 영화가 됐는데, 이렇게 될바엔 차라리 100% 액션영화로 만드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것. 액션 이외로도 뭔가 묵직한 것이 있는 드라마+스릴러 영화인 것처럼 위장하려고 노력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 '킹덤' TV 광고에서 흘러나왔던 Kanye West의 'Stronger'.

제이미 폭스의 2005년 영화 'Jarhead' 트레일러에도 Kanye West의 곡, 'Jesus Walks'를 사용하더니 '킹덤'에서도 또다시 Kanye West의 곡을 사용했다. 그 이유가 뭔지는 관심없으니까 생략하고 'Stronger' 뮤직비디오나 보면서 끝내도록 하자:

2007년 9월 27일 목요일

'이스턴 프로미스', 썰렁한 갱스터 영화

영국을 배경으로 한 갱스터 영화는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와 닿지 않는다. 비디오게임도 영국 갱스터들이 나오면 맛이 나지 않는다. 미국 갱스터, 마피아, 야쿠자, 삼합회엔 익숙한데 영국의 갱스터라고 하면 그다지 그럴싸하게 들리지 않는다. '영국'과 '갱스터'라는 두 단어가 서로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스턴 프로미스(Eastern Promises)'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마피아의 이야기인만큼 엄밀하게 따지면 영국 갱스터 얘기는 아니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 갱스터도 아니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마피아 얘기라니까 왠지 모르게 더욱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스턴 프로미스'의 가장 큰 문제는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갱스터 영화를 억지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영국은 갱스터로 유명한 곳이 아닌데도 어떻게서든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갱스터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억지부린 것처럼 보인다. 중국엔 '무간도'가 있고 미국엔 '디파티드'가 있다면 영국엔 '이스턴 프로미스'가 있다는 식으로, 다시 말해 영국에도 갱스터 영화가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만든 영화처럼 보인다는 것.

그렇다고, '무간도', '디파티드'에 견줄만한 영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스턴 프로미스'는 임신한 14세 러시아 소녀가 아이를 낳고 사망하자, 수술을 담당했던 Anna(나오미 와츠)가 사망한 소녀가 남긴 일기장을 번역하면서 영국내 러시아 마피아가 얽힌 사건이라는 것을 하나씩 밝혀낸다는 줄거리의 스릴러 영화다. 줄거리만 보면 '무간도', '디파티드'와 무관하게 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같은 갱스터 영화로써 전체적인 분위기만 약간 비슷할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 이상으로 '디파티드'의 영향을 받은 영화였다. '이스턴 프로미스'는 영국내 러시아 마피아의 이야기에 '무간도', '디파티드'에서 빌려온 아이디어를 섞어놓은 'Vodka Departed, shaken not stirred'라는 맛없는 칵테일일 뿐이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비고 모텐슨(Viggo Mortensen)은 러시아 마피아 보스의 아들, 키릴(Vincent Cassel)을 '모시는' 니콜라이라는 캐릭터로 나온다. 아무래도 비고 모텐슨이 러시아인 역할에 잘 어울린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자체에 약간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어서인지 모텐슨이 연기한 니콜라이도 잘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이걸 극복하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성기노출!


(위 사진은 영화와 아무 상관없음. 성기노출만 빼고...)

유럽에선 성기노출씬에 익숙한 편이라지만 미국에선 아직 그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 배우들 사이에선 성기노출씬/Frontal Nude씬을 '유러피언 누드'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이렇다보니 '이스턴 프로미스'가 개봉하기 전부터 가장 말이 많았던 게 비고 모텐슨의 성기노출씬이었다.

문제의 성기노출은 사우나에서 벌어지는 격투씬에서 나온다. 타월 한장 달랑 두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괴한들의 공격을 받는 씬이다. 비고 모텐슨은 성기노출을 하게 된 건 리얼리즘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걸치고 있는 것이라곤 타월 한장이 전부인 상황에 갑자기 공격을 당했을 때 현실적으로 누가 바지를 입을 생각을 하겠냐는 것.

물론,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적에게 '타임아웃! 바지 입고 합시다!' 할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우나에 들어갔을 땐 허리에 감겨있던 타월이 격투가 벌어지기 직전엔 어깨 위로 이동한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이 잘 안된다. 같이 사우나를 하던 남자들은 다들 타월을 허리에 두르고 앉아있는데 왜 니콜라이(비고 모텐슨)만 타월을 풀어 어깨 위에 올려놓았을까?



니콜라이가 애초부터 타월을 두르지 않았거나 타월을 그대로 허리에 두른 상태에서 싸우기 시작했다면 '성기노출 하려고 일부러 타월을 풀고 대기중'이던 것처럼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타월을 허리에 두른 채 싸운다고 성기노출씬이 사라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격렬한 맨손격투를 벌이다가 타월이 벗겨진다는 식으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고 모텐슨은 타월을 어깨에 두르고 대기중이었고, 격투가 벌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알몸으로 싸우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 성기노출 가지고 지나치게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웃긴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성기노출씬이 뉴스거리가 된다. 다른 것 다 볼 게 없더라도 '아무개의 성기노출씬이 나온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이에 대한 기사를 써댄다. 영화 자체보다 '성기노출'이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이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 쪽에선 겉으론 '왜 그런 것에만 신경을 쓰냐. 영화 전체를 봐달라'고 하겠지만 속으론 이것으로 마케팅 재미를 보고싶어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기노출을 통한 '몽둥이 마케팅' 하나만 믿고있는지도 모른다. '아무개가 벗었다', '노출수위가 어쩌구' 하는 것들로 한몫 보려는 싸구려 영화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아무개가 성기노출한 영화'라는 것 하나만으로 재미를 보려는 영화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를 받기 싫으면 억지로 성기노출씬을 넣은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된다. 일부러 거기에 포인트를 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것. 그러나, '이스턴 프로미스'에서의 사우나 격투씬은 왠지 모르게 셋업된 것 같은 티가 난다. 이 정도면 자연스럽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볼 땐 여전히 의심스럽다.

그래도, 알몸으로 피튀기는 싸움을 한다는 것 자체는 그런대로 볼만하다. 아놀드 슈왈츠네거, 제임스 벨루시 주연의 '레드히트(Red Heat)'에서 슈왈츠네거가 사우나에서 싸우는 씬이 나왔으니 '사우나에서 싸운다'는 것 자체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지 모르지만 '이스턴 프로미스'의 사우나 격투씬은 '레드 히트'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격렬하다. '이스턴 프로미스'의 격투씬은 완벽하게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사투를 벌인다는 처절함을 보여주고자 했고, 그것이 제대로 전해졌다고 본다. '타월 위치변동'은 여전히 신경 쓰이지만...



'이스턴 프로미스'는 얼핏보면 매우 심각한 갱스터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무언가를 따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분위기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 영국서 활동하는 러시아 갱스터 영화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지만 새롭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분위기는 그럴싸하지만 어디서 보던 것들을 엮어놓은 정도로 보일 뿐이며, 영화가 끝난 이후엔 시시하다는 생각만 든다. 영화가 약간 어정쩡하게 마무리 되는 것도 그렇고, 줄거리 자체가 잔뜩 깔아놓은 분위기에 비해 단조롭게 보이는 것도 신경 쓰인다.

'이스턴 프로미스'는 '대부', '굿 펠라스'와 같은 마피아 영화와 '무간도', '디파티드'에서 빌려온 아이디어를 섞어 그럴싸해 보이는 갱스터 영화를 만들어 보려고 한 것 같지만 뭔가 엉성해보인다. 다른 영국산 범죄영화들처럼 분위기만 잔뜩 잡다가 마는 그런 영화들 중 하나로 보일 뿐이다. 비고 모텐슨, 나오미 와츠 등 출연배우들은 화려하지만 극장용 영화로써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해보이는 데가 있어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약간 썰렁하고 허무해보이는 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은근히 신경 쓰인다. '이스턴 프로미스'도 명색이 갱스터 스릴러인데 마치 TV 연속극을 보는 것처럼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평범한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이스턴 프로미스'의 쟝르가 '드라마/스릴러'라지만 극장용 영화라면 식사하는 장면 등 분위기를 쳐지게 만드는 것은 추려냈어야 하지 않았나 한다. 식사 하면서 나누는 대화내용 중에 줄거리 전개상 꼭 알아둬야 하는 중요한 게 나온다면 모르지만 내 기억엔 그렇게 중요한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편집하지 않았는지 의아스럽다. 줄거리 진행을 더디게 만들 뿐 아니라 영화를 따분하게 만드는 주범인데 말이다. 아무리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지만 극장용 영화를 보면서 별 영양가 없는 얘기를 나누는 것까지 귀담아 들어줄 정도의 참을성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오후시간대 방영하는 TV 드라마라면 또 모르지만 극장용 영화가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고 본다.

그래도, 러시아 액센트가 강한 영어에 아예 러시아어로 대화하는 장면까지 나오는 걸 보면 러시아 마피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배경이 영국이다', '러시아 마피아다'는 것 빼고 나면 다른 갱스터 영화들과 다를 게 없어보인다. 영국서 활동하는 러시아 갱스터 이야기라는 게 그다지 섹시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까놓고 말해서, 남자 주인공이 성기노출을 한다는 것을 뺀 나머지는 다른 갱스터 영화에서 봤던 것들을 조각조각 붙여놓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스턴 프로미스'는 기대했던 만큼 재미있게 즐길만한 갱스터/스릴러 영화는 아니다. 갱스터 영화라면 뭐든 상관없다는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봤을 때 '이스턴 프로미스'는 따분한 영화 이상이 아니었다. 비고 모텐슨의 성기노출을 제외하고 관객들을 끌어모을만한 게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

2007년 9월 25일 화요일

리처드 버튼이 제임스 본드였다면?

