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레젠비가 단 한 편을 끝으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떠나자 숀 코네리가 7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1971)'로 다시 돌아왔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 제임스 본드는 리딩 본드걸 티파니 케이스와 두 차례 베드타임을 갖는다.
첫 번째는 베드씬으로의 연결이 약간 억지스러운 감이 있지만 그런대로 넘어갈 만 하다.
두 번째 베드씬은 첫 번째보다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티파니 케이스를 연기한 미국 여배우, 질 세인트 존의 '공사'한 가슴이 드러나는 게 흠이라면 흠.
007 시리즈는 로저 무어가 8탄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1973)'부터 새로운 제임스 본드가 되면서 크게 변하기 시작한다. 제임스 본드 영화라기 보다는 로저 무어 주연의 코메디 영화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무어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죽느냐 사느냐' 초반에서부터 감지된다. 이탈리안 에이전트 카루소와 베드타임을 보내던 본드가 미션 브리핑을 위해 갑작스레 집으로 찾아온 M을 맞이하면서 난감해 하는 씬은 007 시리즈라기 보다는 로맨틱 코메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온 베드씬과 코믹한 장면으로 '로저 무어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 캐릭터는 익살꾼 플레이보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줬지만 이런 식의 유머는 007 시리즈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로지 카버가 더블 에이전트라는 것을 알면서도 베드타임을 먼저 가진 이후에 다그치는 것도 '베드타임 먼저, 질문은 나중에'라는 로저 무어식 제임스 본드 스타일에 맞춘 결과다. 상식적으로 따지면 추궁을 먼저 하는 게 맞겠지만 로저 무어의 익살꾼 플레이보이 제임스 본드는 거꾸로 한 것.
그래도 이렇게 해서 러브씬을 싱겁게 하나 추가했으니 목적은 달성한 듯.
'죽느냐 사느냐'의 세 번째 베드씬은 본드와 솔리테어의 베드씬이다.
여기서 한가지 어이없는 부분은 리딩 본드걸 솔리테어가 '처녀성을 잃으면 타로카드를 읽는 능력을 잃게 된다'는 설정이다. 원작에서의 솔리테어는 소설 초-중반에서부터 본드와 키스를 주고받지만 '처녀성을 잃으면 능력을 잃는다'는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에선 솔리테어의 처녀성을 이용해 묘한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9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1974)'는 전작보다 더욱 코메디 영화에 가까워 졌다. 살인청부업자 스카라망가의 애인, 안드레아가 007을 알고있을 정도로 제임스 본드가 유명한 '시크릿 에이전트'로 나온다는 것 부터 머리를 긁적이게 한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 나오는 베드씬도 로저 무어의 익살꾼 플레이보이 이미지에 맞춰 코믹해 졌다. 웃다가 키스하고, 농담하다가 또 키스하는 것을 반복하는 게 전부다.
10탄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1977)'는 로저 무어의 익살꾼 플레이보이 캐릭터와 '썬더볼', '두번 산다' 시절의 SF 스타일 어드벤쳐가 한데 모인 영화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제임스 본드가 본드걸과 뒹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분위기가 한창일 때 본부의 호출을 받고 출동하는 미스터 본드!
에로틱하지도, 웃기지도 않고 그저 바보스럽게 보일 뿐이지만 본드가 베드타임 도중에 호출받는 설정은 007 시리즈에 자주 사용되었다.
이런 장면을 넣는다고 제임스 본드가 '수퍼 플레이보이'라도 되는 것일까?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두 번째 베드씬은 비록 짧긴 하지만 기차에서 강철이빨을 가진 거한, 죠스를 물리친 이후 이어지는 본드와 리딩 본드걸 안냐 아마소바의 베드씬이다.
안냐를 연기한 미국 여배우 바바라 바크의 연기가 신통치 않은 게 흠이지만 격투씬에서 베드씬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베드씬은 재앙 수준이다. 본드와 안냐가 파괴되는 스트롬버그의 해양기지에서 비상탈출용 캡슐을 이용해 탈출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베드씬으로 연결되면서 유치해 졌다. M의 일행이 본드와 안냐가 탄 캡슐 내부를 들여다 보고 놀라는 장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엔딩인 만큼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코믹하기보다 유치하고 바보스럽게 보였다.
"Keeping the British end up"이라는 아주 유명한 대사를 남기긴 했지만...
11탄 '문레이커(Moonraker/1979)'에서는 전작에서 한 술 더 떠 제임스 본드가 우주로 날아간다.
'문레이커'의 베드씬은 로맨틱, 에로틱, 센슈얼 같은 것을 떠나 야구선수가 싸이클 히트(Cycle Hit)에 도전하는 것과 비교하는 게 옳다. 제임스 본드가 영화에 나온 모든 본드걸과 적어도 한 번씩은 베드타임을 갖기 때문이다.
코린과 홀리 굳헤드와의 베드씬은 스토리와 그런대로 관계가 있지만 브라질에서 만난 여자 에이전트, 마뉴엘라와는 5시간을 보내기 위한 게 전부다.
끈을 푸는 것 까지가 전부인 만큼 베드씬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삼바'라...
유머도 좋다지만 이런 건 너무 싱겁지 않수?
마지막 홈런은 스페이스 셔틀에서의 베드씬이다.
하지만, 장소가 우주라는 것을 제외하면 아이디어는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엔딩과 다를 게 없다. M이 본의 아니게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어처구니 없어 하고, '유명한 대사'가 마지막에 나오는 것도 전작의 엔딩과 같은 패턴이다.
그렇다면 80년대에 만들어진 제임스 본드 영화는 어떨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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