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0일 수요일

아직도 '로스트'가 한강대교 왜곡했다고 생각한다니...

2~3년 전 미국 ABC의 인기 TV 시리즈 '로스트(Lost)'에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나왔다. 아무리 봐도 서울의 한강으로 보이지 않는 좁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초라한 다리에 '한강대교'라는 한글 표지판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이를 본 몇몇 한국 시청자들은 "미국방송이 한강을 왜곡했다"며 흥분했고, 한국의 메이저 신문사 인터넷판에 소개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2010년 바로 그 '로스트'의 한강대교 관련기사가 또 등장했다.

기사내용은 한나라당의 홍종욱 의원이 "미국 드라마에 나타난 한국 모습이 심각하게 왜곡됐으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옳은 지적이다. 이는 단지 미국 드라마나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몇 해 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일대에 큰 쓰나미 피해가 발생했을 때 한 미국인 중년 남성이 "한국은 피해가 없느냐"고 걱정스레 물었을 때 말문이 막혔던 기억도 있다. '혹시나 한국도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하는 순수한 걱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한국이 동남아에 위치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미국 드라마에 한국이 이상하게 묘사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홍 의원이 왜곡사례로 '로스트'의 한강대교 씬을 꼽았다는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홍 의원은 '로스트'에 나온 한강이 개천 수준이고, 한강은 낡은 다리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얘기인데 아직도 이것을 왜곡사례로 생각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

그렇다면 문제의 한강대교 씬으로 돌아가 보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ABC의 '로스트'는 하와이에서 촬영한 시리즈다. 제작진은 촬영을 위해 하와이의 여러 곳을 서울, 런던, 방콕 등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실제로 그곳에 가서 촬영한 게 아니라 하와이에서 모두 다 촬영했다는 것이다. 하와이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하와이엔 한강 규모의 큰 강이 없다. 그래서 제작진이 찾은 곳은 와이키키 해변 뒤쪽에 있는 알라 와이 카날(Ala Wai Canal)이었다. '로스트'를 촬영한 오아후(Oahu) 섬에서 강 분위기가 나는 장소는 거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강가를 고집할 이유가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제작진은 주위에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와이키키/알라와이 카날 부근을 서울로 둔갑시키기로 했고, 알라 와이 카날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에 '한강대교'라는 한글 표지판까지 붙여놓았다.

자,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 다리에 적힌 '한강대교'라는 한글을 읽을 줄 아는 미국인 시청자가 얼마나 있을까? 그것을 보고 '아, 저게 한강대교구나'라고 생각한 미국인 시청자가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영어를 읽고 쓰듯이 미국인들도 한국어에 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설마 아니겠지?

다리에 '한강대교'라는 표지판을 붙이자는 아이디어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한국인 시청자들을 상대로 제작진이 장난을 친 것으로 봐야 옳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나 다리에 '한강대교'라고 써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 한글을 모르는 대다수 미국인 시청자들은 그게 '한강대교'인지 '두강대교'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것을 심각한 왜곡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인들은 다리에 써있던 한글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한강과 한강대교를 왜곡했다'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물론 미국 드라마의 한국 왜곡묘사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까지는 좋다. 한국을 동남아에 위치한 빈국 중 하나 정도로 생각하는 미국인들도 적지 않은 만큼, 효과가 얼마나 클 진 몰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 나쁠 건 없다고 본다. 하지만 다른 건 모르겠어도 '로스트' 한강대교를 거기에 포함시키면 조금 웃기게 된다. 제작진이 한국인 시청자들을 상대로 실없는 장난을 친 것을 가지고 엉뚱하게 오해를 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어서다.

굳이 그것을 문제삼으려면 한국인들이 영어라면 환장하는 것 처럼 미국인들을 한국어에 환장하도록 만든 다음에 해야 순서에 맞지 않을까?

댓글 14개 :

  1. 한강대교라고 이름을 붙여놓은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닌것 같은데요 -_-;; 누가 그것 때문이랍니까. 그래요 미국인들은 한글을 못 읽으니까 그냥 비쥬얼로써 보겠죠 한국을? 근데 저게 어딜 봐서 한강대교예요 -_-;; 정말 걍 좁은 강 위에 놓여 있는 짧은 다리구만. 제작진들이 하와이에서만 찍은 걸 우리가 감안해줘야 됩니까? 그럴싸하게 런던, 방콕 같은 곳을 하와이에서 묘사한다고 치면 정말 그럴싸하게 묘사해야지 저게 뭡니까? 차라리 CG를 쓰던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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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슨 말씀인지 헷갈립니다. 한강대교란 이름을 붙여놓은 바람에 실제 한강대교와 비교되는 게 아닙니까?

    서울, 런던 등 그저 스쳐지나가는 씬에 CG까지 동원하길 기대하는 건 지나치죠. 그리 중요하지 않은 씬이니 아무 데서나 대충 찍으면 그만이지 거기에 필요이상의 돈을 쓸 이유가 없죠. 이게 불만이라면 돈을 걷어 보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90년대 플레이스테이션 수준 CG가 여러 차례 나온 TV 시리즈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를 기대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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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와이에서 '한국', 그리고 '서울'을 표현하다보니 그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며 그 한글을 이해하든, 하지 못하든 간에 그 다리에 '한강대교'라는 글자를 붙여놓은 이상 문제가 생깁니다.

