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적지를 탐험하는 판타지 어드벤쳐 영화는 80년대를 끝으로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리처드 챔벌레인 주연의 앨런 쿼터메인 시리즈 등 80년대에 성행했던 탐험영화가 90년대 들어서면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는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어드벤쳐 영화를 더이상 만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터프한 탐험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판타지 어드벤쳐 영화를 더이상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헐리우드가 전부는 아니다. 영화로 만들지 않는다면 비디오게임으로 만들면 되니까.
그렇다. 80년대가 탐험영화의 시대였다면 90년대는 탐험 비디오게임의 시대였다.
탐험 비디오게임의 시대를 이끈 타이틀은 EIDOS의 3인칭 시점 액션/어드벤쳐 게임 시리즈 '툼 레이더(Tomb Raider)'.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던 어드벤쳐 게임 '툼 레이더'는 90년대 중/후반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잠깐!
'툼 레이더' 시리즈의 주인공은 '미사일 가슴'으로 유명한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 아니냐고?
맞다. 찔릴 것 같던 '원뿔 가슴'에서 '핵탄두 가슴'으로 천천히 발전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맛이 괜찮았던 바로 그 게임 시리즈다.
사실, '툼 레이더' 개발팀이 처음부터 여자 주인공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인디아나 존스를 연상시키는 남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려다가 지나치게 인디아나 존스와 비슷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자 캐릭터로 바꾸면서 탄생한 게 라라 크로프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영화에서 비디오게임으로 바뀌긴 했지만 '툼 레이더' 시리즈 덕분에 '고대 유적을 탐험하는 고고학자의 어드벤쳐' 포뮬라가 90년대에도 인기를 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툼 레이더' 비디오게임의 인기가 한창이던 90년대말 왠지 모르게 낯익어 보이는 영화가 하나 나왔다. 브렌단 프레이저(Brendan Frazer) 주연의 어드벤쳐 영화 '미이라(The Mummy)'다.
'툼 레이더'와 마찬가지로 '미이라' 역시 제목만 봐도 영화의 성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헐리우드도 '무덤파기'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리아'의 스토리라인은 매우 단순했다. 사악한 미이라가 부활하자 주인공 일행이 이들을 쳐부순다는 게 전부였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 나온 비슷한 쟝르의 작품들과 겹치는 부분도 많았다.
'미이라'의 시대 배경이 30년대인 것은 아무래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영향으로 보였다. 30년대에 제작된 클래식 '미이라' 영화를 느슨하게 리메이크했기 때문이라고 둘러대면 할 말 없지만 30년대 보다는 80년대와 가깝다 보니 인디아나 존스가 먼저 생각난 것 같다.
주인공, 릭 오코넬(브랜던 프레이저)이 쌍권총을 좋아한다는 것은 라라 크로프트의 영향으로 보였지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겠지 뭐...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기대이상의 흥행성공을 거두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2008년 세 번째 '미이라' 영화가 개봉했다. 제목은 'The Mummy: Tomb of the Dragon Emperor)'.
이번엔 30년대가 아니라 2차대전이 끝난 이후의 40년대로 시대가 바뀌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릭과 이블린 부부는 은퇴한 뒤 대저택에서 생활하고, 아들 알렉스가 고대 유적을 탐사한다며 설치고 다닌다.
하지만, 마이너적인 몇몇 차이점들을 제외하곤 이전 시리즈의 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없다. 저주에서 풀린 미이라가 또 돌아다니고 릭의 일행이 이들을 또 퇴치한다는 스토리는 변함없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 이번엔 중국 미이라가 말썽을 부린다는 것이다.
일단, 부제가 '용의 황제의 무덤(Tomb of the Dragon Emperor)'인 것만 보더라도 이번 영화의 배경이 중국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미이라' 시리즈가 이집트를 찍고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고대 중국를 배경으로 했다는 게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릭과 이블린이 생활하는 영국의 화려한 저택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바로 '툼 레이더 2(Tomb Raider II)'였다. 고대 중국의 전설, 왕국들간의 전투, 용, 그리고 미스테리한 단검, 라라 크로프트의 대저택 등 '미이라 3'와 겹치는 점이 많아 보였다.
물론, 올림픽 중계방송을 하는 NBC의 자매회사, 유니버설 픽쳐스가 중국에서 열리는 2008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영화를 준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미이라 3'의 배경이 중국이고, 고대 중국의 유적지 발굴과 관련된 스토리라는 것을 듣자마자 '툼 레이더 2'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아무래도 '올림픽' 보다 '라라 크로프트'가 더 섹시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미이라 3'가 노골적으로 따라한 것은 '툼 레이더 2'가 아니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였다.
