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0일 토요일

'핸드볼 파울' 뮐러는 골, 수아레즈는 공만 잡으면 야유가...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 3-4위전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핸드볼 파울로 4강전을 못 뛴 선수들의 귀환'이었다. 독일의 토마스 뮐러(Thomas Müller)와 우루과이의 루이 수아레즈(Luis Suárez)가 바로 그들이다.

토마스 뮐러는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핸드볼 반칙으로 옐로카드를 받는 바람에 경고누적으로 스페인과의 4강전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루이 수아레즈는 가나와의 8강전 연장 후반 막판에 수비를 하던 중 골문으로 들어가는 공을 손으로 쳐내 레드카드를 받고 네덜란드와의 4강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ESPN은 뮐러의 핸드볼 반칙이 옐로카드감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어찌됐든 그는 경고누적으로 4강전을 뛸 수 없었고, 수아레즈의 핸드볼은 공격수가 골키퍼 시늉을 한 명백한 카드감 파울었으므로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핸드볼 파울로 주요 공격수가 빠진 독일과 우루과이는 4강전에서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각각 패하며 결승진출에 실패했고, 결국 두 팀은 3-4위전에서 맞붙게 됐다. 핸드볼 파울에 일가견이 있는 팀들의 '핸드볼 매치'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고의적인 핸드볼이 아니었는데도 옐로카드를 받고 경고누적으로 4강을 뛸 수 없었던 독일의 89년생 신예, 코마스 뮐러는 나름 억울한 감이 있었을 것이다. 가혹한 판정도 경기의 일부이므로 불평할 거리는 되지 않아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였을까? 전반 20분이 채 지나기 전에 뮐러의 선제골이 터졌다. 슈와인스타이거가 중거리슛을 날린 것을 우루과이 골키퍼가 쳐내자 이를 기다리고 있던 뮐러가 앞으로 굴러온 공을 골문으로 차 넣었다.






▲Yes Tom, it's Touchdown... I mean... GOAAAAAL!

아르헨티나전에서 경기시작 3분만에 골을 넣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번에도 경기가 시작하기 무섭게 골을 넣은 건 바로 뮐러였다. 뮐러는 이번 월드컵에서 6경기에 출전해 5골, 3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클로세, 포돌스키의 뒤를 이을 새로운 '독일 월드컵 스타'가 탄생한 듯 하다. 클로세, 포돌스키 등은 교체멤버로 벤치를 지켰을 뿐 3-4위전은 뛰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루과이의 수아레즈도 뮐러처럼 골맛을 봤을까?

수아레즈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결정적인 득점기회를 몇 번 잡았지만 골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관중들도 수아레즈에 매우 비우호적이었다. 수아레즈가 공을 잡기만 하면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이를 보다보다 못한 ESPN 중계방송 아나운서 이안 다크(Ian Darke)는 수아레즈가 야유를 받는 게 "지독하게 불공평하다(I think it's grossly unfair on a fine player)"고 말했다.

이안 다크는 영국 스카이 TV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중계방송을 하는 베테랑 방송인이다. '축구중계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가장 맘에 드는 축구 중계방송 아나운서 중 하나다.

중계방송 해설을 맡은 전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 존 학스(John Harkes)도 그 상황에선 어느 선수나 다 그랬을 것이라며, 수아레즈의 핸드볼은 "본능적인 것이었으므로 그를 탓할 수 없다(It was instinctual kind of reaction. Can't blame him)"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안 다크 역시 동의한다면서 "다른 프로페셔널 선수들도 했을 것을 한 것 뿐(He did what any professional would do)"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크는 주심이 핸드볼 파울을 범한 수아레즈를 퇴장시키고 가나에 패널티킥을 줬으므로 경기규칙도 모두 제대로 지켜졌다고 말했다. 주심이 파울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가나팬을 비롯한 아프리카 축구팬들이 열받을만 했겠지만, 파울이 선었됐고 수아레즈는 퇴장당하고 가나는 패널티킥 기회를 얻었으므로 판정에 오류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크는 만약 가나 선수가 패널티킥을 성공시켰더라면 아무도 수아레즈 핸드볼 해프닝에 대해 얘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The laws of the game were obeyed. He was sent off. A penalty was given. Nobody would be talking about it if the penalty had been put it in the back of the net." - Ian Darke

그러자 학스도 사실이라면서, 가나가 경기를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나가 8강전에서 우루과이에 진 건 마지막 패널티킥을 성공시키지 못해서 였지 수아레즈의 핸드볼 파울 때문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 이 양반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수아레즈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파울을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다급한 상황에서 벌어진 고의적인 파울이었던 게 전부고, 그는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뤘다. '대가를 치뤘어도 파울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무조건 도덕적으로 옳고그름을 따지려 들 게 아니라 스포츠에선 파울도 경기의 일부이고, 고의성 파울 또한 마찬가지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스포츠를 신선들의 놀이로 착각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아이스하키에선 경기중 발생하는 선수들간 난투극도 경기의 일부라고 한다. 미식축구에선 상대편 선수의 얼굴에 침을 뱉거나 주먹을 날리고, 심판들에 거세게 항의하면서 그들의 몸에 손을 댈 경우 등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퇴장당할 뿐 그밖의 파울로는 퇴장당하지 않는다. 고의적인 파울이든 위험한 플레이로 상대편 선수에 부상을 입혔든 간에 이런 걸로는 퇴장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NFL로부터 벌금형을 받을 수는 있어도 파울 때문에 퇴장당하는 일은 없다. 파울 잘못했다간 퇴장당하는 축구 규칙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엄격하면 엄격했지 느슨하진 않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레드카드에 패널티킥까지 내주는 무거운 벌을 받았으면 수아레즈는 파울의 대가를 충분히 치뤘다고 할 수 있다.

