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0일 목요일

'디스터비아', 틴에이져 스릴러의 재미

이웃집 남자가 시리얼 킬러라면?

그가 시리얼 킬러라고 확신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도 이걸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

더더욱 큰 문제는 누군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걸 눈치챈 시리얼 킬러가 서서히 조여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



샤이아 라버프 주연의 '디스터비아(Disturbia)'는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주연의 1954년 히치콕 영화 'Rear Window'를 리메이크한 스릴러 영화라고 한다. 'Rear Window'를 보진 않았지만 이 영화 이외로 '옆집에 살인마가 이사왔다'는 내용의 스릴러는 꽤 있는 것 같다.

대신 생각난 영화는 'Fright Night'. 80년대 나온 뱀파이어 공포영화다. 뱀파이어가 나오는 영화인만큼 '디스터비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영화지만 '이웃에 사는 남자가 이상하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인공이 틴에이져라는 것, 망원경으로 옆집을 몰래 훔쳐본다는 것,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보니 코메디쪽에 가깝게 보인다는 것 등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데가 많다.



'디스터비아'는 스페인어 교사를 때린 혐의로 가택연금형을 받은 고등학생 케일(샤이아 라버프)이 집안에 틀어박혀 망원경으로 이웃들을 관찰하다가 TV뉴스에 나온 살인범과 여러 면에서 비슷해보이는 이웃집 남자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가택연금형을 받은 상태라 발목에 모니터를 차고있다는 악조건까지 겹친다.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면 알람이 울리고, 알람이 울리면 경찰이 온다. 집에서 멀리 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한 장치라서 꼼짝없이 집에 쳐박혀있을 수밖에 없는 것.



문제는 저 모니터 때문에 옆집에 새로 이사온 여자를 만나보러 갈 수도 없는 팔자다. 집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옆집녀' 애슐리도 '그림의 떡'일 뿐. 군침돌게 생겼지만 '옆집녀'가 집으로 찾아오지 않는한 망원경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것. 간단하게 말해, 거져 굴러오지 않는한 손을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쯤됐으면 돌아버리기 직전일지도 모르지만 케일의 고등학교 친구 로니가 종종 집으로 놀러와 위로해준다. 로니는 케일의 스패니시 클래스메이트로, 케일이 교사를 때려눕히던 날 자꾸 'Kiss Ass' 어쩌구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한 바로 그녀석이다.

스페인어를 못하기 때문에 이게 무슨 소리인지 영어자막과 가만히 비교해 봤더니 'Perhaps'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Quizás'를 'Kiss Ass'처럼 발음하며 장난친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케일, '옆집녀' 애슐리, 로니까지 '3 Stooges'가 완성됐다.

여기에, 케일의 얘기를 믿어주지 않는 어머니로 캐리-앤 모스가 나온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썬글라스 끼고 폼잡다가 고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로 변신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별로 좋지않은 이웃, 미스터 터너로는 데이빗 모스가 나온다. 아무래도 '하니발' 시리즈의 안토니 홉킨스와 비슷해보이는 배우를 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줄거리는 '옆집에 사는 시리얼 킬러를 우연히 발견한다'는 어찌보면 섬짓한 내용이지만 주인공들이 전부 고등학생이다보니 스릴러/호러쪽이 아니라 하이틴 코메디에 가까운 분위기의 영화가 됐다. 무거운 분위기의 스릴러가 아니라 고등학생들이 들쑤시고 다니는 약간 엉뚱해보이는 영화인 것.

하지만, 그렇다고 시시한 것은 아니다. 시리얼 킬러가 나오는 다른 스릴러 영화들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게 전부지 영화 자체가 완전히 아이들용인 건 아니다. 주인공이 죄다 고등학생들이니 아무래도 하이틴 영화처럼 보이는 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는 각오하고 봐야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샤이아 라버프라는 배우 덕분이다. 이 친구를 볼 때마다 실제로 알고있는 녀석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만큼 친근감이 가는 친구다. 그다지 샤프해 보이지 않지만 아주 엉성해 보이지도 않는데 황당한 사건에 자주 휘말리는, 어디서 실제로 본 것 같은 친숙한 친구다. 고등학교를 다니다 보면 별 희한한 녀석들을 만나게 되고, 발목에 저런 것을 차고 다니던 녀석들도 여럿 보게 된다. 이렇다보니 '디스터비아'에서의 샤이아 라버프를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갱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마약을 즐겨하는 것도 아닌, 다시 말하면 문제아로 보이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항상 사고를 치고 다니는 녀석이 꼭 있다. 큰 사고는 안 치더라도 사소한 사건들에 자주 뒤엉키는 그런 녀석들 말이다. 나도 고등학교때 수갑 여러 번 차봤고, 일반 경찰서 뿐만 아니라 밀리터리 폴리스한테도 잡혀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삽질(?)하는 영화만 보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아메리칸 파이'와 같은 섹스 코메디는 이젠 약간 유치해 보이지만 고등학생들이 사고치고 다니는 영화만 보면 이상하게 끌린다. 조폭처럼 패싸움이나 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것 저것 사소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그저 평범한 말썽꾸러기들의 얘기 말이다.

