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은 골도 많이 터지지 않는 등 그리 재미있는 편이 아닌 월드컵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바꿔놓을 수 있을까?
정답은 '주심이 미치면 된다' 였다.
선수들이 볼거리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심판들이 끼어들어 대신 경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케이스가 6월18일 벌어진 독일과 세르비아전이다. 이 경기의 주심을 맡은 스페인 심판의 문제는 축구경기 주심인지 카지노의 카드딜러인지 헷갈릴 정도로 카드를 좋아했다는 점이다. 별 것 아닌 사소한 반칙에도 옐로카드를 마구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스페인 주심은 전반에만 여러 개의 옐로카드를 꺼내들었고, 이 결과 독일의 스트라이커 클로세가 전반에만 2개의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기까지 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스페인 심판이 얼마나 줄기차게 카드를 꺼내들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가 전반전에 꺼내든 것만 대충 모아봤는데, 이게 전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래 있는 것만으로도 벌써 6개다. 그 중 2개는 클로세의 것이며, 이 바람에 레드카드까지 1개 나왔다.
이 모두가 전반전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주심이 경기초반부터 저렇게 카드를 미친 듯이 뽑아댔으니 경기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포돌스키가 후반에 얻은 패널티 킥을 성공시켰더라면 적어도 비길 수는 있었으므로 독일이 세르비아에 진 이유를 무조건 주심에게서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클로세가 전반에 퇴장당하지 않았더라면 패널티 킥 실축 한 번 한 것으로 승패가 갈릴 정도로 독일이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일이 그런 처지에 놓이도록 만든 주범이 '카드딜러' 스페인 주심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 주심은 미국과 슬로베니아 경기를 맡았던 말리 주심에 비하면 양반이다. 스페인 주심은 카드를 미친 듯이 뽑아대기만 했지 들어간 골을 무효처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슬로베니아 경기를 맡았던 말리 주심은 경기내내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을 반복했다. 오죽 심했으면 ESPN 중계방송 아나운서는 "저 주심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게 보이는 모양"이라고 비꼬았고, 해설자는 "계속해서 미국에 불리한 편파판정을 한다"며 불쾌해 했다.
그러나 말리 심판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후반 막판에 터진 미국의 역전골까지 무효처리한 것이다. 0대2로 뒤진 채 전반을 마친 미국이 후반들어 2골을 내리 넣더니 세 번 째 역전골까지 터뜨렸지만 말리 주심은 마지막 골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식축구같았더라면 비디오 리뷰 챌린지라도 했겠지만 축구라는 스포츠에선 주심이 멍멍이 수준의 시력을 가졌더라도 그가 한 번 'No'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ESPN 중계방송 해설자는 "리플레이를 봐도 반칙을 한 건 되레 슬로베니아 선수들인데 미국 선수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주심이 골을 무효처리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쩌랴, 주심이 아니라면 그걸로 끝인 것을...
그렇다. 독일과 미국은 정신이 나간 주심들 덕분에 피해를 봤다. 독일은 1986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에서 패했고, 미국은 짜릿한 역전승의 기회를 날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18일 열린 독일-세르비아, 미국-슬로베니아 경기가 지금까지 벌어진 2010년 월드컵 경기 중 가장 익사이팅한 경기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월드컵 경기 대부분이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데 비해 이들 경기는 이상한 주심들이 드라마를 만들면서 재미있어졌던 것이다.
6월18일 마지막 경기였던 잉글랜드와 알제리의 경기와 비교해 보더라도 그 차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전 경기들과는 달리 이성적인 주심이 경기를 맡았던 잉글랜드와 알제리 경기는 0대0으로 비겼다.
아래 이미지들을 보면 잉글랜드가 어떠한 경기를 펼쳤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졸전을 펼친 잉글랜드는 경기가 끝난 뒤 구장을 찾은 팬들로부터 야유세례까지 받았다. 잉글랜드 팬들은 경기 도중에도 잉글랜드 선수들이 맘에 들지 않는 플레이를 하면 바로 야유를 보내며 '기분나쁘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물론 잉그랜드는 독일처럼 주심 때문에 경기에 패하지도 않았고, 미국처럼 역전골을 강도당하지도 않았다. 경기내내 무기력한 플레이를 보여줬다는 것을 제외하곤 크게 손해본 건 없었다는 것이다. 그대신 앞서 벌어진 독일, 미국 경기와는 달리 골도 터지지 않고 지루하기만 한 전형적인 2010년 월드컵 경기로 되돌아갔다.
그렇다고 선수가 아닌 심판에 의해 경기결과가 좌우되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심판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종목도 좋아하지 않는다. 밤낮 오심이다, 육심이다 하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종목은 지켜보기 피곤해서다.
다만 문제는 축 늘어진 2010년 월드컵이 '비아그라'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이 인상적인 골, 플레이 등이 매우 부족한 볼거리 없는 지루한 대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독일전과 미국전에 연달아 괴짜 주심이 등장한 게 왠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심들이 경기를 망친 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경기에 다시 흥미를 갖게 되었고, 무언가에 대해 말할 거리, 즉 'Something to talk about'을 만들었다는 점 등은 싫든 좋든 공로로 인정해야 할 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오죽했으면 주심들이 욕먹을 각오하고 악역을 맡았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스페인 주심과 말리 주심은 당분간 욕으로 샤워를 해도 될 텐데, FIFA에서 훈장이라도 줘야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악당 주심들이 비아그라 역할을 해야만 하는 월드컵이 될지 지켜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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