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4일 월요일

연예인인지 대선 후보인지 혼동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자기 방어 습관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가장 큰 문제는 항상 그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이다. 언론들이 우호적이라면 나쁠 게 없지만, 현재 거의 모든 미국 메이저 언론이 트럼프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도 미국 메이저 언론이 이처럼 편파적으로 행동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미국 메이저 언론이 원래 그런 줄 다 알고 있었더라도, 이렇게까지 편파적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메이저 언론의 눈에 계속 띄는 말과 행동을 하는 자체가 트럼프에겐 손해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상하게도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먹잇감을 노리는 미국 메이저 언론에게 계속 먹잇감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 언론은 트럼프가 바른 말을 9개 하고 틀린 말을 1개 하면 바른 말 9개는 보도하지 않고 틀린 말 하나만 대문짝만하게 싣는다. 만약 트럼프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 트럼프는 바른 말만 10개를 해야 한다. 그래도 편파적인 미국 메이저 언론은 트집거리를 찾아낼 것이다. 언론이 쉽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말을 하면서 그들을 도와줄 필요는 없다.

문제는, 트럼프가 미국 메이저 언론을 도와주고 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왜 트럼프의 문제 거리를 찾는 데 혈안인가부터 짚어봐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힐러리의 결점을 덮기 위한 것이다. 힐러리가 여러 가지 스캔들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미국인들이 힐러리의 스캔들에 집중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미국 메이저 언론들이 매일같이 트럼프 관련 기사로 프론트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다. 언론의 관심이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에게 쏠리도록 하면서 힐러리의 부적절한 스캔들을 덮으려는 것이다.

트럼프도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따라서 트럼프는 되도록이면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그 대신 힐러리의 여러 가지 스캔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인들이 위키리크스 등을 비롯한 힐러리 관련 스캔들에 주목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직도" 이걸 제대로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엊그제 펜실배니아 주 게티스버그에서 가진 연설에서도 잘 나가다가 쓸데없이 그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을 고소하겠다고 말하면서 언론들에게 새로운 먹잇감을 또 던져줬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메이저 언론들은 트럼프의 다른 게티스버그 연설 내용은 뒤로 미뤄놓고 "피해여성 고소"만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피해 여성 고소" 부분은 연설문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트럼프가 스스로 집어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메이저 언론이 어떻게 보도할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말을 꼭 집어넣었어야만 했나?


트럼프는 계속해서 "I have to defend myself"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상대가 공격하면 거기에 대해 해명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트럼프가 크게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대선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지 트럼프의 개인적인 싸움이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선을 잊고 개인적인 싸움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힐러리 측에선 별난 소리를 다 늘어놓을 게 뻔하고 적대적인 언론들이 쥐떼처럼 모여들어 뜯어먹을 것을 찾으려 할 게 뻔한 데, 이런 것에 일일히 대꾸하고 해명하려 하면 그들의 계략에 말려들게 된다. 해명은 짧고 단호하게 하고, 트럼프와 관련된 이야기가 계속해서 언론들의 헤드라인감이 되지 않도록 콘트롤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놀랍게도 "아직도" 이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정책 설명보다 자기 방어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힐러리를 꺾는 것인데, 트럼프는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대선은 이미 졌으니 명예라도 살려야겠다는 것인가?

트럼프는 그의 지지자를 "팬클럽 멤버" 정도로 생각하는 듯 하다. 이것 또한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 중엔 "트럼프 팬"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 모두가 다 여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개인엔 관심없어도 대선에서 힐러리를 꺾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된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자기 방어"를 하지 않고는 넘어가지 못하면서 대선 후보가 아니라 헐리우드 가십에 휘말린 연예인처럼 행동하고 있다.

힐러리를 꺾기 위해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트럼프의 "명예"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트럼프를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겨주는 "열성 팬클럽 멤버"가 아니다. 따라서 정책 설명보다 자기 방어에 더 공을 들이면서 팬들의 열렬한 성원이나 유도하려는 모습을 계속 보이면 정치적인 이유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내심을 잃고 트럼프를 떠날 것이다.

