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1일 목요일

나는 왜 블루레이 영화 구입을 망설이는가

DVD를 대신할 새로운 홈 비디오 매체 블루레이(Blu-Ray)가 선보인 지도 이제 시간이 꽤 지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직도 블루레이보다 DVD 영화를 더욱 많이 구입하고 있다. 언젠가는 블루레이로 옮겨가겠지 싶었는데, 아직도 블루레이가 아닌 DVD를 집게 된다.

그렇다고 블루레이 영화를 일체 구입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블루레이가 나온 지 이제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DVD를 잊고 블루레이로 완전히 옮겨가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혹시 블루레이로 영원히 옮겨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90년대에 VHS에서 DVD로 옮겨탔던 때 보다 DVD에서 블루레이로 옮겨타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블루레이가 DVD처럼 유행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DVD가 처음 선보였던 지난 90년대엔 DVD 포맷 영화와 DVD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DVD 드라이브가 기본으로 장착된 데스크탑, 노트북 컴퓨터들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블루레이는 DVD 만큼 빠르게 유행하지 않는 듯 하다. 블루레이 영화 디스크와 플레이어 가격이 많이 떨어졌는데도 속도가 더디다. 물론 미국의 홈 비디오 시장이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상당히 느린 것 같다.

왜 그럴까?

◆블루레이가 DVD와 질적인 차이가 얼마나 나나?

화질 등 여러 면에서 블루레이가 DVD보다 낫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비디오게임에 비유해 보자.

카트리지를 사용하던 수퍼닌텐도(수퍼패미콤)에서 CD를 사용하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넘어갔을 당시엔 그래픽과 사운드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천지차이가 나는 듯 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에서 플레이스테이션2로 넘어갔을 때엔 그 만한 질적인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으며, 플레이스테이션2에서 플레이스테이션3로 넘어갔을 때엔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픽 등 모든 면에서 나아졌다는 건 알겠는데 수퍼닌텐도에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넘어갔을 때처럼 파격적인 발전이 이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블루레이도 마찬가지다.

지난 90년대 DVD가 첫 선을 보였을 때엔 VHS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블루레이는 DVD와의 질적인 차이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DVD보다 여러모로 향상되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파격적일 정도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홈비디오는 DVD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눈이 달린 이상 블루레이가 더 좋다는 것은 알겠는데 굳이 업그레이드를 하도록 만들 정도는 못 된다는 것이다.

블루레이가 DVD보다 비싸다

최신작들의 경우엔 DVD보다 블루레이의 가격이 비싸다. 최신작의 경우 블루레이는 평균 29달러 99센트, DVD 버전은 19불 99센트에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가격 핑계만 대기는 곤란하다. 뉴 릴리즈 섹션에서 한발짝만 이동하면 9달러 99센트에 판매중인 블루레이가 수두룩하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자제품 전문 체인점 베스트바이에선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 안에 7달러 99센트에 세일 중인 블루레이 영화들을 가득 담아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7.99 블루레이라고 해서 아주 오래된 영화, 별로 인기가 없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스페인 영화배우 하비에르 바뎀(Javier Bardem)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안겼던 네오-웨스턴 범죄영화 '노 컨트리 포 올드맨(No Country for Old Men)' 블루레이도 거기에 들어있었으니까. 그러므로 블루레이라고 무조건 비싼 것이 아니라 DVD와 가격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블루레이가 DVD보다 더 싼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블루레이가 DVD보다 비싼 것은 사실이다. 최신작을 비롯한 몇몇 타이틀에선 여전히 가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블루레이가 DVD를 확실하게 추월하려면 블루레이 최신작 가격을 지금의 DVD 가격($19.99) 이하로 내리는 것이 좋을 듯 하다.

◆DVD로 이미 가지고 있는 걸 블루레이로 또 구입하라고?

지난 90년대 DVD 포맷 홈비디오가 첫 선을 보였을 때엔 VHS로 가지고 있었던 영화들을 DVD로 재구입하는 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DVD는 비디오테이프와는 달리 세월이 지나도 화질과 음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 하나만으로 재구입 가치가 충분하고 남았다.

그러나 블루레이는 사정이 다르다. 저장매체의 수명 면에선 DVD와 다를 게 없기 때문에 DVD로 멀쩡하게 있는 것을 별 이유없이 블루레이로 또 구입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무리 질적인 향상이 이뤄졌다고 해도 DVD로 멀쩡하게 있는 똑같은 영화를 블루레이로 또 구입하려 하면 선뜻 내키지 않는 게 사실이다. 블루레이로 굳이 또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생겨서다.

