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6일 금요일

웰컴 투 룸 '1408'

이세상에 귀신 같은 건 없다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공포소설 작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마이크 엔슬린(존 큐색)은 공포소설 작가이면서도 귀신 같은 건 없다고 믿고 있다. 자신이 쓴 소설에 유령이 나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판타지일 뿐이며, 귀신이 나온다는 흉가에도 직접 가봤지만 전부 가짜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뉴욕에 있는 돌핀호텔의 1408호실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1408이면 14층 8호실? 하지만, '13'이란 숫자를 건너뛰기 위해 실제론 13층이지만 14층으로 둔갑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1408호는 얼핏 보기엔 14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3층인 것. 게다가 방번호 1408을 모두 합하면 13(1+4+0+8=13)이 된다.

호기심이 발동한 엔슬린은 뉴욕의 돌핀호텔을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1408호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겠다는 것. 귀신 같은 건 없으며, 저주받은 집이란 게 전부 판타지일 뿐이니 돌핀호텔의 1408호실 이야기도 거짓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것.



아무래도 '이상한 호텔' 이야기가 나오니까 이 노래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돌핀호텔이 캘리포니아가 아닌 뉴욕에 있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You can check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

Oh $hit!



돌핀호텔에는 '익스프레스 첵아웃(Express Checkout)'이란 것도 있다.

물론, 돌핀호텔에서도 'You can 'EXPRESS' checkout any time you like'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첵아웃' 하기 싫으면 돌핀호텔의 1408호에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돌핀호텔 전체가 이상한 것도 아니다. 1408호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누가 억지로 1408호에 밀어넣는 것도 아니다.

정 반대로, 돌핀호텔 매니져 제랄드 올린(사무엘 L. 잭슨)이 필사적으로 만류한다. 1408호에 들어가면 난리(?)가 나니까 들어가지 말라는 것. 하지만, 저주받은 곳들을 여러 군데 답사하면서 유령같은 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 엔슬린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돌핀호텔의 1408호 이야기도 판타지인 걸로 생각한 엔슬린은 호텔 매니져의 만류를 뿌리치고 1408호에 들어가게 된다.

짜짠!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다른 방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모든 게 깔끔하게 정돈돼 있고 룸서비스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1408호를 꺼리는 것까지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막상 방 안에 들어가보니 다른 방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호텔방인 것으로 보였다.

그 빌어먹을 알람시계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1408호가 본색을 드러내는 건 카운트다운이 시작하면서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하기 바로 전에도 약간 이상한 징조가 있었고, 이 때만 해도 엔슬린이 원했다면 방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엔슬린은 이 '경고'를 무시하면서 1408호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된다.

카운트다운이 시작한 다음부터는 방에서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죽든 살든 따지지 않고 빠져나가겠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반드시 살아서 나가야겠다면 또다른 얘기다.



스테판 킹 원작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들을 보면 섬짓한 공포보다는 요상하게 꼬이는 스토리에 빠져드는 재미가 더 크다.

'1408'도 마찬가지다.

저주받은 호텔방 1408호에서 엔슬린이 겪는 '사건들'은 섬짓하기보다 코메디에 가깝게 보이기까지 한다. 벽에서 피가 흐르고 느닷없이 유령들이 돌아다니는 등등의 이벤트들이 섬짓하기보다 코믹하게 느껴진다. 계속해서 이상한 사건이 발생할 것을 알고있기 때문인지 공포영화처럼 보이지 않고 엔슬린이라는 친구가 계속해서 엉뚱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코믹한 영화처럼 보이는 것.



알람시계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섬짓한 느낌이 들지만 거기까지가 전부다. 그 이후부터는 무섭다기보다는 엔슬린이 1408호에서 어떻게 빠져나올지 궁금할 뿐이다. '만약 내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봐도 '이 호텔방에서 아무개가 죽은 다음부터 어쩌구...' 하는 전설(?)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섬짓한 기분이 드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는 것 이상으론 느껴지는 게 없다.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꼼짝없이 14층에 갖힌다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는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공포영화 치고는 약간 맹탕이란 생각이 든다. '저주받은 호텔방에 갖혔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결국은 '유령의 집' 수준이 전부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만약 내가 저 호텔방에 있다면?'이란 생각을 하면 오싹한 기분이 들지만 이벤트가 이어지면서 그런 기분이 금새 사라져버린다. 이렇다보니 엔슬린이 직면한 공포는 전달되지 않고 그가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전부다. 느껴지는 공포는 사라지고 눈으로 즐기는 재미만 남는 것.

진짜로 오싹한 기분이 드는 공포영화에 제대로 빠져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지지만 '1408'에선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 덕분에 엔슬린이 얼마나 고생을 할지 궁금해진다. 긴장시킬만큼의 공포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신들린 호텔방에 갖혀 황당한 사건들을 겪는다'는 유머러스한 판타지 어드벤쳐처럼 느껴질 뿐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공포영화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공포영화치고는 약간 맹탕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볼만한 영화다. 일단, 전기톱, 도끼질과 같은 '그래픽 테러'가 없는 고급스러운(?) 공포영화라고 할 수 있다. 도끼질 하고, 피 튀기고, '꺄악!' 하고 앉아있는 싸구려 티 나는 공포영화는 아니라는 것. 공포의 강도가 약한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도중에 지루해지는 영화는 아니다. 분위기는 좋지 않은데 별로 무섭지는 않고, 전기톱과 도끼가 날아다니는 무식한 장면도 없는데 지루한 줄 모르고 볼 수 있는 패밀리용(?) 미스테리/공포영화를 찾는다면 '1408'이 왔다다.



그래도 쟝르로는 '호러'인데 섬짓한 부분이 한군데도 없을 리 있냐고?

물론 있다. 일부러 찾는데도 섬짓한 장면이 없으면 그게 공포영화겠수?

그 장면이 뭐냐고?

장면이 아니라 노래다.

알람시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카펜터의 클래식 'We've Only Just Begun'이 이렇게 섬짓할 줄이야!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