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영화라고 하면 007 시리즈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007 시리즈는 007 시리즈일 뿐 스파이 영화로 보기 힘들다. 제임스 본드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 캐릭터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제임스 본드 영화 시리즈가 무조건 스파이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사일 나가는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에이전트가 나오는 영화를 스파이 영화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스파이 쟝르 자체가 황당무계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제임스 본드 시리즈 이외의 스파이 영화들을 둘러보고자 한다.
우선 존 르 카레(John Le Carre)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존 르 카레는 스파이로 활동한 경력을 가진 영국 소설가로, 그가 쓴 소설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첩보쟝르를 대표하고 있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은 TV 시리즈와 영화로도 많이 제작됐다.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1965)', 'The Looking Glass War(1969)', 'The Russia House(1990)', 'The Tailor of Panama(2001)' 등이 대표적인 르 카레 영화다. 르 카레의 영화에선 핸썸한 젠틀맨 스파이, 잠수함으로 변신하는 자동차, 화려한 액션과 스턴트, 자동차 추격씬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수퍼 에이전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가벼운 액션 스릴러 영화와는 달리 르 카레의 영화는 매우 사실적인 'No Bull$hit 스파이 영화'다.
존 르 카레 시리즈 다음으론 마이클 케인 주연의 'Funeral in Berlin(1966)'이 있다. 'Funeral in Berlin'은 영국 작가, Len Deighton의 소설을 옮긴 마이클 케인 주연의 해리 팔머 시리즈 중 하나다.
재미있는 건 60년대 제작된 해리 팔머 시리즈 3편 모두 해리 살츠맨(Harry Saltzman) 프로덕션에서 만든 영화라는 사실. 해리 살츠맨은 알버트 R. 브로콜리와 '닥터노(Dr. No - 1962)'부터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까지 함께 제작한 007 시리즈 공동 프로듀서다. 감독 역시 '골드핑거(1964)'의 가이 해밀튼(Guy Hamilton)이 맡았다.
하지만, 'Funeral in Berlin'은 007 시리즈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007 베테랑들이 만든 스파이 영화지만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는 정 반대처럼 보이는 영화다. 해리 살츠맨은 스케일이 큰 007 시리즈 뿐만 아니라 사실적인 스파이 영화에도 욕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007 시리즈 프로듀서가 또다른 스파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약간 이상하게 들리긴 한다. 아마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스파이 영화 해리 팔머 시리즈는 007 시리즈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가 영국 스파이들의 이야기다.
그 다음부턴 '실화'다.
실제 있었던 스파이 사건을 기초로 한 영화로는 2007년 영화 '브리치(Breach - 2007)를 빼놓을 수 없다.
'브리치'는 FBI에 근무하면서 기밀정보를 구소련과 러시아에 넘겨준 로버트 핸센(Robert Hanssen) 사건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로버트 핸센도 실존인물이고 핸센의 비밀을 캐낸 에릭 오닐 역시 마찬가지다. 에릭 오닐의 홈페이지에 가면 오닐과 헨센의 실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Munich - 2005)'도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한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하지만, '뮌헨'은 100%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영화는 아니다. 뮌헨 참사는 실제 있었던 사건이고 이스라엘 모사드가 테러 주모자들을 찾아내려는 작전을 개시한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적 사실'은 여기까지가 전부인 '히스토리컬 픽션(Historical Fiction)'이다.
토미 리 존스 주연의 '더블 에이전트: 유리 노센코(Double Agent: Yuri Nosenko - 1986)'도 실화를 기초로 한 영화 중 하나다.
'더블 에이전트'는 60년대초 미국으로 망명한 KGB 에이전트가 진심으로 변절한 건지, 아니면 위장망명인지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CIA의 모습을 그린 영화.
그렇다. 드디어 CIA가 떴다!
'사실적인 CIA 영화'라고 하면 맷 데이먼, 로버드 드 니로가 출연한 'The Good Shepherd(2006)'를 빼놓을 수 없다.
'The Good Shepherd'는 CIA의 실제 역사를 그린 논픽션은 아니다. 얼핏보면 실화처럼 보이지만 비슷한 게 전부일 뿐이다. 'The Good Shepherd'가 워낙 논픽션처럼 보이는 픽션이다보니 CIA가 직접 해명하기도.
CIA 웹사이트에 가면 CIA의 실제 역사와 영화 'The Good Shepherd' 내용을 비교한 글을 찾아볼 수 있다. CIA의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영화내용과 실제 CIA 역사를 비교해 보는 건 가능하다.