영국 웨일즈 지역신문에 난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눈에 띄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원작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1959년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 1925~1984)에게 제임스 본드역을 제의했었다는 것.

플레밍은 자신의 제임스 본드 소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영화화 이야기가 나오자 제임스 본드역을 맡게 될 남자다우면서도 어둡고 우울한 데가 있는 배우를 찾아나섰고, 리처드 버튼이 여기에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는 것.

Fleming approached Burton when he entered talks to turn his 1953 novel Casino Royale into a film. He was looking for someone manly and virile, dark and brooding – and thought the great Welsh actor would fit the bill.

하지만, 리처드 버튼이 거절했다고 한다. 1959년 당시만 해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지금처럼 성공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리처드 버튼의 친척들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주연의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을 보면서 '만약 리처드 버튼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더라면 저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리처드 버튼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다면 다니엘 크레이그가 '카지노 로얄'에서 연기한 진지하면서도 터프한 제임스 본드와 비슷했을 것이란 얘기다.

“I saw Daniel Craig in Casino Royale the other day and I thought to myself: yes, that’s Richard. That’s very much how my uncle would have played the role.”

리처드 버튼의 친척들에 따르면 버튼이 007 시리즈의 성공을 보면서 본드역을 거절한 걸 속으로 후회했을지 모르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고 한다.

그 이후 리처드 버튼은 존 르 카레(John Le Carre) 원작의 첩보영화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1965)'에 출연했다. 이언 플레밍의 영국 스파이 대신 존 르 카레의 영국 스파이를 맡은 것.



만약 리처드 버튼이 제임스 본드였다면 어땠을까?

리처드 버튼이 이언 플레밍의 제의를 받아들여 제임스 본드역을 맡았다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훌륭했을 것 같다. 이언 플레밍 원작의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데가 많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제임스 본드는 어떻게 생겼을까' 라는 생각이 들고, 이를 머릿속에서 그려보게 된다. 이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제임스 본드의 모습은 누구와 가장 닮았을까? 아무래도 007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로 나왔던 배우들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중 누가 소설에서의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데가 많은 것 같은지 한번 생각해보자.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을 읽으면서 로저 무어나 피어스 브로스난의 얼굴이 떠올랐다면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소설에서의 제임스 본드는 로저 무어와 피어스 브로스난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숀 코네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다. 숀 코네리가 영화 '골드핑거'에서 제임스 본드였지만 소설로 읽다보면 코네리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문레이커'를 소설로 읽으면서 로저 무어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 건 두말할 필요없는 얘기다. 플레밍의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제임스 본드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007 영화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로 유명했던 배우들과는 매치가 안된다.

원작소설에서의 제임스 본드는 사무적이고 무뚝뚝한 장교에 가깝다.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은 전부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초현실적인 스파이 스릴러는 아니기 때문에 존 르 카레의 소설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소련 SMERSH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다는 내용의 'From Russia With Love'와 집시로 위장한 암살부대가 나오는 '뷰투어킬',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는 영국 스파이를 돕는다는 내용의 '리빙데이라이트'를 포함한 몇몇 Short Story들은 존 르 카레 스타일과 비슷해보인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는 냉전시대 스파이보다는 '수사관'에 더욱 가까워 보이는 캐릭터로 자주 나왔다.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니 가서 조사해보라'고 현지에 파견되는 에이전트에 가깝다.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은 본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로 티모시 달튼을 꼽는다. 차갑고 거칠고 무뚝뚝하면서 진지한 티모시 달튼을 보면서 이언 플레밍 원작의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데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 요즘엔 다니엘 크레이그가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면서 티모시 달튼을 밀어내기 일보직전이다. 풍기는 이미지가 플레밍의 본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리처드 버튼이 추가됐다. 이미 고인이고 거의 50년전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단 1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도 출연하지 않았지만 '만약' 그 때 당시에 리처드 버튼이 제임스 본드였다면, 그가 'Dr. No', 'From Russia With Love'에 출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 생각엔 숀 코네리보다 제임스 본드에 잘 어울렸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숀 코네리가 최고의 제임스 본드라고 하고, 나 역시도 여기에 동의하지만 리처드 버튼이 제임스 본드 리스트에 들어온다면 또다른 얘기다. 리처드 버튼이 제임스 본드역을 수락했다면 아마도 어마어마한 제임스 본드가 됐을 것이다.

21편의 007 영화중에서 플레밍의 원작에 가까운 영화는 한손에 꼽힐 정도에 불과한데 007 시리즈 초창기에 리처드 버튼이 '플레밍 버전 제임스 본드'를 확실하게 연기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리처드 버튼이 시작부터 강인하고 진지한 제임스 본드를 보여줬다면 007 시리즈가 가젯과 본드걸, 본드카 위주로 변질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상당히 많은 'IF'가 나올 것이다.

자꾸 리처드 버튼 버전 제임스 본드를 얘기하다보니 숀 코네리의 제임스 본드가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된다. 절대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리처드 버튼 버전 제임스 본드를 볼 수 없었다는 게 왠지 모르게 아쉽다. 제임스 본드에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적어도 1편이라도 리처드 버튼이 제임스 본드로 나온 영화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래도 007 영화에 제임스 본드로 나온 배우들 중에 플레밍 원작의 제임스 본드에 가까워 보이는 배우가 드물기 때문이리라.

2007년 9월 22일 토요일

'3:10 To Yuma', 서부영화 돌아오다!

서부영화라고 하면 한물 간 쟝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부영화라고 하면 50년대 흑백영화가 떠오르기 때문에 '한물 간 쟝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해 안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서부극이란 쟝르가 한물 간 것인지, 아니면 최근에 만들어진 서부극이 볼품 없었기 때문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최근에도 잘 만들어진 서부영화가 계속 나왔다면 서부영화 하면 50년대 흑백영화가 생각날 정도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부영화를 죽인 건 한심한 서부영화 덕분이지 쟝르 자체가 죽은 건 절대 아니다. 서부영화는 여전히 건재한다. 그리고, 여전히 멋진 영화가 될 수 있다. 서부영화는 할아버지 시절에나 유행했던 쟝르가 아니라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통할 수 있는 쟝르다.

이것을 '3:10 To Yuma'가 증명해 보였다.



1957년에 나왔던 서부영화를 50년만에 리메이크한 영화, '3:10 To Yuma'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댄 에반스(크리스챤 베일)가 체포된 갱단 두목 벤 웨이드(러셀 크로우)를 3시10분 출발하는 유마(Yuma)행 기차에 태우기 위해 기차역까지 데리고 간다는 게 전부다.

하지만, 기차역까지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아파치의 공격까지 뚫어야 한다.

이 영화가 19세기말 미국 아리조나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설마 아파치 헬리콥터 AH-64로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3:10 To Yuma'의 볼거리가 '기차역까지 가는 동안 벌어지는 액션'이 전부인 건 아니다. 이 영화의 참 맛은 빚 독촉에 시달리는 자신을 무능한 가장이라고 생각하는 댄 에반스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매너가 좋은 무법자 벤 웨이드라는 두 사나이가 풀어가는 줄거리다.

가족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200불을 받기로 하고 범죄자 벤 웨이드(러셀 크로우)를 기차역까지 호송하는 위험한 일에 자원한 댄 에반스(크리스챤 베일)는 가족들로부터 존경받는 가장이 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인지 잭 웨이드가 빚을 모두 갚아준다고 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잭 웨이드를 3시10분 출발하는 유마행 기차에 태우겠다는 것. 댄의 큰아들, 윌리엄이 몰래 이들 일행을 쫓아왔으니 아들이 보는 앞에서 범죄자와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잭 웨이드(러셀 크로우)는 죄수 신분이란 것도 잊은 듯 자신을 호송중인 사람들을 구해주기도 하는 괴짜다. 맘에 들지않는 녀석은 해치워버리지만 상당히 인간적인 친구다. 오죽했으면 댄의 큰아들, 윌리엄으로부터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악명높은 무법자로써는 매우 스타일 구겨지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잭 웨이드는 윌리엄이 표현대로 그다지 나쁘게 보이지 않는 친구다.

그렇다고 범죄자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살인, 강도 등 잭과 그의 갱단이 벌인 범죄까지 덮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무법자인 것까진 맞지만 그렇다고 사악한 친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게 전부다.



서로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나이가 사흘동안 함께 여행을 하면서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서로 친해지기 시작한다. 죄수를 기차역까지 에스코트하는 임무를 띈 사나이와 죄수로 끌려가는 신세인 사나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하는데 스크린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묘하게 얽힌 두 사나이의 이야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눈 팔 틈을 주지않는다.

