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가 지난 1953년 영국의 소설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에 의해 탄생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플레밍의 소설로 탄생한 제임스 본드는 1962년 첫 번째 007 영화 '닥터 노(Dr. No)'로 빅 스크린 데뷔를 하면서 '무비 스타'가 되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2012년 제임스 본드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부터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알버트 R. 브로콜리(Albert R. Broccoli)는 지난 90년대에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의 딸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와 양아들 마이클 G. 윌슨(Michael G. Wilson)에게 007 시리즈를 물려줬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가족에게 '위대한 유산'을 물려준 것이다. CBS의 '60분(60 Minutes)'에 의하면, 알버트 R. 브로콜리는 바바라와 마이클에게 007 시리즈를 물려주면서 "외부인들이 007 시리즈를 망치도록 놔두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바바라 브로콜리와 마이클 G. 윌슨의 관계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바바라 브로콜리는 그의 아버지 알버트가 데이나 브로콜리(Dana Broccoli)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마이클 G. 윌슨은 데이나가 알버트 브로콜리와 재혼하기 전에 전남편 루이스 윌슨(Lewis Wilson)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따라서 007 시리즈 공동 프로듀서 바바라 브로콜리와 마이클 G. 윌슨은 아버지는 다르지만 같은 어머니를 둔 이복남매다.
제임스 본드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건 마이클과 바바라가 '오리지날 007 프로듀서' 알버트 '커비' 브로콜리를 대신해 007 프로듀서 자리에 앉은 직후부터.
6년간의 긴 공백을 끊고 오랜 만에 컴백했던 1995년작 '골든아이(GoldenEye)'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골든아이'의 모멘텀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 '1999년작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2002년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까지 기대에 못 미치는 후속작을 연속으로 내놨다. 007 제작진은 클래식 007 포뮬라에 충실한 화려하고 스타일리쉬한 제임스 본드 어드벤쳐를 매번 계획했으나 수준 낮은 스토리와 반복되는 007 클리셰, 매력없는 본드걸과 캐릭터, 볼거리 없는 경치 등 실수를 연발하며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구겼다.
물론 007 제작진에도 변명할 거리가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언 플레밍이 남긴 원작소설을 기초로 영화화할 수 있었던 반면 90년대부턴 참고할 원작소설이 모두 동나는 바람에 제작진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출발하던 데서 백지 상태에서의 출발로 상황이 바뀐 것이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이 남아있지 않았냐고?
물론 남아있었다. 그러나 '카지노 로얄'은 007 제작진이 아닌 소니 픽쳐스가 영화 판권을 갖고 있었다. 2006년 '카지노 로얄'이 오피셜 007 시리즈로 드디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007 제작진이 판권 문제를 해결한 덕분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만 해도 이 문제는 미해결 상태였다. 당시엔 007 제작진이 기초로 삼을 만한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2006년 '카지노 로얄'이 개봉하기 전엔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을 기초로 한 마지막 007 영화가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였다. 다시 말하면, 1987년부터 2006년 사이에 나온 모든 제임스 본드 영화는 제목부터 줄거리까지 플레밍의 원작소설과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영화라는 얘기다.
어찌됐든 간에, 기초로 삼을 원작소설이 동난 것이 007 제작진에 부담이 됐을 것만은 분명하다. 캐릭터 이름만 제임스 본드일 뿐 제목과 스토리 모두 생소한 007 영화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007 제작진은 클래식 007 포뮬라로 올드팬들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투모로 네버 다이스'에선 홍콩 액션영화를 흉내내봤고, '언리미티드'에선 당시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여배우 드니스 리처드(Denise Richards)를 본드걸로 캐스팅했으며, '다이 어나더 데이'에선 흑인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할리 베리(Halle Berry)를 본드걸로 캐스팅하면서 007 시리즈에 관심을 잃어 가던 청소년 층과 흑인 관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모두 결과가 좋지 않았다. 올드팬들은 억지로 007 시늉을 내는 게 전부인 듯한 새로운 007 시리즈에 흥미를 잃었으며, 제임스 본드 말고도 열광할 새로운 액션 히어로가 많았던 청소년들도 007 시리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007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리즈였던 만큼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관심을 끌곤 했지만, 과거에 비해 온도차가 느껴졌다.
