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일 수요일

'007 스카이폴' 오피셜 트레일러에서 눈에 띈 몇가지

소니 픽쳐스가 금년 가을 개봉 예정인 007 시리즈 23탄 '스카이폴(Skyfall)'의 풀버전 트레일러를 공개했다. 티져 트레일러, 아이맥스 익스클루시브 트레일러, 올림픽 미국 TV 광고에 이어 풀버전 트레일러가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런던 올림픽 개막식 비디오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함께 등장해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은 여세를 모아 '스카이폴'의 TV 광고에 이어 풀버전 트레일러까지 연달아 내놓기로 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소니 픽쳐스가 이번에 공개한 풀버전 트레일러는 어땠을까?

Let's break it down, shall we?

지난 7월 중순 워너 브러더스의 여름철 블록버스터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의 미국 아이맥스 개봉에 맞춰 아이맥스 익스클루시브로 공개했던 '스카이폴' 트레일러보다는 많이 나아진 듯 하다. 솔직히 지금은 아이맥스 익스클루시브 트레일러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악당 실바(하비에르 바뎀)가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니 픽쳐스는 풀버전 트레일러를 통해 실바를 전격 공개함과 동시에 이미지도 하나 공개했다.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게 하나 있다. 블론드로 머리를 염색한 하비에르 바뎀(Javier Bardem)도 예사롭지 않지만, 그것 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뎀이 서 있는 곳 주변에 놓여있는 물건들이다.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수?


부서진 조각상 뿐만 아니라 '스카이폴' 트레일러에서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와 실바(하비에르 바뎀)가 나눈 대화 내용도 1995년작 '골든아이(GoldenEye)'와 흡사한 구석이 있다.

'골든아이'에서 본드(피어스 브로스난)와 알렉 트레빌리언(션 빈)이 처음 만났을 때 트레빌리안이 본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Alec Trevelyan: Did you ever ask why? Why we toppled all those dictators, undermined all those regimes? Only to come home "Well done, good job, but sorry old boy... Everything you risked your life has been changed..."

Alec Trevelyan: James Bond... Her Majesty's loyal terrier, defender of the so-called faith...


'스카이폴' 트레일러에도 이 씬을 연상시키는 대화 씬이 나온다.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를 만난 실바(하비에르 바뎀)가 이렇게 말한다:

Silva: Just look at you. Chases spies, England the empire, MI-6... So old fashioned...

Silva: She sent you after me knowing you're not ready, knowing you would likely die... Mommy was very bad.

Silva: The two survivors. This is what she made us...


여기서 실바가 말한 'SHE'와 'MOMMY'는 M(주디 덴치)을 의미한다. 실바는 MI-6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 하며, "This is what she made us"라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혹시 실바도 MI-6 에이전트 출신?

'골든아이'의 악당 알렉 트레빌리언도 전직 MI-6 에이전트였다. 좀 더 정확하게 하자면, 알렉 트레빌리언은 006이었다. 제임스 본드와 마찬가지로 알렉 트레빌리언도 00 에이전트였다.

'골든아이'에 이어 눈에 띈 클래식 007 시리즈 하미지(Homage)는 지문/손바닥 인식 그립의 월터 PPK 핸드건이다.


지문/손바닥 인식 그립이 장착된 무기는 1989년 제임스 본드 영화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에 등장한 바 있다.


물론 이번에 새로 공개된 '스카이폴' 오피셜 트레일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열차 위에서 싸우던 제임스 본드가 총에 맞아 물로 떨어지는 씬이다.

열차 위에서 벌어지는 격투 씬은 터키에서 촬영한 프리-타이틀 씬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스카이폴' 프리-타이틀 씬은 '모터 싸이클 체이스, 열차 격투 씬, 그리고 총맞고 물로 꼬르륵' 순이 되지 않을까 추정된다.




하지만 본드가 프리-타이틀 씬에서 총에 맞아 죽을 리는 물론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본드가 마치 실제로 죽은 것으로 가장하는 것이 전부다.

제임스 본드의 사망을 더욱 리얼하게 꾸미기 위해 제임스 본드의 부고(Obituary)까지 등장한다.