서부극도 액션영화로 분류해야겠지만 '3:10 To Yuma'는 액션보다는 줄거리가 볼거리인 영화다. 액션씬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액션씬 자체보다 두 사나이의 이야기가 메인인 영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이 절대 들지않는 영화다. 액션보다 줄거리가 더 중요하다면 액션영화가 아니라 드라마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대사 한마디, 장면 한 컷 놓치지 않고 꼼꼼히 보게 만들고, 마지막에 찌릿한 감동까지 전해지는데 이 이상 더 바랄 게 있는지 모르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으로 나온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서부영화도 액션이 우선인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클래식 웨스턴은 그렇지 않았다. 게리 쿠퍼 주연의 클래식 웨스턴 '하이눈(High Noon)'의 액션씬은 마지막 클라이맥스 배틀이 전부인 것만 봐도 그렇다. '3:10 To Yuma'는 '하이눈'처럼 액션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시작부터 한바탕 갈기는데다 중간중간에도 심심하지 않을만큼 액션씬이 나온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처럼 액션 위주인 것은 아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타일의 액션위주 '스파게티 웨스턴'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 모르지만 '스파게티 웨스턴'은 서부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통 서부영화 팬들에겐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남성 영화'라고 하는 것 같다. 대개의 경우 액션성이 높거나 갱스터 영화를 '남성 영화'라고 부르는데 '3:10 To Yuma' 역시 그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영화다. 멋진 아버지, 멋진 남편이 되고자 하는 사나이, 이것을 이해해주는 '멋쟁이 무법자'의 이야기인데 이게 '남성 영화'가 아니면 무엇일까?

'남성 영화'라고 하면 심하게 터프한 척 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와일드한 영화일 것으로 생각한다. 어찌보면 서부영화야 말로 여기에 딱 해당되는 쟝르인지도 모른다. 테마까지 권선징악인 게 대부분인 서부영화야 말로 여러모로 완벽한 '남성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3:10 To Yuma'는 과장된 터프가이들이 나오는 그런 '남성 영화'가 아니다. 댄 에반스와 잭 웨이드 모두 전형적인 '히어로(Hero)' 캐릭터와는 거리가 있다. 거친 액션씬이 볼거리인 영화도 아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내 아내였다면...'이라는 남자들끼리의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나이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남성 영화'다.

난 싱글이다. 와이프도 없고 당연히 애들도 없다. 아직까진 가장이 되고픈 생각도 없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으로써의 책임감과 자존심, 명예 같은 걸 생각해보게 됐다. 아들 앞에선 쪼다가 아닌 멋진 아버지로 보이고 싶고, 와이프 앞에선 가족을 굶기지 않는 능력있는 가장이자 멋진 남편으로 보이고 싶은 댄의 속마음이 느껴졌다. 초라한 자신을 숨기고 싶고,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할 뭔가를 성취해 이것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픈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바로 이런 게 진정한 '남성 영화'가 아닐까?



'3:10 To Yuma'는 2007년 들어 현재까지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진한 감동과 여운이 한참동안 가시지 않는 그런 영화였다. 극장을 나서면서 '시간낭비 했다'거나 '그저 볼만했다'가 아니라 '안 봤으면 후회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든 영화였다. 금년에 본 영화 중에서 극장에서 다시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 처음이자 현재로써는 유일한 영화다.

기회가 오면 50년대 서부영화나 가끔 보는 정도였을 뿐 최근 만들어진 서부영화는 거진 보지 않았다. 일부러 찾아볼 정도가 아니던 것. 그런데, '3:10 To Yuma'를 본 이후부터 달라졌다. 새로 나오는 서부영화 중에도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봤고, 이와 동시에 클래식 서부영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57년작 '3:10 To Yuma'도 아직 못봤으니 이걸 포함해 클래식 웨스턴 여러 편을 찾아볼 생각이다.

역시 가장 쿨한 쟝르는 서부영화였던가...?

2007년 9월 20일 목요일

'디스터비아', 틴에이져 스릴러의 재미

이웃집 남자가 시리얼 킬러라면?

그가 시리얼 킬러라고 확신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도 이걸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

더더욱 큰 문제는 누군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걸 눈치챈 시리얼 킬러가 서서히 조여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



샤이아 라버프 주연의 '디스터비아(Disturbia)'는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주연의 1954년 히치콕 영화 'Rear Window'를 리메이크한 스릴러 영화라고 한다. 'Rear Window'를 보진 않았지만 이 영화 이외로 '옆집에 살인마가 이사왔다'는 내용의 스릴러는 꽤 있는 것 같다.

대신 생각난 영화는 'Fright Night'. 80년대 나온 뱀파이어 공포영화다. 뱀파이어가 나오는 영화인만큼 '디스터비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영화지만 '이웃에 사는 남자가 이상하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인공이 틴에이져라는 것, 망원경으로 옆집을 몰래 훔쳐본다는 것,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보니 코메디쪽에 가깝게 보인다는 것 등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데가 많다.



'디스터비아'는 스페인어 교사를 때린 혐의로 가택연금형을 받은 고등학생 케일(샤이아 라버프)이 집안에 틀어박혀 망원경으로 이웃들을 관찰하다가 TV뉴스에 나온 살인범과 여러 면에서 비슷해보이는 이웃집 남자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가택연금형을 받은 상태라 발목에 모니터를 차고있다는 악조건까지 겹친다.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면 알람이 울리고, 알람이 울리면 경찰이 온다. 집에서 멀리 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한 장치라서 꼼짝없이 집에 쳐박혀있을 수밖에 없는 것.



문제는 저 모니터 때문에 옆집에 새로 이사온 여자를 만나보러 갈 수도 없는 팔자다. 집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옆집녀' 애슐리도 '그림의 떡'일 뿐. 군침돌게 생겼지만 '옆집녀'가 집으로 찾아오지 않는한 망원경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것. 간단하게 말해, 거져 굴러오지 않는한 손을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쯤됐으면 돌아버리기 직전일지도 모르지만 케일의 고등학교 친구 로니가 종종 집으로 놀러와 위로해준다. 로니는 케일의 스패니시 클래스메이트로, 케일이 교사를 때려눕히던 날 자꾸 'Kiss Ass' 어쩌구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한 바로 그녀석이다.

스페인어를 못하기 때문에 이게 무슨 소리인지 영어자막과 가만히 비교해 봤더니 'Perhaps'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Quizás'를 'Kiss Ass'처럼 발음하며 장난친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케일, '옆집녀' 애슐리, 로니까지 '3 Stooges'가 완성됐다.

여기에, 케일의 얘기를 믿어주지 않는 어머니로 캐리-앤 모스가 나온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썬글라스 끼고 폼잡다가 고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로 변신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별로 좋지않은 이웃, 미스터 터너로는 데이빗 모스가 나온다. 아무래도 '하니발' 시리즈의 안토니 홉킨스와 비슷해보이는 배우를 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줄거리는 '옆집에 사는 시리얼 킬러를 우연히 발견한다'는 어찌보면 섬짓한 내용이지만 주인공들이 전부 고등학생이다보니 스릴러/호러쪽이 아니라 하이틴 코메디에 가까운 분위기의 영화가 됐다. 무거운 분위기의 스릴러가 아니라 고등학생들이 들쑤시고 다니는 약간 엉뚱해보이는 영화인 것.

하지만, 그렇다고 시시한 것은 아니다. 시리얼 킬러가 나오는 다른 스릴러 영화들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게 전부지 영화 자체가 완전히 아이들용인 건 아니다. 주인공이 죄다 고등학생들이니 아무래도 하이틴 영화처럼 보이는 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는 각오하고 봐야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샤이아 라버프라는 배우 덕분이다. 이 친구를 볼 때마다 실제로 알고있는 녀석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만큼 친근감이 가는 친구다. 그다지 샤프해 보이지 않지만 아주 엉성해 보이지도 않는데 황당한 사건에 자주 휘말리는, 어디서 실제로 본 것 같은 친숙한 친구다. 고등학교를 다니다 보면 별 희한한 녀석들을 만나게 되고, 발목에 저런 것을 차고 다니던 녀석들도 여럿 보게 된다. 이렇다보니 '디스터비아'에서의 샤이아 라버프를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갱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마약을 즐겨하는 것도 아닌, 다시 말하면 문제아로 보이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항상 사고를 치고 다니는 녀석이 꼭 있다. 큰 사고는 안 치더라도 사소한 사건들에 자주 뒤엉키는 그런 녀석들 말이다. 나도 고등학교때 수갑 여러 번 차봤고, 일반 경찰서 뿐만 아니라 밀리터리 폴리스한테도 잡혀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삽질(?)하는 영화만 보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아메리칸 파이'와 같은 섹스 코메디는 이젠 약간 유치해 보이지만 고등학생들이 사고치고 다니는 영화만 보면 이상하게 끌린다. 조폭처럼 패싸움이나 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것 저것 사소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그저 평범한 말썽꾸러기들의 얘기 말이다.

'디스터비아'는 쟝르상 스릴러 영화가 맞지만 고등학생들이 나오다보니 옛날생각 나게 만드는 영화가 됐다. 그렇다고 실제로 시리얼 킬러까지 만나봤다는 건 아니다. 시리얼 킬러는 빼고 옛날생각 나게 만드는 영화라고 해야 맞을 듯.

아, 지금 생각해보니 'Cereal Killer'는 만났던 것 같지만...



얘기가 이쪽으로 가다보니 케일(샤이아 라버프)의 방을 빼놓고 넘어갈 수 없다.

이 녀석의 방은 한마디로 예술이다. 아쉽게도 나는 케일의 것처럼 쿨한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포스터도 많이 붙여봤지만 저렇게 쿨한 분위기가 나는 방을 만들어 보지 못했다. 다만, 케일의 방처럼 지저분하게 만들어 본 적은 있다. 아무래도 이건 내 전문이라서 그런지 방이 정신없는 건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지금은 그나마 발 디딜 틈은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발짝 내디딜 때마다 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으니 약간 발전한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일 뿐이란 데 자부심을 갖고 산다.

