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4일 수요일

이스트우드 빼곤 볼 것 없는 '그랜 토리노'

뭐라고? 이스트우드 아저씨가 레이싱 게임에 나온다고?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랜 터리스모(Gran Turismo)'가 아니라 '그랜 토리노(Gran Torino)'더라.

포스터에 자동차까지 있다 보니 그만 헷갈렸지 뭐유?


▲'그랜 토리노(Gran Torino)'

아니 그런데 총은 왜 들고 있냐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프가이, 월트 코왈스키로 나오기 때문이다.

월트 코왈스키는 꽤 흥미로운 캐릭터다. 부인과 사별하고 친아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 디트로이트의 오래 된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월트는 요즘 젊은이들을 탐탁치 않게 여기며, 타인종에 대한 편견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코믹하게 보일 뿐 밉게 보이지는 않는다. 인상을 찌푸리며 인종비하적인 표현과 말을 서슴지 않아도 불쾌감보다 웃음이 먼저 솟구치게 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월트의 이웃으로 몽족(Hmong)이 이사오면서 월트를 미치게 만든다. 심한 인종편견을 갖고있는데 바로 옆집에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이사왔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겠지?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그치지 않는다. 이웃집 몽족 소년 타오가 몽족들로 구성된 갱단의 지시를 받고 월트의 그랜 토리노 자동차를 훔치려고 한 것! 총을 들고다니며 언제나 전투모드인 퇴역군인의 자동차를 훔치려 했으니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고른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타오는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게 되고, 월트는 이웃집에 단단히 열이 받는다. 아시아계라는 것도 꼴 보기 싫은데 도둑질까지 시도했으니 월트의 기분이 어떨지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 옆집 할아버지는 살벌해~!"

그러나 월트는 타오와 그의 누나 수를 얼떨결에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타오 가족의 영웅이 되고, 그 이후부턴 음식걱정 안 하고 살 수 있게 된다. 처음엔 심하게 튕기지만 맥주와 음식에 넘어가고 만다. 시간이 지나면서 월트는 수의 가족과 친해지고, 자동차를 훔치려 했던 타오도 용서하고 그를 '사나이로 만들겠다'며 친아들처럼 데리고 다닌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몽족으로 구성된 갱단. 녀석들이 타오를 놔두지 않고 계속해서 갱에 들어올 것을 요구하며 괴롭히기 때문이다.

이를 보다 못한 '노병' 월트는 문제아 녀석들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기로 하는데...


▲월트와 타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포스터나 트레일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바탕 총격전을 벌이는 액션영화로 오해하기 딱 알맞게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그쪽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랜 토리노'는 액션영화가 아니다. 월트가 풍기는 분위기가 '더티 해리(Dirty Harry)' 시리즈의 해리 캘러한과 비슷해 보이고, 그가 집앞에 앉아 담배를 피며 맥주를 마시는 모습도 시대만 다를 뿐 이스트우드가 출연한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거기까지가 전부다. '그랜 토리노'는 평범한 드라마일 뿐 "Go ahead. Make my Day."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다.


▲디트로이트 카우보이?

그러나 이 영화의 문제는 쟝르가 아니라 출연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영화에 출연한 몽족 출신 배우 거의 모두가 배우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단지 몽족 배우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베테랑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제외한 나머지 출연배우 전원의 연기력이 매우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스트우드를 제외하곤 배우답게 보이는 배우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스트우드가 아무리 거물급 헐리우드 스타라고 해도 그 혼자서 연기력이 꽝인 나머지 배우들의 문제까지 커버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인종편견이 심하던 백인 노인이 미국서 방황하는 이민자 2세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갱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는 '눈에 보이는 스토리'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구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인이 영화에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불만 투성이의 노인이 계속 궁시렁거리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영화도 많다. 또한, 아시안-아메리칸이 나오는 영화 중에 힙합과 스트릿갱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도 쌔고 쌨다. 이렇게 따져 보면 '그랜 토리노'가 'STEREOTYPE'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도 감동적인 부분이 있지 않냐고?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빤히 보이는 데다 조연배우들의 어설픈 연기까지 겹치면서 영화에 몰입이 전혀 안 되는데 감동을 느낄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라.

그래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지 않냐고?

물론이다. '영원한 터프가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번에도 낯익은 터프가이역을 연기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이번엔 코믹연기까지 곁들였으니 이스트우드의 연기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스트우드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가 수준이하였으니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빼면 남는 게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랜 토리노'를 재미있게 볼 수 없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를 오랜만에 봤다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할 정도로 '이스트우드빠'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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