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1일 일요일

'스카이폴'은 클래식 007 시리즈를 어떻게 리싸이클했을까?

지난 2002년 개봉했던 007 시리즈 40주년 기념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는 클래식 007 시리즈 하미지(Homage)로 가득한 영화였다. 영화 자체보다 하미지를 찾아내는 게 더 재미있을 정도로 '다이 어나더 데이'는 클래식 007 시리즈 하미지 천지였다.

그렇다면 2012년 개봉한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 '스카이폴(Skyfall)'도 마찬가지였을까?

그렇다. 마찬가지였다. '스카이폴' 역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클래식 007 시리즈 하미지 천지였다. 영화의 분위기가 진지하고 인텐스하다는 차이를 제외하면 '스카이폴'도 007 시리즈 40주년 기념작 '다이 어나더 데이'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 '스카이폴'에서 눈에 띈 클래식 007 시리즈 하미지를 몇 가지 둘러보기로 하자. 아직 영화를 한 번밖에 보지 않아서 빠뜨린 것도 많을 것 같지만, 그래도 대충 한 번 둘러보자.

SPOILER WARNING!!

(주의: 이번 포스팅엔 '스카이폴' 관련 스포일러가 상당히 많이 포함되었으므로 영화를 본 사람들만 환영.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이 포스팅은 여기까지만 읽고 패스하길...)

SPOILER WARNING!!

1. 번잡한 거리에서의 체이스

'스카이폴'의 프리 타이틀 씬은 터키의 번잡한 거리에서 벌어지는 체이스로 시작한다.


이 체이스 씬은 1983년작 '옥토퍼시(Octopussy)'에서 본드(로저 무어)가 탄 삼륜 택시가 인도의 번잡한 거리에서 추격자들을 따돌리며 도주하는 씬을 빌려온 것이다.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007 제작진은 '스카이폴'의 프리 타이틀 체이스 씬을 인도에서 촬영할 계획이었으나 나중에 터키로 장소를 바꿨다. 하지만 장소만 터키로 바뀐 게 전부였을 뿐 클래식 007 하미지는 그대로였다.


2. 랜드 로버

'스카이폴'의 터키 체이스 씬에서 이브(나오미 해리스)가 운전하는 자동차는 랜드 로버 디펜더(Land Rover Defender)다.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엔 랜드 로버 디펜더의 구 모델, 랜드 로버 90가 등장했다. 본드(티모시 달튼)가 탄 수송기를 카라(마리앰 다보)가 지프를 타고 쫓아가던 씬에서 타라가 운전한 지프가 바로 랜드 로버 90다.


3. 열차 위에서...

'스카이폴' 프리 타이틀 씬 마지막 부분엔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달리는 열차 위에서 헨치맨 패트리스(올라 라파스)와 격투를 벌이는 씬이 나온다.


이 씬은 1983년작 '옥토퍼시'에서 본드(로저 무어)와 헨치맨 고빈다(카비르 베디)의 열차 격투 씬을 빌려온 것이다.


4. 총에 맞고 물로...

'스카이폴'에서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열차 위에서 격투 중 이브(나오미 해리스)가 쏜 총에 맞아 다리 아래의 물로 떨어지는 씬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소설 'You Only Live Twice'의 마지막 부분을 참고했다. 원작소설에서 본드는 기구에 매달려 있다 총에 맞으며 바다로 떨어진다.

 이 부분에 대해선 이전 포스팅을 참고.

5. MI6 건물 폭발

'스카이폴'에 영국 런던의 MI6 본부 건물이 폭발하는 씬이 나온다.


이것은 1999년작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의 MI6 폭발 씬을 빌려온 것이다.


6. 새로운 MI6 본부

'스카이폴'에서 MI6 건물이 폭탄 테러로 파괴되자 새로운 곳으로 본부를 옮긴다.


이것 역시 1999년작 '언리미티드'에서 빌려왔다. '언리미티드'에서도 MI6가 파괴되자 스코틀랜드의 MI6 본부로 이동한다.


