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0일 금요일

미스 캘리포니아, 흑인 제임스 본드,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

2009년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의 최고 스타는 뭐니뭐니해도 미스 캘리포니아, 캐리 프리진(Carrie Prejean)이었다. 캐리 프리진은 미스 아메리카로 선정되지 않고 2위에 그쳤으나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소신을 밝히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서 캐리 프리진에게 동성결혼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은 게이 블로거/칼럼니스트로 유명한 페레즈 힐튼(Perez Hilton)이었다.

질의자로 나선 페레즈 힐튼은 캐리 프리진에게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페레즈 힐튼은 질문을 던진 장소가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이고, 캐리 프리진이 미스 캘리포니아 자격으로 선발대회에 출전한 상태였으므로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한다는 '듣기 좋은' 답변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힐튼은 프리진이 찬성을 하지 않는다더라도 노골적으로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지 않고 두루뭉실하게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프리진은 어느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답했다. 동성결혼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I believe that marriage should be between a man and a woman, no offense to anybody out there. But that’s how I was raised and I believe that it should be between a man and a woman." - Carrie Prejean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가 끝난 뒤 프리진에게 질문을 했던 페레즈 힐튼은 그가 만든 유투브 동영상에서 동성결혼에 반대한다고 소신을 밝힌 프리진이 "Dumb Bitch"라고 욕설을 했다.


이는 단 한 번에 그치지 않았으며, 페레즈 힐튼은 그의 웹사이트를 통해서도 여러 차례 반복해서 프리진을 "Dumb Bicth"라고 불렀다. 동성결혼에 반대한다는 소신을 밝힌 프리진을 타겟으로 삼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프리진이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 무대에서 동성결혼에 반대한다는 소신을 밝힌 건 판단착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스 아메리카 타이틀보다 신념이 더욱 중요했다면 동성결혼에 반대한다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도 있는 것이다.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라는 자리에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NO"라고 말한 프리진의 솔직함과 용기는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론 응답자가 입장 곤란해질 수도 있는 민감한 동성결혼 문제를 굳이 질문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페레즈 힐튼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가 원하던 답변을 받아내기 위해 그런 질문을 던진 건 아닌가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엔 제임스 본드 스타, 로저 무어(Roger Moore)가 수난을 당했다. 프랑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무어가 흑인 영화배우 이드리스 엘바(Idris Elba)가 제임스 본드가 될 수 없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린 것이다.

무어는 프랑스 매거진이 흑인 제임스 본드 루머에 대해 질문하자 "몇 해 전 (미국 흑인배우) 쿠바 구딩 주니어(Cuba Gooding Jr.)가 제임스 본드 역에 어울릴 것이라고 한 적이 있으나 그것은 농담"이었으며 "제임스 본드 역을 스코틀랜드인, 웨일즈인, 아일랜드인 등이 연기했으나 제임스 본드는 '잉글리쉬-잉글리쉬'이어야 한다"면서, '흑인 제임스 본드'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A few years ago, I said that Cuba Gooding Jr. would make an excellent Bond, but it was a joke! Although James may have been played by a Scot, a Welshman and an Irishman, I think he should be 'English-English'. Nevertheless, it's an interesting idea, but unrealistic." - Roger Moore

그러나 무어의 코멘트는 "로저 무어가 흑인 영국인인 이드리스 엘바를 완전하지 않은 영국인이라고 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흑인은 '잉글리쉬-잉글리쉬'가 아니라고 말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로저 무어는 의미가 잘못 전달되었다고 해명했다. 무어는 그가 이드리스 엘바를 향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영어권 언론에 공개된 로저 무어의 코멘트만을 놓고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 사실이다. 흑인 제임스 본드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흑인 미국 영화배우 쿠바 구딩 주니어 관련 옛 이야기를 꺼냈다가 스코틀랜드인, 웨일즈인, 아일랜드인 등 국적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더니 '잉글리쉬-잉글리쉬'로 결론내리면서 "흥미로운 아이디어지만 비현실적"이라고 한 무어의 코멘트 퍼즐을 맞춰 보면 머리를 긁적이게 되는 게 사실이다. 인종에 관한 질문을 받은 무어는 직구를 던지지 않고 영화배우의 국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변화구를 던진 듯 하다.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로저 무어가 흑인 제임스 본드 아이디어를 비현실적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로저 무어는 쿠바 구딩 주니어를 예로 들면서 흑인 제임스 본드가 비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어는 쿠바 구딩 주니어(미국)와 숀 코네리(스코틀랜드), 티모시 달튼(웨일즈), 피어스 브로스난(아일랜드) 등 다른 영화배우들을 언급하며 제임스 본드는 '잉글리쉬-잉글리쉬'가 맡아야 한다고 했지, 이드리스 엘바가 '잉글리쉬-잉글리쉬'가 아니라고 하진 않았다. 흑인 제임스 본드 루머의 중심에 서있는 게 바로 이드리스 엘바다 보니 그를 향한 코멘트로 해석될 수는 있어도, 로저 무어는 쿠바 구딩 주니어를 비롯한 다른 영화배우들의 국적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일 수도 있다. 로저 무어 측은 "제임스 본드는 영국 배우가 맡아야 하나"는 질문에 답변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따라서 "흑인 제임스 본드"와 "제임스 본드 국적" 질문에 대한 로저 무어의 답변이 하나로 섞이면서 빚어진 해프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흑인 제임스 본드'에 관한 부담은 전직 제임스 본드, 로저 무어 뿐만 아니라 007 제작진도 느끼고 있다.

