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는 간단하다. 리얼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쇼타임(Showtime)의 TV 시리즈 '홈랜드(Homeland)'와 소니 픽쳐스의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를 꼽을 수 있다.
'홈랜드'의 메인 캐릭터 캐리(클레어 데인스)와 '제로 다크 서티'의 메인 캐릭터 마야(제시카 채스테인)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와 같은 완전한 허구의 판타지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여성 CIA 오피서들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한 캐릭터다. 이들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맹활약하는 여성 CIA 오피서라는 공통점도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추적 작전 영화 '제로 다크 서티'에서 제시카 채스테인(Jessica Chastain)이 맡은 마야는 이름만 다를 뿐 실존 인물로 알려졌으며, '홈랜드'에서 클레어 데인스(Clair Danes)가 맡은 캐리는 허구의 캐릭터이지만 실제 여성 CIA 애널리스트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파이 캐릭터, 제임스 본드를 13세 소년들이나 좋아할 만한 우스꽝스러운 코믹북 캐릭터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놓았다. 지난 50년간 제임스 본드가 전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테러리스트들을 때려잡았다지만, 만약 실제로 테러리스트를 잡을 일이 생긴다면 오피스에서 포기하지 않고 꼼꼼하고 집요하게 적을 추적하는 마야나 캐리에게 일을 맡기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홈랜드'의 클레어 데인스 |
▲'제로 다크 서티'의 제시카 채스테인 |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실제로 CIA에서 근무하는 여성 직원들이 생각보다 많으며,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데도 큰 활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0년대 CIA의 카운터 테러리즘 센터(CTC) 치프 오프 스태프(Chief of Staff)였던 호세 로드리게스(Jose Rodriguez)도 그의 회고록 'Hard Measures: How Aggressive CIA Actions after 9/11 Saved American Lives(2012)'에서 여성 CIA 애널리스트들의 활약을 빼놓지 않았다.
"But if there was one group or category of individual that was most impressive, hands down, it was our women officers. I never met such a determinded, focused, and capable group of people." - Jose Rodriguez
전직 CIA 카운터테러리즘 애널리스트 출신인 지나 베넷(Gina Bennet)은 'National Security Mom(2009)'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으며, 또다른 여성 CIA 애널리스트 네이다 배코스(Nada Bakos)는 CNN의 내셔널 시큐리티 애널리스트 피터 버겐(Peter Bergen)이 쓴 '맨헌트(Manhunt: The Search for Bin Laden)'를 토대로 한 HBO 다큐멘타리에 출연하기도 했다. 배코스는 지난 4월 데이빗 레터맨(David Letterman)이 진행하는 CBS의 나잇쇼에 출연해 HBO의 다큐멘타리 '맨헌트'와 빈 라덴 추적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스파이물도 여성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일까?
아직까진 영화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남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파이물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앞으로 서서히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파이물은 십중팔구 흔해빠진 액션 스릴러물이 될 뿐 리얼한 스파이물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기타 등등 유명한 남성 스파이 캐릭터들은 많지만, 007 시리즈나 제이슨 본 시리즈 모두 액션영화 쪽에 가까울 뿐 스파이 영화다운 면을 찾아보기 어렵다. '주인공이 스파이다', '첩보세계를 그렸다'는 이유로 '스파이 영화'로도 불리는 것이 전부지, 실제로 스파이 영화다운 스파이 영화 시리즈가 아니다.
비교적 사실적인 스파이 소설로 유명한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e)는 영국신문 텔레그래프와 이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제임스 본드가 스파이인지 의심스럽다면서 "스파이 소설을 논하면서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제임스 본드 소설을 포함시키는 것은 큰 실수"라고 말한 바도 있다.
