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18일 일요일

기대에 못미친 '카스피안 왕자'

작년엔 캐리비언의 해적들 3(Pirates of the Caribbean: At World's End)'였다면 금년엔 '카스피안 왕자'!

2008년 여름시즌 극장가를 뒤흔들 블록버스터 중 하나로 꼽히던 디즈니의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 프린스 카스피안(The Chronicles of Narnia: Prince Caspian)'이 드디어 개봉했다. 영국 소설가 C. S. 루이스의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을 영화로 옮긴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 시리즈 두 번째 영화다.



일단, '여름철에 판타지 영화가 어울리냐'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반지의 제왕(Lord or the Rings)' 시리즈와 같은 '수리수리 마수리' 스타일의 판타지 영화는 주로 연말 홀리데이 시즌에 개봉하기 때문이다. '크로니클 오브 나니나' 1편도 12월에 개봉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일부 미국 언론들은 2005년 개봉했던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 1편이 흥행성공했던 만큼 신인배우 벤 반스(Ben Barnes)를 앞세운 '카스피안 왕자'는 전편을 능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오호라!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한 사자가 활보하는 판타지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거지?

그래서 들여다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1편보다 나은 속편이 흔치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스토리부터 1편에 비해 흥미롭지 않았다.

우선, 4명의 아이들이 다른 세계; 나니아로 이동하는 방법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 1편에서 아이들이 옷장을 통해 다른 세계로 이동한다는 아이디어가 꽤 재미있었기 때문에 2편에선 어떻게 이동할지 궁금했다.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 줄거리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이 부분이 잘 설명돼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얼떨결에 지하철역에서 나니아로 이동하는 게 전부였다.

다른 세계로의 여행은 이미 1편에 충분히 나왔고 잉글랜드에서 나니아, 즉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도 더이상 새로울 게 없는 만큼 2편에서는 이 부분을 대충 넘어가는 대신 나니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까닭이다.



그런데, 나니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그다지 새로울 게 없었다.

스토리가 1편에서 이어지긴 하지만 4명의 메인 캐릭터가 나니아로 컴백했다는 게 사실상 전부였다. 나니아 세계의 시간으로 1300년이 지난 이후다 보니 줄거리가 1편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 대신 '4남매가 나니아로 되돌아 가 카스피안 왕자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려는 미라즈와 대결한다'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스토리와 4남매 중 큰딸 수잔과 카스피안 왕자가 엮이는 뻔할 뻔자로 보이는 로맨틱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니아를 무대로 했다는 게 전부일 뿐 특별하다고 할만한 건 없었다.



1편에선 그런대로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만의 매력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옷장을 통해 다른 세계로 여행한다는 아이디어도 좋았고 말을 할 줄 아는 동물들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2편은 그저 흔해빠진 판타지 영화 중 하나로 보일 뿐이었다. 대규모 전투, 살아 움직이는 나무, 철갑 마스크로 무장한 병사들은 '반지의 제왕', '300' 등의 다른 판타지 영화를 떠올리게만 할 뿐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 시리즈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수효과로 가득한 영화인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3D로 만든 말하는 동물 캐릭터들도 2편으로 돌아왔다.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 1편 뿐만 아니라 작년 겨울에 개봉한 '골든 콤파스(The Golden Compass)'에서도 말하는 동물이 나왔기 때문인지 더이상 새로울 게 없어 보였지만 칼을 휘두르는 쥐들은 꽤 재미있었다. 의도적으로 넣은 귀여우면서도 코믹한 캐릭터였지만 쥐 특공대(?)가 고양이와 마주쳤을 때 벌어지는 해프닝에선 작년 여름 개봉했던 디즈니 픽사의 3D 애니메이션 '라타투이(Ratatouille)'가 생각났다.

나니아와 미라즈 군대가 격돌하는 배틀씬도 그런대로 볼만했다. 하지만, PG등급에 맞춘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에서 무엇을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도 다른 판타지 영화에서 여러 차례 본 것 같은 'HERE-WE-GO-AGAIN' 씬들로...



이렇게 하나 둘 긋다 보면 결국 남는 건 카스피안 왕자밖에 없다.

제목이 괜히 '카스피안 왕자'일 리 없지 않겠수?

일단, 검을 휘두르는 왕자라니까 UBI Soft의 3인칭 시점 액션 어드벤쳐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 시리즈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페르시아의 왕자'도 제리 브룩하이머에 의해 곧 영화로 선보일 예정이다. 디즈니의 또다른 판타지 액션/어드벤쳐 프랜챠이스가 대기중인 것.