'디스터비아'는 쟝르상 스릴러 영화가 맞지만 고등학생들이 나오다보니 옛날생각 나게 만드는 영화가 됐다. 그렇다고 실제로 시리얼 킬러까지 만나봤다는 건 아니다. 시리얼 킬러는 빼고 옛날생각 나게 만드는 영화라고 해야 맞을 듯.

아, 지금 생각해보니 'Cereal Killer'는 만났던 것 같지만...



얘기가 이쪽으로 가다보니 케일(샤이아 라버프)의 방을 빼놓고 넘어갈 수 없다.

이 녀석의 방은 한마디로 예술이다. 아쉽게도 나는 케일의 것처럼 쿨한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포스터도 많이 붙여봤지만 저렇게 쿨한 분위기가 나는 방을 만들어 보지 못했다. 다만, 케일의 방처럼 지저분하게 만들어 본 적은 있다. 아무래도 이건 내 전문이라서 그런지 방이 정신없는 건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지금은 그나마 발 디딜 틈은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발짝 내디딜 때마다 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으니 약간 발전한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일 뿐이란 데 자부심을 갖고 산다.

그게 뭐가 자랑이냐고?

F-You then.



케일의 방을 얘기하다보면 여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악세사리'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360, 소니의 PSP(위 사진에서 케일이 들고있는 것),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튠스뮤직 스토어, 핸드폰, HD 캠코더 등이 쏟아져 나온다. 비록 줄거리 진행과 전혀 상관없는 소품들이지만 게임콘솔은 마이크로소프트, 휴대용 게임기는 소니, MP3 플레이어는 애플이라는 식으로 정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반면, 핸드폰과 HD 캠코더는 사건 수사(?)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

캠코더는 '고딩 3총사'가 옆집의 수상한 사나이를 몰래 촬영하는 데 아주 요긴하게 사용한다. 이 영화에서 사생활 침해 몰래 카메라 수준을 넘어서는 맹활약을 하는 게 바로 캠코더다.



핸드폰은 사진촬영도 하고 작전(?)을 진행하면서 서로 연락을 하는 데도 요긴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핸드폰이 맡은 역할은 사진이나 찍고 통화나 하는 정도가 아니다. 험악한 긴장감이 감돌다가도 에이미가 장난을 친 벨소리 노래가 울려퍼지면 곧바로 웃음이 터지도록 만드는 게 핸드폰의 역할이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물론, 훔쳐보는 재미도 뺄 수 없다. 영화의 80%가 틴에이져 스타일인만큼 '디스터비아'에서의 훔쳐보기도 그쪽 분위기다. 동네 꼬마녀석들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다지만 당장 옆집에 애슐리 같은 여자가 사는데 훔쳐보는 재미가 달콤하지 않을 리 없다. 왠지 이 영화 덕분에 망원경 판매량이 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런 재미가 '틴에이져 스릴러의 맛'일 것이다. 스릴러 영화로써의 '디스터비아'는 이웃들을 관찰하다가 우연히 시리얼 킬러를 발견하면서 사건에 휘말린다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내용이지만, 뻔한 내용임에도 마지막까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든 건 틴에이져 버전으로 '리믹스'한 덕분이다.

만약 '디스터비아'가 성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무거운 분위기의 스릴러 영화였다면 별 볼 일 없었을 것 같다. 어디서 본 듯한 뻔한 내용으로 울궈먹기한 영화라는 생각을 잠재운 게 바로 고등학생 주인공들이다. 그다지 신선하지 않은 소재의 영화를 신선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 단지 시대에 맞춰 핸드폰, 캠코더, 컴퓨터 등이 영화에 나온다는 정도로는 여전히 신선도가 떨어지니까 아예 주인공을 고등학생으로 하면서 틴에이져 코메디 분위기까지 묻어나도록 만든 게 제대로 통했다고 본다.

'디스터비아'는 가볍게 즐길만한 영화다. 완벽하면서도 무자비한 시리얼 킬러에 쫓기는 무거운 분위기의 스릴러 영화를 원한다면 '디스터비아'에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와 정 반대로 유머가 풍부한 스릴러 영화를 원한다면 '디스터비아'가 왔다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애슐리가 케일의 핸드폰 벨소리로 선택한 2 Live Crew의 'Me So Horny'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끝내자. 80년대말쯤 나온 꽤 오래된 '불후의 명곡'인데 이 영화에 갑자기 나올 줄은 몰랐다.

난 불행하게도 핸드폰 벨소리로 이런 노래를 골라주는 여자를 아직 못 만나봤다...ㅠㅠ

Me So Horny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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