    미국사람들은 알아보지도 못할 한글로 굳이 '한강대교'라는 글자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그게 어떤 리얼리티나 디테일을 가져다주죠?

    가뜩이나 로스트에 표현된 한국의 묘사는 여러가지로 문제가 제기되어왔습니다.

    드라마제작환경 상, 예산상, 혹은 등장배우들의 스캐쥴 문제 상... 한국까지 로케를 오는 것이 무리였다 하더라도, 혹은 하와이를 배경으로 충분히 꾸며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저것을 한강대교라고 표현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로인해 계속된 몰이해가 재생산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와이에 강이 없다면 그냥 하천에서 이름없는 다리로 해도 충분한 일입니다. 서울에 한강 외에 조그마한 하천과 조그마한 다리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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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물론 거기에 '한강대교' 싸인을 붙이지 않았더라면 논란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강대교' 한글 싸인은 한국어를 읽을 줄 아는 한국인 시청자들을 위해 제작진이 넣은 장난 정도로 웃어넘길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 시청자들이 보기엔 아무리 봐도 와이키키가 서울처럼 보이지 않을 테니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냥 봐 달라"는 의미에서 붙여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글을 모르는 미국인 시청자들 입장에선 낯선 한글이 나오니까 더욱 그럴싸 하게 보였겠죠. 한글을 읽지 못해도 그게 아시아 문자라는 건 알아봤을 겁니다. 한국처럼 보이게 꾸미기 위해 어딘가에 한글간판을 붙이려다 다리에 '한강대교'라고 싸인을 붙인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런 것까지 '왜곡이다', '몰이해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전 '한강대교'는 심각한 왜곡이라고 할 만한 게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촌을 동남아처럼 묘사하는 등 '로스트'에 문제있는 씬들이 더러 나왔다 해서 사소한 것들까지 죄다 문제삼는 건 곤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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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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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설정성 사정상 한국을 표현 하려고 했기에 한글을 붙였다. 한강대교라 붙였다는건 저들이 한강대교를 보았던 보지 않았던 한강대교를 한번이라도 들었기에 가능 했을 것입니다. 그렇담 최소한 그게 어느 규모인지는 따져 봤어야 하는 것입니다. 1분 아니 30초면 가능했을 일입니다. 서울에는 무수히 많은 다리가 있습니다. 단지 한국의 느낌을 주기위해 한글을 적어야 했다면 굳이 실제하는 다리 이름을 쓸 필요는 없겠지요. 글쓴이님 글대로 한글을 읽는 사람은 몇 안되니까요. 그리고 굳이 한국어가 없었다 하더라도 극을 봐온 사람이라면 한국설정 이라는건 충분히 인지 하였을 테지요
    한글을 아는 사람이 얼마 안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가상에 공간에서 실제처럼 보이게 노력을 한것이라면 가상의 상태로(가상의 다리 이름을 사용)촬영 한 것 보다 결과가 좋아야겠지요 만약 그럴 상황이

    안된다면 가상의 상태를 사용하면 됩니다. 한강대교란 글이 들어가는 것만이 한국 이라는것을 알리는 길은 아니니까요. 물론 저들이 일부러 저렇게 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최소한의 확인조차 안했다는것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드라마에조차도 설정이 어려울경우 가상의 지명을 쓰기도 합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지요 가상이라는 설정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실제처럼 보일수 없다면 가상을 쓰는것이 실제보다 더욱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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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로스트에 출연했던 한국 배우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겠군요.
    누가 거기에 한강대교라고 써붙이자고 했는지, 누가 한글로 써서 가르쳐줬는지 말이죠.
    그들이 실제 한강대교의 규모를 몰라서 저렇게 했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 다리에 한강대교라고 써붙인 게 불필요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게 뭐가 그렇게 문젠지 모르겠군요.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한국 시청자들이 꽤 된다는 걸 제작진이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한글을 읽을 줄 아는 한국 시청자들을 상대로 실없는 장난을 친 것 이상이 아닌 것 같은데,
    이것을 가지고 한강대교 규모가 초라하다, 사실확인 없이 왜곡했다고 하면 좀 이상해진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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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시청자 상대로 단순한 장난이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백악관을 무슨 다쓰러져가는 초가집으로 표현하면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또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불쾌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장난이 아니라 우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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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모욕 의도가 뚜렷한 악의적인 왜곡과 대수롭지 않은 장난이나 유머는 구분해야 합니다.
      대수롭지 않은 것에도 자꾸 불쾌하다고 하면 "농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소리만 돌아옵니다.
      입장을 바꿔봐도 저런 것에 핏대 올리는 미국인들은 많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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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다수의 미국인이 한글을 못 읽으므로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는 왜곡 효과는 거의 없습니다.
      영어 간판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지만 한글 간판은 한국 시청자를 겨냥한걸로 봐야죠.
      없어도 됐던 한글간판을 붙이고 한국 시청자를 상대로 장난을 한 걸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처럼 안 보여도 거기가 한강이라 생각하고 봐달란 애교성 유머 정도로 봤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초라한 규모의 한강대교는 명백한 왜곡이라고 하면 좀 이상해지죠.
      제가 볼 때 이 문제는 프라이드 같은 데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로스트 한강대교 해프닝은 헐리우드 왜곡사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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