또, 수아레즈는 '신의 손'이라 불릴 자격도 없다. 마라노나, 앙리처럼 핸드볼 반칙을 하고 발각되지 않았어야 '신의 손'이 되는데 수아레즈는 바로 주심에게 걸려 레드카드를 받고 패널티킥까지 내줬기 때문이다. 무슨 '신의 손'이 이래?

그럼에도 관중들은 수아레즈를 '가나/아프리카팀을 탈락시킨 원흉'으로 몰아 그가 공만 잡으면 야유를 퍼부으며 화풀이를 했다. 남탓하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추한 루저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관중들의 야유는 후반들어서도 그치지 않았다. 그러자 이안 다크는 수아레즈를 향한 관중들의 야유가 이젠 망신스러울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야유를 하는 사람들이 경기에 대한 이해력이 얼마나 부족한 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The booing for him grows to embarrassing and I have to say disgraceful levels. I think the people who are doing this shows really a lack of understanding of the game." - Ian Darke

다크는 수와레즈가 거친 태클로 상대팀 다리를 부러뜨린 것도 아니고 다이브를 해서 패널티킥을 얻어낸 것도 아닌데 저렇게 줄기차게 야유를 받을 잘못을 했냐고 하자 존 학스는 "그가 아프리카팀을 집으로 보낸 건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가나의 8강전 패배의 분을 아직도 삭이지 못한 속좁은 관중들이 쉬지도 않고 야유를 한 만큼 수아레즈가 골을 하나 넣기를 바랬다. 그들의 입을 닥치게 만드는 데는 골이 최고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묵을 한 건 수아레즈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플레이가 조금씩 나아지는 듯 했지만 끝까지 골을 터뜨리지 못했다.

그런데 누가 이겼냐고?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1점차로 뒤지고 있던 우루과이가 경기종료를 코앞에 둔 인저리 타임에 독일 패널티 박스 근처에서 프리킥을 얻었기 때문이다. 프리킥을 얻어낸 건 다름아닌 수아레즈였다.



그러나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번 월드컵 MVP감으로 꼽히는 폴란(Forlan)이 찬 슛이 크로스바에 맞았고, 이 플레이를 끝으로 경기가 끝났다.

만약 이게 들어갔더라면 3대3 동점으로 연장전에 들어갔을 것이고, 폴란은 여섯 번째 월드컵 골을 성공시키며 득점왕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크로스바가 훼방을 놓았다.




이 장면은 마치 우루과이와 가나의 8강전 엔딩을 연상케 했다. 우루과이의 수아레즈가 핸드볼 파울로 퇴장당한 뒤 얻은 패널티킥을 킥커로 나선 가나 선수가 크로스바를 때리면서 승리의 기회를 날렸던 바로 그 장면 말이다. 그 때는 가나 선수가 크로스바를 때리더니 이번엔 우루과이 선수의 차례였다.

이렇게 해서 파이널 스코어는 독일 3, 우루과이 2.

점수가 꽤 많이 났다고?

축구팬들의 관심이 결승전에 쏠려있는데 3-4위전이 지루한 경기가 되면 누가 보겠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유독 월드컵 3-4위전 경기에서 항상 점수가 많이 나는 이유다.

이제 이번 월드컵도 딱 한 경기 남았구려...

댓글 2개 :

  1. 위 글의 필자는 실제 축구 경기에서 수아레즈의 핸드볼 파울을 당해보신적이 있는지 한번 여쭙고 싶네요.
    전 인도어 싸커에서 실제로 상대팀이 수아레즈와 같은 핸드볼파울로 공을 막아냈고(인도어싸커에서는 키퍼가 손을 쓸 수 없음 게다가 인도어 싸커 특성 상 PK성공률이 낮음) 그 경기에서 졌던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아무래도 수아레즈를 향한 관중들의 야유는 합당하다고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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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당해보면 기분나쁘다'는 건 당연한 얘기이고, 그래서 수아레즈를 향한 야유가 합당하다는 건 개인감정이 앞서는 거죠. 경기중엔 어떠한 파울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가나의 패인은 수아레즈의 핸드볼 파울이 아니라 패널티킥 실축이죠. 승부차기는 둘째치고 말이죠. 그래서 관중들의 매너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수아레즈의 파울은 명백한 파울이긴 해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파울이었지 매우 악질적이고 비신사적인 파울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공잡을 때마다 야유를 받을만 한 파울은 아니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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