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러시 림바의 "흑인 제임스 본드 안 된다" 지극히 당연한 주장

미국의 보수 성향 라디오 쇼 진행자 러시 림바(Rush Limbaugh)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대한 코멘트로 구설에 올랐다.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유출된 소니 픽쳐스 체어맨 에이미 패스칼(Amy Pascal)의 과거 이메일 중에 영국의 흑인 영화배우 이드리스 엘바(Edris Elba)가 제임스 본드를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밝힌 이메일이 공개되자 러시 림바는 "흑인 제임스 본드는 안 된다"고 그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자 언론들이 러시 림바를 인종차별자로 몰아세우며 공격에 나섰다.

러시 림바는 이전에도 여러 구설과 논란에 휘말린 전력이 있는 양반이므로 "흑인 제임스 본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또 하나의 좋은 타겟감이 됐다.

그렇다면 러시 림바가 지탄받을 만한 인종차별적인 망언을 한 것일까?

일단 림바가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했는지 보자.

"Here's the thing, though. James Bond is a fictional character, obviously. James Bond was invented, created by Ian Fleming, a former spy, MI6, and James Bond is a total concept put together by Ian Fleming. He was white and Scottish, period. That is who James Bond is. But now Sony is suggesting that the next James Bond should be Idris Elba, a black Briton rather than a white from Scotland. But that's not who James Bond is, and I know it's racist to probably even point this out." - Rush Limbaugh

러시 림바도 제임스 본드가 가공의 인물(Fictional Character)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창조한 제임스 본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백인 캐릭터였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팩트다.

원작소설에서 이언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가 스코틀랜드인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설정했다. 또한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가 검은 머리에 파란색 눈을 가진 것으로 묘사했다.

물론 원작소설의 제임스 본드가 백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뒤집어보려는 좌파-리버럴들은 원작소설의 제임스 본드가 백인이었다는 사실까지 뒤집으려 한다. 원작소설의 제임스 본드가 백인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례를 인터넷에서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을 한 번 따져보자.

가능성이 희박하긴 해도 스코틀랜드인 또는 스위스인이라고 무조건 전부 백인이 아닐 수도 있다. 흑인의 피가 섞였을 수도 있으며, 흑백 혼혈 중에도 검은 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가 백인이라는 직-간접적인 증거를 플레밍의 여러 제임스 본드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플레밍의 숏 스토리 '힐데브랜드 레어리티(The Hildebrand Rarity)'다. 플레밍은 '힐데브랜드 레어리티'에서 제임스 본드를 백인으로 묘사했다.

"I knew you'd be fooling around somewhere down the coast, so I just drove alone until one of the fisherman told me there's a crazy white man trying to commit suicide alone at Belle Anse and I knew that would be you,."
Bond laughed.

원작소설의 제임스 본드가 백인이라는 지극히도 당연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궁금하다.

따라서 애초부터 제임스 본드는 백인 캐릭터였으므로 흑인 영화배우에게 제임스 본드를 맡기는 건 안 된다는 러시 림바의 주장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흑인 영화배우가 제임스 본드를 맡으면 안 된다는 건 인종편견 때문에서가 아니라 제임스 본드가 원래 백인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이것을 바꾸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제임스 본드는 실재인물이 아닌 가공의 인물이므로 흑인, 아시안 등 다른 인종으로 바꿔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아이디어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제임스 본드에 버금갈 만한 새로운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 캐릭터와 프랜챠이스를 만들 연구를 하자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가공의 캐릭터는 인종을 바꿔도 된다"고 하는 건 인종카드를 교묘하게 사용하면서 무성의하게 선심쓰는 척 하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또한, 가공의 캐릭터라고 해서 인종을 제멋대로 바꿔도 무방하다는 주장에도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비록 가공의 인물이더라도 실재인물과 다름 없을 정도로 나이, 인종, 출생지 등이 자세하게 기록된 경우가 많으며, 최초로 캐릭터를 창조한 원작자의 뜻을 존중할 필요성도 있다. 또한, 골수팬들의 의견과 반응을 짚어볼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로빈 후드나 셜록 홈즈를 흑인으로 바꾼다고 가정해보자. 좌파-리버럴 정치 성향에 맞춘 인종 교체로 선전 효과는 어느 정도 누릴 수 있겠지만 백인 로빈 후드와 셜록 홈즈에 익숙해진 골수팬들이 흑인 버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이들을 전부 싸잡아 인종차별자로 매도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여지껏 백인으로 알고있었던 캐릭터가 갑자기 흑인으로 바뀐 데 따른 어색함을 토로하는 것을 덮어놓고 무조건 인종편견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인종문제를 역으로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오랫동안 백인으로 알고 있었던 캐릭터가 갑자기 흑인으로 바뀌어도 인종차별자로 매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소리를 꺼내지 못하도록 인종카드를 이용해 입을 막으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러시 림바가 도전한 것이고, 아니나 다를까, 러시 림바는 "흑인이 제임스 본드가 되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리고 있다. 아무리 러시 림바가 과거 전력이 있더라도 림바의 "흑인 제임스 본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제임스 본드가 애초부터 백인 캐릭터였기 때문에 인종을 바꾸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의미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림바가 인종편견을 드러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림바가 이드리스 엘바의 피부색 때문에 제임스 본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는 식의 요지를 왜곡한 기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예상했던 결과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처구니 없어 보인다.