그렇다면 모조리 블루레이로 바꿀 게 아니라 새로 나오는 영화들만 블루레이로 구입하면 된다. 블루레이 플레이어로 DVD 영화 재생이 가능하므로 DVD로 있는 영화들을 굳이 모두 블루레이로 바꿀 필요없이 그대로 놔둬도 된다. 이러한 호환성이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상점에 갔을 때 블루레이가 아닌 DVD 섹션을 먼저 찾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습관일 뿐일 수도 있지만 블루레이로 옮겨탄 이후에도 DVD와 계속 함께하게 되다 보니 DVD에서 졸업하기가 그만큼 더 힘들어진 듯 하다.

기왕이면 블루레이 값어치 하는 영화를 사고 싶은데 마땅히 살 게 없어...

앞으로 나오는 새로운 영화들은 DVD가 아닌 블루레이로 구입하기로 마음을 정해도 상점에 들어서면 싼 버전(DVD)과 비싼 버전(블루레이) 중에 어느 것을 구입할 것인지 고민이 생길 때가 있다. 기왕 구입하는 김에 몇 푼 더 주고 좋은 블루레이 버전을 구입하자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른 한편으론 굳이 그렇게 할 가치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서다. '홈비디오는 DVD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아직 밀어내지 못했기 때문인지 기왕 블루레이로 구입할 것이면 그 만한 값어치를 하는 영화를 자꾸 고르게 된다.

그럼 어떤 영화들이 블루레이로 구입할 가치가 있는 걸까?

많은 사람들은 클래식 영화보다 최신 영화를 블루레이로 구입하는 게 낫다고 한다. 클래식 영화의 화질을 업그레이드시켜도 클래식 영화의 티가 여전히 나기 때문에 HD 퀄리티 화질로 영화를 감상한다는 기분이 덜 든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리매스터링 작업을 거쳐 모든 면에서 크게 향상된 클래식 영화들을 종종 볼 수 있어도 옛날 영화라는 자체를 감출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은 옛날 영화를 블루레이로 구입하면 제 값어치를 하지 못하며, UP-TO-DATE 기술력을 동원해 제작한 최신 영화를 구입해야 돈낭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바타(Avatar)', '트론(Tron: Legacy)', '인셉션(Inception)' 등과 같은 최신 영화들을 구입해야 블루레이가 제값을 한다?

지금의 HD 퀄리티 화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최근에 제작된 영화들인 것이 사실이므로 아주 틀린 주장은 아닌 듯 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최신 영화 중엔 블루레이로 소장하고 싶은 영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블루레이는 고사하고 DVD 버전이라도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많지 않다. DVD/블루레이 스토어에 가서 한참을 뒤적여봐도 최신 영화 섹션에선 맘에 드는 영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미 영화관에서 본 영화더라도 소장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생기면 DVD로 구입하곤 했는데, 요샌 그런 생각이 드는 영화가 거의 없다.

아마도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되겠지만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대충 이렇게 될 듯 하다: 요새 나오는 영화들은 3D다 뭐다 하면서 마치 놀이공원 탈 것처럼 만든 영화, 코믹북-SF-판타지 오타쿠들만을 위한 듯 한 영화들이 너무 많아서다. 물론 모든 영화가 전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성수기에 개봉하는 영화들 중 십중팔구가 PG-13 레이팅의 코믹북-SF-판타지 오타쿠들의 놀이공원 탈 것이다.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이런 영화들은 쟝르, 스타일, 영화 레이팅 등이 안봐도 비디오일 정도로 항상 정해져있다. 영화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영화들도 대부분 놀이공원 스타일, 오타쿠 스타일이에서 맴돌았을 뿐 "아주 특별하다"고 할 만한 영화는 없었다.

이렇다 보니 DVD/블루레이로 소장가치가 있어 보이는 영화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으며, 구매욕, 수집욕도 수직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난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DVD를 자주 구입하곤 했다. 하지만 요새는 이것도 맘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계속 불어나는 DVD가 큰 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DVD를 캐비넷에 가지런히 꽂아놓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무 데나 쑤셔박기 시작하더니 이젠 DVD로 탑 만들기까지 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새는 DVD 구입 이전에 소장가치 등을 더욱 꼼꼼하게 따지게 됐다. 예전보다 까다롭게 고르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DVD든 블루레이든 간에 예전처럼 계속 모으다간 디스크 위에서 잠을 자야하는 상황에 처할 지도 모를 것 같아서다.

