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4일 월요일

제임스 본드 IN 흰색 턱시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대표하는 패션은 '턱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제 1탄 '닥터노(Dr. No)'에서 제임스 본드가 처음으로 자신을 소개할 때부터 입고 나온 이후 턱시도는 제임스 본드의 비공식 유니폼이 됐다. '수퍼맨'처럼 바지 위에 빤쓰를 입는 수퍼히어로 패션 대신 턱시도를 택한 셈으로 보일 정도로 제임스 본드는 턱시도를 즐겨 입는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제임스 본드가 흰색 턱시도를 입고 나왔을 때다.

제임스 본드가 영화에서 흰색 턱시도를 처음으로 입고 나온 건 1964년 영화 '골드핑거(Goldfinger)'에서다. 잠수복을 벗자마자 턱시도 차림으로 변신(?)하던 유명한 씬에서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입었던 빨간색 카네이션을 꼽은 흰색 턱시도가 처음이다.

그리곤, 곧바로 '전설'이 됐다. 흰색 턱시도 재킷에 빨간 카네이션을 꼽은 걸 보면 자동으로 제임스 본드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



그렇다면 숀 코네리 이외의 제임스 본드들도 흰색 턱시도를 입고 출연한 적이 있을까?

조지 래젠비(George Lazenby)는 모델출신이긴 했지만 흰색 턱시도를 입어 볼 생각을 해볼 틈이 없었다. 단 1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끝으로 살인면허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조지 래젠비는 그의 유일한 007 영화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 1969)'에서 흰색 턱시도를 입지 않았다. 카지노씬 뿐만 아니라 제임스 본드의 결혼식 씬도 있었지만 흰색 재킷을 걸치지 않았다.



흰색 턱시도 재킷은 1971년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로 돌아온다. '골드핑거' 이후 처음으로 제임스 본드가 흰색 턱시도 재킷을 입은 것.

한동안 입지 않았던 흰색 턱시도 재킷을 갑자기 꺼내입은 이유는?

'컴백'이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키워드였기 때문일 것이다.

조지 래젠비가 007 시리즈를 떠나자 숀 코네리가 제임스 본드 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흰색 턱시도 원조(?) 영화인 '골드핑거'를 감독했던 가이 해밀턴(Guy Hamilton)도 컴백했다. 이와 함께 흰색 턱시도까지 007 시리즈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카네이션이 보이지 않는다고?

빨간색 카네이션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로 컴백했다. 다만, 이번엔 흰색이 아닌 검정색 재킷을 택했을 뿐.



이때까지만 해도 흰색 턱시도 재킷을 입고나왔던 배우는 숀 코네리가 유일했다.

그러나, 숀 코네리의 뒤를 이어 로저 무어(Roger Moore)가 살인면허를 발부받으면서 흰색 턱시도도 물려받았다.

흰색 턱시도는 무어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 - 1974)'에 나온다. 숀 코네리에 이어 두 번째로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흰색 턱시도 재킷을 입고 나온 것.

아쉽게도 빨간색 카네이션은 빠졌지만 제임스 본드가 흰색 턱시도 재킷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한동안 제임스 본드는 검정색 턱시도만을 고집했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 1977)', '문레이커(Moonraker - 1979)',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 - 1981)'까지 연달아 검정색 재킷만 입고 나온 것.

흰색 턱시도가 돌아온 건 1983년 영화 '옥토퍼시(Octopussy)'다.

인도의 카지노씬에서 로저 무어가 흰색 턱시도 재킷을 다시 한번 입고 출연했다. 빨간색 카네이션은 'STILL MISSING'.

로저 무어는 숀 코네리에 이어 2편의 다른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흰색 턱시도 재킷을 입고 출연한 배우가 됐다.



그러나, 로저 무어는 2편으로 끝내지 않았다.

무어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 '뷰투어킬(A View To A Kill - 1985)'에서도 흰색 턱시도를 또다시 입고 나온다. 2편의 007 영화에서 연속으로 흰색 턱시도를 입고 출연한 배우는 현재까지 로저 무어가 유일하다.

뿐만 아니라, 모두 3편의 007 영화에서 흰색 턱시도를 입은 배우도 로저 무어가 유일하다. 현재까지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은 제임스 본드 영화(7편)에 출연한 배우인 만큼 흰색 턱시도를 입은 횟수도 가장 많다.

하지만, 빨간색 카네이션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흰색 재킷과 빨간 카네이션이 숀 코네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인 듯 하다.



로저 무어가 '정년퇴직' 하자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이 뒤를 이었다.

달튼은 딱딱하고 어두운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다.

그래서일까? 어둡고 진지한 본드를 연기했기 때문에 흰색 턱시도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일까?

티모시 달튼은 007 시리즈에서 흰색 재킷을 한 번도 입지 않았다.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 '라이센스 투 킬(License To Kill)' 2편에 출연한 게 전부였으니 흰색 턱시도를 입어 볼 기회가 없었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티모시 달튼은 조지 래젠비에 이어 흰색 턱시도를 입지 않은 제임스 본드 그룹에 속한다. 등은 검고 배는 하얀 '펭귄형 패션'만 보여준 그룹이다.