그게 뭐가 자랑이냐고?

F-You then.



케일의 방을 얘기하다보면 여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악세사리'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360, 소니의 PSP(위 사진에서 케일이 들고있는 것),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튠스뮤직 스토어, 핸드폰, HD 캠코더 등이 쏟아져 나온다. 비록 줄거리 진행과 전혀 상관없는 소품들이지만 게임콘솔은 마이크로소프트, 휴대용 게임기는 소니, MP3 플레이어는 애플이라는 식으로 정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반면, 핸드폰과 HD 캠코더는 사건 수사(?)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

캠코더는 '고딩 3총사'가 옆집의 수상한 사나이를 몰래 촬영하는 데 아주 요긴하게 사용한다. 이 영화에서 사생활 침해 몰래 카메라 수준을 넘어서는 맹활약을 하는 게 바로 캠코더다.



핸드폰은 사진촬영도 하고 작전(?)을 진행하면서 서로 연락을 하는 데도 요긴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핸드폰이 맡은 역할은 사진이나 찍고 통화나 하는 정도가 아니다. 험악한 긴장감이 감돌다가도 에이미가 장난을 친 벨소리 노래가 울려퍼지면 곧바로 웃음이 터지도록 만드는 게 핸드폰의 역할이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물론, 훔쳐보는 재미도 뺄 수 없다. 영화의 80%가 틴에이져 스타일인만큼 '디스터비아'에서의 훔쳐보기도 그쪽 분위기다. 동네 꼬마녀석들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다지만 당장 옆집에 애슐리 같은 여자가 사는데 훔쳐보는 재미가 달콤하지 않을 리 없다. 왠지 이 영화 덕분에 망원경 판매량이 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런 재미가 '틴에이져 스릴러의 맛'일 것이다. 스릴러 영화로써의 '디스터비아'는 이웃들을 관찰하다가 우연히 시리얼 킬러를 발견하면서 사건에 휘말린다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내용이지만, 뻔한 내용임에도 마지막까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든 건 틴에이져 버전으로 '리믹스'한 덕분이다.

만약 '디스터비아'가 성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무거운 분위기의 스릴러 영화였다면 별 볼 일 없었을 것 같다. 어디서 본 듯한 뻔한 내용으로 울궈먹기한 영화라는 생각을 잠재운 게 바로 고등학생 주인공들이다. 그다지 신선하지 않은 소재의 영화를 신선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 단지 시대에 맞춰 핸드폰, 캠코더, 컴퓨터 등이 영화에 나온다는 정도로는 여전히 신선도가 떨어지니까 아예 주인공을 고등학생으로 하면서 틴에이져 코메디 분위기까지 묻어나도록 만든 게 제대로 통했다고 본다.

'디스터비아'는 가볍게 즐길만한 영화다. 완벽하면서도 무자비한 시리얼 킬러에 쫓기는 무거운 분위기의 스릴러 영화를 원한다면 '디스터비아'에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와 정 반대로 유머가 풍부한 스릴러 영화를 원한다면 '디스터비아'가 왔다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애슐리가 케일의 핸드폰 벨소리로 선택한 2 Live Crew의 'Me So Horny'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끝내자. 80년대말쯤 나온 꽤 오래된 '불후의 명곡'인데 이 영화에 갑자기 나올 줄은 몰랐다.

난 불행하게도 핸드폰 벨소리로 이런 노래를 골라주는 여자를 아직 못 만나봤다...ㅠㅠ

Me So Horny TOO!!!!!!!!!!!

2007년 9월 17일 월요일

뻔한 내용의 평범한 영화, '브레이브 원'

절친한 친구가 누구한테 맞고 들어왔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접 잡으러 나가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직접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 신고해봤자 별다른 도움이 없을 것 같으니 직접 치러 가겠다는 것. 집에 총이 있는 사람들은 거실에서 클립에 총알을 끼우며 '다 죽여버리겠다'면서 한바탕 할 준비를 한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은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스릴러 영화다.



'브레이브 원'은 양아치들에게 폭행당해 남자친구를 잃은 에리카(조디 포스터)가 지독한 사건을 겪으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줄거리의 영화다. 라디오쇼 진행자에서 길거리의 양아치들을 청소하는 얼굴없는 킬러로 변신하는 것.

일단, 조디 포스터의 남자친구로 나오는 배우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ABC의 TV 시리즈 '로스트(Lost)'에서 이라크인, 사이드로 나오는 인도계 영국배우 나빈 앤드류스(Naveen Andrews)다. '로스트'에선 이라크군 출신으로 거진 람보처럼 보이는 캐릭터로 나오지만 '브레이브 원'에선 일찌감치 맞아죽는다. 데이트 도중에 갱스터들에게 맞아죽어 조디 포스터를 열받게 만든 장본인이다.



에리카(조디 포스터)와 데이빗(나빈 앤드류스)이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다가 갱스터들에게 폭행을 당해 데이빗이 죽게 되고 에리카가 병원으로 후송되는 것까지 진행했을 때는 영화가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확실하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병원에 머서(Mercer) 형사가 나타나면서부터 대충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테렌스 하워드(Terence Howard)가 연기한 머서 형사의 이야기와 에리카의 이야기와 얽히는 순간 이 영화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걸 한눈에 눈치챌 수 있었던 것.

바로 여기서 이 영화의 흐름을 눈치챘다면 엔딩까지 다 꿰뚫어 본 셈이다. '결국 이러이러하게 되겠구나'고 생각했던 그대로 되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무법자로 변신하는데 형사와 친한 사이가 된다'는 아주 흔한 스토리의 스릴러 영화를 몇 편 본 사람들은 여기까지 보고나면 궁금한 게 더이상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비슷비슷한 스토리의 비슷비슷한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이것 하나만 가지고 '브레이브 원'을 끌어내리는 건 곤란할지 모른다. 하지만, 조디 포스터가 나온다는 것을 빼곤 다른 영화들과 크게 차이나는 게 없는 또하나의 비슷한 줄거리의 스릴러 영화인 게 전부인 걸로 보이는 건 사실이다.



줄거리가 영화 초반부터 빤히 보이는데다 예상했던대로 차근차근 진행되는 바람에 뭔가 느껴지는 것도 부족하다. 무겁게 짓누르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음에 드는데 스토리와 캐릭터가 와 닿지 않는다. 에리카가 'Vigilante'로 변신한다는 것까진 줄거리상 이해가 가지만 그녀가 변하는 과정이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그런가부다' 하는 정도일 뿐 그 '아픔'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에리카의 복잡한 심리를 그려내려는 시도를 한 건 맞지만 잘 느껴지지 않는다. 정해진 순서대로 줄거리가 진행되면서 나오는 예상했던 뻔한 장면으로 보일 뿐 깊이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에리카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하면서 '거리의 무법자'가 된다는 와일드한 영화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에리카가 라라 크로프트처럼 변신할 것을 기대한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그녀가 변해가는 것을 지루하지 않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줄 알았다. TV광고에선 아예 DMX의 노래까지 틀어놓으면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여자가 길거리의 갱스터들에 홀로 맞선다'는 와일드한 영화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론 이쪽과는 거리가 멀다. 줄거리 흐름만 따지면 멀다고 할 수 없겠지만 에리카가 '퍼니셔(Punisher)'처럼 변신하는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조디 포스터가 밤거리의 악당들을 쓸어버리는 장면이 자주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은 은근히 실망했을 것이다. 'Vigilante'가 이 영화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에선 냄새만 풍기는 정도에 그친 것으로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스토리 진행 스피드가 무지하게 느리다는 것도 신경쓰인다. 에리카가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얼굴없는 킬러가 되는 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그 과정이 따분하게 느껴진다는 것. 평범한 여자가 얼굴없는 킬러로 변해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려는 의도인 것 같지만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그런데 세월아 네월아 식으로 스토리가 천천히 진행되다보니 지루해진다.

4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라고 하면 쉬지 않고 단숨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브레이브 원'은 1층에서 쉬고, 2층 올라가서 쉬고, 3층 올라가서 또 쉬는 식이다. 옥상까지 올라가면 끝이고, 거기까지 가면 무엇이 보일지 훤히 상상이 되는데 무지하게 뜸을 들인다. 매층마다 새로운 것, 예상치 못했던 것이 보인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예상했던 수순을 천천히 밟는 게 전부기 때문에 진행이 더디다는 생각만 들 뿐 옥상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브레이브 원'은 그런대로 볼만한 평균 수준의 스릴러 영화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기대했던만큼 짜릿한 맛이 나는 스릴러도 아니다. 아주 맹탕인 건 아니지만 영화 초반부터 내용이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놀랍다', '뜻밖이다', '짜릿하다'고 할만한 게 없다. 예상했던대로 흘러가는 걸 지켜보는 선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조디 포스터와 테렌스 하워드의 차분한 연기는 좋았다지만 그렇다고해서 비슷한 내용의 다른 스릴러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극장을 나서면서 '아무개가 나오는 영화'라는 데 낚인 것 같다는 기분이 살짝(?) 들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고 TV광고에만 나왔던 DMX의 'X Gon' Give It to Ya'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끝내기로 하자:



아래 동영상은 저 노래가 나온 '브레이브 원' TV광고:

2007년 9월 14일 금요일

'디 워', 기대에 상당히 못미친 영화

한국에서 말이 워낙 많아 궁금해서 보게 된 영화가 '디 워(Dragon Wars)'다. 포스터와 트레일러만 봐도 대충 영화가 어떤지 감이 잡혔기 때문에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봤다. 도대체 뭐가 어쨌길래 한국에서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궁금해서 보지않을 수 없었던 것.



