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일 금요일

오리지날 '아메리칸 갱스터'

길거리서 거래되는 헤로인도 브랜드가 있다.

때문에, 다른 회사(?)의 헤로인 브랜드 이름을 무단도용하면 '저작권 침해'라며 기분 나쁘다는 소리 듣는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웰컴 투 할렘!

6~70년대 할렘을 쥐고 흔들었던 프랭크 루카스(Frank Lucas-사진)라는 마약딜러가 있었다. 노스 캐롤라이나주(North Carolina) 출신인 루카스는 6세 때 사촌형이 '백인 여자를 쳐다봤다'는 이유로 KKK에게 살해당하는 걸 지켜본 뒤 범죄자의 길로 빠진 사나이다.

프랭크 루카스는 베트남에서 생산된 헤로인을 전사한 미군 병사의 관에 숨겨 미국으로 들여와 '블루매직'이라는 브랜드 이름으로 할렘에서 판매했다. '블루매직'은 저렴하고 품질좋은 헤로인으로 할렘에서 인기(?)를 누렸고, 그 덕분에 프랭크 루카스는 하루에 1백만불씩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하루에 1백만불을 벌었단다!

비록 마약거래로 벌어들인 돈이지만 하루에 1백만불씩 벌어들일 정도였다면 '성공한 비지니스맨 갱스터'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는 하루에 1백만불씩 벌었다는 뉴욕 마약딜러 프랭크 루카스에 대한 영화다.영화 제목이 '아메리칸 갱스터'인 이유는 이탈리안 마피아도 아니고 멕시칸 갱스터도 아닌 '아프리칸 아메리칸' 갱스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갱스터까지 'Made in U.S.A'가 최고란 얘기는 아니겠지만 프랭크 루카스의 조직이 이탈리안 마피아와 멕시칸 조직에게 마약을 공급할 정도였다니 대단했던 모양이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모든 것을 갖춘 영화다.

프랭크 루카스역으로 댄젤 워싱턴, 루카스를 추적하는 뉴저지 형사 리치 로버츠역으로 러셀 크로우가 나온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2명이 나란히 나온다면 출연배우들이 빵빵하다는 데 이의 없겠지?

출연배우 뿐만이 아니다. '이스턴 프로미스', '위 오운 더 나잇' 등 어설픈 갱스터 영화들과 달리 '아메리칸 갱스터'는 섹스와 폭력, 그리고 유머 세 가지 모두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유치할 정도로 우질나게 폼만 잡다가 끝나는 엉성한 갱스터 영화가 아닌 것. '아메리칸 갱스터'는 웃길 때는 확실하게 웃기고, 섹시할 때는 화끈하게 벗고, 갱스터들의 터프한 라이프스타일도 제대로 보여준다.

갱스터 영화라고 하면 이탈리안 마피아, 러시안 마피아 등 미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갱스터들이 먼저 떠오른다. 외국 조직들이 갱스터 영화를 접수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메리칸 갱스터'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미국인 갱스터'가 나온다. 배경만 미국일 뿐 갱스터는 외국인인 게 아니라 배경도 미국이고 갱스터도 미국인인 것.



줄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프랭크 루카스가 실존인물인만큼 영화 줄거리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마약장사로 재미를 보려는 부패한 미군들과 프랭크 루카스가 연결되어 베트남에서 생산된 헤로인을 전사한 미군의 관에 숨겨 운송한 것도 사실이고, 마약딜러에게서 압수한 마약을 부패한 뉴욕 경찰들이 마약딜러에게 되팔기도 하고 갱스터에게 '세금'을 요구한 것도 사실이란 얘기다.

그렇다. '아메리칸 갱스터'에선 부패한 경찰들도 갱스터 중 하나로 나온다. 겉으로만 경찰일 뿐 돈 되는 것이라면 물불 안가리는 갱스터와 다름없는 인간들로 나온다. 범죄자를 구속하는 게 아니라 경찰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범죄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먹을 정도로 부패한 친구들이다. 프랭크 루카스가 경찰들의 부정이 마약딜러들보다 더 심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 당시 경찰들이 얼마나 부패했었는지 대충 감이 잡힌다.



하지만, 모든 경찰이 다 부패한 건 아니다.

뉴저지주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우)는 부패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형사다. 여자는 무지하게 좋아하지만 일처리는 항상 원칙대로다. '범죄자들을 잡아넣는 게 경찰의 일'이라면서 돈에도 관심없고 매수하는 것도 불가능한 친구다.

부정을 밥먹듯이 저지르는 부패한 경찰과 대조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흔해빠진 'Good Cop-Bad Cop'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제목이 '아메리칸 캅'이 아니라 '아메리칸 갱스터'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 영화는 갱스터 영화지 경찰 수사영화가 아니라는 것. 얼핏 보기엔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라는 두 캐릭터에 대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프랭크 루카스, 다시 말하면 댄젤 워싱턴의 영화일 뿐이다. 리치 로버츠가 프랭크 루카스를 추적하는 것보다 프랭크 루카스의 마약밀매가 훨씬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러셀 크로우의 출연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영화는 금새 댄젤 워싱턴쪽으로 기울어지고 경찰의 수사과정 이야기 쪽엔 집중할만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Good Cop-Bad Cop' 이야기처럼 보이는 문제 정도는 별 신경쓰지 않고 넘어가게 된다.



