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7일 월요일

뻔한 내용의 평범한 영화, '브레이브 원'

절친한 친구가 누구한테 맞고 들어왔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접 잡으러 나가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직접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 신고해봤자 별다른 도움이 없을 것 같으니 직접 치러 가겠다는 것. 집에 총이 있는 사람들은 거실에서 클립에 총알을 끼우며 '다 죽여버리겠다'면서 한바탕 할 준비를 한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은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스릴러 영화다.



'브레이브 원'은 양아치들에게 폭행당해 남자친구를 잃은 에리카(조디 포스터)가 지독한 사건을 겪으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줄거리의 영화다. 라디오쇼 진행자에서 길거리의 양아치들을 청소하는 얼굴없는 킬러로 변신하는 것.

일단, 조디 포스터의 남자친구로 나오는 배우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ABC의 TV 시리즈 '로스트(Lost)'에서 이라크인, 사이드로 나오는 인도계 영국배우 나빈 앤드류스(Naveen Andrews)다. '로스트'에선 이라크군 출신으로 거진 람보처럼 보이는 캐릭터로 나오지만 '브레이브 원'에선 일찌감치 맞아죽는다. 데이트 도중에 갱스터들에게 맞아죽어 조디 포스터를 열받게 만든 장본인이다.



에리카(조디 포스터)와 데이빗(나빈 앤드류스)이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다가 갱스터들에게 폭행을 당해 데이빗이 죽게 되고 에리카가 병원으로 후송되는 것까지 진행했을 때는 영화가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확실하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병원에 머서(Mercer) 형사가 나타나면서부터 대충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테렌스 하워드(Terence Howard)가 연기한 머서 형사의 이야기와 에리카의 이야기와 얽히는 순간 이 영화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걸 한눈에 눈치챌 수 있었던 것.

바로 여기서 이 영화의 흐름을 눈치챘다면 엔딩까지 다 꿰뚫어 본 셈이다. '결국 이러이러하게 되겠구나'고 생각했던 그대로 되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무법자로 변신하는데 형사와 친한 사이가 된다'는 아주 흔한 스토리의 스릴러 영화를 몇 편 본 사람들은 여기까지 보고나면 궁금한 게 더이상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비슷비슷한 스토리의 비슷비슷한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이것 하나만 가지고 '브레이브 원'을 끌어내리는 건 곤란할지 모른다. 하지만, 조디 포스터가 나온다는 것을 빼곤 다른 영화들과 크게 차이나는 게 없는 또하나의 비슷한 줄거리의 스릴러 영화인 게 전부인 걸로 보이는 건 사실이다.



줄거리가 영화 초반부터 빤히 보이는데다 예상했던대로 차근차근 진행되는 바람에 뭔가 느껴지는 것도 부족하다. 무겁게 짓누르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음에 드는데 스토리와 캐릭터가 와 닿지 않는다. 에리카가 'Vigilante'로 변신한다는 것까진 줄거리상 이해가 가지만 그녀가 변하는 과정이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그런가부다' 하는 정도일 뿐 그 '아픔'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에리카의 복잡한 심리를 그려내려는 시도를 한 건 맞지만 잘 느껴지지 않는다. 정해진 순서대로 줄거리가 진행되면서 나오는 예상했던 뻔한 장면으로 보일 뿐 깊이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에리카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하면서 '거리의 무법자'가 된다는 와일드한 영화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에리카가 라라 크로프트처럼 변신할 것을 기대한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그녀가 변해가는 것을 지루하지 않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줄 알았다. TV광고에선 아예 DMX의 노래까지 틀어놓으면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여자가 길거리의 갱스터들에 홀로 맞선다'는 와일드한 영화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론 이쪽과는 거리가 멀다. 줄거리 흐름만 따지면 멀다고 할 수 없겠지만 에리카가 '퍼니셔(Punisher)'처럼 변신하는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조디 포스터가 밤거리의 악당들을 쓸어버리는 장면이 자주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은 은근히 실망했을 것이다. 'Vigilante'가 이 영화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에선 냄새만 풍기는 정도에 그친 것으로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스토리 진행 스피드가 무지하게 느리다는 것도 신경쓰인다. 에리카가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얼굴없는 킬러가 되는 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그 과정이 따분하게 느껴진다는 것. 평범한 여자가 얼굴없는 킬러로 변해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려는 의도인 것 같지만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그런데 세월아 네월아 식으로 스토리가 천천히 진행되다보니 지루해진다.

4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라고 하면 쉬지 않고 단숨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브레이브 원'은 1층에서 쉬고, 2층 올라가서 쉬고, 3층 올라가서 또 쉬는 식이다. 옥상까지 올라가면 끝이고, 거기까지 가면 무엇이 보일지 훤히 상상이 되는데 무지하게 뜸을 들인다. 매층마다 새로운 것, 예상치 못했던 것이 보인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예상했던 수순을 천천히 밟는 게 전부기 때문에 진행이 더디다는 생각만 들 뿐 옥상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브레이브 원'은 그런대로 볼만한 평균 수준의 스릴러 영화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기대했던만큼 짜릿한 맛이 나는 스릴러도 아니다. 아주 맹탕인 건 아니지만 영화 초반부터 내용이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놀랍다', '뜻밖이다', '짜릿하다'고 할만한 게 없다. 예상했던대로 흘러가는 걸 지켜보는 선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조디 포스터와 테렌스 하워드의 차분한 연기는 좋았다지만 그렇다고해서 비슷한 내용의 다른 스릴러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극장을 나서면서 '아무개가 나오는 영화'라는 데 낚인 것 같다는 기분이 살짝(?) 들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고 TV광고에만 나왔던 DMX의 'X Gon' Give It to Ya'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끝내기로 하자:



아래 동영상은 저 노래가 나온 '브레이브 원' TV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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