역시나 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을 것 같았던 기대감은 영화가 시작한지 10분도 채 안되어 사라졌다. 어찌된 게 출연배우 대부분의 연기가 상당히 어색했다. 주인공을 포함해 '디 워' 출연배우 모두가 미국인인데 어찌 된 것이 한국이나 중국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외국배우들처럼 연기가 어색하니 영화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었다.

해외수출을 위해 영어로 제작하고 미국배우들을 출연시켰다지만 미국에서 봤을 때는 차라리 한국배우들과 영어자막이 더 나았을 것 같다. 미국인 입장에서 봤을 때 차라리 한국어에 영어자막이었다면 부족한 연기력에서 오는 썰렁함을 덜 느꼈을테니 말이다. 영어로 만들고 미국배우를 출연시킨 이유가 해외수출용이라는 게 거꾸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미국배우들이 나오고 대사가 영어인데다 배경까지 미국이란 걸 한국 관객들을 상대로 사용한 게 아니냔 것이다. 얼핏 보기에 미국영화처럼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냈을수도 있다.



그래도, '디 워'의 스토리 자체는 그다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류의 판타지/괴수영화에서 이 정도 스토리면 충분하다. '트랜스포머스'가 변신로봇 완구를 소재로 한 영화였는데 '디 워'의 줄거리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가 무지하게 엉성하다는 것. 제아무리 셰익스피어 고전을 영화화 했더라도 이렇게 썰렁하면 아무 소용없다. 어떻게 영화로 옮겼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 워'는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에 엉성한 연출까지 겹치면서 웃음이 터져나오게 한다. 영화가 재미있어서 웃는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다. 영화가 이런 식이다보니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소규모 프로덕션이 만든 저예산 영화를 보고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디 워'가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는 건 알고있다. 하지만, 대체 그 돈이 전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CGI를 뺀 나머지는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CGI가 흔해 빠진 세상에 3D 특수효과 하나만으로 관객들을 감탄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3D는 영화의 한 부분일 뿐이지 영화의 전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CGI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든 상관없이 '3D 빼곤 볼 것 없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것은 잘못 만든 영화다.

출연배우들이 잘생기고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만든 영화'라고 하지 않는다. 비디오게임에서도 단지 그래픽이 훌륭하다고 '잘만든 게임'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부는 '디 워'의 다른 것이 전부 한심하더라도 CGI 하나 볼만하면 된 것 아니냐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게임 플레이는 엉망이지만 중간에 나오는 CGI 컷씬(Cut Scene)이 멋지다고 '잘만든 게임'이라고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디 워'의 CGI 수준은 훌륭한 편이다. 마지막엔 이무기가 입을 쩍 벌리며 뱀처럼 움직이는 장면이 자주 나와 단조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CGI는 전체적으로 볼만했다. 하지만, 이런 것만으론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얼마나 합성을 잘했냐는 게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화팬들은 어지간한 CGI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생전 3D를 구경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요새 영화팬 중에 그런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100% 3D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라면 얘기가 또 다르겠지만 라이브 액션 영화에 CGI 합성한 것만 가지고 관객들을 감탄하게 만들던 시절은 지나가고 있다. CGI는 심하게 가짜 티가 날 정도만 아니면 패스시켜도 되는 일종의 양념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팬 모두가 '3D 그래픽 팬보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3D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지만 여기에 맞춰나가면서 필요한 부분에 사용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일단 CGI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것 빼고나면 나머지는 저예산 영화처럼 보인다는 게 '디 워'의 가장 큰 문제다. 미국에선 이 영화 제작비용이 7천만불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돈이 전부 어디로 간 건지 알 수 없다. 그만한 돈이 들어갔으면 CGI 말고도 돈이 들어간 게 눈에 띄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디 워'는 '$$$$$$$$$$$'가 안 보인다.

갑자기 배경음악으로 아리랑이 나오는 것도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것이야 말로 촌쓰러움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적인 무언가를 이렇게 억지로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대체 언제까지 아리랑 같은 걸로 한국을 홍보할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한편으론 얼마나 내세울 게 없으면 아직도 아리랑에 바지 저고리냔 생각도 들지만 제대로 된 것을 찾아내야지 밤낮 이런 것들로 한국 티를 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무기, 여의주가 나온 것도 영화의 소재를 한국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노력한 결과다. 이렇다보니 조선시대가 나오고 아리랑까지 나왔다. '디 워'는 괴물이 나오는 괴수영화일 뿐이지만 'Visit Korea'라는 자막만 나오지 않을 뿐 딱 관광홍보 동영상 수준으로 보인다. SF영화를 만들면서 불필요하게 한국적인 것을 집어넣으려고 고집한 결과다. 영화에 한국적인 게 일체 나오지 않더라도 제작, 감독이 한국사람들이면 그걸로 충분한데 자꾸 오버하면서 티를 내려다보니까 웃기게 된 것이다.

'디 워'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씬을 꼽으라고 하면 조선시대 회상 장면이 될 것이다. 500년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야 2007년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적인 것과 CGI씬을 한번에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윈-윈' 기회를 놓치기 싫었기 때문인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재현하지 않고 대화로 지나간 이야기를 설명하는 정도로 넘어갔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다. 물론, 골동품 가게 주인이 설명하는 걸 듣는 것도 괴롭긴 마찬가지였겠지만 '반지의 제왕'과 한국의 사극 TV 드라마가 부자연스럽게 섞인 듯한 엉성한 조선시대씬을 보는 것보다는 덜 불편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회상씬에 출연한 한국배우들의 부족한 연기력은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도 없으리라.


어찌됐든, '디 워'는 미국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다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가 되어 미국에서 최고 흥행수입을 기록한 한국영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죽었다 깨도 '잘만든 영화'라는 소리는 못하겠다. '디 워'는 제작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것으로 알고있는데 영화를 보면 급하게 완성하려고 서두른 것처럼 보인다. 수준급 CGI와 상당한 제작비용이 들어간 영화치고 기대에 상당히 못 미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블럭버스터나 헐리우드 비디오에 가면 들어보지도 못한 영화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디 워'가 딱 이 수준이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극장용 메이져 영화처럼 보이지 않았다. '디 워'는 곧바로 DVD로 출시해야 어울리는 그런 영화였다. 소니 픽쳐스가 DVD 계약을 했다는데 역시 소니는 바보가 아닌 게 맞다. 극장보다는 DVD에 어울린다는 걸 제대로 본 것이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싶다면 '디 워' 근처엔 얼씬도 하지않는 게 좋다.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보려고 노력해도 워낙 어이가 없고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영화에 집중할 수 없는 그런 영화다. 아무리 기준을 낮춘다해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디 워'는 후자에 속한다. 상영이 끝난 뒤 기억에 남는 장면, 재미있었던 장면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황당하고 어이없었던 것들밖에 생각나지 않는 영화다. 한 두번 정도는 웃어 넘길 수 있지만 엉성함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나중엔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디 워'는 볼만한 영화가 아니다.

도대체 '디 워'가 어떻길래 그렇게 시끄러웠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가서 봐라. 나도 결국 이것때문에 본 것이 전부니까. 어찌보면 이렇게라도 해서 영화를 보게끔 유도한 건지도 모르지만 일단 궁금하면 가서 봐라.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고 가는 게 좋다. 맘에 든다면 다행이지만 내가 볼 땐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아보인다.


2007년 9월 13일 목요일

미식축구는 '스파이 게임'?

상대 팀 수신호(Hand Signal)를 몰래 촬영한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New England Patriots)와 뉴욕 제츠(New York Jets)의 007 시즌 오프너에서 생긴 일이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뉴욕 제츠의 수비 코치가 선수들에게 수신호를 보내는 걸 몰래 비디오촬영하다가 덜미를 잡히면서 웃지못할 '스파이 스캔달'이 터졌다.

패트리어츠 해드코치, 빌 벨리칙(Bill Belichick)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모두 3차례 수퍼볼 챔피언으로 이끈 명장으로 불린다. 90년대엔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지미 존슨(Jimmy Johnson)이 있었다면 2000년대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빌 벨리칙이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NFL의 대표적인 명장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스파이 스캔달' 사건으로 졸지에 '스파이 매스터'가 됐다. 이제부턴 '빌 벨리칙'이라고 하면 '수퍼볼 우승 헤드코치'가 전부인 게 아니라 '스파이 스캔달'까지 따라붙게 됐다.



