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탄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1981)'는 로저 무어의 7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들과 달리 이언 플레밍의 원작을 잘 살린 영화다. 소설과 영화내용을 복잡하게 비교할 것 없이 '유어 아이스 온리'에는 터무니 없는 플롯과 말도 안되는 가젯이 안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도 이전보다 많이 진지해 졌다. 6~70년대 로맨틱 코메디 영화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 한 캐릭터에서 벗어나 진지하고 노련해진 중년의 스파이로 변신한 것.
여기에 맞춰 베드씬도 달라졌다. '흰 시트를 덮고 머리만 내밀고 있는 베드씬'이 사라진 것. 007 시리즈에서 지긋지긋할 만큼 반복되어 나오던 베드씬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유어 아이스 온리'가 로맨틱한 무드와 담을 쌓은 것은 아니다. 제임스 본드가 여자와 담을 쌓은 것도 물론 아니다. '유어 아이스 온리'에도 멋진 본드걸들이 여럿 나오며, 제임스 본드와 로맨틱한 시간을 함께 보내기 때문이다.
흰 시트를 덮고 머리만 내밀고 있는 진부한 베드씬이 꼭 나와야만 분위기가 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공포(?)의 침대 시트'가 안 나오는 건 아니다. 아버지뻘 되는 제임스 본드에 푹 빠진 피겨 스케이터 비비가 본드의 침대 위에 시트를 덮고 머리만 내밀고 있는 '베드씬'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전엔 본드가 여자들을 유혹하느라 바빴는데 '유어 아이스 온리'에선 능글능글한 제임스 본드를 능가하는 뻔뻔한(?) 지지배가 미스터 본드를 절절매게 만든다.
그 결과?
미스터 본드한테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는다...^^;
그러나, 13탄 '옥토퍼시(Octopussy/1983)'는 또다시 코메디 어드벤쳐로 돌아갔다. 70년대 영화 만큼 심하진 않았지만 실없는 유머와 유들유들한 플레이보이 매너 등 로저 무어 제임스 본드 영화의 전형적인 요소들이 거의 모두 되돌아왔다.
베드씬도 이전의 007 시리즈 스타일로 되돌아갔다. '옥토퍼시'의 베드씬에선 본드와 본드걸이 벗어놓은 옷가지들에서 침대쪽으로 카메라가 천천히 회전하는데, 이것 또한 007 시리즈 베드씬에 여러 차례 사용되었던 촬영방법이다.
'옥토퍼시'엔 베드씬이 2차례 나오는데, 2번 모두 베드씬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왠지 베드씬이 나올 때가 된 것 같다 싶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베드씬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식이다. 'Typical James Bond Style'이다.
침대 시트 아래서 뒹구는 지긋지긋한 '007 베드씬'이 또 돌아왔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로저 무어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인 14탄 '뷰투어킬(A View to A Kill/1985)'에서도 제임스 본드의 본임무는 '문레이커'에서 처럼 등장하는 본드걸 전원과 베드타임을 갖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익사이팅한 액션씬은 고령인 관계로 힘들게 되었으니 베드씬으로 때우려 한 듯 하다.
본드와 메이데이의 베드씬은 억지로 끼워넣은 티가 난다.
'뷰투어킬'의 러브씬은 침실에서 욕실로 이동하기도 한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 엔딩처럼 '뷰투어킬'도 본드와 스테이시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Q에 의해 포착되면서 끝난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티모시 달튼의 첫 영화인 15탄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1987)'는 로저 무어 시절과 여러모로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미사일이 나가는 본드카가 리턴한 것만 놓고 보면 '나를 사랑한 스파이' 시절로 회귀한 것 같지만 티모시 달튼의 제임스 본드는 매우 차분하고 진지한 캐릭터라는 데서 큰 차이가 난다. 어떻게 보면 유머가 매말라 보이는 제임스 본드 같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실없는 조크와 유머가 007 시리즈에서 많이 사라진 것을 반기는 본드팬들도 많았다.
제임스 본드가 진지해졌기 때문일까?
'리빙 데이라이트'에는 007 시리즈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던 '침대 시트 베드씬'이 나오지 않는다. 본드걸도 카라 밀로비 딱 하나가 전부다.
티모시 달튼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16탄 '라이센스 투 킬(License To Kill/1989)'은 지금까지 나온 007 시리즈 중에서 가장 과격하고 잔혹한 영화로 꼽힌다.
영화 분위기가 매우 어두침침하고 과격해진 때문일까?
'라이센스 투 킬'에도 '침대 시트 베드씬'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는 CIA 에이전트 팸과 마약왕 산체스의 애인인 루피가 본드걸로 나오지만 제임스 본드는 이들과 침대 시트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는다. '라이센스 투 킬'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침대 위에서 서로 키스를 하는 게 전부다.
티모시 달튼은 '침대 시트 베드씬'을 단 한 번도 찍지 않은 유일한 제임스 본드다. 2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달튼의 영화는 베드씬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90년대에 만들어진 제임스 본드 영화는 어떨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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