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일 금요일

다니엘 크레이그의 '세련된 본드'를 보고싶다

'카지노 로얄'에서 보여준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매우 거칠었다. 갓 00 에이전트가 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기 때문에 헤어스타일에서 부터 여러모로 세련되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가 보여준 거칠고 투박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점잖고 세련된 스파이가 되기 이전의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지노 로얄'에서의 모습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카지노 로얄'의 얘기다.

문제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두 번째 007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다.

'콴텀 오브 솔래스'의 스토리가 '카지노 로얄'의 2분 뒤 부터 시작하는 만큼 이번 제임스 본드도 전편과 마찬가지로 경험이 부족한 어설픈 00 에이전트다. 영화는 2년만에 나오지만 영화상에선 2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크게 달라진 제임스 본드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결국,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도 전편과 다름 없는 거칠고 투박한 제임스 본드를 또 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애송이 시절 제임스 본드를 보여주는 건 한번이면 충분했다는 생각이지만 어쩌랴!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의 모습

그렇다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여자만 보면 술잔을 들고 따라 붙는 영화버전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돌아오지 않는 것 하나 만큼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혈기왕성한 것 빼면 아무 것도 없는 '애송이 007'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위트 넘치는 플레이보이 캐릭터의 이미지를 지우고 플레밍 원작의 점잖고 진지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되살려놓을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설익고 거친 제임스 본드만 보여주고 있는 것.

제임스 본드가 젊고 거칠어졌다는 것 까지는 알겠는데 이상하게도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는 이게 전부인 것 처럼 보인다. '젊고 터프한 본드 캐릭터'는 영화의 일부일 뿐이어야 하는데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는 젠틀맨 에이전트의 세련된 부분을 완전히 제쳐놓고 치고, 박고, 쏘는 게 전부인 평범한 액션영화가 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는 007 영화 홍보 투어를 할 때가 되면 '올바른 제임스 본드 스타일'로 변신한다. 영화에선 헤어스타일 부터 복장까지 제임스 본드 답지 않게 하고 나오다가도 홍보하러 다닐 때는 제임스 본드로 '후다닥' 변신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본드팬들은 '영화 홍보할 땐 헤어스타일 부터 보다 제임스 본드틱하게 하고 다닌다'고 한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영화에서보다 홍보하러 다닐 때가 더 제임스 본드 답다'는 우스겟 소리도 한다.


▲올바른 제임스 본드의 모습

그렇다면 다니엘 크레이그는 왜 점잖고 진지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는 것일까?

로저 무어처럼 위트와 유머 넘치는 플레이보이는 아니더라도 점잖고 진지한 젠틀맨 에이전트를 연기하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왜 크레이그의 007 영화는 두 편 연달아 '난장판 본드 시리즈'일까?

다니엘 크레이그가 액션배우인 것도 아닌데 그의 스타일에 맞는 진지하고 클래식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수 있게 해주지 왜 자꾸 날뛰게 만드는 것일까?

제임스 본드가 애송이 티를 벗으면 액션비중이 떨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젠틀맨 에이전트가 되기 전의 애송이 본드가 난장판 부리는 설정이 아니면 젊고 패기 넘치는 제임스 본드를 묘사할 자신이 없는 것일까?

제임스 본드가 성숙하고 세련되어지면 가젯 사용하는 '판타지 007'이 되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젊음'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없다.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는 배우가 젊어지면 영화도 자연스럽게 젊고 패기 넘쳐 보이게 되는데 굳이 '애송이 모드'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크레이그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애송이 본드' 시리즈를 따로 시작하지 않았겠냐는 생각도 든다. 혹시 '카지노 로얄 트릴로지'를 염두에 두고 시리즈를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홍보하러 다닐 때만 '미스터 본드' 모드

그렇다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가 'WRONG WAY'로 가는 것일까?

그런 지도 모른다.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007 시리즈는 계속해서 제임스 본드 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엉거주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제임스 본드는 변함없이 햇내기 00 에이전트이고 스토리도 이러한 본드 캐릭터에 맞추는 바람에 원작 스타일도 아니고 영화 스타일도 아닌 어중간한 스타일이 됐다.

본드팬들은 '카지노 로얄'이 원작 스타일로 되돌아갔다는 데 의미를 두는 것에 비해 007 제작팀은 젊은 본드의 화끈한 액션이 관객들에게 먹혀들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원작 스타일로 슬쩍 위장한 게 전부일 뿐인 액션 스릴러 영화를 내놔도 통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제목을 플레밍의 숏 스토리에서 따오고, 영화 스타일을 사실적이고 암울하게 만들면 원작 생색내기는 충분히 했으니까 나머지는 액션으로 덮어버리면 된다는 식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콴텀 오브 솔래스'가 재미 없어 보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최근에 공개된 트레일러를 보면 꽤 근사한 액션영화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007 영화로써 얼마나 만족스러운 수준이 될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액션이 화끈하다고, 사실적이라고 무조건 잘 만든 007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제임스 본드다운가'다.

본드팬들은 다니엘 크레이그가 우스꽝스럽게 망가진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정상으로 돌려놓기를 기대하고 있다. 가벼운 농담이나 던지면서 여자 꽁무니나 쫓다가 악당이 공격하면 말도 안되는 가젯으로 물리치던 코믹북 제임스 본드를 플레밍 원작의 진지한 제임스 본드로 되돌려놓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때문에, 혈기왕성한 제임스 본드가 치고 박고 때려부수는 것만으론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수사관처럼 보이는 진지한 젠틀맨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총질, 주먹질만 남았으니 부족해 보이는 게 당연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의 엉터리 007보단 낫지 않냐고?