7. 탄환 파편 검사

'스카이폴'에서 MI6로 복귀한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자신의 어깨에 박혀 있던 탄환 파편들을 검사해 누가 사용한 것인지 밝혀내는 씬이 나온다.


이 씬은 1974년작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에서 본드(로저 무어)가 회수해 온 황금 탄환을 Q 섹션에서 검사한 뒤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밝혀내는 씬을 빌려온 것이다.


8. 메디컬 테스트

'스카이폴'에서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MI6의 메디컬 테스트를 받는 씬이 나온다. 총상을 입고 오랫동안 쉬었던 본드가 다시 필드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었는지 건강 검사를 받는 씬이다. 본드는 MI6의 메디털 테스트에 떨어졌지만 M(주디 덴치)이 OK를 해주는 덕분에 다시 액티브 에이전트로 복귀한다.


이 씬은 1999년작 '언리미티드'에서 오른쪽 어깨 부상 때문에 액티브 상태가 아니던 본드(피어스 브로스난)가 MI6 여의사에 통 사정(?)을 해 메디컬 통과를 받아내는 씬을 빌려온 것이다.

실제로는 메디컬 검사를 패스하지 못했지만 다른 캐릭터의 도움을 받아 문제가 해결된다는 게 공통점.


9. 팜 스캐너

'스카이폴'엔 오직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만 사용할 수 있는 월터 PPK가 등장한다. 손잡이 부분에 팜 스캐너(Palm Scanner)가 달려있어 본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핸드건을 사용할 경우 작동이 되지 않는다.


이와 완전히 똑같은 팜 스캐너가 달린 라이플이 1989년작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에 등장했었다.


10. 라디오 트래커

'스카이폴'에서 Q(벤 위샤)가 제공한 가젯 중에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의 위치를 알려주는 소형 라디오 트래커가 있다. 이 라디오 트래커는 Q가 본드에게 준 박스에 함께 들어있었다.

(아래 이미지: 핸드건 왼쪽에 있는 작은 사각형 공간에 라디오 트래커가 들어간다.)


이 라디오 트래커는 1964년작 '골드핑거(Goldfinger)'에 등장했던 호밍 디바이스를 연상시킨다.


11. 수영장

'스카이폴'에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수영을 하는 씬이 나온다. 중국 샹하이로 이동한 본드가 건물 옥상에 있는 풀장에서 수영을 하는 씬이다.


이 씬은 1995년작 '골든아이(GoldeneEye)'에서 본드(피어스 브로스난)가 사우나에서 수영을 하던 씬과 겹친다.


12. 엘리베이터

'스카이폴'에서 중국 샹하이로 이동한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헨치맨 패트리스(올라 라파스)가 탄 엘리베이터 아래에 매달려 올라가는 씬이 나온다.

이 씬은 1971년작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에서 본드(숀 코네리)가 엘리베이터 위에 서서 고층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씬을 빌려온 것이다.


'스카이폴'에선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엘리베이터 아래에 매달려서 인지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 쪽을 내려찍은 씬이 나온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선 본드(숀 코네리)가 엘리베이터 위에 올라타서인지 카메라가 아래에서 위쪽을 올려 찍은 씬이 나온다.


'스카이폴'에서 엘리베이터 아래에 매달려있던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의 모습은 마치 철봉에 매달린 듯 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도 이와 비슷한 씬이 나온다. 엘리베이터가 최고층에 도착하자 본드(숀 코네리)가 건물에 매달리는 씬이다.


13. 면도

'스카이폴'에서 수염이 덥수룩하게 긴 상태였던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면도를 하는 씬이 나온다.


이 씬은 007 시리즈 40주년 기념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수염이 자랐던 본드(피어스 브로스난)가 깔끔하게 면도를 하는 씬을 빌려왔다.

그러나 이번엔 면도기 PPL은 없었다.



미스터 본드는 수염이 자라면 꼭 면도를 한다. 결국은 면도를 할 것이면서 무엇하러 수염이 기른 모습으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007 시리즈엔 미스터 본드가 면도를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왔다.