또 한가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소니 픽쳐스 체어맨 에이미 패스칼이 유러피언 캐릭터 제임스 본드를 흑인으로 바꾸자고 하는 판인데 왜 유명한 아메리칸 캐릭터들은 그대로 백인이 주연을 맡고 있을까?

미국이 유럽보다 더 하얗다는 얘기?

아니면 정치 선전 놀음에 제임스 본드를 이용하려는 속셈?

물론 흑인 스파이더맨, 흑인 수퍼맨 등 몇몇 미국산 수퍼히어로들이 코믹북 버전에서 흑인으로 바뀐 경우는 있다. 하지만 영화 버전에선 여전히 백인(헨리 카빌) 또는 유대계(앤드류 가필드) 배우가 주연을 맡고 있다. 또다른 미국산 수퍼히어로 캐릭터인 배트맨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백인 캐릭터가 계속해서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을 맡아왔으며, 곧 개봉할 '수퍼맨 vs 배트맨(Superman  vs Batman: Dawn of Justice)'에선 백인 배우 벤 애플렉(Ben Affleck)이 배트맨 역을 맡았다. 현재 미국 폭스 TV에서 방영 중인 배트맨 프리퀄 격의 TV 시리즈 '고담(Gotham)'에서도 어린 브루스 웨인 역을 유대계 아역 배우 데이빗 매주즈(David Mazouz)가 맡았다.

그러므로 유러피언 캐릭터를 흑인으로 바꾸자는 소리를 꺼내기 전에 미국산 캐릭터가 등장하는 헐리우드 영화서부터 한 번 바꿔보기 바란다. 흑인 배트맨, 흑인 수퍼맨, 흑인 스파이더맨, 흑인 엑스맨, 흑인 아이언맨 등으로 말이다. 그게 올바른 순서다. 우선 이것을 먼저 하고 어떤 결과와 반응이 나오는지 지켜본 다음에 유러피언 캐릭터를 건드리기 바란다. 흑인 수퍼맨과 흑인 배트맨 영화에 대한 골수팬들의 반응이 어떠한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한 번 보자는 것이다.

사실 소니 픽쳐스의 에이미 패스칼이 제임스 본드를 흑인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비쳤다는 건 그리 놀라운 얘기가 아니다. 인종 교체 리메이크작을 가장 많이 선보인 헐리우드 영화사가 바로 소니 픽쳐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이저 캐릭터 인종 교체의 시험용으로 제임스 본드를 쓸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란다. 헐리우드가 그런 것을 테스트 해보려는 것까지는 뭐라 하지 않겠지만 굳이 해보려거든 미국산 캐릭터로 시도하기 바란다.

요즘 아이들은 제임스 본드보다 제이슨 본을 더 좋아한다던데, 제이슨 본을 한 번 흑인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 제이슨 본 역으로 유명한 미국 영화배우 맷 데이먼(Matt Damon)은 정치 성향이 좌파-리버럴이므로 제이슨 본을 흑인으로 바꾸자는 아이디어에 찬성할 것이다. '수퍼맨 vs 배트맨'에서 배트맨 역을 맡은 벤 애플렉도 정치 성향이 그의 절친 맷 데이먼과 같으므로 그 또한 배트맨을 흑인으로 교체한다는 아이디어에 찬성할 것이다.

사실 '흑인 제임스 본드' 얘기는 바보스러운 소리다. 흑인 제임스 본드 이야기는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오바마는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이지만, 일부는 항상 백인이 하던 것을 흑인이 차지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항상 백인이 하던 다른 것도 전부 흑인으로 바꾸자는 쪽으로 잘못 흐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나온 게 제임스 본드도 흑인으로 바꾸자는 얘기였다. 하지만 어지간한 흑인들과 흑인 영화배우들도 제임스 본드는 영국 출신 백인 영화배우가 맡아야 어울린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흑인 제임스 본드 이야기가 한참 나돌았었는데, 인종과 피부색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제임스 본드는 그 역할에 잘 어울리는 배우가 맡아야 한다"고 코멘트하면서 점잖게 비켜간 흑인 배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므로 '흑인 제임스 본드' 얘기는 자신이 얼마나 리버럴한가를 과시하려는 자들이 가식적인 위선 가면놀이 소잿감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쓸데 없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제임스 본드 이야기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 없을 뿐이다. 이는 좌파-리버럴 성향 언론의 책임이 크다. 미국의 소수계를 (겉으로나마) 배려하려 노력한다는 점은 평가하지만 '흑인 제임스 본드' 얘기와 같은 넌센스를 자꾸 리싸이클시키는 건 스스로를 굉장히 바보스럽게 만드는 짓일 뿐이다. 이에 대해 좌파-리버럴의 집중 공격 대상 중 하나인 러시 림바가 한마디 하자 벌떼처럼 달려들어 비판하는 꼬락서니도 영 보기에 좋지 않다. 러시 림바가 이상한 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이번 제임스 본드 발언엔 문제가 없다. 다른 건이라면 또 모르겠어도 림바의 이번 "흑인 제임스 본드 안 된다"를 "백인 우월주의자가 인종편견을 드러낸 것"으로 매도하는 건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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