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4일 금요일

'디 워', 기대에 상당히 못미친 영화

한국에서 말이 워낙 많아 궁금해서 보게 된 영화가 '디 워(Dragon Wars)'다. 포스터와 트레일러만 봐도 대충 영화가 어떤지 감이 잡혔기 때문에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봤다. 도대체 뭐가 어쨌길래 한국에서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궁금해서 보지않을 수 없었던 것.



역시나 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을 것 같았던 기대감은 영화가 시작한지 10분도 채 안되어 사라졌다. 어찌된 게 출연배우 대부분의 연기가 상당히 어색했다. 주인공을 포함해 '디 워' 출연배우 모두가 미국인인데 어찌 된 것이 한국이나 중국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외국배우들처럼 연기가 어색하니 영화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었다.

해외수출을 위해 영어로 제작하고 미국배우들을 출연시켰다지만 미국에서 봤을 때는 차라리 한국배우들과 영어자막이 더 나았을 것 같다. 미국인 입장에서 봤을 때 차라리 한국어에 영어자막이었다면 부족한 연기력에서 오는 썰렁함을 덜 느꼈을테니 말이다. 영어로 만들고 미국배우를 출연시킨 이유가 해외수출용이라는 게 거꾸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미국배우들이 나오고 대사가 영어인데다 배경까지 미국이란 걸 한국 관객들을 상대로 사용한 게 아니냔 것이다. 얼핏 보기에 미국영화처럼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냈을수도 있다.



그래도, '디 워'의 스토리 자체는 그다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류의 판타지/괴수영화에서 이 정도 스토리면 충분하다. '트랜스포머스'가 변신로봇 완구를 소재로 한 영화였는데 '디 워'의 줄거리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가 무지하게 엉성하다는 것. 제아무리 셰익스피어 고전을 영화화 했더라도 이렇게 썰렁하면 아무 소용없다. 어떻게 영화로 옮겼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 워'는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에 엉성한 연출까지 겹치면서 웃음이 터져나오게 한다. 영화가 재미있어서 웃는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다. 영화가 이런 식이다보니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소규모 프로덕션이 만든 저예산 영화를 보고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디 워'가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는 건 알고있다. 하지만, 대체 그 돈이 전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CGI를 뺀 나머지는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CGI가 흔해 빠진 세상에 3D 특수효과 하나만으로 관객들을 감탄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3D는 영화의 한 부분일 뿐이지 영화의 전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CGI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든 상관없이 '3D 빼곤 볼 것 없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것은 잘못 만든 영화다.

출연배우들이 잘생기고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만든 영화'라고 하지 않는다. 비디오게임에서도 단지 그래픽이 훌륭하다고 '잘만든 게임'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부는 '디 워'의 다른 것이 전부 한심하더라도 CGI 하나 볼만하면 된 것 아니냐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게임 플레이는 엉망이지만 중간에 나오는 CGI 컷씬(Cut Scene)이 멋지다고 '잘만든 게임'이라고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디 워'의 CGI 수준은 훌륭한 편이다. 마지막엔 이무기가 입을 쩍 벌리며 뱀처럼 움직이는 장면이 자주 나와 단조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CGI는 전체적으로 볼만했다. 하지만, 이런 것만으론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얼마나 합성을 잘했냐는 게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화팬들은 어지간한 CGI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생전 3D를 구경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요새 영화팬 중에 그런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100% 3D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라면 얘기가 또 다르겠지만 라이브 액션 영화에 CGI 합성한 것만 가지고 관객들을 감탄하게 만들던 시절은 지나가고 있다. CGI는 심하게 가짜 티가 날 정도만 아니면 패스시켜도 되는 일종의 양념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팬 모두가 '3D 그래픽 팬보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3D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지만 여기에 맞춰나가면서 필요한 부분에 사용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일단 CGI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것 빼고나면 나머지는 저예산 영화처럼 보인다는 게 '디 워'의 가장 큰 문제다. 미국에선 이 영화 제작비용이 7천만불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돈이 전부 어디로 간 건지 알 수 없다. 그만한 돈이 들어갔으면 CGI 말고도 돈이 들어간 게 눈에 띄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디 워'는 '$$$$$$$$$$$'가 안 보인다.