IGN.COM은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SPECTRE)' 촬영이 한창인 멕시코 시티에 찾아가서 007 시리즈 프로듀서 마이클 G. 윌슨(Michael G. Wilson)과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에게도 흑인 제임스 본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고 한다. IGN.COM은 007 제작진이 "이드리스 엘바가 훌륭한 제임스 본드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제목을 뽑았다.

아니, 그럼 그들이 "NO"라고 답할 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만약 007 제작진이 아니라고 했다면 바로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릴 게 뻔한데, 영화 장사를 하는 007 제작진이 바보가 아닌 이상 "NO"라고 답했겠는가?

"I think he'd make a great Bond," Wilson answered immediately. - IGN.COM


한편, 보수 성향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러시 림바(Rush Limbaugh)는 흑인 제임스 본드가 말이 안 된다는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제임스 본드가 아무리 가공의 인물이라 해도 원작소설에서부터 백인으로 묘사된 백인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으므로 이제 와서 흑인으로 바꾸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종문제를 떠나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러시 림바는 바로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되었다.

1973년 제임스 본드 영화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에 출연했던 흑인 영화배우 야펫 코토(Yaphet Kotto) 역시 '흑인 제임스 본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제임스 본드는 흑인이 될 수 없다"라고 답변했다. 코토는 제임스 본드가 원래부터 백인 캐릭터였는데 흑인 배우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는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말했다. 흑인 영화배우인 코토도 '흑인 제임스 본드' 루머는 터무니없어 보인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좌파-리버럴 언론들은 계속해서 "YES/NO" 질문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반동 여부를 가려내면서 리버럴 지지세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YES"라고 답하면 '동지'이고 "NO"라고 답하면 '반동'이 된다. 007 시리즈 프로듀서 마이클 G. 윌슨처럼 바로(immediately) "YES"라고 답하면 'COMRADE POINT'를 좀 더 받을 수 있을 듯. 그러나 로저 무어, 러시 림바, 야펫 코토 등은 'REACTIONARY'이다. 흑인 제임스 본드는 곤란하다는 의견을 보이면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덮어놓고 인종차별자로 몰고 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소수계가 백인 캐릭터를 탬낸다는 점을 비판한 미국 여배우 미셸 로드리게스(Michelle Rodriguez)도 'REACTIONARY' 쪽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싶다.

작년 미국을 뒤흔들었던 '퍼거슨 사태'도 마찬가지다. 비무장 흑인 청소년이 백인 경찰에 의해 사살되자 "손을 들고 투항하는 흑인 소년을 백인 경찰이 사살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났으나 "HANDS UP DON'T SHOOT"은 항의 시위대의 구호로 사용되었으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투항하는 흑인 청소년을 경찰이 사살한 것으로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지난 달 워싱턴 포스트의 팩트 체커(Fact Checker)가 'HANDS UP DON'T SHOOT'의 팩트를 조사했다. 그 결과 'HANDS UP DON'T SHOOT'은 피노키오 4개를 받았다.

피노키오의 수가 많을 수록 명백한 거짓이라는 의미이며, 피노키오 4개가 최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at's why we walk through Ferguson with our hands up"이라는 가사 내용이 포함된 영화 '셀마(Selma)'의 '글로리(Glory)'가 아카데미 주제곡상을 받았다. 곡 자체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퍼거슨 사태의 사실과 다른 "HANDS UP DON'T SHOOT' 구호를 의미하는 가사가 들어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지 않았고, 골든 글로브(Golden Globe)에 이어 아카데미에서도 주제곡상을 받았다.

'인종카드'는 오바마 행정부도 자주 사용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면 '인종카드'를 꺼내들면서 비판 세력을 인종편견주의자로 모는 수법을 자주 쓴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에 비판적인 미국인들은 '인종카드'를 이용해 비판세력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며 불만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인종문제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약점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유력한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꼽히고 있다.

그렇다. '게이카드', '인종카드'에 이은 다음 번 카드는 '섹스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성결혼을 반대한다는 소신을 밝히면 그 자리에서 게이혐오자로 매도되고, 흑인 제임스 본드를 반대한다고 하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된 데 이어, 힐러리 클린턴을 비판하면 여성혐오자로 몰리게 생겼으니 말이다.

폭스 뉴스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들은 이미 '섹시즘(Sexism)'을 이용한 방어전에 돌입했다고 한다.


이러니까 제일 만만한 건 스트레이트-백인-남성이다. 동네 북처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도 대놓고 별다른 군소리를 안/못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 펜실배니아 주 공화당 상원의원 릭 샌터럼(Rick Santorum)이 며칠 전 CBS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말이 생각난다:

"관용은 양 방향 통행이다(Tolerance is Two-Way street)."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