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3일 목요일

미식축구는 '스파이 게임'?

상대 팀 수신호(Hand Signal)를 몰래 촬영한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New England Patriots)와 뉴욕 제츠(New York Jets)의 007 시즌 오프너에서 생긴 일이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뉴욕 제츠의 수비 코치가 선수들에게 수신호를 보내는 걸 몰래 비디오촬영하다가 덜미를 잡히면서 웃지못할 '스파이 스캔달'이 터졌다.

패트리어츠 해드코치, 빌 벨리칙(Bill Belichick)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모두 3차례 수퍼볼 챔피언으로 이끈 명장으로 불린다. 90년대엔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지미 존슨(Jimmy Johnson)이 있었다면 2000년대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빌 벨리칙이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NFL의 대표적인 명장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스파이 스캔달' 사건으로 졸지에 '스파이 매스터'가 됐다. 이제부턴 '빌 벨리칙'이라고 하면 '수퍼볼 우승 헤드코치'가 전부인 게 아니라 '스파이 스캔달'까지 따라붙게 됐다.



헤드코치 빌 벨리칙이 직접 공식사과했지만 이번 '도촬사건'이 사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NFL에서 어떻게서든 죄값을 치루도록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SPN에 따르면 NFL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드래프트 픽을 몰수하는 방법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상대 팀 수신호를 촬영한 것 자체가 부도덕한 방법으로 상대를 이기려고 한 것인만큼 드래프트 픽을 몰수해 팀을 보강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것. 드래프트 픽 몰수가 되든 무엇이 되든 NFL의 징계를 받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빌 벨리칙이 이끄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2001년, 2003년, 2004년 수퍼볼을 우승했는데 이것도 전부 상대 팀 코치들의 수신호를 비디오 촬영해 분석한 덕분 아니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언제부터 상대 팀 수신호를 몰래 촬영해왔냐에 따라 수퍼볼 우승조차도 '부도덕한 우승'이 될 수도 있다. 헤드코치 빌 벨리칙이 직접 나와서 '금년이 007년이다보니 스파이 흉내 한번 내본 게 전부일 뿐이고 그 이전엔 촬영한 적 없다'고 해명한다면 모르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스파이 스캔달' 덕분에 거의 모든 NFL 헤드코치들이 '몰래 카메라'에 대한 질문에 시달렸다. 헤드코치들 모두 부도덕한 행위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지만 대부분 직접적으로 빌 벨리칙을 공격하진 않았다.

달라스 카우보이스 헤드코치 웨이드 필립스는 쿼터백에게 무전으로 지시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수비팀 선수에게도 무전으로 작전을 지시할 수 있게 하면 수신호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스피커가 부착된 헬멧을 사용할 수 있는 포지션은 쿼터백이 유일하지만 수비 포지션 중 하나에게도 스피커가 부착된 헬멧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공격팀 11명 중 스피커가 달린 헬멧을 쓸 수 있는 건 쿼터백 하나가 전부라는 것까진 좋지만 수비팀 11명 중 1명에게도 스피커 달린 헬멧을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NFL은 금년시즌부터 스피커가 부착된 헬멧에 연두색 점을 표시했다(사진). 쿼터백 1명 이외의 다른 선수들이 스피커 달린 헬멧을 몰래 착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쿼터백 겸 와이드 리씨버로 뛰는 선수가 스피커가 달린 쿼터백용 헬멧을 그대로 쓴 채로 와이드 리씨버로 나가는 걸 막겠다는 것. 다른 포지션으로 나갈 때는 스피커 달린 쿼터백 헬멧을 벗고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하는데 슬그머니 그대로 나가는 '반칙'을 막기위해 동그라미 표시를 한 것이다.

하지만, 스피커가 달린 헬멧을 쓸 수 있는 건 공격팀에 속한 쿼터백 하나가 전부이기 때문에 수비팀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헤드코치 웨이드 필립스는 수비선수 중 하나에게도 스피커 달린 헬멧을 쓸 수 있도록 하면 수비 코치들이 힘들게 수신호를 보낼 필요가 없어지고, 이렇게 되면 몰래 촬영하고 싶어도 촬영할 게 없을 것 아니냔 것. 웨이드 필립스는 수신호란 것 자체를 없앨 수 있는데도 그대로 내버려두기 때문에 상대 팀 수신호를 몰래 촬영하는 어이없는 사건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스파이 스캔달' 덕분에 내년시즌부터 수비팀 선수 중 한명도 쿼터백처럼 스피커 달린 헬멧을 사용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물론, 뉴잉글랜드가 팀 닉네임을 '패트리어츠(Patriots)'가 아닌 'Spies' 또는 'Agents', 'Secret Services'로 바꾸는 지도 지켜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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