티모시 달튼에 이어 제임스 본드가 된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도 펭귄형 패션 그룹에 속한다. 모두 4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했지만 단 한번도 흰색 재킷을 입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티모시 달튼과 달리 브로스난은 로저 무어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카리스마 면에선 따라가지 못했지만 피어스 브로스난이 연기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깔끔한 외모의 플레이보이형'이란 데서부터 로저 무어와 겹쳤다.

하지만, 브로스난은 검정색 턱시도만 입다가 끝났다. '골든아이(GoldenEye - 1995)'에서부터 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 - 2002)'까지 펭귄형 패션만 내리 보여주고 떠난 것.



피어스 브로스난 시대도 지나고 이젠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차례다.

인물이 약간 딸린다, 블론드다, 키가 역대 제임스 본드 중에서 가장 작다는 등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된 것에 대해 말이 참 많았지만 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 2006)'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80년대 후반 티모시 달튼이 연기했던 제임스 본드 스타일을 이어가고 있다. 차갑고 진지한 이언 플레밍 원작의 제임스 본드에 한결 가까워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것. 영화도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다.

그렇다면 흰색 턱시도는?

흰색 턱시도는 로저 무어의 1985년 영화 '뷰투어킬'을 마지막으로 20년이 넘도록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니엘 크레이그도 '카지노 로얄'에서 검정색 재킷을 입은 게 전부다.



크레이그는 현재 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 - 2008)'를 촬영중이다.

과연 이번엔 흰색 턱시도를 입은 제임스 본드를 볼 수 있을까?

그나저나 다니엘 크레이그가 흰색 턱시도에 어울리긴 하는 걸까?

댓글 5개 :

  1. 한국에서 옷을 전공했었고, 여기(이탈리아)에서도 옷 관련을 전공해서인지... 007 시리즈 볼 때 옷을 많이 봅니다.

    사실..다니엘 크레이그는 옷발이 잘 안서는 체형이어서요. 게다가 다리가 좀 짧습니다..ㅡㅡ; 상반신 샷은 괜찮은데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약점이 훤히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근육의 양을 좀 줄였으면 하는 생각도 있고요. 왠지...근육옷(??)을 입은것 같아서...개인적으로는 이소룡 형님 몸을 제일 좋아라합니다.^^

    턱시도 빨(??)이 제일 잘받는 본드 형님은 단연 조지 라젠비 인 것 같고요. 다리가 워낙 길고, 또 좀 가는듯한 옷을 입어서 사람이 매우 긴장감 있어 보였습니다. 키가 가장 크셨던 숀 코네리 형님은 어깨가 좀 큰 옷을 선호하셨는지 생각 외로 옷발이 잘 안받았고... 로저 무어 형님은 너무 유행을 쫓으셨으며... 피어스 브로스넌은 양복 모델 답게 수트 빨은 잘 받는데 이상하게 턱시도는 그저 그렇더군요.

    티모시 달턴 형님은 옷발이 참.... 안받더라는.. 왠지 '럭셔리'하고는 좀 거리가 멀어보이는 외모에 옷차림 이어서요. 그 시대의 남성복이 원래 좀 후줄근하긴 했지만요. 지금 국회의사당에 모이신 분들이 입은 옷 처럼요. 슥 보면 영국 양복이 아닌, 미국제 양복을 그냥 걸치고 나온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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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 그쪽이셨군요. 전 옷은 깜깜이라는...ㅠㅠ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다니엘 크레이그가 니콜 키드맨과 함께 나왔는데 목이 안보이더군요. 키의 압박도 있지만 어깨는 떡 벌어졌는데 목이...ㅡㅡ;

    근데 흰색 턱시도 아무나 입으면 안되는 건가요? 흰색 턱시도에 잘 어울리는 조건같은 게 있는지...?

    제가 고딩때 파티가면서 한번 입었다가 망신 톡톡히 당했던 기억이...ㅠㅠ 전 싫었는데 파트너 여자가 흰색 드레스를 고르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없이 구두까지 죄다 흰색으로...ㅠㅠ 그때 찍은 사진 보고 친구들이 '홍콩 갱영화 두목같다'고 한 게 아직도 응어리가 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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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흰색 턱스에 빨간 카네이션하면 인디아나 존스도 빠질 수 없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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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on chul//(저는 옷 쪽은 전혀 모르지만)어쩌면 다니엘 크레이그를 캐스팅할 때 그런 면도 고려되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지 래젠비의 약점이 패션모델 같아서 힘이 없어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패션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겐 베스트일 수 있지만, 본드는 패션모델이 아니라 거친 킬러거든요.
    아뭏든 잘 읽었습니다.
    비슷한 포스팅을 준비하고 있는데, 님의 댓글도 슬쩍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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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인디아나 존스는...ㅋㅋ

    루카스와 스필버그가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캐릭터를 만들려다 나온 게 인디아나 존스인데 그렇게까지 까놓고 패러디하니까 더 웃기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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