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일 월요일

'본드23', 다니엘 크레이그의 '골드핑거'가 돼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007 제작진은 "본드23에 대한 계획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지만 최근들어선 제작준비에 착수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있다.

자, 그렇다면 '본드23'는 어떤 영화가 될까, 아니 되어야만 할까?

가장 중요한 건, 시리얼화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히 이어지는 건 문제될 게 없어도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과 '콴텀 오브 소래스(Quantum of Solace)'처럼 2부작 TV 미니 시리즈로 보이도록 만드는 건 곤란하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제임스 본드 소설도 이런 식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 전편과 줄거리가 이어지더라도 '속편'이 아니라 '새로운 에피소드'였지 전작의 몇 분 뒤부터 줄거리가 바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007 제작진이 트릴로지를 계획한 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지금까지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소개했으니 이젠 Q와 머니페니를 소개할 차례"라고 말한 바 있듯이 제임스 본드가 최초로 에이전트가 되었던 시절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나아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본드23'에서까지 순서를 따져가면서 봐야하냐는 생각에 한심스럽게 들리기도 하지만 반드시 줄거리가 이어지는 속편이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닌 듯 하다. 또한, Q가 007 시리즈로 돌아온다는 것은 가젯들이 돌아온다는 의미도 되는 만큼 '본드23'는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와는 다른 성격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007 시리즈가 '본드23'에서는 다시 이전의 007 시리즈 포뮬라로 돌아갈 예정인 만큼 '본드23는 또다른 새출발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여기서 잠시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제임스 본드였던 60년대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007 시리즈 1탄은 '닥터노(Dr. No)'다. 플레밍의 소설은 스펙터(SPECTRE)라는 범죄조직과 무관한 내용이지만 영화에서는 닥터노를 스펙터의 일원으로 소개했다. 스펙터는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에도 나온다. '위기일발' 역시 플레밍의 소설은 스펙터와는 무관한 내용이지만 007 제작진은 스펙터를 이용해 1탄 '닥터노'와 줄거리가 엉거주춤하게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1탄 '닥터노'에서 제임스 본드의 애인으로 나왔던 실비아 트렌치라는 캐릭터까지 '위기일발'에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잠깐! 왠지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줄거리를 이으려 한 것도 그렇고, 미스터 화이트 등 '카지노 로얄'에 나왔던 캐릭터들이 '콴텀 오브 솔래스'에 다시 나오는 것도 '닥터노', '위기일발'과 비슷하다.

다시 60년대로 돌아가자.

007 시리즈 3탄은 '골드핑거(Goldfinger)'다. 그런데, '골드핑거'는 이전작들과 줄거리가 이어지지 않았고, 1, 2탄에 연달아 등장했던 스펙터도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이젝터 시트(Ejector Seat)가 장치된 아스톤 마틴 DB5가 나왔다. 비밀기지를 파괴하는 내용도 아니고, 냉전시대의 스파이 스릴러도 아닌 대신 '본드카'가 나온 것이다.



일부는 '골드핑거'서부터 '제임스 본드'라는 영화쟝르가 탄생했다고 한다. '골드핑거' 이후에 나온 거의 모든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골드핑거' 포뮬라를 따라한 만큼 틀린 말은 아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 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류작들이 모방한 것도 '골드핑거' 포뮬랴였던 만큼 '골드핑거'를 통해 영화의 한 쟝르가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007 시리즈가 가젯위주의 판타지 어드벤쳐 시리즈로 스타일이 굳은 게 '골드핑거'부터라는 문제점도 있지만 '닥터노', '위기일발'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007 시리즈를 새로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 '본드23'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골드핑거'가 되어야 한다.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를 뒤로 하고 '본드23'부터는 분위기를 확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두 편의 007 시리즈에서 보여준 어둡고 거친 제임스 본드 캐릭터 하나로 계속 밀고나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007 영화 시리즈에선 더욱 그렇다. 한 두 번 정도는 분위기를 전환하는 효과를 볼 수 있어도 세 번, 네 번 계속 반복되면 이에 식상한 팬들로부터 '007 시리즈가 자꾸 왜 이러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게 되어 있다. 스토리부터 비롯해 전체적으로 퀄리티가 높은 액션 스릴러가 나온다면 별 문제 없을 지 모르지만 '콴텀 오브 솔래스'를 본 뒤로는 '아무래도 이쪽 분위기로는 안되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드23'는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와는 분위기가 다른 전통적인 007 시리즈 스타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처럼 지나치게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워지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어야 하겠지만 007 시리즈가 '골드핑거' 포뮬라 쪽으로 다시 이동할 때가 온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분위기를 전환할 때가 된 것이다.

문제는 007 제작팀이 다니엘 크레이그의 '골드핑거'를 성공적으로 만들 준비가 되었냐는 것이다. 끝에서 끝으로 점프하지 않고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데 가젯과 본드카가 나오는 과거의 007 시리즈로 되돌아간다고 줄거리까지 터무니없는 세계정복 이야기까지 되돌아오게 하면 아주 골치아파지기 때문이다.

물론, 007 제작진이 알아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 '골든아이(GoldenEye)'에서 했던 것처럼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고 가정하고 '본드23'를 만든다면 걸작이 나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조준을 잘못했을 때 마다 걸작이 나온 게 80년대 이후 007 시리즈의 역사니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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