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스타 워즈 7' - 속편과 리부트 중간의 안전루트 택했다

'스타 워즈(Star Wars)'가 돌아왔다.

70~80년대에 공개된 오리지날 트릴로지와 90~2000년대의 프리퀄 트릴로지 등 지금까지 공개된 여섯 편의 영화에 이어 일곱 번째 영화가 2015년 12월 개봉했다. 프리퀄 트릴로지에 이어 이번엔 시퀄 트릴로지의 첫 번째 영화가 개봉한 것이다.

제목은 '스타 워즈: 포스 어웨이큰(Star Wars: The Force Awakens)'.

'스타 워즈' 시리즈 에피소드 7인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는 지난 2012년 디즈니가 루카스필름(Lucasfilm)과 '스타 워즈' 시리즈를 인수한 이후 공개된 첫 번째 영화이다.

제작, 연출, 스크린플레이는 J.J. 에이브람스(Abrams)가 맡았고, 오리지날 '스타 워즈' 트릴로지의 스크린플레이를 맡았던 로렌스 캐스단(Lawrence Kasdan)이 에피소드 7으로 돌아왔다. 음악은 '스타 워즈' 시리즈 전편의 음악을 맡았던 베테랑 작곡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가 맡았다.

출연진도 낯익은 얼굴과 새로운 얼굴로 구성되었다. 오리지날 '스타 워즈' 트릴로지에 출연했던 마크 하밀(Mark Hamill), 캐리 피셔(Carrie Fisher),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등 낯익은 얼굴들이 에피소드 7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데이지 리들리(Daisy Ridley), 존 보예가(John Boyega), 오스카 아이잭(Oscar Issac), 도널 글리슨(Domhnall Gleeson), 애덤 드라이버(Adam Driver) 등 새로운 얼굴들이 추가되었다. 마크 하밀, 캐리 피셔, 해리슨 포드는 오리지날 트릴로지 시리즈에서 맡았던 역할로 되돌아갔으며, 데이지 리들리는 사막 행성에서 생활하는 레이, 존 보예가는 스톰트루퍼 출신 핀, 오스카 아이잭은 저항군 최고의 파일럿 포, 도널 글리슨은 퍼스트 오더(First Order)의 헉스 장군, 애덤 드라이버는 퍼스트 오더 사령관 카일로 렌 역으로 각각 출연했다.

그럼 줄거리를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는 1983년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Return of the Jedi)'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멸망한 제국의 잔존 세력이 다시 일으킨 퍼스트 오더가 리퍼블릭을 파괴함과 동시에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하밀)도 제거하려 한다. 퍼스트 오더에 저항하는 리퍼블릭 측 역시 도움을 구하기 위해 루크 스카이워커를 찾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지 못한다. 이 때 루크 스카이워커의 위치가 담긴 지도를 입수한 포(오스카 아이잭)가 지도를 드로이드 BB-8에 넣고 리퍼블릭 저항군에 전달하려 하지만 카일로 렌(애덤 드라이버)이 이끄는 퍼스트 오더의 공격을 받는다. 스톰트루퍼의 공격으로 포와 헤어진 BB-8은 사막에서 고물을 팔아 연명하는 소녀, 레이(데이지 리들리)를 만나 함께 행동하게 되고, 포는 퍼스트 오더에 환멸을 느낀 스톰트루퍼, 핀(존 보예가)을 만나게 된다. 루크 스카이워커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가 담긴 BB-8이 사막 소녀와 함께 사라지자 퍼스트 오더는 그들을 추적해 지도를 찾아올 것을 명령한다...

지난 90년대~2000년대에 공개된 프리퀄 트릴로지가 실망스러운 편이었다. 프리퀄 트릴로지 세 편 전부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처음부터 프리퀄 트릴로지에 흥미가 끌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에피소드 7인 이번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는 어땠을까?

일단 새로운 캐릭터와 오리지날 캐릭터, 우주선, 광선검, 검은 마스크의 악당 등 '스타 워즈' 영화에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한데 모인 영화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맘에 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 프리퀄 트릴로지보다는 맘에 들었다고 해야겠지만, '스타 워즈: 에피소드 7'도 만족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영화였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스토리였다. '스타 워즈: 에피소드 7'의 부제로 'FORCE AWAKENS'보다 'HERE WE GO AGAIN'이 보다 적합해 보였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의 줄거리는 1977년 영화 '스타 워즈: 에피소드 4(Star Wars: A New Hope)'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전편과 줄거리가 이어지는 속편이면서도 내용은 '스타 워즈: 에피소드 4'와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 속편과 리부트의 중간에 걸터앉으면서 가장 안전한 루트를 택한 것으로 보였다. 오리지날 캐릭터와 새로운 캐릭터를 함께 등장시키고, 스토리도 전편과 연결되면서도 상당히 낯익게 만들면서 속편과 리부트의 특징을 모두 갖추는 게 모두를 만족시키기에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듯 했다. 프리퀄 트릴로지에 큰 실망감을 드러냈던 오리지날 트릴로지 팬들을 만족시켜줌과 동시에 '스타 워즈' 영화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플롯의 신선도가 떨어졌으며, '스타 워즈' 영화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에만 전념한 것 같았다.

개봉하는 순간까지 플롯 공개에 극도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 비밀을 유지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영화들을 보면 스포일러 유출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보여줄 내용이 얼마 없다는 게 드러나는 걸 걱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는 듯 하다.

