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5일 금요일

'Heartbreak Kid', 이게 성인 코메디?

'도대체 너는 언제 장가갈 거냐'는 비난조의 질문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결혼과 관련된 영화는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것 봐라. 다들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거 보니 기분이 어떠냐'는 잔소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릴 게 뻔하니까.



벤 스틸러 주연의 '하트브레이크 키드(The Heartbreak Kid)'도 딱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옛 애인 결혼식에 갔가다 '싱글'이라고 아이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는 걸 보며 부르르 떨었다. '아이들 테이블'이 아니라 '싱글 전용 테이블'이라면서 애들과 함께 앉으라는 데 진짜...

만약 내가 저런 대접을 받았다면 아마도 테이블 엎었을 것이다.



벤 스틸러가 연기한 에디(Eddie)라는 캐릭터는 여자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게이도 아닐 뿐만 아니라 여자를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짝이 없냐', '이젠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소리를 항상 듣는 친구다. 결혼생활이 행복해보이지 않는 맥(Mac)이라는 친구까지 끼어들어 설교를 한다. 결혼생활이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미혼자를 보면 잔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꼭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친구가 나온다.

재미있는 건 에디의 아버지로 벤 스틸러의 실제 아버지, 제리 스틸러(Jerry Stiller)가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부자간이고 영화에서도 부자간인데 둘이서 여자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걸 들어보면 장난이 아니다.

표현을 살짝 직설적으로 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My Style'이다. 느끼하게시리 그럴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고리타분형 아버지보다는 이런 스타일이 훨씬 마음에 든다. 아들과 까놓고 '보G 얘기'를 하는 것보다 더욱 쿨한 아버지가 이 세상에 어디있냔 말이다! '아메리칸 파이'에서 고등학생 아들에게 성인잡지를 사다 줬던 '세계 최고의 아버지', 유진 리비(Eugine Levy)와 같은 리그의 젠틀맨인 게 분명하다.



살짝 괴짜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여자가 없는 아들' 걱정 뿐이다. 하지만, 에디는 아버지가 걱정할 정도로 여자와 담을 쌓은 건 아니다.

곧바로 라일라(Malin Akerman)라는 블론드 미녀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결혼'까지 하게 된다. 결혼 안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들었건만 순식간에 블론드 미녀와 결혼식을 올리고 '기혼자'가 돼버린 것!

알고보니까 맘만 먹으면 몇 주 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아닌 게 결혼인데, 이것 가지고 그렇게 들들 볶은 거란 말이냐!



하지만, 에디는 멕시코로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라일라와의 결혼이 엄청난 실수였다는 걸 알게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멕시코까지 운전하고 내려가는 동안 라일라가 라디오를 틀어놓고 쉴새없이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부터 심상치 않다. 처음 몇 번은 괜찮다지만 나오는 노래마다 죄다 따라부른다고 생각해봐라. 제아무리 '선서'까지 한 짝궁이라지만 신경에 거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에디의 속도 모르고 라일라는 '내 목소리를 4~50년간 듣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쯤되니까 코메디가 아닌 공포영화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결혼 전과 결혼 후가 확 달라지더니 갈수록 태산이다. 직업도 가짜고 섹스할 때도 요란하다. 섹스 도중에 '때려달라'고 하질 않나, '헬리콥터', '잭해머' 등의 체위를 요구하기도 한다. '잭해머'까지는 알겠는데 '헬리콥터'는 어떻게 하자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입으로 '드그드그드그드그' 소리를 내라는 건가? 아무튼 좀 희한한 지지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결혼 잘못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어쩌랴! 이미 신혼여행까지 왔는데...



그러다가 멕시코의 호텔에서 우연히 미란다(Michelle Monaghan)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라일라와는 전혀 다른 매력적인 여자를 만난 것.

여기서부터 전형적인 양다리 스토리가 시작된다. 라일라에게는 미란다를 만나는 걸 숨기고 미란다에게는 멕시코로 신혼여행 왔다는 걸 숨기는 것. 라일라가 썬블락 로션을 바르지 않고 일광욕을 하다가 홀랑 타버려 호텔방에 쳐박혀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자 에디는 라일라를 방에 떼어놓고 미란다와의 데이트를 즐긴다.