이 영화에서 한가지 아쉬운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갱스터 영화'와 '경찰 수사영화' 2개를 한데 합치려고 했다는 것이다. 프랭크 루카스의 범죄 이야기가 전부인 게 아니라 프랭크 루카스를 추적하는 경찰 수사 이야기까지 섞으려고 한 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물론, 이 덕분에 인기절정의 흑인(댄젤 워싱턴)과 백인배우(러셀 크로우)를 함께 출연시킬 수 있었겠지만 리치 로버츠와 뉴저지 형사들의 수사 이야기는 세련돼 보이지 않는다. 70년대 배경의 영화가 아니라 7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처럼 보이는 것.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리치 로버츠는 프랭크 루카스에게 영화의 주도권을 내주고 '넘버2 캐릭터'가 됐는데 수사과정도 수많은 형사영화에서 보아왔던 그렇고 그런 수준일 뿐이다.

그렇다. 리치 로버츠는 '넘버2 캐릭터'다. 사실, 영화에 나오지 않아도 별 상관없을만한 캐릭터다. 경찰이 전부 부패한 건 아니니까 제대로 된 경찰이 수사를 한다는 건 뻔한 얘기기 때문이다. 리치 로버츠의 수사과정 이야기를 자세하게 보여줄 필요없이 프랭크 루카스의 마약밀매 이야기를 하면서 '경찰이 감을 잡았다'고 설명만 하고 넘어갔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구태여 리치 로버츠라는 형사 캐릭터를 내세워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은 수사과정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는 것.

'아메리칸 갱스터'에는 쿠바 구딩 주니어도 나온다. 쿠바 구딩 주니어는 프랭크 루카스의 라이벌 마약딜러, 니키 반스(Nicky Barnes)로 나온다. 또다른 거물급 뉴욕 갱스터가 나왔지만 그의 출연시간은 터무니없이 짧다. 갱스터 영화라면 갱스터들끼리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 하는 게 정상인 것 같은데 프랭크 루카스와 같은 시대에 같은 장소에서 마약사업을 했던 거물급 갱스터, 니키 반스를 푸대접(?) 했다. 리치 로버츠의 경찰수사 이야기를 줄이고 니키 반스의 비중을 높였다면 더 흥미진진했을 것 같지만 갱스터와 형사 이야기를 절반씩 섞어야만 했으니 불가능할 수밖에...

물론, 러셀 크로우와 댄젤 워싱턴이 함께 출연한 데서 얻은 시너지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약밀매와 경찰 수사과정을 오락가락하지 않고 프랭크 루카스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어떻게 보면 흑인버전 '대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탈리안 마피아 뒤를 이어 아이리쉬 갱, 러시안 마피아, 멕시칸 갱 등 다국적 갱영화가 나오더니 이번엔 흑인버전 '대부'가 나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주인공만 흑인일 뿐 영화 자체는 '대부'와 같은 갱스터 영화를 베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다 맞는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메리칸 갱스터'는 실화다. 프랭크 루카스도 아직 살아있다. 70대 노인이지만 아직 살아있다. 영화에 나오는 사건들도 대부분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등장 캐릭터 대부분도 실존인물이다.주인공도 이탈리아, 러시아 태생 외국인도 아니고 이민 2세도 아닌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오리지날 아메리칸 갱스터' 영화가 맞지 않을까?



'아메리칸 갱스터'는 요근래 나온 갱스터 영화 중 최고다. 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도 저리가라다. 금년에 개봉한 '이스턴 프로미스', '위 오운 더 나잇'과 같은 영화들은 아예 상대도 되지 않는다. 이탈리안 마피아, 러시안 마피아가 나오는 영화에 식상한 갱스터 영화팬들은 실존했던 흑인 갱스터, 프랭크 루카스의 이야기에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힙합 뮤지션 Jay-Z도 실망하지 않은 것 같다.

Jay-Z는 '아메리칸 갱스터'라는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아메리칸 갱스터' 오리지날 사운드트랙은 아니지만 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앨범이다. Jay-Z의 새 앨범에는 프랭크 루카스의 헤로인 브랜드 이름과 같은 '블루매직'이라는 곡도 수록됐다.

사실, 프랭크 루카스는 랩을 노래로 치지도 않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옛날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힙합과 함께 성장한 세대는 다르지만 지금 5~60대 이상인 흑인들은 힙합을 '젊은이들용 노래'라고 하던데 프랭크 루카스도 예외는 아닌 듯.

프랭크 루카스가 알고있는 유일한 래퍼는 'Puff Daddy'로 유명한 Sean Combs라고 한다. Puff Daddy의 힙합곡을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인 건 절대 아니다. 프랭크 루카스가 Puff Daddy의 아버지를 잘 알고있는 덕분일 뿐....

하지만, '아메리칸 갱스터' 영화와는 Jay-Z가 더 가깝다. Public Enemy의 'Can't Truss It'이 영화에 나온 유일한 힙합곡일 뿐 Jay-Z의 곡은 나오지 않지만 'Heart of the City (Ain't No Love)'가 트레일러에 사용됐고 '아메리칸 갱스터'라는 새로운 앨범까지 냈다.

말 나온 김에 Jay-Z의 신곡 '블루매직'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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