오마쥬 또한 풍부했다. '스타 워즈: 에피소드 7'은 007 시리즈로 치자면 '스카이폴(Skyfall)', '스펙터(SPECTRE)'처럼 클래식 시리즈 오마쥬로 가득한 영화였다. 오리지날 트릴로지의 주요 하이라이트 모음을 다시 보여주는 게 주 목적인 것 같았고, 플롯의 역할은 여러 개의 오리지날 트릴로지 하이라이트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이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오마쥬 없인 007 시리즈처럼 만들 자신이 없는 것일까"라는 007 시리즈 관련 글을 쓰고 있었는데, 이젠 007 시리즈 뿐만 아니라 '스타 워즈' 시리즈에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야 할 듯 하다.


새로 등장한 메인 캐릭터 역시 오리지날 트릴로지 캐릭터들과 겹치는 점이 많았다. 오리지날 트릴로지에 등장했던 메인 캐릭터들의 이름과 얼굴, 성별만 바꿔놓은 게 전부였다. 새로운 캐릭터인 건 분명했지만 그다지 신선해 보이지 않았고, 강한 인상을 남길 정도의 존재감이 부족했다. 지난 오리지날 트릴로지처럼 주인공이 누구인지 뚜렷하고 누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인지 시작부터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스타 워즈: 에피소드 7'엔 3명의 미스터리한 새로운 메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다소 산만해 보였다.

그렇다고 새로운 캐릭터들이 모두 맘에 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새로운 캐릭터들도 나름 제 역할에 충실했다. 레이 역의 데이지 리들리는 '해리 포터(Harry Potter)' 시리즈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앳돼 보였지만 깜찍했고, '24: 리브 어나더 데이(Live Another Day)'에서 미군 드론 파일럿으로 출연했던 핀 역의 존 보예가는 유머 감각이 있고 듬직해 보였다. 이미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인 오스카 아이잭 또한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파일럿, 포를 잘 연기했다. 에피소드 7의 메인 캐릭터 3명을 여성, 흑인, 히스패닉으로 구성한 것이 리버럴 성향 헐리우드의 정치적인 선택으로 눈에 띄긴 했지만, 신경에 거슬리며 방해가 되진 않았다. 악역을 맡은 애덤 드라이버와 도널 글리슨도 특별히 새로운 캐릭터는 아니었으나 각각 맡은 제 역할을 다 했다.

새로운 캐릭터와 오리지날 캐릭터의 관계에도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었다. '스타 워즈: 에피소드 7'에 오리지날 트릴로지 캐릭터들이 돌아오는 것으로 알려진 순간부터 추측이 바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와 관계가 있으며 어떠한 역할을 맡았냐는 디테일 정도가 미스터리였을 뿐 제작진이 새로운 캐릭터와 오리지날 트릴로지 캐릭터를 어떻게든 엮으려 했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이럴 바엔  '스타 워즈: 에피소드 7'이 속편이 아닌 리메이크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스타 워즈: 에피소드 7'을 보고 나니 속편보다 리메이크 쪽에 더 가까운 영화였다. 백지에서 새로 시작했더라도 결과는 비슷하게 나왔을 것 같았다. 줄거리는 약간 달라졌겠지만 전반적으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럴 바엔 계속 이어지는 줄거리를 포기하고 백지에서 새로 시작하는 게 더 낫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새로 리메이크를 했다면 잃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루크 스카이워커, 한 솔로, 레이아 공주, 츄바카, 요다, 다스 베이더, 오비완 등 '스타 워즈' 팬들이 좋아하는 유명한 캐릭터들을 모두 다시 등장시킬 수 있었다. '스타 워즈: 에피소드 7'에 등장한 새로운 캐릭터 대부분이 얼굴과 이름만 다를 뿐 오리지날 트릴로지 캐릭터들을 연상케 하는 비슷비슷한 캐릭터였는데, 그렇게 할 바엔 비슷해 보이는 새로운 캐릭터가 아니라 친숙한 오리지날 캐릭터를 다시 등장시키는 게 차라리 나을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바라보면서 "만약 이 영화의 주인공이 루크 스카이워커, 한 솔로와 레이아 공주였다면 훨씬 더 재밌게 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토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스타 워즈' 시리즈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유명한 캐릭터들이 제일 우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속편과 리부트의 중간에서 새로운 영화의 신선함과 클래식 영화의 향수를 한데 모으는 안전루트를 택했으나 결과가 과히 신통치 않았다. 지난 프리퀄 트릴로지에 비하면 훨씬 '스타 워즈' 영화답게 보였다고 해야겠지만, 이번엔 "클래식 트릴로지 오마쥬로 범벅이 된 속편"에 그쳤다. 제작진은 오마쥬까지 풍부하게 동원하면서 '올드스쿨'과 '뉴스쿨'을 한데 모으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스타 워즈' 영화를 선보이려 했다. 사실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평할 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쏟았다는 티가 너무 난 게 흠이었다. "재밌는 스타 워즈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스타 워즈처럼 보이는 영화"를 만드는 데 더욱 신경을 쏟은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은 볼 만한 패밀리 영화였다. 연말 홀리데이 시즌에 온가족이 함께 보기에 완벽한 영화였다. 오랜만에 걸작을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단히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치명적인 문제점이 많은 영화도 아니었다. 많은 것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어도,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엔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스타 워즈' 팬은 아니더라도 과거 오리지날 트릴로지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중년 영화관객들에겐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존 윌리엄스의 귀에 익은 '스타 워즈' 음악이 울려퍼지는 순간 꼬맹이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다른 것 다 제쳐놓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는 반드시 영화관에서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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