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크레이그가 하지 말아야 할 것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누군지 잘 모르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 "본드, 제임스 본드"가 된 덕분이다. 크레이그는 출연료가 가장 높은 영국배우가 되었다고 한다.

일부 영화 평론가들은 다니엘 크레이그를 '역대 최고의 제임스 본드'로 평했다. 그렇다. 숀 코네리(Sean Connery)보다도 나은 제임스 본드라는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아주 훌륭한 제임스 본드인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숀 코네리를 능가할 만 한가는 조금 더 두고봐야 할 듯 하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숀 코네리와 자주 비교되는 이유는 코네리 이후 터프해 보이는 외모의 배우가 제임스 본드를 맡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지 레젠비는 패션모델이었고, 로저 무어는 코메디언이었으며, 티모시 달튼은 셰익스피어 배우였고, 피어스 브로스난은 여성용 멜로영화 배우였다는 점을 되짚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 IS 제임스 본드

그렇다면 다니엘 크레이그는 완벽한 제임스 본드일까?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 2편을 보고 난 이후의 소감은 'VERY GOOD'이다. 그러나 'PERPECT'는 아니다. 그의 두 번 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점수를 많이 깎아먹었기 때문이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과 줄거리가 이어진다는 것부터 의심스러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콴텀 오브 솔래스'는 전편에 비해 무성의하게 만든 티가 났다. '카지노 로얄'의 성공을 이용해 두 번 째 영화를 날로 먹고자 한 게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007 제작진이 '콴텀 오브 솔래스'의 줄거리를 '카지노 로얄'과 연결시키면서 크레이그는 보다 세련되고 노련해진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보여줄 기회를 갖지 못했다. 007 시리즈에 오랫동안 결여되었던 '젊음'과 '터프함'을 되살린 것은 좋았는데 젠틀맨 에이전트로써의 여유로움이 아직 부족했다. 젊고 거칠면서도 말수가 적고 진지한 젠틀맨 캐릭터를 보여주길 기대했는데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본드23'에선 이러한 제임스 본드를 보여주리라 기대해 본다.

그런데 다니엘 크레이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소리 지르며 언쟁을 벌이는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2008년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와 '디파이언스(Defiance)' 모두 크레이그가 목소리를 높이며 언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보트체이스씬에서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와 카밀(올가 쿠릴렌코)가 큰 목소리로 말다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콴텀 오브 솔래스' 보드체이스씬

말다툼은 아니지만 비행기 추격씬에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나온다.

▲'콴텀 오브 솔래스'의 비행기 추격씬

'디파이언스'에선 다른 난민들과 갈등이 벌어져 말다툼을 벌이는 씬에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다.

▲'디파이언스'의 난민들과의 트러블 씬

큰 목소리로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상하게도 다니엘 크레이그에게는 이런 말다툼 씬이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디파이언스'는 그렇다 쳐도 제임스 본드 영화에선 더더욱 어울리지 않았다.

분노를 드러내는 제임스 본드를 보고싶다고 하던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문제는 분노를 표현한 방법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 제임스 본드의 분노는 표정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부부싸움하듯 삿대질 하며 째째거리는 분위기로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제임스 본드는 화가 나더라도 불같이 성질을 내지 않고 감정을 콘트롤하는 캐릭터여야 한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위기에 처해 다급해진 표정만으로 충분하지 혼자서 'C'MON!'을 외치는 건 제임스 본드답지 않다. 쉽게 흥분하는 캐릭터는 제임스 본드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제임스 본드를 초인간적인 '완벽맨'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천하무적 수퍼히어로 이미지를 지우고 'VULNERABILITY'를 늘리면서 스릴과 서스펜스를 배가시키려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가 'COOLNESS'를 잃는 것은 곤란다. 제임스 본드가 질 때도 있고, 고문도 당하고, 죽을 고비에 처하게 된다는 것은 문제될 게 하나도 없지만 소리를 지르고 흥분하는 것은 또다른 얘기다. '콴텀 오브 솔래스' 초반부에 나오는 격투씬에서 본드가 거꾸로 매달린 채 다급히 권총을 집어드는 장면은 전혀 문제될 게 없지만 제임스 본드가 본드걸과 부부싸움을 하듯 고성으로 티격태격하고, 혼자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007 시리즈에서 더이상 보고싶지 않다.

▲거꾸로 매달린 채 다급하게 권총을 집는 본드

'콴텀 오브 솔래스'까지는 제임스 본드가 갓 00 에이전트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인 만큼 이해하고 넘어갈 수는 있다. '카지노 로얄'은 2006년, '콴텀 오브 솔래스'는 2008년에 개봉했으나 두 영화의 줄거리가 이어지는 관계로 영화상에서의 시간차는 몇 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드23'는? '본드23'도 '콴텀 오브 솔래스'와 줄거리가 이어지는 것일까?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어지지 않는다. 계속 이어져서도 안되겠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본드23'는 완전히 새로운 에피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로듀서, 감독, 영화배우의 인터뷰까지 훑어보지 않더라도 '콴텀 오브 솔래스' 영화만 봐도 '카지노 로얄'로 시작한 스토리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건배럴씬이 그 증거 중 하나다.

따라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도 '본드23'에선 약간 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180도 바뀌는 일은 없겠지만 영화의 성격부터 시작해서 제임스 본드 캐릭터도 이전과는 조금씩 차이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성격도 이젠 바뀔 때가 되었고, 다니엘 크레이그도 제임스 본드 역에 노련해 진 만큼 눈에 띄는 변화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디파이언스'에서의 다니엘 크레이그

그렇다. '본드23'에선 다니엘 크레이그의 '노련한 제임스 본드'를 처음으로 볼 수 있게 될 듯 하다. 그러므로 고성으로 말다툼을 하는 'NOT-SO-COOL' 제임스 본드가 '본드23'로 컴백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