그러자 007 제작진은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에서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로 제임스 본드를 교체하면서 새출발을 시작했다. 007 제작진은 판권 문제로 영화화하지 못했던 '카지노 로얄'을 영화로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다시 플레밍의 원작의 세계로 회귀함과 동시에 젊고 혈기왕성한 제임스 본드를 등장시키며 올드팬과 청소년 팬 모두를 겨냥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카지노 로얄' 한 편으로 "최고의 제임스 본드"라는 찬사까지 받았고, 영화 역시 올드팬을 비롯한 전세대의 본드팬과 영화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일부 평론가들은 "제임스 본드가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도 했다.
과연?
뚜껑을 열어 본 결과, '카지노 로얄'의 성공은 비아그라와 같은 일시적인 효과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007 제작진은 '카지노 로얄' 한 편에서만 프리퀄 성격을 띄며 과거로 살짝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줄 생각이 아니었다. 007 제작진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젊고 거칠어진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카지노 로얄'에 묶어놓고 계속해서 울궈먹으려 했다. 왜냐, 바로 그런 액션 히어로가 나오는 액션 영화가 최신 유행이자 인기 비결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 하지만 007 제작진은 이전에 비해 약간 어둡고 사실적으로 바뀐 새로운 007 시리즈와 과거의 클래식 007 포뮬라를 적절하게 혼합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아예 그러한 시도 자체를 하려 들지 않았다. '카지노 로얄'로 간신히 만들어 놓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 이미지가 훼손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007 제작진은 새로운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가 좋은 반응을 얻는 만큼 울궈먹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울궈먹기로 했다.
결국 007 제작진은 전편과 줄거리가 바로 이어지는 007 시리즈에선 전무후무한 속편을 내놨다. 바로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다. 스토리가 '카지노 로얄'의 엔딩과 바로 연결되는 만큼 영화의 톤도 달라진 게 없었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영화 전체가 제자리 걸음을 한 것이다.
007 제작진과 다니엘 크레이그는 "원작", "유행", "스크린라이터 파업" 등 다양한 핑계거리를 대며 또다시 추락하기 시작한 007 시리즈를 보호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인 2012년작 '스카이폴(Skyfall)'에서도 전진할 생각이 없었다. 계속해서 프리퀄 세계에 머무르며 어둡고 거친 액션영화로 이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인데 클래식 007 시리즈의 향수를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엔 어떻게든 올드와 뉴 스타일을 혼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007 제작진은 유명한 영화감독과 배우들을 끌어들였다. '이번엔 제대로 하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영화팬들에게 전한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메시지가 전부였다.
'스카이폴'은 이전 영화와 줄거리가 연결되진 않았지만 '미완성의 제임스 본드 세계'인 점은 전편들과 변함없었다. 스토리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제임스 본드의 세계는 그대로였던 것이다. 영화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MI6 고정멤버들이 제 위치를 찾아가는 등 '스카이폴'도 여전히 프리퀄 모드였다.
다니엘 크레이그에겐 '스카이폴'이 그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였다. 그러나 그의 제임스 본드는 지난 '카지노 로얄'에서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세 번째 영화라면 전편보다 더 편안하고 여유가 있어 보여야 정상이지만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거꾸로 갈수록 제임스 본드처럼 보이지 않아졌다. '스카이폴'에선 유머와 가젯 등을 다시 007 시리즈로 북귀시키면서 제법 클래식 007 시리즈의 분위기를 되살리려 했지만 이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왜냐, 몇가지 눈에 띄는 뻔한 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임스 본드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토리, 악당 등 거의 대부분이 007 시리즈와 거리가 멀었다. 이 바람에 다니엘 크레이그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 시늉을 하는 듯 보였다.