헤드코치 빌 벨리칙이 직접 공식사과했지만 이번 '도촬사건'이 사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NFL에서 어떻게서든 죄값을 치루도록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SPN에 따르면 NFL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드래프트 픽을 몰수하는 방법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상대 팀 수신호를 촬영한 것 자체가 부도덕한 방법으로 상대를 이기려고 한 것인만큼 드래프트 픽을 몰수해 팀을 보강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것. 드래프트 픽 몰수가 되든 무엇이 되든 NFL의 징계를 받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빌 벨리칙이 이끄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2001년, 2003년, 2004년 수퍼볼을 우승했는데 이것도 전부 상대 팀 코치들의 수신호를 비디오 촬영해 분석한 덕분 아니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언제부터 상대 팀 수신호를 몰래 촬영해왔냐에 따라 수퍼볼 우승조차도 '부도덕한 우승'이 될 수도 있다. 헤드코치 빌 벨리칙이 직접 나와서 '금년이 007년이다보니 스파이 흉내 한번 내본 게 전부일 뿐이고 그 이전엔 촬영한 적 없다'고 해명한다면 모르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스파이 스캔달' 덕분에 거의 모든 NFL 헤드코치들이 '몰래 카메라'에 대한 질문에 시달렸다. 헤드코치들 모두 부도덕한 행위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지만 대부분 직접적으로 빌 벨리칙을 공격하진 않았다.

달라스 카우보이스 헤드코치 웨이드 필립스는 쿼터백에게 무전으로 지시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수비팀 선수에게도 무전으로 작전을 지시할 수 있게 하면 수신호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스피커가 부착된 헬멧을 사용할 수 있는 포지션은 쿼터백이 유일하지만 수비 포지션 중 하나에게도 스피커가 부착된 헬멧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공격팀 11명 중 스피커가 달린 헬멧을 쓸 수 있는 건 쿼터백 하나가 전부라는 것까진 좋지만 수비팀 11명 중 1명에게도 스피커 달린 헬멧을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NFL은 금년시즌부터 스피커가 부착된 헬멧에 연두색 점을 표시했다(사진). 쿼터백 1명 이외의 다른 선수들이 스피커 달린 헬멧을 몰래 착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쿼터백 겸 와이드 리씨버로 뛰는 선수가 스피커가 달린 쿼터백용 헬멧을 그대로 쓴 채로 와이드 리씨버로 나가는 걸 막겠다는 것. 다른 포지션으로 나갈 때는 스피커 달린 쿼터백 헬멧을 벗고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하는데 슬그머니 그대로 나가는 '반칙'을 막기위해 동그라미 표시를 한 것이다.

하지만, 스피커가 달린 헬멧을 쓸 수 있는 건 공격팀에 속한 쿼터백 하나가 전부이기 때문에 수비팀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헤드코치 웨이드 필립스는 수비선수 중 하나에게도 스피커 달린 헬멧을 쓸 수 있도록 하면 수비 코치들이 힘들게 수신호를 보낼 필요가 없어지고, 이렇게 되면 몰래 촬영하고 싶어도 촬영할 게 없을 것 아니냔 것. 웨이드 필립스는 수신호란 것 자체를 없앨 수 있는데도 그대로 내버려두기 때문에 상대 팀 수신호를 몰래 촬영하는 어이없는 사건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스파이 스캔달' 덕분에 내년시즌부터 수비팀 선수 중 한명도 쿼터백처럼 스피커 달린 헬멧을 사용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물론, 뉴잉글랜드가 팀 닉네임을 '패트리어츠(Patriots)'가 아닌 'Spies' 또는 'Agents', 'Secret Services'로 바꾸는 지도 지켜봐야 할 듯.

2007년 9월 12일 수요일

NFL 첫 주, 경기장도 만원 병원도 만원

일부 풋볼선수들과 애널리스트들은 프리시즌(시범경기) 기간이 너무 긴 바람에 부상위험이 높다고 한다. 정규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아무 의미없는 시범경기를 하다가 부상으로 몇 주, 몇 개월, 심지어 시즌까지 접게 된다면 손해가 크지 않냐는 것이다. 실제로, 프리시즌 부상으로 그 해 정규시즌을 잡친 선수들이 많다.

그렇다고 프리시즌을 없앨 순 없겠지만 일리있는 말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2007년 정규시즌 첫 째주에 부상자 명단에 오른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 걸 보면 프리시즌 탓만 할 순 없을 것 같다. 목뼈부상으로 병원으로 옮겨진 버팔로 빌스(Buffalo Bills)의 타잇엔드(Tight End), 케빈 에버렛(Kevin Everett-사진)부터 시작해서 시즌 첫 주부터 여러 명의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시즌 첫 주 부상자 명단에 오른 선수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부상을 당한 건 케빈 에버렛일 것이다. 케빈 에버렛은 잘못하면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월요일에만 해도 다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회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비관적인 보도가 나왔지만 ESPN에 따르면 수술이후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풋볼을 할 수 없을진 몰라도 적어도 걸어다닐 수는 있을 모양이다. 뉴욕 타임스에도 'Doctor Says Bills' Everett Will Walk Again'이란 기사가 있는 걸 보니 회복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인 듯 하다.

뉴욕 자이언츠 주전 쿼터백 일라이 매닝(Eli Manning)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 친구는 오른쪽 어깨가 빠진 걸로 알려졌는데 ESPN은 적어도 1달간 뛸 수 없을 것이라고 하고 NFL에선 적어도 2경기를 못 뛸 것이라고 한다. 오른손 잡이 쿼터백이 오른쪽 어깨를 다쳤는데 2~4주 안에 컴백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첫 경기부터 부상자 속출로 휘청거리고 있는 뉴욕 자이언츠는 주전 쿼터백만 잃은 게 아니다. 주전 러닝백 브랜던 제이콥(Brandon Jacob)도 무릎부상으로 3~6주간 아웃이라고 한다. 티키 바버(Tiki Barber)가 2006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바람에 브랜던 제이콥이 007 시즌부터 주전 러닝백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하는데 시즌 오프너에 부상을 당해 1달 정도 쉬게 생겼다.

뉴욕 자이언츠를 상대했던 달라스 카우보이스도 대미지를 입었다. 노스 태클(Nose Tackle), 제이슨 퍼거슨(Jason Ferguson)이 오른팔 근육부상으로 007년 시즌을 접게 된 것. 팔에 붕대를 감고있었지만 경기 내내 사이드라인에 서있길래 큰 부상이 아닌 줄 알았는데 알고봤더니 수술이 필요한 시즌엔딩 부상이라고 한다.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오펜시브 라인맨 존 잰슨(Jon Jansen)도 007 시즌을 접었다. 마이애미 돌핀스와의 시즌 오프너에서 오른쪽 다리뼈가 부러지고 발목이 빠지는 부상을 입은 덕분이다. 워싱턴 레드스킨스는 다음주 월요일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맞붙는다. 필라델피아 이글스는 그린베이 패커스에게 막판 필드골을 내주고 패한 바람에 약이 잔뜩 올라있는 상태. 다음 주 월요일 레드스킨스는 '새조심'을 해야할 것이다. 안 그러면 '데드스킨'이 되리라.

뉴욕 제츠(Jets)의 주전 쿼터백 채드 패닝턴(Chad Pennington)도 오른쪽 발목을 다쳤다. 그런데, 제츠 팬들은 부상당한 패닝턴이 절룩거리는 걸 보고 환호성을 터뜨려 놀림감이 됐다. 시즌 오프너에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게 박살난 바람에 주전 쿼터백이 꼴보기 싫었더라도 발목이 아프다는데 좋아하면 되겠어?

발티모어 레이븐스(Baltimore Ravens)의 오펜시브 라인맨 조나단 오그덴(Jonathan Ogden)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 친구의 문제는 엄지 발가락이다. 시즌엔딩까지는 아니지만 발가락 부상이라고 우습게 볼 수 없다고 한다.

시카고 베어스의 세이프티 마이크 브라운(Mike Brown)은 무릎부상으로 007 시즌을 접었으며 세인트 루이스 램스의 오펜시브 라인맨 올랜도 페이스(Orlando Pace)도 오른쪽 어깨부상으로 시즌 오프너를 마지막으로 007 시즌을 끝냈다.

정규시즌 오프닝 위크였던만큼 모든 경기장이 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원이었던 건 경기장만이 아니라 병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2007년 9월 11일 화요일

미국TV서 보기 힘든 '디 워' 광고

NCAA 칼리지 풋볼은 정규시즌 시작한지 2주가 지났고 NFL 정규시즌은 첫 째주 경기가 모두 끝났다.

미식축구와 '디 워'가 무슨 상관이냐고?

풋 볼 중계방송 시간대에 영화광고가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 매년마다 항상 똑같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난 8월 NFL 프리시즌(시범경기)이 시작했을 때부터 9월10일 월요일 밤 정규시즌 첫 째주 마지막 2경기까지의 풋볼 중계방송 시간대에 어느 영화 광고들이 나오나 지켜봤다.

풋볼경기를 녹화하기 시작한 것도 15년이 돼간다. 내 방에 TV와 VCR를 갖다놓자마자 시작한 게 풋볼경기 녹화다. 덕분에 비디오테잎 투성이다. 지금은 DVD-R 투성이고. 하지만, 이 덕분에 풋볼 중계방송 도중에 나온 영화 광고들을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었고, 내친 김에 캡쳐까지 해버렸다.

자, 그럼 한번 둘러보기로 하자.

ABC, CBS, FOX, NBC, ESPN/ESPN2의 풋볼 중계방송 시간대에 가장 많이 나온 영화 광고 중 하나는 9월14일 개봉하는 조디 포스터(Jodie Foster) 주연의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이었다. '브레이브 원' 광고는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계속 나왔다. NCAA 칼리지 풋볼경기 뿐만 아니라 NFL 중계방송 시간대에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계속 나왔다.





