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본 시리즈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소설에서부터 시작됐다. 제임스 본드는 이언 플레밍 원작이라면 제이슨 본은 로버트 러들럼이란 미국 소설가에 의해 탄생했다.
Jason Bourne과 James Bond는 이름만 얼핏 보면 서로 비슷해 보인다. 읽을 때도 얼핏 들으면 비슷하게 들린다. 앞글자만 딴 이니셜도 둘 다 JB다.
그렇다고해서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가 비슷한 캐릭터라는 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둘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차이가 있다. 제이슨 본은 기억상실에 빠진 캐릭터고 제임스 본드는 소속이 뚜렷한 스파이기 때문이다. 탄생시기도 다르다. 제임스 본드는 50년대고 제이슨 본은 80년대다.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는 직접 비교를 할래야 할 수 없는 캐릭터다. 둘 다 'Secret Agent Man'이라지만 성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맷 데이먼이 상당히 묘한 말을 했다.
아래는 GQ 기사의 일부다:
"The characters are so different." he says. "Bond is part of the system. He's an imperialist and a misogynist, and he laughs at killing people, and he sits there slugging martinis. It'll never be the same thing as this, because Bourne is a guy who is against the establishment, who is paranoid and on the run. I just think fundamentally they're just very different things.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가 아주 다르다는 것까지는 동의한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가 '제국주의자'이고 '여성 혐오자'라고? 맷 데이먼도 과대망상 증세가 있는 친구였나?
그 다음 파트를 읽어보자. 그러면 대충 감이 잡힌다:
In fact, I bumped into Pierce Brosnan, and he made a comment like that. He said, 'Yeah, they're trying to update them, but it's fundamentally kind of an impossible thing to do, if you look at the values behind James Bond.' It kind of can't ever be what Bourne is, you know?"
아하, 그런 거였어?
지금 맷 데이먼은 제이슨 본 시리즈와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얄'을 비교하는 것이다. 피어스 브로스난이 제임스 본드를 할 때는 제이슨 본 시리즈와 뚜렷한 차이가 났는데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얄'은 사정이 달라보인다는 것이다.
제이슨 본 시리즈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경쟁하는 영화가 아니다. 맷 데이먼이 말한 그대로 두 캐릭터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임스 본드가 젊어졌다, 액션이 거칠어졌다는 것만 가지고 곧바로 제이슨 본 시리즈와 겹치는 건 아니다. 이런 것만 가지고 제임스 본드가 제이슨 본 시리즈를 따라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 숀 코네리가 30대 초반에 출연했던 60년대 007 영화가 제이슨 본 시리즈의 원조라고 해야 한다. 30대 초반의 혈기왕성하던 숀 코네리가 주먹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터프한 제임스 본드를 보여줬는데, 이렇게 따지면 제이슨 본의 원조가 된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을 읽어봤다면 제임스 본드가 살인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들 중엔 제임스 본드가 적을 죽이지 않고 잡으려 하다가 되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he laughs at killing people'이란다. 물론, '여기서 말한 건 영화에서의 제임스 본드'라고 둘러댈 수 있다. 그리고, 원작에서의 제임스 본드를 영화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기 전에 원작과 영화를 모두 확인하고 얘기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물론, 미국쪽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제임스 본드라는 수퍼 스파이가 영국산이기 때문에 'Made in USA' 수퍼 스파이를 갖고싶어하는 것 말이다.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 시리즈가 영화화 되기 전에는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이 미국판 제임스 본드가 되고자 했다. 알렉 발드윈(붉은 10월), 해리슨 포드(패트리어츠 게임, Clear and Present Danger), 벤 애플렉(공포의 총합)이 톰 클랜시 원작의 영화에서 잭 라이언으로 나오며 '잭 라이언 시리즈'란 말까지 나왔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이 밖엔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시블' 시리즈 정도밖에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은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일반적인 스파이 소설/영화의 주인공과는 다르기 때문에 제임스 본드와 경쟁하는 캐릭터로 볼 수 없다. 이런 걸 다 빼버리고 젊은 에이전트와 화끈한 액션만 놓고 따지면 '카지노 로얄'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제이슨 본은 제임스 본드와 비교하기 곤란한 캐릭터다. 차라리, 로버트 러들럼의 또다른 소설 '스코피오 일루션'의 Tyrrell Hawthorne이라면 제임스 본드와 대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소설의 내용은 일단 그렇다쳐도 Tyrrell Hawthorne이란 캐릭터가 미국 해군 정보부 요원출신인 등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와 겹치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이슨 본은 아니다. 맷 데이먼의 말처럼 제임스 본드는 절대로 제이슨 본처럼 될 수 없고, 제이슨 본 역시 제임스 본드처럼 될 수 없다.
맷 데이먼은 이런 식으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밟아가며 제이슨 본 시리즈 광고를 해야만 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 애정을 갖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유치한 것 같지 않은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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