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3일 금요일

'본 얼티메이텀', 이것이 마지막?



로버트 러들럼의 '에이전트 JB'가 돌아왔다. 이니셜은 같지만 제임스 본드가 아니다. 로버트 러들럼의 '에이전트 JB'는 제이슨 본(Jason Bourne).

로버트 러들럼이 쓴 제이슨 본 시리즈 소설은 '본 얼티메이텀(Bourne Ultimatum)'이 마지막이다.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 시리즈는 트릴로지였고 '본 얼티메이텀'이 마지막 3편이다. 이것으로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 시리즈는 사실상 끝나는 것이다. 총에 맞고 기억상실에 빠지더니 CIA에게 쫓기기까지 하는 억센 팔자의 에이전트, 제이슨 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

1편은 꽤 재미있게 봤지만 2편은 기대에 못미쳤던 바람에 3편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3편은 2편보다는 낫지만 1편만큼 재미있진 않다. 볼만한 액션씬도 있고 제이슨 본이 자신의 과거를 하나씩 기억해내며 기억상실 스토리에 마침표를 찍는 것도 그런대로 흥미롭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동안 지루하진 않다. '섹스'와 '유머'가 없기 때문에 좀 딱딱하긴해도 차분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제이슨 본의 어드벤쳐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임스 본드를 스파이 영화의 스탠다드격 캐릭터라고 한다면 맷 데이먼은 아무래도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맷 데이먼과 스파이 영화가 어울린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맷 데이먼이 제이슨 본이란 에이전트로 나온 영화를 '얼티메이텀'까지 합쳐 모두 세 편을 봤지만 여전히 맷 데이먼과 스파이 캐릭터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맷 데이먼과 제이슨 본은 딱이다. 제이슨 본은 '그런' 스파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이슨 본은 사실 스파이도 아니다. 그저 쫓기는 신세의 'ex-Agent'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게다가 기억력도 깜빡깜빡이다. 계속 누군가가 죽이려고 쫓아다닌다. 물론, 제이슨 본 역시 프로페셔널이지만 인간적으로 동정이 가는 프로페셔널이란 게 다른 스파이들과 다르다.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제이슨 본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을 때 전해오는 그 'Feeling'은 제임스 본드가 따라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제이슨 본의 매력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도 맷 데이먼은 몹시 혼란스러운 제이슨 본을 연기했다. '얼티메이텀'이 러들럼의 제이슨 본 트릴로지 마지막 작품인만큼 이번 영화에선 제이슨 본도 많이 정리가 된 모습이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인 건 변함없다. '어떻게 손을 좀 써보라'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는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페셔널인 것엔 변함없다. 혼란스럽다고 아주 대책없는 건 아니란 것이다. 이처럼 '수퍼 스파이'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 제이슨 본이다. 어떻게 보면 살짝 어리숙해 보이면서도 날카로움이 번뜩이든 맷 데이먼에게 왔다인 캐릭터다.

제이슨 본은 '본 얼티메이텀'에서도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전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모로코, 미국 등 계속 왔다갔다 한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지만 제이슨 본 시리즈처럼 자주 장소를 이동하진 않는다. 덕분에 살짝 정신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줄거리를 진행하기 때문에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게다가, 자동차들이 정신없이 뒤엉키는 수준급 액션씬 뿐만 아니라 한판 제대로 붙는 주먹싸움까지 나오면서 이전 영화보다 더욱 거칠고 화끈해졌다.




하지만, 장점은 거기까지가 전부다.

가장 큰 문제는 제이슨 본 시리즈의 줄거리 자체가 더이상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 시리즈를 본 사람들은 제이슨 본을 없애려는 게 누구인지 알고있다. 정확하게 누구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와 같은 디테일한 부분은 3편을 보기 전엔 모른다지만 어지간한 건 이미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울 게 없어 보인다. 이런 식으로 줄거리가 이어질 거라면 '트릴로지'보다 TV 미니 시리즈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해서 이전 시리즈를 본 사람들만 이해가 가는 영화는 아니다. 'Identity'와 'Supremacy'를 보지 않았더라도 별다른 문제없이 볼 수 있다. 이전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줄거리가 이어진다, 반복되는 것 같다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즐길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앞서 나온 두 편의 제이슨 본 시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조앤 알렌이 제이슨 본과 전화통화 하다가 화들짝 놀라는 장면을 보고 '저거 또 써먹는거냐'는 생각도 들지 않을 것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본 얼티메이텀'에는 묘하게도 007 시리즈에서 봤던 장면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띈다. 007 시리즈를 어지간히 본 사람들은 '본 얼티메이텀'을 보면서 '저건 어떤 007 영화에서 나왔던 것'이라는 걸 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둘 다 같은 쟝르의 영화니까 비슷한 장면들이 나올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엇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비슷한 장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액션씬, 스턴트뿐만 아니라 007 시리즈에 나왔던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도 나온다.

'카지노 로얄'에서 제이슨 본을 봤다고 한 사람들은 '본 얼티메이텀'에서 007 시리즈를 못보고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카지노 로얄'에서 제이슨 본의 흔적을 찾는 것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007 시리즈의 흔적을 찾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거의 오마쥬 수준이니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 얼티메이텀'에서 가장 부족한 건 여자 캐릭터일 것이다. Franka Potente가 제이슨 본 시리즈를 떠난 뒤 여주인공이라고 부를만한 캐릭터가 없기 때문이다. 1편이 가장 맘에 드는 이유 중 하나로 뚜렷한 여주인공이 있었다는 걸 빼놓을 수 없다.

