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6일 일요일

나를 007 팬으로 만든 영화, '007 유어 아이스 온리'

로저 무어(Roger Moore)의 다섯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이자 007 시리즈 12탄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가 개봉 30주년을 맞았다. 80년대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였던 '유어 아이스 온리'가 나온지 벌써 30년이 흘렀다.

'유어 아이스 온리'는 내게 약간 특별한 영화다. 왜냐, 내가 극장에서 본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유어 아이스 온리'는 내가 극장에서 첫 번째로 본 제임스 본드 영화임과 동시에 내가 본 첫 번째 007 영화다. '유어 아이스 온리'를 보기 전까지 나는 007 영화를 단 한 편도 본 기억이 없다. 벽에 붙어있던 1979년작 '문레이커(Moonraker)' 포스터를 본 기억은 나는데, 영화를 본 건 그 다음 영화인 '유어 아이스 온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전에 나온 제임스 본드 영화들은 나중에 비디오로 본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유어 아이스 온리' 이전까지 제임스 본드 영화를 단 한 편도 본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미 잘 알고있는 캐릭터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영화는 본 적이 없어도 제임스 본드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 이미 많이 줏어들었기 때문이었는 듯 하다.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어떻게 생긴 배우인지도 모를 때였는데도 그가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에 칼이 튀어나오는 가방을 들고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봤자 내가 그 때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대해 알고있던 것이라곤 '007', '첩보영화', '칼 튀어나오는 가방'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 바로 '유어 아이스 온리'가 나를 제임스 본드 팬으로 만든 주범이다. 바꿔 말하자면, 2011년은 내가 제임스 본드 팬이 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라고도 할 수 있다.

자, 다 같이 건배합시다...ㅋ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임스 본드"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007 시리즈의 인기가 가장 뜨거웠던 60년대에 유-청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제임스 본드"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요새는 사정이 다르다. 보다 현대적인 액션 히어로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80년대엔 어땠을까?

내 생각엔 나의 세대가 어렸을 때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로 제임스 본드 영화를 꼽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문득 몇 해 전 미국의 연예 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에 실렸던 'The Spy Who Raised Me'라는 기사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제임스 본드 영화에 열광하면서 자랐으니 제임스 본드가 '나를 키운 스파이'라는 의미였다.



제임스 본드가 무슨 베이비시터냐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그 제임스 본드가 나도 키웠다.

당시 꼬맹이였던 내겐 '유어 아이스 온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나는 영화였다. 어렸을 때 아무 것도 모르고 본 영화였는데, 그렇게 재미있었던 것이다. 제임스 본드(로저 무어)는 액션 히어로 포스가 넘쳐났고, 캐롤 부케(Carole Bouquet), 린 할리 존슨(Lynn Holly-Johnson) 등 본드걸들은 모두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예뻤으며, 영화 촬영 로케이션의 경치도 무척 아름다웠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논스탑 액션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지금 다시 봐도 '유어 아이스 온리'에 나오는 씨트로엥(Citroen) 자동차 추격 씬과 스키 체이스 씬은 007 시리즈 최고로 보인다.

그렇다. '유어 아이스 온리'는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녀석 하나를 완전히 녹여놨다.

그렇다. 나의 제임스 본드는 로저 무어다. 이후에 나머지 007 영화 시리즈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소설을 찾아 보면서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게됐지만, 그의 영화를 통해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입문했기 때문인지 아직도 "제임스 본드" 하면 "로저 무어"의 얼굴이 떠오른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무어가 최고의 제임스 본드가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주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여러 문제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제임스 븐드'와 '최고의 제임스 본드'가 일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또한, '유어 아이스 온리'는 내게 영화 관련 콜렉티블을 수집하는 재미를 가르쳐준 영화이기도 하'다.

어디 가서 수집 좀 한다고 거들먹거릴 수준은 절대 못 되지만, 나도 어렸을 적부터 우표, 동전 같은 걸 주섬주섬 모으면서 수집하는 시늉을 내곤 했었다. 수집에 열성적으로 빠지진 않았던 것 같지만 은근히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유어 아이스 온리'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관에서 구입한 게 있었다. 당시 극장에서 자주 팔았던 영화 프로그램이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그 때 그 '유어 아이스 온리' 영화 프로그램이 내가 구입한 첫 번째 영화 프로그램이다. 그 이후부터 이걸 모으는 재미에 빠져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마다 프로그램들을 사왔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으론 80년대에 이런 프로그램들이 500원에서 1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럼 그 '유어 아이스 온리' 프로그램을 아직도 갖고 있냐고?

