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벤 애플렉의 스파이 스릴러 '아르고', 볼 만했지만 대단하진 않았다

1979년 이란의 미국 대사관이 습격당하면서 대사관 직원 전원이 인질로 붙잡힌다. 이 와중에 6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이 습격을 피해 대사관을 빠져나와 인근에 있던 캐나다 대사관으로 피신한다. 6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은 주 이란 캐나다 대사 관저에 숨어 지내면서 안전하게 이란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그렇다.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벤 애플렉(Ben Affleck)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스파이 스릴러 '아르고(Argo)'는 캐나다 대사 관저로 피신한 6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무사히 이란에서 탈출시키는 작전을 맡은 CIA 오피서, 토니 멘데즈(Tony Mendez)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렇다면 어떻게 6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무사히 이란에서 탈출시켰을까?

헐리우드의 도움을 얻어 6명의 대사관 직원들을 캐나다의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시켰다. '아르고'라는 가짜 SF영화 제작을 위해 이란에 입국한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시켜 이란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캐나다 영화 제작진으로 신분을 위장한 6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은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직접 테헤란을 찾은 CIA 오피서 토니 멘데즈(벤 애플렉)와 함께 이란 측을 완벽하게 속이고 스위스 항공 편으로 이란을 무사히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런 건 혹시 스포일러 아니냐고?

아니다. 벤 애플렉의 '아르고'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기초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이것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그 때 당시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토니 멘데즈가 쓴 회고록 등을 통해서 사건의 결말을 이미 알고있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6명의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는 점은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없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는 결말을 이미 알고있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미 결말이 다 나와있는 만큼 뻔한 엔딩일 수밖에 없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르고' 제작진은 무엇으로 영화를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만들었을까?

주 캐나다 대사 관저로 피신한 6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무사히 이란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워싱턴 D.C의 상황과 함께 6명의 대사관 직원들을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시킨다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면서 빚어지는 코믹한 상황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미국 대사관에 묶여있는 인질들보다 캐나다 대사 관저에 숨어있는 6명의 안전이 더욱 위태로운 비상 상황에서 전해오는 긴장감과 '아르고'라는 가짜 영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유머가 멋진 조화를 이뤘다. 적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6명의 대사관 직원을 탈출시키는 줄거리의 영화인 만큼 긴장감과 서스펜스 위주의 스릴러일 것으로 보였으나 '아르고'는 기대 이상으로 유머가 풍부한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약간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테헤란에 도착한 토니 멘데즈가 6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시키는 준비 과정과 예행연습 등에서 강도높은 긴장감이 느껴질 것으로 기대했다. 평범한 대사관 직원들이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데다 만약 거짓이 탄로나면 바로 처형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6명이 겪어야 했던 혼란과 공포가 리얼하게 전달될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토니 멘데즈가 회고록에서 6명의 대사관 직원들이 영화 제작진으로 변장하면서 요란스러운 의상을 입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 만큼 여기에서도 짖누르는 긴장감을 뚫고 유머가 빛을 낼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기대에 못미쳤다. 갈등과 불안, 공포 등 6명의 대사관 직원이 겪었던 느낌이 어느 정도 묘사되었으나 기대했던 만큼 깊고 세밀하지 않았다. 이 영화의 핵심 파트는 ▲가짜 영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 ▲테헤란에서 6명의 대사관 직원을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시키는 과정 ▲ 모든 예행연습을 마친 뒤 가짜 여권을 들고 실제로 테헤란 공항을 빠져나가는 과정 등 모두 세 곳이라고 봤기 때문에 토니 멘데즈의 지휘 하에 6명의 대사관 직원들이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하는 연습을 하는 과정에 제법 큰 비중을 뒀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의외로 싱겁게 지나갔다.  기대했던 만큼 긴장감의 강도가 높지 않았으며 비중도 크지 않았다. 그저 형식적으로 영화에 들어간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탈출작전 당일 이란 공항에서 인터뷰를 통과하는 과정도 기대에 못미쳤다. 이란 공항 직원이 캐나다 영화 제작진으로 위장한 6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에게 한명씩 돌아가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 이에 태연하게 답변을 하는 긴장감 넘치는 인터뷰 씬이 손에 땀을 쥐게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의외로 이 부분 역시 기대했던 것보다 긴장감의 강도가 약했다. 대사관 직원들이 겁먹은 티와 무언가를 숨기고 거짓말을 한다는 티를 내지 않고 인터뷰를 통과하는 아슬아슬한 씬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저 뻔할 뻔자 수준이었을 뿐 특별하지 않았다.

물론 추격하는 이란군을 따돌리며 공항을 빠져나가는 씬이 나름 스릴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막판에 와서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파이 스릴러 쪽으로 조금 지나치게 기우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기대했던 스릴과 서스펜스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공항의 인터뷰를 무사히 통과하는 과정에서의 스릴과 서스펜스를 기대했지 추격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탈출에 성공한 이후의 기쁨과 안도의 순간을 지나치게 이모셔널하고 드라마틱하게 셋업한 티가 났다. 왠지 마지막이 그럴 것 같았는데, 역시나 어린이용 패밀리 영화의 엔딩처럼 감동스러운 씬을 억지로 연출한 티가 났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지루하단 느낌은 들지 않았다. 6명의 대사관 직원을 구출하기 위해 CIA가 어떤 작전을 준비했으며 어떻게 그들을 구출했는지 어느 정도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도 재미있었다. 영화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느슨해진 점이 아쉽긴 하지만 '아르고'는 긴장감과 유머가 고루 섞인 볼 만한 스릴러 영화였다.

그러나 아주 대단한 걸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대충 모두 다 들어간 영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주 스페셜한 영화를 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구색을 갖춘 제법 볼 만한 영화였지만 대단하진 않았다. 실화를 토대로 한 성인용 스파이 스릴러를 만들려던 것이 제작진의 목표였던 것으로 보였으나 어딘가 아직도 설익은 맛이 났다. 바로 거기가 한계였다. 제법 볼 만했지만 대단하진 않은...

재미있는 것은, 리비아 대사를 비롯한 4명의 대사관 직원들이 리비아에서 사망한 테러사건과 '아르고' 개봉일이 겹쳤다는 점이다. 테러사건은 한달 전에 발생했으나 이에 대한 책임 공방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게 있다 - 과연 벤 애플렉이 지난 달 발생한 리비아 대사관 테러사건을 소재로 한 폴리티컬 스릴러 영화를 만들까? 만약 리비아 영사관 사건이 지난 부시 시절에 터졌더라면 여러 편의 영화가 나왔을 것 같은데 말이야...ㅋ

댓글 2개 :

  1. 벤 애블렉에 대해 진지한 지성파 배우로 기대가 컸었는데, 생각 만큼 못 커줬네요.
    아르고... 그래도 평작은 되는것 같으니 국내 개봉하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답글삭제
  2. 트레일러는 참 그럴싸하게 만들었는데 영화는 그만 못하더라구요...^^
    제 생각엔 애플렉은 배우보단 제작, 연출 쪽으로 더 성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언제쯤일진 모르겠지만 주위에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