그 다음으로 자주 나온 건 비고 모텐슨(Viggo Mortensen), 나오미 와츠(Naomi Watts) 주연의 범죄 스릴러, 'Eastern Promises'였다. 영국 배경의 러시아 갱스터 영화라고. 최근들어 영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갱스터 영화들이 꽤 많이 눈에 띄는데, 'Eastern Promises'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9월14일 개봉하는 숀 윌리엄 스콧(Seann William Scott) 주연의 코메디 영화 'Mr. Woodcock' 광고도 자주 나온다. 숀 윌리엄 스콧은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로 잘 알려진 친구.



이번 주 금요일 개봉이 아닌데도 무지하게 자주 나온 영화광고는 9월28일 개봉예정인 제이미 폭스(Jamie Foxx) 주연의 액션영화 '킹덤(The Kingdom)'이다. 제이미 폭스 뿐만 아니라 TV 시리즈 'Alias'로 잘 알려진 여배우 제니퍼 가너(Jennifer Garner)도 출연하는 액션영화인만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 같다.



가을철은 어린이용 영화 시즌이 아니지만 풋볼시즌이기 때문에 풋볼 테마의 어린이용 영화는 오케이다. 게다가, 풋볼선수였던 드웨인 존슨(aka The Rock)이 나오는 어린이용 풋볼영화라면 더더욱 오케이다. 미국서 9월28일 개봉하는 'The Game Plan' 광고도 풋볼 중계방송 시간대에 자주 나온다.



9월21일 개봉예정인 제시카 알바 주연의 코메디 영화 'Good Luck Chuck'도 자주 나온다. 아무래도 제시카 알바가 나오다보니 그런 것 같다.



최근들어 TV에 자주 나오는 영화광고를 꼽으라면 '레지던트 이블: 익스틴션(Resident Evil: Extinction)'을 빼놓을 수 없다. 뉴욕 자이언츠와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썬데이 나잇 경기 도중에만 세 번 나왔다.



10월12일 개봉하는 마크 월버그 주연의 갱스터 영화 'We Own The Night' 광고도 자주 나온다.



자, 그렇다면 9월14일 개봉하는 '디 워'는?

8월초부터 프리시즌 경기를 보면서 '디 워' 광고가 나오나 지켜봤지만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칼리지 풋볼 정규시즌이 시작한 이후에도 '디 워' 광고를 볼 수 없었다. '브레이브 원', '미스터 우드콕' 등 '디 워'와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들의 광고는 나오는데 '디 워'는 없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종목이 미식축구이고, 풋볼시즌이 한창인 9월 중순을 개봉시기로 잡은만큼 풋볼 중계방송 시간대에 광고를 공격적으로 넣을 생각을 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디 워'는 아닌 것 같더라.

NFL 정규시즌이 시작한 일요일 하루 종일 FOX와 CBS의 중계방송을 봤지만 '디 워' 광고는 한 번도 나오지 않더니 NBC의 썬데이 나잇 경기 막판에 한번 나왔다. 내가 본 건 이게 처음이었다. 인터넷에 누가 올려놓은 게 아니라 TV에 나오는 걸 직접 본 건 이게 처음이었다.



ESPN 에서 중계방송한 먼데이 나잇 풋볼에선 역시 예상했던대로 '디 워' 광고는 나오지 않았다. '브레이브 원', '킹덤' 같은 영화 광고는 나왔지만 '디 워'는 없었다. 현재로썬 일요일 밤 썬데이 나잇 풋볼 경기 막판에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미식축구 중계방송 시간대가 아닌 다른 시간대엔 얼마나 자주 '디 워' 광고가 나왔는지는 모른다. 내가 살고있는 D.C 이외의 다른 지역 - 예를 들어 한인 밀집지역으로 꼽히는 L.A나 뉴욕 - 에선 얼마나 자주 나왔는지 역시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와이드 오프닝이면 광고도 와이드 오프닝이어야 맞을테니 지역별 차이는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물론, 한인방송국에선 자주 틀어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1500개 극장에서 와이드 오프닝 하는 첫 번째 한국영화'라는 데 의미가 있는 영화니까 한인방송국에서 틀어주는 건 카운트하면 안 되겠지?

미국서 9월 중순에 개봉하는 영화의 광고가 풋볼 중계방송 시간대에 이렇게 나오지 않는다면 광고를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미국서 풋볼시즌에 개봉하는 메이져급 와이드 오프닝 영화들이 풋볼 중계방송 시간대 광고를 소홀히 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디 워'는 예외인 듯 하다.

미국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선 가장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했으니 '미국에서 사상최고 흥행수입을 기록한 한국영화'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 벌어질 다른 미국영화들과의 경쟁은?

영화는 미국서 와이드 개봉이라는데 광고는 리미티드(Limited)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2007년 9월 10일 월요일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화끈한 승리

NFL 정규시즌 첫 째주 경기치곤 상당히 화끈했다.

같은 디비젼에 속한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와 달라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가 썬데이 나잇 풋볼에서 맞붙었는데 두 팀이 점수내기를 할 줄은 몰랐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뉴욕 자이언츠가 터치다운을 성공시키며 시작한 덕분이다. 하지만, 보너스 포인트를 실축하는 바람에 6점에 그쳤다. 여기까지만 봤을 땐 실축으로 날린 보너스 포인트 1점을 놓고 양팀이 엎치락 뒷치락 하는 아슬아슬한 게임이 될 것처럼 보였다. 17대16, 21대20 정도의 피말리는 경기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했던 건 맞다. 하지만, 1점차로 계속 뒤집어지는 그런 경기는 아니었다. 파이널 스코어가 45대35였으니 1점차로 치사하게(?) 엎치락 뒷치락한 경기는 절대 아니었다. 전반종료 스코어가 17대16이었기 때문에 이때만 해도 1점차 게임이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최종 스코어는 그게 아니었다.

뉴욕 자이언츠와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시즌 오프너는 공격팀만 있고 수비팀은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던지면 받고 터치다운 하는 걸 반복했다.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터치다운을 하면 뉴욕 자이언츠도 곧바로 터치다운을 하는 식으로 계속 주거니 받거니 했다. 계속 이런 식이다보니 수비는 '파업중'이고 공격만 '영업중'인 경기가 됐다.



가장 크게 놀란 건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점수내기에서 이겼다는 것.

90년대 달라스 카우보이스를 세 차례나 수퍼볼 챔피언으로 이끈 쿼터백, 트로이 에익맨이 은퇴한 이후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공격은 점수내기에서 이길 수 있을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막강한 수비가 상대 공격을 묶어놓은 상태에서 공격은 적당히 할만큼만 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달라스 카우보이스는 점수내기로 경기가 흘러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같이 점수를 낼만큼 화력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 시즌 오프너에선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달라스 카우보이스 쿼터백, 토니 로모(Tony Romo)는 터치다운 패스 4개, 러싱 터치다운 1개 등 모두 5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했다.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기록한 6개 터치다운 중에서 5개를 토니 로모가 만들어낸 것. 막판에 방심하면서 어이없는 인터셉션을 당한 것만 빼면 토니 로모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아직 속단은 이른 것 같지만 토니 로모가 거품이 아닌 건 맞는 것 같다. 금년시즌 끝나자마자 새로운 쿼터백을 또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은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

후반엔 터렐 오웬스(Terrell Owens)까지 카우보이스의 공격에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오웬스는 전반에 단 한개의 패스도 받지 못했으나 후반에만 2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받았다. 리쎕션은 세 번이 전부지만 이중 두 번이 터치다운이라면 영양가 만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T.O의 첫 번째 터치다운 캐치는 '예술'이었다.

문제는 수비다. 달라스 카우보이스는 공격 쪽에 물음표가 아직 남아있고 수비엔 어느 정도 자신있는 팀이라고 봤는데 07시즌 오프너를 보고나니 거꾸로 된 것처럼 보인다. 헤드코치 웨이드 필립스가 디펜시브 코디네이터 출신인데다 빌 파셀스 전 헤드코치가 수비팀을 잘 만들어놨기 때문에 달라스가 35점을 내줬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뉴욕 자이언츠 공격이 원래 점수를 많이 낸다지만 달라스 카우보이스 수비가 35점씩 내줬다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 물론, 수비가 35점을 내준 대신 공격이 45점을 내면서 이겼다지만 달라스 카우보이스 수비를 보면서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사람이 단지 나 뿐만인 건 아닐 것이다. 아무리 테렌스 뉴맨이 빠지고 그레그 엘리스도 뛰지 않았다지만 35점씩이나 내줬다는 게 신경에 거슬린다. 날씨 탓도 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즌 오프너에서 35점씩 내줬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뉴욕 자이언츠 수비는 45점을 내주고 패했으니 달라스 카우보이스보다 더욱 열이 받아있겠지만(게다가 부상자 명단도 장난 아니더라) 달라스 카우보이스도 이겼다고 좋아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간만에 화끈한 경기를 본 것 같아서 만족스럽긴 하다. 워싱턴 레드스킨스 vs 마이애미 돌핀스, 샌디에고 챠져스 vs 시카고 베어스 등 점수도 많이 안나고 실수만 연발하는 몸이 덜 풀린 듯한 시즌 오프너 경기를 보며 거진 졸 뻔 했는데 썬데이 나잇 경기는 화끈해서 좋았다. 하지만, 달라스 카우보이스도 나사를 좀 조여야 할 것 같다.

2007년 9월 7일 금요일

'Shoot 'em Up', 전부 다 쏴버렷!

