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4일 금요일

'블라인드 사이드', 평범한 패밀리 영화가 전부였다

대부분의 NFL 선수들은 백만장자다. 연봉 액수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선수들은 1년에만 1천만불 이상을 번다.

하지만 이들이 백만장자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전직 NFL 선수의 2세들은(예: 페이튼 & 일라이 매닝) 어렸을 적부터 백만장자 생활을 누렸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린 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의 와이드리씨버, 도널드 드라이버(Donald Driver)가 좋은 예다. 드라이버는 어렸을 적 집이 없어 콘테이너 트럭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현재의 드라이버는 3차례나 올스타 선수(프로보울 플레이어)로 뽑혔던 그린 베이 패커스의 베테랑 와이드리씨버다.

그렇다. 드라이버는 금년 추수감사절 경기에서 MVP로 뽑혀 FOX로부터 갤러핑 가블러(Galloping Gobbler) 트로피를 받았던 바로 그 선수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외톨이는 아니었다.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내긴 했어도 가족은 있었다.

그러나 마이클 오어(Micheel Oher)는 가족도 없었다. 부모 모두가 마약중독자라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포스터 홈을 전전하는 등 잘 곳도 마땅히 없었다.



하지만 마이클 오어는 2009년 NFL 드래프트에서 발티모어 레이븐스(Baltimore Ravens)가 그를 1라운드에 지명하면서 '백만장자'가 되었다.

현재 마이클 오어는 발티모어 레이븐스의 주전 태클(오펜시브 라인 포지션 중 하나)이다. 1라운드에 드래프트되어 프로 데뷔 해에 주전까지 된 것이다.


▲실제 마이클 오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노숙자나 다름없었던 그가 어떻게 NFL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을까?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사는 리 앤 투오이(Leigh Anne Tuohy)라는 백인 여성과 그녀의 가족들 덕분이다.


▲실제 리 앤 투오이

투오이 패밀리는 갈 곳이 없는 거구의 소년, 마이클 오어를 집으로 데려와 친자식처럼 키웠다. 부유층 크리스챤 백인 가족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노숙자나 다름없는 흑인소년이 한 집에서 함께 살게 된 것이다.

투오이 부부가 자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들은 1남1녀를 두고 있었으며, 당시 딸은 마이클 오어와 비슷한 또래의 10대 소녀였다.

그러므로 덩치가 산만한 낯선 흑인소년과 함께 산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도대체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들이 돈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냐고?

그럴 수도 있다. 투오이 가족이 적어도 돈 걱정은 안 하면서 살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마이클 오어에게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돈 많은 사람들이 전부 투오이 가족과 같은 건 아니다. 여기저기 기부를 하러 다니는 척 생색을 내는 데서 그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잘 알지도 못하는 소년과 함께 생활한다는 어려운 일을 실천할 만한 사람들은 아주 드물 것이다.

저들이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그러한 용기가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라. 입만 살아있을 뿐 실천을 하지 않는, 아예 그럴 생각조차 갖지 않는 크리스챤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말이다. 멀리 갈 것 없이, 교회에 다니는 한국인들만 봐도 그렇다. 툭하면 자원봉사다 뭐다 하면서 노숙자들을 돕는 일 등을 하지만, 도대체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다. 고상한 것만 좋아할 것처럼 생긴 한 중년 여성은 자원봉사를 다녀왔다는 자랑을 쉬지도 않고 늘어놓다가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검은사람들은 이렇고 저렇고..." 하는 얘기를 거리낌 없이 했다. 그러자 그녀 주위에 있던 비슷한 또래의 '여성 신도'들까지 이에 맞장구를 쳤다. 저들이 실제로 봉사를 하러 갔던 것인지, 아니면 '검은사람'들 앞에서 베푸는 시늉을 하면서 우월감을 즐기려 간 건지 헷갈리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래도 저들은 직접 자원봉사라도 했으니 양호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교회에서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행동하다가도 교회를 벗어나기만 하면 거짓말과 사기를 표정 하나 안 바꾸고 하는 위선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예배당 안에서는, 또는 목사 앞에서는 예수 타령만 하다가도 목사가 소개해준 환자에게는 가격을 2배로 바가지를 씌우는 의사를 본 적도 있다. 살짝 조사를 해 봤더니 7만불 이상을 호가하는 유럽산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더라. 아마도 저런 식으로 번 돈으로 구입한 차이리라.

이런 식으로 해서야 백날 교회를 다녀봤자 천당에 갈 수 있겠수?

아무리 봐도 헛수고 같지만,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자기 자신 속 편하자고 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아예 신경을 끄는 게 상책일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건, 저런 사람들이 투오이 가족처럼 잘 알지도 못하는 불쌍한 흑인소년을 데려다 키울 생각을 할 가능성은 제로라는 것이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The Blind Side)'를 보고 '흑인 고아를 제대로 입양하면 NFL 스타로 키워 대박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입양을, 아니 투자를 고려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순수한 의도로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 얘기는 안 할 거냐고?

