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일 일요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 전편 매력 다 잃어버린 범작

어느덧 여름철 영화 시즌이 왔다.

여름철이 오면 빠지지 않고 컴백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렇다. 코믹북 수퍼히어로들이다. 하도 자주 봐서 이젠 코믹북 수퍼히어로라고 하면 넌더리가 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요즘엔 수퍼히어로 영화 없는 헐리우드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코믹북 수퍼히어로들이 헐리우드를 먹여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믹북 수퍼히어로는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일각에선 21세기의 코믹북 수퍼히어로 유행을 과거 서부영화의 유행과 비교하기도 한다. 새로운 캐릭터와 스토리를 매번 새로 만들 필요 없이 코믹북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그대로 영화에 사용할 수 있다는 편의성(?)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새로 소개할 필요가 없는 이미 인지도가 높은 코믹북 수퍼히어로 캐릭터들과 최근 들어 발전한 비쥬얼 효과가 만나면서 새로운 청소년용 블록버스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간에, 2015년 여름 시즌도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로 킥오프했다.

2015년 여름 시즌 오프너는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The Avengers: Age of Ultron)'.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은 지난 2012년 개봉한 '어벤져스'의 속편이다.

출연진은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언맨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 토르 역의 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 캡틴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반스(Chris Evan), 헐크 역의 마크 러팔로(Mark Ruffalo), 블랙 위도우 역의 스칼렛 조핸슨(Scarlett Johansson), 호크아이 역의 제레미 레너(Jeremy Renner), 닉 퓨리 역의 새무엘 L. 잭슨(Samuel L. Jackson) 등 전편에 등장했던 메인 캐릭터 전원이 속편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애런 테일러-존슨(Aaron Taylor-Johnson)과 엘리자베스 올슨(Elizabeth Olson)이 각각 퀵실버와 스칼렛 위치 역으로 출연했으며,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얼트론의 목소리 연기는 제임스 스페이더(James Spader)가 맡았다.

연출도 조스 위든(Joss Whedon)이 돌아왔다.


그러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은 전편만 못한 속편이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줄거리다.

어벤져스가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원한을 품은 쌍둥이 남매와 인류 멸망을 계획하는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얼트론(제임스 스페이더)과 대결을 벌인다는 줄거리까지는 썩 맘에 들진 않아도 넘어갈 수 있었다. '어벤져스' 1탄은 '토르' 영화에 여러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우정출연한 영화처럼 보였다면, 이번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은 '아이언맨' 영화에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우정출연한 영화처럼 보였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산만한 스토리텔링 덕분에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느닷없이 '인피니트 스톤', '인피니트 건틀렛' 등이 튀어나오면서 혼란스러워졌으며, 생뚱맞아 보이는 헐크(마크 러팔로)와 블랙 위도우(스탈렛 조핸슨)의 로맨스, 호크아이(제레미 레너)의 가족 이야기 등 흥미가 별로 끌리지 않는 씬들이 영화를 산만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캐릭터 소개, 수퍼히어로간의 로맨스, 수퍼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모습 등을 조명함과 동시에 곧 제작될 3탄까지 셋업하려던 것 같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우겨넣은 것 같았다. '어벤져스' 1탄 뿐만 아니라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 등 개별 시리즈의 줄거리와 뒤섞이면서 지나치게 '짬뽕化' 된 것 같았다.

악당 또한 인상적이지 않았다. 전편에선 '토르' 시리즈의 악당 캐릭터, 로키(톰 히들스턴)가 시선을 끌었으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은 마블 코믹스 유니버스에 '트랜스포머스(Transformers)'의 로봇들이 뛰어든 것처럼 보였다. 얼트론이 등장할 때마다 자동차로 바로 변신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벤져스가 가는 곳마다 도시가 파괴된다는 점도 '트랜스포머스' 시리즈를 연상시켰다.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는 인공지능 탑재 안드로이드"라는 점부터 시작해서 얼트론은 비슷비슷한 SF-수퍼히어로 영화에서 자주 봤던 흔해빠진 캐릭터 중 하나로 보였을 뿐 특별할 것이 없는 캐릭터였다. 미국 NBC의 TV 시리즈 '블랙리스트(The Blacklist)'에 출연 중인 제임스 스페이더의 악당 목소리 연기는 괜찮은 편이었으나 얼트론은 별 볼 일 없는 캐릭터였다.

유머도 시원찮았다. 제작진이 유머에 신경을 쓴 것만은 분명했으나 대부분이 오발탄 유머였다. 유머를 풍부하게 집어넣기 위해 여기저기에 실없고 유치한 유머를 배치했으나 대부분이 웃음이 헤픈 사람들을 겨냥한 유머에 그쳤다. 전편엔 재치 넘치는 코믹한 씬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은 억지로 웃기려는 씬들이 전부였다. 코믹 연기에 능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크리스 헴스워스가 이번에도 유머 파트를 이끌었지만 전편 만큼 효과적이지 못했으며, 다른 나머지 캐릭터들의 코믹 씬은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액션도 인상적이지 않았다. 액션 역시 유머와 마찬가지로 풍부하긴 했으나 인상적인 씬이 없었다. 한바탕 붙으면서 영화가 시작할 정도로 액션 씬은 자주 나왔지만 스릴이나 박진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액션-격투 비디오게임의 리플레이 동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에서도 치고 받고 쏘고 터지고 날아가고 난리가 나지만 이와 비슷한 액션 씬이 나오는 SF-수퍼히어로 영화를 지금까지 한 두 편 본 게 아니라서 인지 약발이 떨어진 듯 했다. 액션과 스턴트 모두 비슷비슷한 SF-수퍼히어로 영화들에서 보던 것이었고, 많은 돈을 들인 듯한 시각효과 역시 특별할 게 없었다. 이런 류의 영화를 이미 볼 만큼 봤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은 유명 배우, 유명 캐릭터를 빼면 볼 게 없는 영화가 됐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은 전편의 매력을 다 잃어버리고 또 하나의 지극히 평범한 수퍼히어로 영화로 다운그레이그된 영화였다. 어린이들을 겨냥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에 많은 걸 기대하긴 어렵지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은 실망스러웠다. 다소 유치할 때가 있어도 전편처럼 유쾌하고 익사이팅한 액션-SF 영화이기를 기대했는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은 전편 만큼 즐기기 어려운 영화였다.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 많지 않다더니 '어벤져스' 시리즈도 거기에 해당됐다.

그렇다고 마지막까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한심한 영화는 아니었다. 기대했던 만큼 만족스럽진 않았어도 평균 정도는 하는 영화였다. 영화가 좀 길다는 느낌이 분명히 들긴 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무표정으로 팔짱끼고 앉아 있다 영화관을 빠져나왔으므로 대단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긴 힘들어 보인다. 영화에 빠져들지 못하고 스크린만 보다 나왔다. 영화 속에선 법석을 떨고 난리가 났는데도 영화관에 앉아있는 관객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영화들이 있는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도 그런 영화 중 하나였다.

지난 '어벤져스' 1탄을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보고 "수퍼히어로 영화를 재밌게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했었다. 여러 수퍼히어로들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등장하는 영화라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의외로 즐길 만했었다. 그러나 이번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을 보고 난 뒤엔 생각이 바뀌었다. 전편이 잘 나온 이유가 '노우하우' 때문이 아니라 '우연'이 아니었냐는 쪽으로...

다음 번 3탄은 이번 영화보다 나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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