이렇게 제임스 본드는 2012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채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쯤됐으면 누가 범인인지 알 것이다.
007 시리즈가 지금까지 계속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알버트 R. 브로콜리가 남긴 '위대한 유산' 덕분이지 이를 물려받은 마이클 G. 윌슨과 바바라 브로콜리는 한 게 별로 없다. 마이클과 바바라는 어떻게든 계속해서 그들의 '가보'인 007 시리즈를 이어가고자 노력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에겐 참신한 아이디어가 크게 부족하다. 만약 이들이 알버트 R. 브로콜리에 버금가는 재능을 갖췄다면 007 시리즈가 90년대부터 이상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1탄부터 23탄까지 지금까지 나온 007 시리즈 전편을 모두 본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나온 007 시리즈가 가장 007 영화답게 보이는지" 한 번 물어보라.
이는 세대의 문제도 아니고 기술력의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 007 시리즈가 과거보다 많은 흥행수익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다. 수익 면에선 마이클과 바바라가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가 걱정이다. 클래식 007 포뮬라에 비교적 충실했던 지난 90년대에도 시원찮은 영화들을 내놨는데 새로운 스타일로 분위기를 살짝 바꾼 2000년대에도 시원찮긴 마찬가지이니 다음이 기대되지 않는다. 007 영화의 톤을 어느 쪽으로 정하든 결과는 항상 시원찮게 나온다는 결론이 나온 셈이니 말이다. 007 시리즈의 정통성을 잃은 채 다른 헐리우드 영화들을 베끼고 따라하는 데 급급한 현재의 007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미래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면서도 돈은 곧잘 벌어들이는 만큼 당장은 별 걱정이 없겠지만, 방향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듯한 제작진이 007 시리즈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겠는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2012년 제임스 본드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부터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알버트 R. 브로콜리(Albert R. Broccoli)는 지난 90년대에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의 딸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와 양아들 마이클 G. 윌슨(Michael G. Wilson)에게 007 시리즈를 물려줬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가족에게 '위대한 유산'을 물려준 것이다. CBS의 '60분(60 Minutes)'에 의하면, 알버트 R. 브로콜리는 바바라와 마이클에게 007 시리즈를 물려주면서 "외부인들이 007 시리즈를 망치도록 놔두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바바라 브로콜리와 마이클 G. 윌슨의 관계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바바라 브로콜리는 그의 아버지 알버트가 데이나 브로콜리(Dana Broccoli)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마이클 G. 윌슨은 데이나가 알버트 브로콜리와 재혼하기 전에 전남편 루이스 윌슨(Lewis Wilson)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따라서 007 시리즈 공동 프로듀서 바바라 브로콜리와 마이클 G. 윌슨은 아버지는 다르지만 같은 어머니를 둔 이복남매다.
제임스 본드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건 마이클과 바바라가 '오리지날 007 프로듀서' 알버트 '커비' 브로콜리를 대신해 007 프로듀서 자리에 앉은 직후부터.
6년간의 긴 공백을 끊고 오랜 만에 컴백했던 1995년작 '골든아이(GoldenEye)'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골든아이'의 모멘텀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 '1999년작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2002년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까지 기대에 못 미치는 후속작을 연속으로 내놨다. 007 제작진은 클래식 007 포뮬라에 충실한 화려하고 스타일리쉬한 제임스 본드 어드벤쳐를 매번 계획했으나 수준 낮은 스토리와 반복되는 007 클리셰, 매력없는 본드걸과 캐릭터, 볼거리 없는 경치 등 실수를 연발하며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구겼다.