물론 트럼프에게 대통령다운 모습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억지로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가 대선 후보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선 후보답게 행동해야 하고, 그에게 불리할 만한 말은 하고 싶어도 참고 하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직도" 이걸 제대로 못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정책 때문도 아니고 "음담패설" 녹음파일 때문도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의 부적적할 발언과 눈쌀이 찌푸려지는 트위터 전쟁이 계속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유세에서 쓸데없는 말을 하고 트위터에서 불필요한 싸움을 벌인 것이 "음담패설"보다 더욱 치명적이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캠페인 관계자들은 트럼프의 이런 문제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트럼프가 계속 실수를 반복할 때마다 미국 메이저 언론들은 이런 것으로 프론트 페이지를 장식했다. 좌파-리버럴-민주당 성향의 미국 언론들조차도 할 수 없이 힐러리 스캔들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할 판에 트럼프는 스스로 쓸데없는 논란거리를 생산하면서 언론의 조명을 독차지했다. 트럼프가 "제발등찍기 전문가"라는 평을 듣게 된 이유도 이런 행동 때문이었다.

트럼프 캠페인 매니저, 켈리앤 콘웨이(Kellyanne Conway)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는지 신통할 정도다.

이렇기 때문에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을 망치고 있는 주범은 다름 아닌 트럼프 자신이다. 트럼프는 언론 탓, 힐러리 탓을 하고 있으나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에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건 트럼프 자신이다. 만약 트럼프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여러 가지 의혹을 적당히 반사시키면서 언론과 미국인들이 힐러리 스캔들에 보다 큰 관심을 보이도록 유도했더라면 지금 현재 트럼프가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섰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유세, 트위터, TV 토론 등에서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고, 자신과 관련된 의혹에 관한 해명을 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했다. 이런 건 미국 메이저 언론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고, 이들은 트럼프의 여러 발언들로 프론트 페이지를 장식했다. 힐러리 스캔들 쪽으로 스포트라이트를 옮기려 해도 트럼프가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아직까지 힐러리를 역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트럼프는 기삿감을 계속 던져주지 않고 보다 조심하게 행동하면서 힐러리의 스캔들이 주목을 받을 기회를 만들어줬어야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언론들이 계속해서 그와 관련한 기사로 헤드라인을 장식하도록 만들었다. 굵직한 기삿감까지 직접 던져주면서 말이다. 힐러리를 침몰시킬 수 있는 무기가 수두룩한데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이런 무기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차 TV 토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힐러리를 잘 몰아세우고도 그 다음날 헤드라인이 힐러리 스캔들이 아니라 트럼프의 "대선 결과 불복 시사"가 되도록 만든 것도 트럼프였다. 게티스버그에서도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니까 힐러리  측은 되도록이면 가만히 있으려 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트럼프 혼자서 다 망쳐놓을 것이므로 굳이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트럼프가 전세를 역전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듯 하다. 이젠 "Hail Mary Time"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계속 잡음을 일으키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 정도로 핵폭탄급 힐러리 관련 스캔들이 터지지 않는 이상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언론의 관심을 꽉 붙잡고 있기 때문에, 이를 뿌리칠 수 있을 정도로 파워풀한 스캔들이 터지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다. 힐러리를 편드는 언론들도 다루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로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키리크스에도 더이상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힐러리의 이메일 이야기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는 미국인들도 늘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위키리크스만으로는 힐러리를 침몰시키기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트럼프가 위키리크스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살 수 있겠는지 의심스럽다.

이런 식으로 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공화당이 단결을 못해서 졌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트럼프가 제발등찍기만 해서 졌다"는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공화당의 분열로 이어지는 엔딩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물론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트럼프가 앞서는 것으로 집계된 바도 있다.  또한, 트럼프가 "이변의 주인공"이라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되어 여기까지 오게 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처럼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트럼프가 대선에서도 예상 밖의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만약 트럼프가 막판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면 여러 여론조사에선 여전히 힐러리에게 뒤지더라도 실제 대선에선 승리할 수도 있다. 힐러리 측은 힐러리 당선이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트럼프 지지자들의 포기를 유도하고 있다. 막판 상승세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힐러리 측은 지나친 "대세론"으로 힐러리 지지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아도 이길 것으로 방심하는 것을 우려함과 동시에 트럼프 지지자들의 포기를 유도해 트럼프의 막판 상승세를 차단하는 작전을 벌이고 있다.

어디까지나 만약이지만, 트럼프가 막판에 꾸준한 상승세를 타는 데 성공한다면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고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론조사에서 역전할 필요도 없다. 그저 대선까지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기만 해도 해볼 만하다.

문제는 트럼프가 막판 상승세를 만들 만한 뒷심을 발휘할 수 있냐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아직은 완전히 희망이 없는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트럼프가 막판에도 대선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기 방어"에만 정신이 팔린 모습을 보인다면 게임 오버다. 트럼프 하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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