제임스 본드에 잘 어울리는 사나이, 클라이브 오웬과 모니카 벨루치가 만났다.

만나긴 만났다. 그런데 좀 엉뚱한 만남이다.

'Shoot 'em Up'이 상당히 엉뚱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클라이브 오웬이 나오는 영화를 꽤 많이 봤지만 'Shoot 'em Up'에서처럼 골때린(?) 캐릭터를 연기한 건 처음 본 것 같다. '신 시티(Sin City)'의 드와잇(Dwight)도 'Shoot 'em Up'의 미스터 스미스(Mr. Smith)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미스터 스미스'라는 이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Shoot 'em Up'의 미스터 스미스는 브래드 핏,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Mr. and Mrs. Smith'에 나온 그때 그 '미스터 스미스' 못지않게 썰렁하다.

아, 그렇다고 모니카 벨루치가 안젤리나 졸리 역할을 한 건 절대 아니다.

왜냐고?

창녀로 나온단 말이다!!!

그럼 미스터 스미스는 누구냐고?

권총 사격 챔피언, 특수부대 출신에 얼씨구 절씨구... 뭐, 더이상 설명할 필요 없겠지?

아, 한가지 빼먹으면 아니 되는 게 있다.

미스터 스미스가 당근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 이것 때문에 악당, 허츠(Hertz)가 '미스터 버니(Bunny)'라고 놀리기까지 한다. 당근 꼭 쥐고있는 거 봐라. 저러니까 놀리지...ㅠㅠ


사진: 허츠(왼쪽), 미스터 스미스(오른쪽)

그런데, 저 당근 우습게 보면 머리에 꽂히는 수가 있다.

그렇다. 미스터 스미스는 당근을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땐 무기로 사용한다. 그냥 꽂아버린다...-_-;;

미스터 스미스가 당근을 좋아하는 덕분에 야채 노점상도 영화에 나온다.

야채 노점상이 뭐가 중요하냐고?

'당근', '고구마'라고 씌여있으니까 그러지!

야채이름은 한글로 적혀있고 클라이브 오웬, 아니 미스터 스미스는 계속 당근 우적우적 씹어먹고...

이쫌 됐으면 'Shoot 'em Up'이 어떤 영화인지 대충 감이 잡혔으리라.

'Shoot 'em Up'의 줄거리는 갱스터들이 임신한 여자를 죽이려는 걸 우연히 목격한 미스터 스미스(오웬)가 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임산부가 낳은 아기를 데리고 쫓기게 된다는 내용이다. 미스터 스미스와 허츠가 이끄는 갱스터들간의 '아기 쟁탈전'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Shoot 'em Up'은 좋게 표현하면 '스타일리쉬 하드보일드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까놓고 말해 75%는 코메디인 영화라고 해야 맞다. 이런 영화에 클라이브 오웬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무뚝뚝하고 심각한 표정의 오웬은 'Tongue-in-cheek' 스타일의 액션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클라이브 오웬의 모습을 보고 한참 웃지않을 수 없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폼잡고 앉아서 당근을 우적우적 씹어먹는데 입이 떠억 벌어지더라. 예고편만 봐도 상당히 실없는 영화라는 걸 눈치챌 수 있지만 이것을 직접 확인하는데 영화 시작하고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Shoot 'em Up'의 최대 매력 포인트다. 영화 자체는 싱겁기 그지없지만 클라이브 오웬이 괴짜 캐릭터에 어이없을 정도로 잘 어울린다는 걸 직접 확인하는 재미만으로도 'Shoot 'em Up'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줄거리고 닝기미고 'Shoot 'em Up'에선 다 필요없다. 이런 게 전혀 중요치 않은 영화다. 그저 계속 농담 주고받으며 총질하는 것만 보고싶어지는 영화다. 다른 영화 같았으면 '내용은 없고 총질만 한다'고 불평했겠지만 'Shoot 'em Up'에선 줄거리를 진행시키는 부분이 나오면 오히려 '누가 그거 신경쓰냐! 빨리 다음 총질 PLEASE!'가 되더라.



유머도 풍부하다. 클라이브 오웬이 연기한 미스터 스미스는 '카리비안의 해적'의 캡틴 잭 스패로우가 '다이하드'에 나온 것으로 보일 정도로 살짝 괴짜다. 미스터 스미스부터 한 유머 하는데다 터무니없는 액션씬을 보고있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게 된다. 미스터 스미스는 패하는 법이 거의 없는 '미스터 퍼펙트'이기 때문에 맥없이 당하기만 하는 악당들이 코믹하게 보인다.

'Shoot 'em Up'도 쟝르가 액션인데다 화끈한 액션씬이 볼거리 중 하나인 것까진 분명하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넘치는 액션이 아니라 쿨하고 스타일리쉬하게 과장된 것이 대부분이므로 사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위에서 '신 씨티'가 나온 것도 'Shoot 'em Up'의 액션씬들이 코믹북에서 곧바로 옮겨온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불가능한 것들이 'Shoot 'em Up'에선 가능한데 이게 다 코믹북 스타일 액션씬 덕분이다. 쿨하고 스타일리쉬하다고 슬로우모션 'Bullet Time' 정도가 아니다. 이건 기본일 뿐이다.

영화가 이모양인데 주인공이 클라이브 오웬이고, 이것만으로 부족해 당근까지 우적우적 씹으면서 미친 듯이 총질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영화를 보기 전엔 상당히 어색한 영화일 것 같지만 영화를 보고난 뒤엔 '미스터 스미스'라는 새로운 액션 히어로가 탄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클라이브 오웬의 매력을 최대한 모두 살린 영화라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액션스타로써 전혀 손색없는 터프함, 웃기려고 농담한 게 아닌데도 웃기는 무뚝뚝한 얼굴의 유머에 BMW까지 나온다. 클라이브 오웬이 몇 년전 제임스 본드를 연상케 하는 BMW TV광고 시리즈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클라이브 오웬을 차세대 제임스 본드 후보 1순위로 올려놓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게 BMW TV광고/단편영화 시리즈인데 오웬이 'Shoot 'em Up'에서 BMW와 '재회'한 게 우연일 리 없다.



사실, 흠을 찾으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는 영화지만 심하게 분위기를 깨는 것이 아니면 용서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줄거리가 신경에 거슬린다 어쩌다 따질 게 전혀 없는 영화니까 그런 걸로 걸고 넘어지지 말잔 것이다.

그렇다고 흠 잡을 게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바로 모니카 벨루치.



문제는 모니카 벨루치의 비중이 워낙 없는 바람에 왜 나왔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것.

엄밀히 따지면 여주인공이라고 해야겠지만 하는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왜 모니카 벨루치를 캐스팅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클라이브 오웬이 제임스 본드라면 모니카 벨루치는 본드걸이라는 식의 패러디로 짐작할 수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어색해 보이는 게 문제다. 영화가 그런대로 잘 물려가다가도 모니카 벨루치가 나오면 산통이 깨진다. 영화 분위기가 코믹북 스타일인만큼 여자 주인공도 한가닥하는 캐릭터였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벨루치가 연기한 다나(Donna)라는 캐릭터는 그저 억지로 끼워넣은 것으로 보일 뿐이다. 'Shoot 'em Up'에서 가장 썰렁한 부분을 꼽으라면 모니카 벨루치가 나오는 곳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벨루치가 나오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모니카 벨루치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벨루치가 매력있는 여배우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Shoot 'em Up'에선 그녀의 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되레 영화를 어색하고 썰렁하게 만든 주범이 됐다. 64년생 여배우를 창녀로 내세워 억지로 섹시한 척 하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맘에 안 든다. 모니카 벨루치라는 '상징성'은 있겠지만 실속이 없다. 얼굴에 나이가 묻어나는데 창녀로 나와 섹시한 척 하는 것 부터가 보기 흉할 뿐. 아무리 'SEX & VIOLENCE'가 이 영화의 테마라지만 모니카 벨루치는 부담스럽게 보이기만 할 뿐 전혀 섹시해보이지 않았다. 'Shoot 'em Up'을 유치하게 보이도록 만든 가장 큰 주범은 누가 뭐래도 모니카 벨루치다.



'Shoot 'em Up'은 짜임새 있는 줄거리고 뭐고 다 접어놓고 스트레스 버스터용으로 왔다인 영화다. 이 영화에선 액션이 사실적이냐, 줄거리가 어떠냐를 따질 필요가 없으며, 따지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줄거리가 빈약하고 모니카 벨루치의 어색함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이런 영화에서 이 정도의 문제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며, 아주 잘못만든 다른 허접한 영화들처럼 심하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므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데 큰 무리 없다. 뇌 한쪽 빼놓고 볼 수 있을만한 영화를 찾는다면 최근에 나온 영화 중에서 'Shoot 'em Up'만한 영화 없다. 폭력수위는 높다면 제법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영화가 워낙 건들거리기(?) 때문에 잔인하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깊게 생각할 것도 없고 길지도 않기 때문에 그냥 막보기 좋은 영화다.

영화 자체가 이런 식이다보니 사운드트랙도 메탈쪽으로 갔다. 헤비메탈이 줄거리 진행에도 한몫 할 정도다. 뿐만 아니라 엔딩 타이틀은 머틀리 크루(Motley Crue)의 'Kickstart My Heart'을 사용했다. 징그러울 정도로 영화 분위기와 딱 어울리는 노래를 골랐다.

말 나온 김에 뮤직비디오나 보면서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