갑자기 배경음악으로 아리랑이 나오는 것도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것이야 말로 촌쓰러움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적인 무언가를 이렇게 억지로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대체 언제까지 아리랑 같은 걸로 한국을 홍보할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한편으론 얼마나 내세울 게 없으면 아직도 아리랑에 바지 저고리냔 생각도 들지만 제대로 된 것을 찾아내야지 밤낮 이런 것들로 한국 티를 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무기, 여의주가 나온 것도 영화의 소재를 한국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노력한 결과다. 이렇다보니 조선시대가 나오고 아리랑까지 나왔다. '디 워'는 괴물이 나오는 괴수영화일 뿐이지만 'Visit Korea'라는 자막만 나오지 않을 뿐 딱 관광홍보 동영상 수준으로 보인다. SF영화를 만들면서 불필요하게 한국적인 것을 집어넣으려고 고집한 결과다. 영화에 한국적인 게 일체 나오지 않더라도 제작, 감독이 한국사람들이면 그걸로 충분한데 자꾸 오버하면서 티를 내려다보니까 웃기게 된 것이다.

'디 워'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씬을 꼽으라고 하면 조선시대 회상 장면이 될 것이다. 500년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야 2007년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적인 것과 CGI씬을 한번에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윈-윈' 기회를 놓치기 싫었기 때문인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재현하지 않고 대화로 지나간 이야기를 설명하는 정도로 넘어갔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다. 물론, 골동품 가게 주인이 설명하는 걸 듣는 것도 괴롭긴 마찬가지였겠지만 '반지의 제왕'과 한국의 사극 TV 드라마가 부자연스럽게 섞인 듯한 엉성한 조선시대씬을 보는 것보다는 덜 불편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회상씬에 출연한 한국배우들의 부족한 연기력은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도 없으리라.


어찌됐든, '디 워'는 미국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다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가 되어 미국에서 최고 흥행수입을 기록한 한국영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죽었다 깨도 '잘만든 영화'라는 소리는 못하겠다. '디 워'는 제작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것으로 알고있는데 영화를 보면 급하게 완성하려고 서두른 것처럼 보인다. 수준급 CGI와 상당한 제작비용이 들어간 영화치고 기대에 상당히 못 미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블럭버스터나 헐리우드 비디오에 가면 들어보지도 못한 영화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디 워'가 딱 이 수준이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극장용 메이져 영화처럼 보이지 않았다. '디 워'는 곧바로 DVD로 출시해야 어울리는 그런 영화였다. 소니 픽쳐스가 DVD 계약을 했다는데 역시 소니는 바보가 아닌 게 맞다. 극장보다는 DVD에 어울린다는 걸 제대로 본 것이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싶다면 '디 워' 근처엔 얼씬도 하지않는 게 좋다.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보려고 노력해도 워낙 어이가 없고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영화에 집중할 수 없는 그런 영화다. 아무리 기준을 낮춘다해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디 워'는 후자에 속한다. 상영이 끝난 뒤 기억에 남는 장면, 재미있었던 장면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황당하고 어이없었던 것들밖에 생각나지 않는 영화다. 한 두번 정도는 웃어 넘길 수 있지만 엉성함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나중엔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디 워'는 볼만한 영화가 아니다.

도대체 '디 워'가 어떻길래 그렇게 시끄러웠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가서 봐라. 나도 결국 이것때문에 본 것이 전부니까. 어찌보면 이렇게라도 해서 영화를 보게끔 유도한 건지도 모르지만 일단 궁금하면 가서 봐라.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고 가는 게 좋다. 맘에 든다면 다행이지만 내가 볼 땐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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