▲UBI Soft의 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

그렇다면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 프린스 카스피안'의 카스피안 왕자도 저렇게 쿨 하냐고?

한가지 기억해 둘 게 있다.

'페르시아의 왕자' 비디오게임 시리즈는 1편을 제외하고 17세 이상 이용가(M: Mature)를 받았다. 폭력수위가 꽤 높은 액션게임이란 의미다.

반면,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는 C. S. 루이스가 1950년대에 발표한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 시리즈를 영화로 옮긴 패밀리 영화다. 영화 레이팅도 PG다.

때문에, 카스피안 왕자와 페르시아 왕자는 다른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 프린스 카스피안'은 어린이용 판타지 어드벤쳐 영화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영화라서 1988년작 '윌로우(Willow)'와는 겹치는 데가 있을지 몰라도 '페르시아의 왕자' 비디오게임과는 거리가 있었다.


▲영화 '윌로우(Willow)'에서의 발 킬머

그렇다고 발 킬머(Val Kilmer)가 연기한 Madmartigan처럼 터프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어린이용 패밀리 판타지 영화에 나온 '칼잡이'라는 것만 비슷할 뿐 카스피안 왕자는 '윌로우'의 Madmartigan과 같은 전사( )형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카스피안 왕자는 도대체 어떠한 캐릭터냐고?

한줄로 요약하자면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에서 늘 보아오던 '왕자님' 캐릭터와 별다를 것 없는 캐릭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OK. 그렇다면 카스피안 왕자를 연기한 배우는?

2007년 여름 개봉했던 파라마운트사의 판타지 영화 '스타더스트(Stardust)'에서 단역으로 얼굴을 알렸던 벤 반스(Ben Barnes)다.



또 하나의 스타가 탄생한 것일까?

MAYBE.

왠지 모르게 '제 2의 올란도 블룸(Orlando Bloom)'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역시 벤 반스는 터프가이 히어로 캐릭터에 어울리는 배우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카스피안 왕자가 약간 어두운 구석이 있는 캐릭터인 만큼 이런 역할에 어울릴지 눈여겨 봤지만 아무래도 거칠고 터프한 쪽은 아닌 것 같았다. '동화속 왕자님' 캐릭터는 OK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형 캐릭터로는 부족한 데가 있어 보였다.



리더형 캐릭터를 기대했던 이유는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 시리즈엔 제대로 된 리더 자격을 갖춘 캐릭터가 없기 때문이다.

4명의 메인 캐릭터는 나니아 세계에선 '잘 나가지만' 문자 그대로 '4남매'인 게 전부일 뿐이라서 터프해 보이는 데가 있는 리더형 캐릭터가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이는 4남매보다 약간 많아도 상관없으며, 어딘가 어둡고 터프해 보이는 면이 있으면서 리더쉽이 강해 보이는 캐릭터가 있으면 더 나을 것 같았다.

바로 여기에 벤 반스가 연기한 카스피안 왕자가 제대로 해당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카스피안 왕자에게선 아무 것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평범한 '꽃미남 왕자님'이 전부였을 뿐 무언가 특별하다고 할만한 게 눈에 띄지 않았다.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게 아니냐고?

그런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보다는 나은 걸 기대했다.

단지 벤 반스/카스피안 왕자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영화 자체가 기대했던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다. 별볼일 없는 스토리와 재활용한 볼거리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런 약점들을 새로운 얼굴의 카스피안 왕자가 덮어줘야 했지만 그마저도 기대했던 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다. 일부 10대 소녀팬들은 상관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벤 반스가 연기한 카스피안 왕자는 좋게 표현해서 '그럭저럭 넘어갈만한 수준'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볼 게 있을까?

대규모 전투씬? 특수효과?

이런 것들만 나열해 놓으면 꽤 거창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새롭다', '특별하다', '대단하다'고 할 것도 없었고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도 여름방학을 겨냥한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로써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고?

이렇게 스케일을 낮춘다면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G-13까지 올라가지 않고 저연령층 어린이들과 함께 보기에 보다 적합한 PG등급 영화 중에선 현재까진 '카스피안 왕자'가 가장 낫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판타지 영화라는 특수성도 있고 액션도 있는 데다 스토리도 '스피드 레이서(Speed Racer)'보다는 낫다. 양에 안 차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갖출 건 그런대로 다 갖춘 영화라서 반복되는 레이스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도중에 피로해지는 '스피드 레이서'보단 훨씬 볼만 하다.

거대한 제작비용을 들여 CGI로 도배한 소위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영화에 쉽게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도 별 문제 없을 만한 영화다.

하지만, 전편보다 나은 후속편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할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역시 판타지 영화는 겨울철이야...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