14. 마카오 카지노

'스카이폴'에서 패트리스의 보스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샹하이에서 마카오로 이동한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카지노를 찾는 씬이 나온다.


이 씬은 1974년작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황금 탄환을 특별 주문한 비밀 고객을 추적하던 본드(로저 무어)가 마카오 카지노로 향하던 씬을 빌려온 것이다.



15. 베레타

'스카이폴'에서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마카오의 카지노에서 만난 시버린(베레니스 말로히)과 대화를 나누면서 허벅지에 베레타를 차고 있다는 걸 안다고 말한다.


이 씬은 1989년작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에서 본드걸 팸(캐리 로웰)이 허벅지에 베레타 950 소형 핸드건을 가지고 다니던 것을 연상시킨다.



16. 파충류

'스카이폴'에 거대한 도마뱀, 코도모 드래곤(Kodomo Dragon)이 나온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는 마카오의 카지노에서 헨치맨들과 격투를 벌이던 중 코도모 드래곤이 있는 곳에 떨어지지만 거대한 도마뱀의 등을 밟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이 씬은 1973년작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에서 본드(로저 무어)가 악어들로 가득한 연못에서 악어들의 등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탈출하는 씬을 연상시킨다.


17. 샤워

'스카이폴'엔 본드걸 시버린(베레니스 말로히)이 요트에서 샤워를 하는 씬이 나온다. 이를 본 본드는 슬그머니 끼어든다.



이 씬은 1974년작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본드걸 안드레아(마우드 애덤스)가 샤워 중인 모습을 본드가 매우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씬을 리믹스한 것이다.



물론 1985년작 '뷰투어킬(A View to a Kill)'의 마지막 샤워 씬과 비교할 수도 있지만, '스카이폴'의 본드걸 시버린(베레니스 말로히)이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본드걸 안드레아(마우드 애덤스)와 많은 공통점이 있는 캐릭터이므로 '뷰투어킬'은 생략했다.

18. 시버린

'스카이폴' 본드걸 시버린(베레니스 말로히)은 실바(하비에르 바뎀)로부터 떠나고 싶어 하지만 그가 두려워 떠날 엄두를 못내는 처지다. 시버린은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그녀를 구해줄 것이란 희망에 본드를 실바의 기지(?)가 있는 섬으로 데리고 가지만 결국 실바의 손에 죽는다.



1974년작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본드걸 안드레아(마우드 애덤스)도 시버린과 비슷한 처지다. 황금총을 사용하는 살인청부업자 스카라망가(크리스토퍼 리)로부터 떠나고 싶어도 두려워서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안드레아는 본드에 희망을 걸고 그를 돕지만 결국 스카라망가의 손에 죽는다.



19. 라울 실바

'스카이폴'의 악당 실바(하비에르 바뎀)는 007 시리즈에 등장했던 여러 악당들과 겹치는 데가 많은 캐릭터다.


실바가 전직 MI6 에이전트 출신이란 점은 1995년작 '골든아이'의 알렉 트레빌리언(션 빈)과 겹친다. 실바가 사는 기지의 주변 풍경이 '골든아이'에서 본드(피어스 브로스난)가 알렉 트레빌리언을 만났던 곳처럼 부서진 조각상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닌 듯 하다.


과거에 M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M을 죽이려 하는 점은 1999년작 '언리미티드'의 일렉트라(소피 마르소)와 레너드(로버트 칼라일)의 스토리와 겹친다. 'M과 얽힌 과거사' 이야기는 지난 '언리미티드'에서 소개된 바 있다.


또한 비밀스러운 섬에 있는 기지에 살면서 주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약간 괴짜인 악당이란 점은 1974년작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스카라망가(크리스토퍼 리)와 비슷하다. 악당 뿐만 아니라 '스카이폴'은 본드걸(시버린), 로케이션(마카오) 등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와 겹치는 부분이 꽤 많다.