물론이다.

하지만, 정 반대의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007도 엉터리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댓글 4개 :

  1. 저도 동감인게....

    카지노 로얄은 더 긴장감 있고 진지하게 접근해서 큰 사랑을 받은 것 같은데, 왠지 제작진은 피튀기는 액션으로 사랑을 받은 것으로 뭔가 '오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예전에 카지노 로얄 보고 느꼈던 것이... 다음작품 잘못 나오면 다니엘 크레이그도 왠지 오래 못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지 라젠비나 티모시 달튼 형님들 처럼....

    팬들은 다시 뭔가 느물느물 하면서 세련된 본드를 원할텐데, 이건 죄다 때려부시는 액션스타 본드로 갈 것 같으니 말이지요...ㅡㅡ;

    그런 액션스타를 보려고 본드 영화를 찾는게 아닐텐데 말이지요. 그런 액션은 다른 영화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 말이지요.

    걱정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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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007 시리즈가 워낙 얌전(?)했기 때문에 팬들로부터 '액션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만은 사실인데요, 그렇다고 '다이하드'처럼 만들라는 건 아니었죠...ㅡㅡ;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적들을 제압하는 제임스 본드는 곤란하니까 진지해질 때는 진지해지고 치고 받을 때는 밀리지 않고 치고받는다는 정도, 다시 말하자면 캐릭터의 성격과 스타일만을 조금 바꿨으면 하는 거였는데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 캐릭터는 좀 너무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탤론, 슈왈츠네거, 브루스 윌리스 스타일의 '액션히어로 무비'를 만들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ㅡㅡ;

    본드가 플레이보이가 아니다, 진지하다, 차갑다, 영화에 가젯이 나오지 않는다, 세계지배를 노린다는 황당한 스토리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까지는 좋습니다. 제임스 본드도 맞으면 피를 흘린다는 것도 좋은데요, '점잖은 젠틀맨 수사관'이 아니라 '거칠기만 한 강력계 형사' 캐릭터처럼 보이면 곤란해지죠. 제임스 본드는 더티해리도 아니고 특수부대원도 아닌데 영화가 진지하고 사실적으로 변했다고 해서 와장창쿵창하는 액션이 전부인 영화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전 사실 '콴텀...' 트레일러를 보고 좀 실망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은 것 같습니다...ㅡㅡ; 007 영화 트레일러로썬 아무래도 생뚱맞아 보였지만 액션/스릴러로써는 그럴싸해 보였는데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007 다움'이 부족해 보이는 트레일러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게 좀...

    그렇다고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세련된 본드, 다시 말하자면 성숙한 본드를 보고싶다는 것이지 무어, 브로스난 시절로 돌아가는 걸 원하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제작진이 크레이그의 007 영화를 계속해서 '애송이 본드 시리즈'로 만들면 미래가 없다고 봅니다. '카지노 로얄' 시절에서 졸업하고 그 다음 레벨로 올라간 베테랑 본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크레이그는 - 몇 편이 될지 모르지만 - '애송이 본드 시리즈'를 끝으로 떠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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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액션으로 몰고만 간다면 굳이 007 시리즈를 사람들이 선택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원작 소설에서 벗어났던, 변형이 되었던 간에 제임브 본드 캐릭터는 어쨌던 어느정도 굳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보는데요. 소설에서의 성격이 사랑받을수도 있고, 로저 무어가 재창조한 성격도 사랑받을 수 있고요. 이 두가지로 성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건 뭐 액숀스타 컨셉은.....

    그냥 킬링타임 영화팬들을 모을수는 있어도 정작 007 팬들을 떠나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숀 코네리의 약간 '양아치 스러움' 캐릭터, 그리고 로저 무어의 '귀족적인 느끼함과 노련함' 등은 분명 비슷한 부류의 영화에서도 찾기 힘든 워낙 독특한 모습이니까요.

    카지노 로얄은 워낙 좌충우돌하는 풋내기 '살인면허' 요원의 이야기 였기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그렇게 지속된다면.... 007 팬들이 먼저 받아들이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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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터프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갖춘 캐릭터가 돼야 한다는 데 동감입니다. 코네리는 이게 가능했지만 그 이후 배우들은 불가능했죠. 바로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코네리가 최고의 제임스 본드로 불린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진지한 캐릭터에 어울리는 배우죠. 크레이그와 가벼운 유머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진지한 JB를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크레이그가 무어 흉내를 내면 정말 큰일 나죠...ㅡㅡ;

    크레이그에게 '숀 코네리'나 '로저 무어'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가젯천지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지만 크레이그와 어울리면서도 여전히 007 영화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보시절 본드가 다 때려부수고 다니는 것만으론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완성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제는 007 제작진이 본드의 초보시절에 미련을 두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뭐냐는 건데요, 언제쯤 크레이그가 초보딱지를 뗀 노련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게 될지 궁금해 집니다. 무어, 브로스난과는 다른 크레이그 버전의 진지하고 노련한 제임스 본드를 보고싶거든요.

    크레이그는 바로 여기서 성공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그의 차갑고 진지한 스타일로 노련한 에이전트가 된 제임스 본드를 멋지게 연기하는 걸 보고싶습니다. 로저 무어처럼 여유있는 본드가 되는 걸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또 그렇게 돼서도 않된다고 생각하지만 어설프던 초보시절에서 벗어나 안정된 베테랑 본드의 모습을 보고싶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크레이그의 '살인면허'는 오래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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