'진정한 사랑'을 찾을 때는 나타나지 않더니 이미 결혼을 하고 나니까 약 올리기라도 하듯 미란다라는 멋진 여자가 나타났다. 결혼하기 전에 나타났더라면 '헬리콥터', '잭해머' 좋아하는 무시무시한 블론드 지지배를 피할 수 있었겠지만 원하는대로 되는 경우보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은 게 우리의 고달픈 삶 아니겠수?

하지만, 줄거리가 양다리 쪽으로 가면서 김이 약간 빠진다. '악몽과도 같은 여자와 잘못 결혼한 에디가 신혼여행지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미란다를 만나면서 본의 아니게 양다리를 걸치게 된다'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뻔한 얘기일 뿐이다. 양다리 걸친 걸 숨기기 위해 이러쿵 저러쿵 한다는 코메디 영화가 상당히 많은 덕분이다.

물론, 멕시코 휴양지의 멋진 경치는 빼놓을 수 없다.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경쾌한 록음악들도 영화와 매치가 잘 됐다고 본다. 하지만, 경치감상, 음악감상 하려고 이 영화를 선택한 게 아니다. '잘못된 만남'으로 벌어지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은 평범한 양다리 걸치기 스토리가 전부였단 말이야?



여전히 이 영화의 테마는 '양다리'가 아니라 '결혼'이란 것엔 변함없다. 어찌보면 '결혼'보다도 '진정한 사랑 찾기'라고 해야 정확할지도 모른다. 결혼 자체보다 누구와 결혼하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게 이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테마가 그쪽이라면 에디와 라일라의 '잘못된 만남'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웃음을 줘야하지 않았나 싶다.

또다른 여자가 끼어들지 않고 에디와 라일라 둘이서 결판을 내는 쪽이었다면 덜 산만하지 않았을까?

미란다와의 삼각관계로 넘어간 이후부터는 무엇으로 웃음을 주겠다는 것인지, 테마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렇다고 에디와 라일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웃기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에디와 라일라의 섹스씬을 제외하고는 진짜로 웃겼다고 기억에 남는 곳이 없다. 뿐만 아니라, 라일라는 에디와 미란다의 양다리 스토리가 시작되자마자 영화에서 사라져버리다시피 하며, 그 이후부턴 전혀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는 양다리 스토리가 전부다.



'The Heartbreak Kid'의 썰렁함은 갈수록 심해진다. 뻔한 양다리 스토리에 이어 느닷없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무리 여자를 잘못만나 신혼여행이 박살나고 온갖 소동에 휘말렸다지만 그렇다고 미국인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까지 해야만 한다는 게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뭔가 다른 목적으로 이 장면을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 영화를 갈수록 한심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밀입국까지 했으니 이제 더 남은 게 뭐냐? 외계인이라도 나타나는 거냐?

다시 처음의 '성급한 결혼'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이미 늦었다.

이 영화에 어느 정도나마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는 성급하게 결혼했다가 고생한다는 얘기가 왠지 모르게 와 닿았기 때문인데, 신혼여행지에서 미란다를 만난 이후부터는 3각관계를 다룬 평범한 코메디 영화로 변질되면서 맥이 다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The Heartbreak Kid'는 결혼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있는 미혼자들이 보기에 재미있는 영화일 것이다. 특히, 결혼 이야기로 스트레스를 받아 본 미혼 남성들은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결혼 빨리 하라고 보챈다고 아무하고나 결혼했다간 '헬리콥터', 잭해머'에 시달릴 수 있다는 섬짓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코메디 영화일 뿐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섹스씬, 성인용 조크, 기타 등등이 나온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정한 성인용 코메디 영화로는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된 성인용 코메디가 되려면 성인들이 봤을 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야 하고 유머도 살짝 수준이 높아져야겠지만 'The Heartbreak Kid'는 눈에 띄는 몇 가지 성인테마들로 어설프게 성인용 코메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막말로, '섹스씬을 웃기게 만들면 성인용 코메디가 된다'는 식이다. 아무리 코메디 영화라지만 '결혼을 소재로 한 성인용 코메디'라고 떳떳하게 밝히려면 이것보다는 깊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The Heartbreak Kid'도 겉으론 '성인용'이라지만 열어보면 '애들용'인 코메디 영화인 그런 영화들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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