실바(하비에르 바뎀)의 구강상태는 1977년작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와 1979년작 '문레이커(Moonraker)'에 등장했던 강철이빨을 한 죠스를 닮았다.


20. 해커

'스카이폴'의 악당 라울 실바(하비에르 바뎀)은 해커다. 실바는 MI6를 해킹 공격하기도 한다.


컴퓨터 해커 스토리는 1995년작 '골든아이'에서 이미 소개된 바 있다.


21. 아스톤 마틴 DB5

'스카이폴'엔 1964년작 '골드핑거'에 등장했던 아스톤 마틴 DB5가 등장한다. 아스톤 마틴 DB5는 이전 007 시리즈에도 자주 등장했지만 이번 '스카이폴'에 나온 차는 '골드핑거'에 나왔던 바로 그 아스톤 마틴이다. 번호판까지 똑같으며, 이젝터 시트, 머신 건 등의 특수장치도 되어있다.

번호판부터 특수장치까지 '골드핑거'에 나왔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아스톤 마틴 DB5가 007 영화에 재등장한 것은 1965년작 '썬더볼(Thunderball)'에 이어 '스카이폴'이 세 번째다.


22. 지하통로 

'스카이폴'에 등장하는 스코틀랜드의 저택에 비밀 지하통로가 있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일행은 이 지하통로를 통해 적들의 추격을 피한다.


이 지하통로는 1964년작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에 나왔던 지하통로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다.


23. 스카이폴

007 시리즈 23탄의 제목 '스카이폴(Skyfall)'은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살았던 스코틀랜드 지역에 있는 집의 이름이다. 다시 말하자면, '스카이폴'은 제임스 본드의 가족사와 관련이 깊은 제목이다.

플레밍의 원작엔 '스카이폴'이란 집이 나오지 않으므로 영화 제작진이 새로 지어 붙인 이름이다.



007 제작진은 왜 제임스 본드가 어렸을 때 살았던 스코틀랜드 집의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삼았을까?

1999년작 '언리미티드'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언리미티드'의 영어 원제는 'The World is Not Enough'다.

플레밍이 쓴 제임스 본드 소설 중에 'The World is Not Enough'라는 타이틀은 없다. 그러나 원작소설과 완전히 무관한 건 아니다. 플레밍이 쓴 소설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에서 'The World is not Enough'라는 문구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고?

'The World is Not Enough'는 제임스 본드 가족의 패밀리 모토(가훈)였다.

'The World is not Enough'는 소설 뿐만 아니라 영화버전 '여왕폐하의 007'에도 나온다. 라틴어로 쓰인 제임스 본드 패밀리 모토 'ORBIS NON SUFFICIT'의 의미가 'The World is not Enough'라고 한다.


바로 이것, 즉 제임스 본드의 패밀리 모토가 1999년에 개봉한 007 시리즈 19탄의 제목이 됐다.


007 제작진은 'The World is not Enough'에서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제임스 본드 패밀리와 관련있는 제목을 붙이기로 결정한 듯 하다.

이번엔 패밀리 모토가 아닌 패밀리 홈의 이름이었다.

'스카이폴'...

댓글 2개 :

  1. 40주년 어나더데이 때처럼
    50주년이라고 오마주 많이 했네요

    보면서도 아 저 장면이었지 알아차린게 많이 있었는데도
    정리해주신거 보니 놓친것도 몇 개 있네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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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크레이그 시대로 넘어간 이후부터 007 시리즈가 새롭고 신선해졌다고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척 하는 거죠...^^ 까보면 다 똑같거든요.
    007 제작진은 이렇게 반복이 된다는 사실을 숨기려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거죠.
    쓸데없는 것까지 유치하게 뒤바꾸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래봤자 스카이폴도 오마주 반복 연속의 007 영화란 데서 벗어나지 못했죠.
    결국엔 이렇게 될 게 뻔한데 뭐하러 그렇게 변화, 변화를 외치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저도 놓친 게 좀 있을 것 같습니다. 몇 번 더 보면 좀 더 잡아낼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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