이것도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물론이다. 1967년 영화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에 거의 똑같은 씬이 나온 바 있다. '두 번 산다'의 프리-타이틀 씬에 총에 맞고 침대에 뻗은 본드(숀 코네리)와 그의 죽음에 대한 신문 기사가 영화에 나온다.



'스카이폴'에서 본드가 총에 맞아 물로 떨어지는 씬에선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소설 '두 번 산다'의 흔적도 보인다.

플레밍의 1964년 제임스 본드 소설 '두 번 산다'의 마지막에 본드는 숙적 블로펠드와 처절한 격투를 벌인 뒤 머리에 총을 맞아 바다로 떨어진다.

물론 '스카이폴'의 설정이 소설의 내용과 100%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드가 총에 맞아 높은 곳에서 아래의 물로 떨어진다'는 설정은 소설과 똑같다.



'총맞고 물로 추락' 뿐만 아니라 소설 '두 번 산다'와 비슷한 부분이 또 있다.

다시 소설 '두 번 산다'로 돌아가자. 머리에 입은 총상으로 모든 기억을 잃은 본드는 극적으로 구조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일본에서 한동안 생활하게 된다. 기억은 되찾지 못했으나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본드는 일본을 떠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소설의 이 부분을 연상케 하는 씬이 '스카이폴' 오피셜 트레일러에서 눈에 띄었다. 본드가 "Enjoying death..."를 하면서 007이 아닌 다른 평범한 사람처럼 생활하는 씬이다.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본드의 모습이 소설 '두 번 산다'에서 기억상실에 빠져 본의 아니게 일본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본드의 모습과 겹쳐졌다.

(본드가 면도를 하지 않고 수염을 기른 채 등장하는 이유도 설명된다)


제임스 본드의 부고(Obituary) 또한 소설 '두 번 산다'에 나온다. 영국에선 제임스 본드가 실제로 죽은 것으로 판단하고 부고를 낸 것이다. 그러므로 '스카이폴' 오피셜 트레일러에 나온 '컴퓨터 모니터에 뜬 제임스 본드 부고' 씬은 영화 '두 번 산다'와 소설 '두 번 산다' 모두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스카이폴' 오피셜 트레일러에서 본드가 M의 집(?)을 찾아와 "Double-O-Seven reporting for duty..."라고 말하는 씬도 플레밍의 원작 소설의 한 부분을 연상케 했다.

이번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이다.

'두 번 산다'의 후속편인 소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본드는 소련에서 세뇌당한 뒤 영국으로 돌아와 M을 암살하려 한다.

물론 영화 '스카이폴'에선 본드가 M을 죽이려 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한동안 사라졌던 본드가 느닷없이 M 앞에 나타난 모습이 소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오랜만에 런던으로 돌아온 본드가 M을 만나는 장면과 겹쳐졌다.


그렇다. 비스듬하지만 원작을 참고한 흔적이 보였다. 제작진이 어떻게든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을 조금이나마 참고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플레밍의 원작 소설들을 읽어 보면 영화로 옮겨지지 않은 부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는데, 007 제작진이 이제서야 그런 것들을 찾아나선 모양이다.

사실 몇 해 전에 소설 '두 번 산다'와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씬을 영화로 옮기면 멋질 것 같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제임스 본드를 머리 한가닥도 흐트러지지 않는 비현실적으로 완벽한 수퍼 스파이로 생각하는 반면 플레밍의 원작 소설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는 머리를 다쳐 기억상실에 빠지고, 소련에서 세뇌를 당해 M을 죽이려 하는 등 완벽하지도 않고 실수를 할 때도 있는 캐릭터였다는 점을 영화에서 보여줬으면 했던 것이다.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시절엔 기대할 수 없었다. 브로스난의 007 시리즈는 과거 로저 무어(Roger Moore)의 것과 마찬가지로 원작 소설보다는 수퍼히어로 코믹북 쪽으로 기운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로 007이 교체된 이후엔 충분히 가능한 얘기가 됐다. 크레이그의 본드는 과거 브로스난과 성격이 다른 007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훼손할까봐 영화로 옮기지 않았던 원작 소설의 여러 부분들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 줄거리를 억지로 이어 붙이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를 이끄는 007 제작진을 보면서 한심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크레이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기대에 못미치는 시원찮은 영화가 된 데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레이그의 새로운 007 시리즈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007 제작진의 책임이 가장 커 보였다.