그렇다면 무슨 영화를 블루레이로 구입해야 하는 걸까?

되도록이면 블루레이로는 최신 영화를 사고 싶지만 막상 스토어에 가면 6~80년대 클래식 영화들을 사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블루레이 영화 중에서 2000년대 영화는 '블랙 스완(Black Swan)', '업 인 디 에어(Up in the Air)' 등 몇 개 되지 않고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제외) 나머지는 60년대, 70년대, 아니면 80년대 영화들이다.

그렇다고 옛날 영화를 유독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상을 많이 받은 영화만 골라서 보면서 "캬아~!" 타령을 하는 짜증나는 족속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스토어에만 갔다 하면 최신 블록버스터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등 너무나도 유명한 클래식 명작들만 블루레이로 구입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요새 나오는 팝콘무비에 도무지 정이 안 가기때문이다.

그렇다. 나를 마치 고상한 클래식만 좋아하는 척 하는 싸구려 꼴통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주범은 갈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팝콘무비다. 지금부터라도 헐리우드는 홈 비디오가 안 팔린다고 징징대지만 말고 팝콘무비더라도 좀 영화답게 만들어 놓고 팔아먹을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자. 너희 같으면 그런 영화 돈주고 DVD나 블루레이로 사고 싶겠냐?

댓글 8개 :

  1. 블루레이와 DVD에 관해서 많이 담고싶어하는 저로선
    슬픕니다..ㅠㅠ

    북미쪽에서는 소장가치 있고 재미있는 영화들 블루레이가
    어마어마한 고화질로 많이 출시되었으니, 조금 더
    알아보심이 어떠할런지요..ㅠㅠ

    잘 보시면 DVD와 블루레이의 화질 차이는 어마어마하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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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제부턴 블루레이로만 산다고 몇 번 다짐을 했던 것 같은데,
    근데 그게 이상하게 맘처럼 잘 안 되더라구요...^^
    공간압박도 그렇고, 싼맛에 사던 DVD와 달리 가격이 세다는 것도 그렇고...
    블루레이 중에 싼 것도 많지만 전체적으론 아직 좀 비싸죠.
    게다가 요새 나온 영화 중엔 소장하고픈 영화들도 많지 않아서...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하드카피만을 고집하고 있으니 곧 블루레이로 넘어가겠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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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비싸기만 하고 크게 차이가 없으면 저렴한걸로다가...ㅎㅎ;;
    아무래도 이미 화질부분은 더이상 발전이 더딜것 같은...;;
    이젠 3D영상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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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블루레이가 좋은 건 알겠는데 그래도 자꾸 저렴한 쪽으로...^^
    제 생각에도 이젠 화질 발전은 더딜 것 같습니다.
    근데 안경끼고 보는 3D영화관 축소판 정도인 3DTV엔 별로 흥미가 안 끌립니다.
    안경끼고 보는 3D도 한계가 있어 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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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도 일단 중요한 작품은 블루레이로 그냥 볼만한건 DVD로 이런 생각인데, 새로 나오는 타이틀은 결국 블루레이로 가야 할 듯 하네요~^^ 본드23은 무조건 블루레이로 사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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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저도 아직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뭐 바뀌겠죠...^^
    근데 막상 사러 나가면 살 만한 게 없더라구요.
    본드23가 블루레이로 나올 때가 되었을 땐 전 시리즈가 블루레이로 출시되어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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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망설일 수 밖에 없겠죠.
    ㅎㅎㅎ
    다 개인취향 아니겠슴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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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그래도 얼마 전부터 되도록이면 블루레이로 사려고 노력중인데요,
    근데 사고 싶은 영화가 별로 눈에 안 띕니다.
    소장하고픈 영화 대부분을 이미 DVD로 갖고 있어서 인 듯...
    아직 DVD로도 갖고 있지 않은 영화는 홈 비디오로 구입할 생각이 없는 영화란 얘기가 되는데,
    이런 영화들을 갑자기 나가서 블루레이로 구입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최신작들도 대부분 소장 가치가 낮고...
    퀄리티가 낮은 영화들이 요근래 많이 나와서 블루레이 판매량도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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