거진 걸레가 됐지만 갖고 있다. 그 때엔 보관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너덜너덜하다. 그러니 한국 프로그램과 거진 똑같은 일본판 프로그램으로 대신하자. 크기가 좀 큰 게 가장 큰 차이점이지만, 커버 디자인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한국판과 거의 똑같다. 일본에서 만든 영화 프로그램을 한글로 번역만 해서 팔았던 것 같다.

아래 이미지는 '유어 아이스 온리' 일본 프로그램.

원제 '포 유어 아이스 온리'에서 '포(For)'는 어디에 팔아먹었나 했더니, 일본에서 먼저 팔아먹은 듯.



콜렉티블 얘기가 나온 김에, 인쇄물을 제외한 '유어 아이스 온리' 콜렉티블을 대충 몇 개 모아봤다.







마지막은 쉬나 이스턴(Sheena Easton)이 부른 영화 주제곡 'For Your Eyes Only'로 하자. "80년대"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노래 중 하나다. 예전엔 사운드트랙 앨범을 카세트, LP, CD로 모두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LP와 CD밖에 남아있지 않다.

아무튼 한 번 들어보자.


1981년 6월26일은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가 북미지역에서 개봉한 날이다.

Happy birthday, my friend...

댓글 8개 :

  1. 확실히 제가 꼬맹이 때 우리나라에서도 007 시리즈를 TV 방영으로 자주 보여주곤 했었는데,
    81년작이니, 제가 4살 때군요. ㅎㅎㅎ
    6.26 오늘이군요. 한국시간으로 오후 2시 57분
    곡은 영상과 더불어 섹시함둥.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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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그 땐 꼬맹이였습니다...ㅋㅋㅋ
    근데 제가 어렸을 땐 TV로 007 시리즈를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해줬는데 몰랐을 수도 있지만... 그 때도 TV를 그리 자주 안 봤거든요...^^
    아무튼 전 한국 TV로는 단 한 편도 못 본 것 같습니다.
    TV에서 해줬더라면 쉽게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전 100% 비디오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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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로저무어...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007시리즈에 열광했던 그때가 아련한 추억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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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렸을적 극장 간판으로 "나를 사랑한 스파이"를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 "문레이커" 포스터도 벽보로 붙어있던 것을 뵜던 기억이 나네요.
    하루는 형이 중학생 때 단체관람(그 당시엔 학생들 영화 단체 관람이 많았죠)으로 "문레이커"를 보고와서 자랑해서 007이 그렇게 재밌는 영화라는걸 알게 되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부모님께서 본드를 좋아하셔서 어렸을적 본드무비를 봤던 것 같긴한데 아마도 제 자의로 처음 본 본드 영화는 국적 불명 제목의 "뷰투어킬"입니다. 그것도 본드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두란두란의 주제가 때문에 보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본드 광팬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죠~^^
    로저 무어가 최고의 본드는 아닐지언정 우리 세대의 첫 본드이자 처음 접한 본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어제 오전엔 로저 무어 최고 작품인 "유어 아이즈 온리"보고 오후엔 소설 "For Your Eyes Only" 와 "Risico" 읽으면서 삼십주년 자축했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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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익넷: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였던 때가 얼마 전 얘기 같은데요,
    유어 아이스 온리가 벌써 30년 된 영화라니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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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CJ:
    크으~ 문레이커...^^ 전 포스터만 기억이 납니다.
    본드가 우주에 나가서 돌아다닌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생각에,
    이언 플레밍의 원작을 찾아 읽도록 만든 영화가 문레이커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어디까지나 만약...
    제가 처음으로 본 007 영화가 문레이커였다면 또다른 얘기가 됐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 보기엔 나를 사랑한 스파이나 문레이커 같은 영화가 더 재미있었을 것 같거든요.
    흠, 자의로 본 영화를 꼽아도 전 유어 아이스 온리인 것 같습니다.
    왜냐면 신문에 난 영화광고 보면서 "이거 보러가자"고 제가 영화를 정하곤 했거든요...^^
    아, 이런 건 자의로 안 치나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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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유어아이즈온리,,ㅂ정말 좋았었죠,.,.역시나 지금 40대 정도면 유어아이즈온리의 추억이나 재미 모를사람없죠..제몫은 몰라도,앵무새 나오는 007 하면 알죠,.그만큼 스토리도 그렇고 탄탄 했고 로저무어가 현실감 액션한것도 그렇고..제일첨본것은 옥터퍼시였지만 그담 극장본게 유어아이즈온리 인데 재상영 하는것을 일부러보았죠,. 최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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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처음 봤을 때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스토리도 그만하면 아주 괜찮았고 리얼해서 좋았구요.
    아마도 제가 가장 많이 본 영화가 유어 아이스 온리입니다.
    단지 007 시리즈 내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에서요.
    제일 처음 본 007 영화라서 그런지 애착이 가는 영화라서 자주 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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