그렇다면 이번 '스카이폴'에선 제대로 하는 것일까?

지난 아이맥스 익스클루시브 트레일러로 낙담하게 만들더니 이번 오피셜 풀버전 트레일러로 어느 정도 만회한 것은 사실이다. 이번 트레일러 역시 썩 맘에 들진 않아도 몇 가지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며, 영화의 방향이 크게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007 시리즈의 전통적인 액션과 스턴트 씬이 아직도 크레이그의 007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대단히 신경쓰이지만 지난 '콴텀 오브 솔래스'처럼 심한 아웃 오브 바운드 영화는 아닌 듯 했다. 썩 맘에 들진 않았어도 아주 한심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모양새만 그럴 듯 했을 뿐 별 볼 일 없었던 브로스난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처럼 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아 보였다.

왜 브로스난의 '언리미티드'와 크레이그의 '스카이폴'을 비교하냐고?

브로스난의 첫 번째 영화 '골든아이'는 대성공했으나 두 번째 영화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는 대실망이었다. 그러자 브로스난의 007 시리즈를 '골든아이' 레벨로 다시 끌어올리려 했고, 바로 그 영화가 브로스난의 세 번째 영화 '언리미티드'였다. 그러나 '언리미티드'는 갖출 건 모두 다 갖췄으나 모양새만 그럴 듯 했을 뿐 '골든아이' 레벨은 아니었다. '투모로 네버 다이스'보다는 물론 나았지만 본드걸 캐스팅에 죽을 쑤는 등 나쁜 버릇은 여전했다.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도 브로스난과 매우 흡사한 패턴을 띄고 있다. 첫 번째 영화 '카지노 로얄'은 대성공이었으나 두 번째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는 대실망이었으며, 세 번째 영화를 '카지노 로얄' 레벨로 다시 올려놓는 것이 007 제작진의 미션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지난 90년대와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007 시리즈가 원래 반복을 좋아하는 만큼 히스토리도 반복될 수 있다.

'스카이폴' 트레일러에 나오는 MI-6 HQ 폭발 씬도 '언리미티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왜냐, 1999년작 '언리미티드'에서도 MI-6 HQ가 폭발하는 씬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는 11월(영국에선 10월)이 돼야 '스카이폴'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듯 하다. 이번엔 적어도 지난 번보다는 괜찮을 것 같으므로 과연 얼마나 괜찮을지 기다려보기로 하자.

그.러.나...

한가지 크게 걸리는 게 있다.



쿼터매스터 Q가 007 시리즈로 오랜만에 돌아온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대단히 젊은 Q에 적응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할아버지 Q에 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 보다 차라리 색다른 젊은 Q를 택한 것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썬 그리 좋은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다. Q는 본드에 특수 장비와 함께 유머도 제공하는 캐릭터이어야 하는데, 30대 초반의 젊은 Q에게선 설익고 썰렁한 유머 이외로는 많은 게 기대되지 않는다. Q의 유머는 애들 수준의 말장난 이상이어야 하는데 벤 위샤(Ben Whishaw)가 맡은 안경 낀 젊은 Q에겐 별 기대가 안 된다. Q가 007 시리즈로 돌아올 때가 됐고, 할아버지 Q로는 더이상 힘들 것 같다는 데 까지는 같은 생각이지만 '안경 낀 꼬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완성버전 영화에선 트레일러에서와 달리 Q의 등장 씬이 썰렁하지 않기를 기대해 보겠다.

댓글 2개 :

  1. 저도 Q가 마음에 좀 걸리네요.
    이번 본드23이 과연 알찬 영화인지, 아니면 과거 브로스난이나 로저 무어 시절처럼 겉만 그럴싸하게 만든 황당무계한 본드 영화가 될것인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듯 합니다.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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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른 건 모르겠어도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이라는 건 확실하게 알겠더라구요...^^
    다른 부분은 저도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격렬하고 긴장감 넘치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이 부족할텐데,
    아직도 제 눈엔 이런 것들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어찌되든 간에 콴텀...보다는 나은 작품이 될 건 분명해 보입니다만,
    그 정도가 얼마나 될 지는 글쎄 좀 더 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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