사실 샌드라 블럭(Sandra Bullock) 주연의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는 솔직히 길게 할 말이 많지 않은 영화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불쌍한 생활을 하던 마이클 오어가 투오이 가족을 만나 가족애에 눈을 뜨고 → 풋볼에 탁월한 소질을 보이다가 → 한차례 고비를 넘기고 → 풋볼선수로 성공하게 된다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전형적인 패밀리용 드라마의 포뮬라를 철저하게 따른 영화가 전부였다. 실화를 토대로 한 '리멤버 더 타이탄스(Remember the Titans)', '위 아 마샬(We Are Marshall)' 등과 같은 풋볼영화들과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마이클 오어의 이야기가 흔치 않은 스토리였던 것만은 사실이지만, 영화는 특별하다고 할 만한 부분이 많지 않았다.

특히 마이클 오어가 NFL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린 영화로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풋볼에 소질을 보이던 오어가 NFL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되기까지의 '풋볼선수 이야기'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영화상의 마이클 오어는 실제와 달리 풋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약간 모자란 듯한 소년으로 묘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풋볼경기와 관련된 씬도 얼마 나오지 않았다. 영화의 주인공이 마이클 오어(퀸튼 애런)가 아닌 리 앤 투오이(샌드라 블럭)이란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풋볼선수 마이클 오어의 이야기가 패밀리 이야기에 지나치게 밀려난 듯 했다.



그렇다면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냐고?

그렇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스포츠 영화로 보기 힘든 영화다. 미식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오어와 투오이 가족의 이야기 쪽으로 비중이 크게 쏠린 패밀리 영화일 뿐이다.

비록 무늬만 스포츠 영화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몇몇 낯익은 풋볼인들이 눈에 띄었다.


▲전 테네시 대학 헤드코치 필립 풀머(Philip Fulmer)


▲전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 헤드코치 루 홀츠(Lou Holtz)


▲전 루이지애나 주립대/현 알라바마 대학 헤드코치 닉 세이반(Nick Saban)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서 인지, 실제 전-현직 대학 풋볼팀 헤드코치들이 직접 영화에 출연한 것이다.

물론 연기력은 '퍼스널 파울' 감이었다. 그래도 그 중에서 베스트를 찾자면, 전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 풋볼 헤드코치였던 루 홀츠(Lou Holtz)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코치 홀츠가 현재 ESPN에서 칼리지 풋볼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게 도움이 되었는지 그중에서 가장 덜 어색해 보였다.

실제 헤드코치들을 굳이 영화에 출연시킬 필요가 있었냐고?

있었다. 바로 이들이 풋볼영화 분위기를 살리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대역을 썼더라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겠지만,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가뜩이나 풋볼보다는 패밀리 이야기 쪽으로 쏠린 영화였는데 낯익은 실제 풋볼 헤드코치들이 아닌 닮은꼴의 배우들이 등장했더라면 제대로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도 영화배우들이 나오는 곳이 아니라 실제 NFL 드래프트 자료화면이 나올 때 였다. 실제 마이클 오어가 금년초 열렸던 NFL 드래프트에서 발티모어 레이븐스에 의해 1라운드에 지명되던 장면을 그대로 영화에 삽입한 것이다.

영화가 워낙 밋밋하고, 감동이 약했기 때문일까? 영화에서 벗어나 실제 자료화면이 흐르자 '아, 이게 바로 저 친구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와 함께, 지난 4월NFL 드래프트를 보면서 '참 별난 사연도 다 있구나', '슬럼덕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가 따로 없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다가 자료화면이 나오자 모든 게 되살아난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아주 재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패밀리 영화로써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특히 추수감사절 연휴를 겨냥한 영화로는 '왔다' 였다.


박스오피스에서도 섭섭하지 않은 넘버를 기록할 것이다. NFL 경기 중계방송 때마다 영화광고가 거의 빠짐없이 나오고, 아나운서와 해설자까지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NFL 전체가 '블라인드 사이드' 홍보에 나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풋볼시즌과 추수감사절, 연말 홀리데이 시즌이 겹쳤을 때 개봉한 만큼 대박나기는 힘들더라도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다. 디즈니 채널에서 볼 수 있을 만한 흔한 패밀리용 드라마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오케이지만, 진한 감동과 깊은 여운이 남는 완성도 높은 영화를 기대하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라는 점이다.

진짜로 좋은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내가 그런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면 다시 우울해 지지만...

믹시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댓글 4개 :

  1. 영화 주인공이 누구인지 몰라 검색하다 찾았습니다. 포스팅한 글 잘 읽고 갑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혼자 살다보니 때아니게 마이클의 모습이 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한 영화였담니다.

    답글삭제
  2.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하거든요.

    답글삭제
  3. 그럼 두 분다 백만장...@_@? 농담입니다. 철없는 제가;;

    답글삭제
  4. 그쪽으론 영 비슷하지 않군요...ㅡㅡ;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