인디아나 존스와 툼 레이더 시리즈를 섞으면 '미이라' 시리즈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미이라 3'는 아예 대놓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베낀 것처럼 보였다.
하나씩 집어낼 생각은 없지만 샹하이(인디아나 존스 2), 흰색 턱시도(인디아나 존스 2), 히말라야(인디아나 존스 2), 고대의 힘을 빌어 세계를 제패하려는 군사집단(인디아나 존스 1 & 3), 아버지와 아들(인디아나 존스 3),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와이프(인디아나 존스 4),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는 물(인디아나 존스 3), 모터싸이클 체이스(인디아나 존스 3) 등 한 두개가 아니다.
그렇다면 '미이라 3'는 참신한 아이디어와는 거리가 먼 영화라는 의미?
그렇다. '미이라 3'는 무언가 새롭고 참신한 것을 찾는 사람들에겐 '아니올시다 무비'다. '미이라' 시리즈가 원래 독창적이고 새로운 것과는 거리가 있는 만큼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이라 3'는 '비슷한 쟝르다 보니 얼떨결에 비슷비슷해진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을 죽 엮어놨다고 해서 무조건 재미없는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인디아나 존스 4'와 같은 해에 개봉한 만큼 대놓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모방하면서 한번 웃겨보겠다는 게 그다지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디아나 존스 4'보다 '미이라 3'를 더 재미있게 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인디아나 존스 4'가 3억불 이상의 흥행수입을 기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클래식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대한 향수 덕분이라고 해야 옳다. 반면, '미이라 3'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주섬주섬 엮어놓은 게 전부처럼 보이긴 했어도 '인디아나 존스 4'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스토리도 뻔했고 유머도 제대로 안 통했지만 CGI 특수효과와 액션씬은 '미이라 3'가 더 볼만 했다.
게다가, '역대 가장 터프한 본드걸'로 기록된 양자경까지 나왔다니까!
한번 본드걸이 됐으면 영원히 본드걸로 남는데 양자경은 영원한 것을 좋아하는 듯 하다. '미리아 3'에서도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않는 마법사로 나오더라.
그렇다고 거슬리는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릭(브랜던 프레이저)의 와이프 이블린으로 레이첼 와이즈(Rachel Weisz) 대신 마리아 벨로(Maria Bello)로 교체한 것을 제일 먼저 꼽지 않을 수 없다. 교체이유가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미이라' 시리즈라고 하면 브랜던 프레이저와 레이철 와이즈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레이첼이 출연을 못하게 됐다면 이블린을 영화에서 빼는 게 옳았다.
그렇다고 마리아 벨로가 레이첼 와이즈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블린역을 마리아 벨로로 교체하는 것 보다 영화에서 빼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란 게 전부다.
악역으로 나온 이연걸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연걸이 아무리 험악한 표정을 지어도 이 양반은 악역엔 절대로 안 어울리기 때문이다. 물론, 선한 외모와 달리 성격이 매우 포악하고 거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이라 3'와 같은 판타지 영화에선 한눈에 봐도 악당처럼 보이는 배우가 악역을 맡는 게 보기에 편하다.
그래도, 이연걸과 양자경이 주먹질, 발길질 하면서 날아다니는 걸 보니 옛생각이 나긴 하더라.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이라 3'에서 실망한 것은 유머다.
생각했던 만큼 유머가 풍부하지 않았다. 코믹한 부분들이 꽤 있었지만 워낙 아동틱한 유머라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고 해야 정확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쪽이 맞든 간에 기대했던 만큼 코믹한 부분이 많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다소 유치하고 썰렁해지는 부분을 브랜던 프레이저 특유의 유머로 두리뭉실 넘어가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유머까지 유치하고 썰렁해질 줄이야!
그렇다고 영화가 지루했다는 것은 아니다. 맘에 드는 것 보다 맘에 들지 않는 게 더 많은 것 같았지만 극장을 나서면서 영화 도중에 지루했다거나 실망스러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생각했던 만큼 재미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흉악하지도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미이라 3'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영화였지만 그런대로 볼만 했다. 아주 재미있게 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도 멍하니 시간 잘 보냈다는 생각은 든다. 멍하니 시간 잘 보내고 싶어서 이런 영화 보는 거니까 제 역할을 그런대로 한 셈이다.
아주 잘 만든 어드벤쳐 영화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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