"I dislike Bond. I'm not sure that Bond is a spy. I think that it's a great mistake if one's talking about espionage literature to include Bond in this category at all," - John Le Carre
많은 사람들은 최근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사실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007 시리즈에서의 '리얼함'이란 '과거처럼 터무니없는 플롯이나 가젯이 나오지 않는 정도'라는 의미일 뿐 실제 MI6 오퍼레이션을 연상케 할 정도라는 의미가 아니다. 007 시리즈는 아무리 리얼하고 진지해진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007 시리즈로는 '홈랜드', '제로 다크 서티'와 같은 '리얼한' 스파이물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지금도 CIA, MI6 출신 또는 '그쪽' 세계에 밝은 기자 출신 작가들이 꾸준히 스파이 스릴러 소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남자인 스파이 소설들은 거의 대부분이 액션 쟝르 쪽으로 기운다. 제임스 본드와 같은 새로운 스파이 캐릭터를 탄생시키려는 시도가 자주 눈에 띄며, 이런 경우엔 십중팔구 시작부터 총을 쏘는 액션물이 된다. 현실과 허구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스파이 소설들도 눈에 띄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썩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엉터리같은 총격전과 카체이스의 연속인 스파이 픽션만 있다는 건 아니다. 제법 읽을 만하거나 훌륭하다는 생각이 드는 만족스러운 스파이 소설들도 있다. 그러나 일단 주인공이 남자가 되면 와일드한 액션 스릴러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을 아예 여성으로 바꿔버리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일 수 있다. '홈랜드'의 캐리 또는 '제로 다크 서티'의 마야처럼 끈질기고 집요하게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는 여성 애널리스트를 주인공으로 삼고 스릴과 서스펜스를 약간 보태면 리얼하고 흥미진진한 스파이 스릴러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듯 악착같이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는 독종 여자 CIA 오피서의 모습을 리얼하고 흥미롭게 묘사할 수 있다. 근육도 없고 총도 사용하지 않지만 테러리스트들이 가장 무서워할 만한 스파이 캐릭터를 탄생시킬 수 있다.
현재로썬 이러한 여성 애널리스트가 가장 리얼한 스파이 캐릭터의 모습이 아니겠나 싶다.
하지만 남자가 주인공이더라도 리얼하기만 하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므로, 어떻게 보면 굳이 여자 주인공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자 애널리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스파이물이 더 리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최근 들어 여성 CIA 애널리스트들이 조명을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오사마 빈 라덴 작전 성공에 집념어린 여성 CIA 애널리스트가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데다, 그녀 이외로도 생각보다 많은 여성 애널리스트들이 CIA에서 활동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제임스 본드 등과 같은 남자 스파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파이물에 식상한 감이 있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비슷비슷한 남자 스파이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화 또는 소설 등을 워낙 많이,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임스 본드까지 여자로 바꿀 때가 왔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고 그런 액션 스릴러 타잎의 스파이 픽션보다 여성 애널리스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리얼한 스파이물이 더 신선해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엔 스파이 픽션 등 액션 스릴러에 잘 어울릴 듯한 헐리우드 남자 배우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꽃미남형이나 다소 어리숙해 보이는 형은 많은 반면 액션 스릴러영화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묵직함이나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남자배우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헐리우드 리딩맨 중에선 드물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제로 다크 서티'처럼 여성에게 스파이 역을 맡기고 워리어 스타일의 고릴라들에게 특수부대원 역을 맡기는 게 가장 무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스파이 영화가 앞으로 얼마나 많이 나올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파이 스릴러 '아르고(Argo)'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고 '제로 다크 서티'와 TV 시리즈 '홈랜드'도 좋은 평을 받았으며, 오사마 빈 라덴 작전의 성공으로 네이비실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만큼 정보수집과 특수부대의 비밀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앞으로 많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금년 말 개봉 예정인 마크 월버그(Mark Wahlberg) 주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네이비실스 영화 '론 서바이버(Lone Survivor)'도 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미국의 폭스뉴스에 의하면, 전직 특수부대 출신들이 모여 Zulu 7이라는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현실감 넘치는 첩보, 군사작전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리얼한 첩보, 군사작전 영화, 소설, 비디오게임 등을 '밀리테인먼트(Militainment)'라고 부른다고 한다.
Zulu 7이 앞으로 선보일 '밀리테인먼트'는 얼마나 볼 만할지 한 번 기대해 보겠다.
작년에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가 zd30이엿고
답글삭제홈랜드도 시즌3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성에게 스파이물 주인공 맡기는 것도 그렇지만
식상하게 뭔가 때려부순다는 것 보다는
애널리스트를 다룬다는 거에서도 차이가 꽤 큰거 같습니다
근데 여성원톱 스파이물도 데인즈나 채스테인처럼 연기 잘 못하면 더 엉망될 거 같네요.
정리해보면 요즘 여성스파이물 유행은 배우빨 직업빨 받는달까...
제 생각에도 여성 애널리스트 주인공의 리얼한 스파이물이라는 데서 큰 차이가 나는 듯 합니다.
삭제여성 애널리스트가 아니라 쉬본드 타잎의 캐릭터였다면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남자들이 나오는 액션위주 스파이물에서 느끼기 힘들던 리얼함 같은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금년말 개봉하는 파라마운트의 잭 라이언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합니다.
잭 라이언도 애널리스트인데 크리스 파인이 주연을 맡았으니 액션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