물론 007 제작진에도 변명할 거리가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언 플레밍이 남긴 원작소설을 기초로 영화화할 수 있었던 반면 90년대부턴 참고할 원작소설이 모두 동나는 바람에 제작진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출발하던 데서 백지 상태에서의 출발로 상황이 바뀐 것이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이 남아있지 않았냐고?
물론 남아있었다. 그러나 '카지노 로얄'은 007 제작진이 아닌 소니 픽쳐스가 영화 판권을 갖고 있었다. 2006년 '카지노 로얄'이 오피셜 007 시리즈로 드디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007 제작진이 판권 문제를 해결한 덕분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만 해도 이 문제는 미해결 상태였다. 당시엔 007 제작진이 기초로 삼을 만한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2006년 '카지노 로얄'이 개봉하기 전엔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을 기초로 한 마지막 007 영화가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였다. 다시 말하면, 1987년부터 2006년 사이에 나온 모든 제임스 본드 영화는 제목부터 줄거리까지 플레밍의 원작소설과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영화라는 얘기다.
어찌됐든 간에, 기초로 삼을 원작소설이 동난 것이 007 제작진에 부담이 됐을 것만은 분명하다. 캐릭터 이름만 제임스 본드일 뿐 제목과 스토리 모두 생소한 007 영화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007 제작진은 클래식 007 포뮬라로 올드팬들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투모로 네버 다이스'에선 홍콩 액션영화를 흉내내봤고, '언리미티드'에선 당시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여배우 드니스 리처드(Denise Richards)를 본드걸로 캐스팅했으며, '다이 어나더 데이'에선 흑인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할리 베리(Halle Berry)를 본드걸로 캐스팅하면서 007 시리즈에 관심을 잃어 가던 청소년 층과 흑인 관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모두 결과가 좋지 않았다. 올드팬들은 억지로 007 시늉을 내는 게 전부인 듯한 새로운 007 시리즈에 흥미를 잃었으며, 제임스 본드 말고도 열광할 새로운 액션 히어로가 많았던 청소년들도 007 시리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007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리즈였던 만큼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관심을 끌곤 했지만, 과거에 비해 온도차가 느껴졌다.
그러자 007 제작진은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에서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로 제임스 본드를 교체하면서 새출발을 시작했다. 007 제작진은 판권 문제로 영화화하지 못했던 '카지노 로얄'을 영화로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다시 플레밍의 원작의 세계로 회귀함과 동시에 젊고 혈기왕성한 제임스 본드를 등장시키며 올드팬과 청소년 팬 모두를 겨냥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카지노 로얄' 한 편으로 "최고의 제임스 본드"라는 찬사까지 받았고, 영화 역시 올드팬을 비롯한 전세대의 본드팬과 영화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일부 평론가들은 "제임스 본드가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도 했다.
과연?
뚜껑을 열어 본 결과, '카지노 로얄'의 성공은 비아그라와 같은 일시적인 효과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007 제작진은 '카지노 로얄' 한 편에서만 프리퀄 성격을 띄며 과거로 살짝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줄 생각이 아니었다. 007 제작진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젊고 거칠어진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카지노 로얄'에 묶어놓고 계속해서 울궈먹으려 했다. 왜냐, 바로 그런 액션 히어로가 나오는 액션 영화가 최신 유행이자 인기 비결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 하지만 007 제작진은 이전에 비해 약간 어둡고 사실적으로 바뀐 새로운 007 시리즈와 과거의 클래식 007 포뮬라를 적절하게 혼합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아예 그러한 시도 자체를 하려 들지 않았다. '카지노 로얄'로 간신히 만들어 놓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 이미지가 훼손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007 제작진은 새로운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가 좋은 반응을 얻는 만큼 울궈먹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울궈먹기로 했다.
결국 007 제작진은 전편과 줄거리가 바로 이어지는 007 시리즈에선 전무후무한 속편을 내놨다. 바로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다. 스토리가 '카지노 로얄'의 엔딩과 바로 연결되는 만큼 영화의 톤도 달라진 게 없었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영화 전체가 제자리 걸음을 한 것이다.