조지 클루니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안긴 '시리아나(Syriana - 2005)'도 사실적인 CIA 영화에 속한다.
'시리아나'는 CIA 필드 에이전트로 중동지역에서 활동했던 로버트 베이어(Robert Baer)의 논픽션 'See No Evil'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어떻게 보면 '시리아나'는 스파이 이야기보다는 어지러운 석유사업에 대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중동 배경의 사실적인 스파이 영화 중 하나로 꼽힌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중에도 CIA가 나오는 냉전시대 배경의 스파이 영화가 있었다.
히치콕의 '토파즈(Topaz - 1969)'는 쿠바 미사일과 프랑스 정보부에 침투한 러시아 스파이 조직 '토파즈'에 대한 영화다.
프랑스 영화 'Night Flight from Moscow(원제: Le Serpent - 1973)'도 CIA와 망명한 KGB 에이전트에 대한 영화다.
'Night Flight from Moscow'는 CIA 에이전트(헨리 폰다)가 거물급 러시아 스파이(율 브리너)의 망명이 진실한 것인지 수사하는 내용의 영화다. 러시아 거물급 스파이 역할에 율 브리너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 듯.
마틴 쉰 주연의 1983년 영화 'Enigma'는 러시아 스크램블러 'Enigma'를 가짜로 바꿔치기 하기위해 CIA 에이전트를 동독으로 침투시킨다는 줄거리의 스파이 스릴러다.
이 영화엔 007 시리즈 '문레이커(1979)'에서 드랙스를 연기했던 마이클 론스데일이 CIA 에이전트로 나오며, 마틴 쉰을 뒤쫓는 KGB 에이전트는 '주라기 공원'으로 친숙한 영국배우 샘 닐(Sam Niel)이 연기했다.
토니 스코트 감독의 '스파이 게임(Spy Game - 2001)'은 CIA 에이전트 Nathan(로버트 레드포드)이 중국에서 체포된 CIA 에이전트, 톰 비숍(브래드 핏)과의 옛 기억을 회상하면서 CIA 몰래 그를 구출할 작전을 세운다는 줄거리의 스파이 스릴러 영화다.
구출작전과 마지막 엔딩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Nathan이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 씬들은 그런대로 사실적으로 보인다.
'스파이 게임'까지 내려왔으니 이젠 톰 클랜시 원작의 스릴러 영화들이 나올 차례다.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 시리즈는 지금까지 'The Hunt for Red October(1990)', 'Patriot Games(1992)', 'Clear and Present Danger(1994)', 'The Sum of all Fears(2002)' 등 모두 4편이다.
CIA 에이전트 잭 라이언을 연기한 배우는 알렉 발드윈(The Hunt for Red October), 해리슨 포드(Patriot Games, Clear and Present Danger), 벤 애플렉(The Sum of all Fears) 등 모두 3명.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 시리즈는 'The Hunt for Red October'까지는 몰라도 나머지는 스파이 쟝르로 분류하기 살짝 곤란한 데다 가상의 미국 대통령과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테러 플롯까지 나오는 덕분에 아주 사실적인 스릴러 영화라고 하기 힘들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설정을 사실로 가정하고 보면 나름대로 리얼해 보인다.
To Be Continued...
역시 전문가다우시네요. 우와...
답글삭제말씀하신것중에서 제가 본 영화는 브리치랑 스파이게임밖에 없어요.ㅎㅎ
브리치는 별로 기대안하고 봤는데, 은근히 재밌더라구요. 스파이게임은 디너아웃작전이 정말 감동적..ㅜㅜ
이번 포스팅은 드라마 쟝르로 분류되는 스파이 영화 위주였거든요.
답글삭제다음 번엔 좀 더 액션비중이 높은 스파이 영화들을 다뤄볼 생각입니다.
저도 '브리치' 생각보다 재밌게 봤습니다.
고전 스파이 영화처럼 칙칙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았습니다.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가 영화로 나왔었군요.
답글삭제소설 읽고나서 영화로 나오면 멋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구태여 흑백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글삭제컬러였으면 보기가 좀 더 수월했을 것 같은데...
아... 흑백...
답글삭제참, 저는 장 폴 벨몽도 주연의 "Le Professionnel"도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일찌기 정보기관이 자기 스파이를 버리는 영화를 만들었었죠...
(이거로 포스팅이나 해볼까나?)
벨몽도의 그 영화 알고있습니다.
답글삭제보진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