'Ultimatum'은 'Supremacy'에서와 마찬가지로 Franka Potente를 대신할 여자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다. 모든 제이슨 본 시리즈에 출연한 Julia Stiles가 이번에도 '니키'라는 캐릭터로 나오지만 여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비중이 커진 건 아니다. 남자 주인공과 반드시 '얽혀야' 제대로 된 여자 주인공이란 얘기는 아니지만 '니키'로는 부족해보였다.

대개의 경우 무슨 영화가 나왔다, 누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여자 주인공은 누군지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본 얼티메이텀'에선 마땅한 여자 캐릭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약간 섭섭(?)하다. '본드걸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본 얼티메이텀'은 100%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정도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잘만든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줄거리에 좀 더 짜릿한 부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본 시리즈는 줄거리가 큰 몫을 차지하는 영화라고 해야 맞을텐데 엄청난 반전이나 새로운 내용 없이 디테일한 부분들에만 의존하는 것이 전부라는 게 아무래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이미 판이 다 짜져 있는 상태에 몇몇 빈칸을 채우는 게 전부기 때문이다. 빈칸 채우기 식도 나름대로 흥미롭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테리'가 전혀 미스테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1편에선 줄거리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2편부턴 미스테리는 빈칸 채우기가 전부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도망자'가 주인공이라는 것 하나밖에 남는 게 없는 영화가 됐다. 3편에선 이 지루한 줄거리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지만 여전히 '기억상실증에 걸린 도망자'가 전부인 건 이전과 다를 게 없다. 물론, 액션씬이 있다는 걸 빼놓을 수 없지만 제이슨 본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는 액션이 아니라 복잡 미묘해보이는 줄거리라고 해야 옳다.

제이슨 본 시리즈라고 하면 대부분 '심각한 스파이 영화'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줄거리 때문이고, 그만큼 본 시리즈는 줄거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인데 1편 이후론 줄거리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얼핏보면 엄청난 비밀이 있고 내용도 무지하게 심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알맹이를 까보면 별 것 아닌 얘기란 결론을 내리게 된다. 1편 하나로 끝났다면 '훌륭한 줄거리'라고 했겠지만 2, 3편을 보고나면 그 소리가 안 나온다. 복잡하고 심각한 내용의 영화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놓은 것에 넘어가 그 분위기에 깔리면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도록 만들어 놓은 게 맞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1편 이후의 줄거리는 솔직히 기대에 못 미친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없다. 로버트 러들럼이 사망하기 전에 쓴 제이슨 본 시리즈는 'Identity', 'Supremacy', Ultimatum' 3개가 전부다. 이로써 기억상실증에 빠진 CIA 에이전트 이야기는 끝났다. 여지껏 기억상실증에 빠진 제이슨 본이 1/3씩 기억을 회복하는 얘기였는데 이제 다 알았으니 이 얘기는 끝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마지막?

아직은 속단하기 이르다. 로버트 러들럼이 사망한 뒤 다른 작가가 제이슨 본 소설 시리즈를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당장,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부터 다른 작가들에 의해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새로운 소설가가 넘겨받으면 분위기가 상하기 일쑤다. '오리지날보다 못하다'는 얘기도 끊임없이 나오게 돼있다. 러들럼 이후에 나온 새로운 본 시리즈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순 없지만 새로운 제이슨 본 시리즈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제이슨 본이란 캐릭터는 기억상실증에 빠진 도망자였는데 그렇다고 계속해서 제이슨 본을 도망자로 만들면 사람들이 식상할테니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임스 본드처럼 변신시키면 제이슨 본까지 '제국주의자'가 될테니 말이다. 러들럼의 트릴로지 이후에 나온 본 시리즈는 미국을 공격하는 테러리스트가 나오는 내용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러들럼의 오리지날 제이슨 본 트릴로지보다 더욱 제임스 본드 또는 '미션 임파시블' 시리즈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만약, 러들럼 이후에 나온 소설들까지 영화화 된다면 말이다.

러들럼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정보부에 좋지않은 감정을 가진 캐릭터들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로버트 러들럼의 또다른 소설, 'Scorpio Illusion'에 나왔던 Tyrrell Hawthorne도 정보부의 실수로 아내가 살해당했다면서 정보부를 불신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니, 제이슨 본도 기억상실과 CIA에게 당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정보부를 불신하는 이전 에이전트가 새로운 사건에 휘말린다는 식으로 시리즈가 이어진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건 없을 것 같다. 새로 나온 제이슨 본 소설의 내용을 훑어보니 Tyrrell Hawthorne의 뒤를 잇는 것처럼 보이던데, 비록 이전의 제이슨 본과는 다른 캐릭터가 되겠지만 제이슨 본 시리즈를 이어가려면 그렇게 해도 별 상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Jason Bourne Will Return'이란 자막이 나왔는지 확인하지 않은 게 아쉽다.

엔딩 크레딧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본 얼티메이텀'에서도 모비(Moby)의 'Extreme Ways'가 엔딩 타이틀곡으로 사용됐다. '본 얼티메이텀'엔 새로운 리믹스 버전이 사용된 것 같지만 노래는 같은 거니까 이걸로 대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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