007 제작진과 다니엘 크레이그는 "원작", "유행", "스크린라이터 파업" 등 다양한 핑계거리를 대며 또다시 추락하기 시작한 007 시리즈를 보호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인 2012년작 '스카이폴(Skyfall)'에서도 전진할 생각이 없었다. 계속해서 프리퀄 세계에 머무르며 어둡고 거친 액션영화로 이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인데 클래식 007 시리즈의 향수를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엔 어떻게든 올드와 뉴 스타일을 혼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007 제작진은 유명한 영화감독과 배우들을 끌어들였다. '이번엔 제대로 하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영화팬들에게 전한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메시지가 전부였다.
'스카이폴'은 이전 영화와 줄거리가 연결되진 않았지만 '미완성의 제임스 본드 세계'인 점은 전편들과 변함없었다. 스토리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제임스 본드의 세계는 그대로였던 것이다. 영화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MI6 고정멤버들이 제 위치를 찾아가는 등 '스카이폴'도 여전히 프리퀄 모드였다.
다니엘 크레이그에겐 '스카이폴'이 그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였다. 그러나 그의 제임스 본드는 지난 '카지노 로얄'에서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세 번째 영화라면 전편보다 더 편안하고 여유가 있어 보여야 정상이지만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거꾸로 갈수록 제임스 본드처럼 보이지 않아졌다. '스카이폴'에선 유머와 가젯 등을 다시 007 시리즈로 북귀시키면서 제법 클래식 007 시리즈의 분위기를 되살리려 했지만 이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왜냐, 몇가지 눈에 띄는 뻔한 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임스 본드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토리, 악당 등 거의 대부분이 007 시리즈와 거리가 멀었다. 이 바람에 다니엘 크레이그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 시늉을 하는 듯 보였다.
이렇게 제임스 본드는 2012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채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쯤됐으면 누가 범인인지 알 것이다.
007 시리즈가 지금까지 계속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알버트 R. 브로콜리가 남긴 '위대한 유산' 덕분이지 이를 물려받은 마이클 G. 윌슨과 바바라 브로콜리는 한 게 별로 없다. 마이클과 바바라는 어떻게든 계속해서 그들의 '가보'인 007 시리즈를 이어가고자 노력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에겐 참신한 아이디어가 크게 부족하다. 만약 이들이 알버트 R. 브로콜리에 버금가는 재능을 갖췄다면 007 시리즈가 90년대부터 이상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1탄부터 23탄까지 지금까지 나온 007 시리즈 전편을 모두 본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나온 007 시리즈가 가장 007 영화답게 보이는지" 한 번 물어보라.
이는 세대의 문제도 아니고 기술력의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 007 시리즈가 과거보다 많은 흥행수익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다. 수익 면에선 마이클과 바바라가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가 걱정이다. 클래식 007 포뮬라에 비교적 충실했던 지난 90년대에도 시원찮은 영화들을 내놨는데 새로운 스타일로 분위기를 살짝 바꾼 2000년대에도 시원찮긴 마찬가지이니 다음이 기대되지 않는다. 007 영화의 톤을 어느 쪽으로 정하든 결과는 항상 시원찮게 나온다는 결론이 나온 셈이니 말이다. 007 시리즈의 정통성을 잃은 채 다른 헐리우드 영화들을 베끼고 따라하는 데 급급한 현재의 007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미래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면서도 돈은 곧잘 벌어들이는 만큼 당장은 별 걱정이 없겠지만, 방향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듯한 제작진이 007 시리즈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겠는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단어 선택이 명백히 틀린 부분이 있어서 지적드리자면...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르면 이부남매지요. 이복남매는 다른 배라는 한자어가 주지하듯 어머니가 다르고 아버지가 같다는 뜻이구요.
답글삭제오오 그렇군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