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6일 수요일

1.5세라는 게 실감날 때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친구녀석에게 영어 단어를 하나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녀석왈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 때만 해도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뜻을 모르면 모르는 거지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후 몇 년이 흘렀다.

언제부터인가 혼자 생각할 때도 영어로 하고, 꿈에서도 영어 더빙(?)이고, 한국인 친구와 대화를 할 때도 영어 반 한국어 반으로 섞어서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띵한 순간을 맞았다. 영어로는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이걸 한국어로 옮기려니 가장 적합한 단어가 무엇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어려운 단어도 아닌데 말이다! 머릿속에서 여러 단어들이 뱅뱅 도는데 그냥 쭉 돌기만 하는 거다.

돌아버리겠더라...OTL

이 때 '아, 이게 그 때 그 녀석이 느꼈던 기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한국어를 자주 쓰는데도 알게 모르게 까먹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기본적인 읽고 쓰고 말하기에 지장이 생길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한글 단어들을 까먹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적합한 한글 단어를 고르는 데서 문제가 생기다 보니 그 의미를 길게 풀어 쓰는 버릇이 생겼다. 한 단어로 요약하는 게 잘 안 되니 별 수 없더라. 그래서 사전을 뒤진다. 영어 단어의 의미를 몰라서가 아니라 한국어로 뭐라고 되어있나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국을 다녀오면 많은 게 달라진다.

당장 대화 할 때 선택하는 단어부터 달라진다. 이전엔 사용하지 않던 단어와 표현들까지 써가며 주접을 떤다. 이러니까 '한국 갔다 오더니 입만 살아서 왔다'는 소리를 듣는 거다.

하지만, 얼마 지나면 약발 떨어진다. 오래 못 간다. 다시 영어의 세계로 컴백!

그러나, 미국인들 앞에선 또 다른 얘기다.

이름은 외국이름인데 주소는 미국이다보니 외국인(International)인지 내국인(Domestic)인지 헷갈려 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수고를 한 적도 있다.

한번은 아무개 이벤트에 가서 이러저러한 얘기를 했더니 International인지 Domestic인지를 물었다. Domestic이라고 답했더니 한쪽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시키는대로 그쪽으로 갔다. 그런데, 그쪽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내 이름을 슬쩍 보더니 '인터내셔널은 저쪽'이라는 거다. 이때만 해도 그런가부다 하고 순순히 인터내셔널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인터내셔널 데스크에 도착하자 명함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명함을 줬더니 '주소가 미국이네' 하는 거다. 설마 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메스틱은 저쪽으로 가라'는 거다!

이런 비슷한 경우를 심심치 않게 당하다 보니 새로운 단어를 하나 만들게 됐다: INTERMESTIC. International과 Domestic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씨댕들, 다 덤벼!

직원: Domestic or International?
나: Intermestic.
직원: What?
나: I said Intermestic.
직원: Wha...?
나: F-you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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