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9일 월요일

생각보다 볼 만 했던 '토르'

5월은 여름철 헐리우드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개봉하는 달이다. 여름 시즌이 시작하는 달인 것이다.

아, 그럼 스타트는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맡았을 게 뻔하다고?

그렇다. 금년 여름 시즌도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스타트를 끊었다. 금년 여름철 개봉 예정작들 중 상당수가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또는 코믹북을 기초로 한 영화들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겠지만 2011년 여름철도 코믹북 수퍼히어로들의 세상이 될 듯 하다.

그런데 이젠 어지간한 코믹북 수퍼히어로들은 죄다 영화화되지 않았냐고?

어찌 된 게 끝이 없어 보인다. 아마도 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헐리우드가 미국의 2대 코믹북 출판사인 마블(디즈니)과 DC 코믹스(워너 브러더스)를 주무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 없이 간단하게 액션-SF-판타지 프랜챠이스 소잿거리를 뽑아낼 수 있는 게 바로 방대한 코믹북 라이브러리이기 때문이다. 소재고갈에 허덕이는 헐리우드는 마블과 DC 코믹스의 만화책 전체를 영화로 옮기고도 남을 듯.

그렇다면 2011년 여름철 수퍼히어로 1번 타자는 누구일까?

1번 타자는 해머를 휘두르는 마블 코믹스의 수퍼히어로 '토르(Thor)'다. 북유럽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에서 코믹북 수퍼히어로로 다시 태어났던 토르가 이번엔 스크린 데뷔까지 했다.

그런데 나탈리 포트맨(Natalie Portman)은 무슨 영화를 이렇게 몰아서 찍는지 모르겠다. 임신 중인 포트맨이 아기를 낳고 공백기를 가질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이러다간 꿈에 나오겠다.



'토르'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왕이자 아버지인 오딘(앤소니 홉킨스)에 의해 신의 세계에서 쫓겨나 인간 세계로 떨어진 왕자 토르(크리스 헴스워스)가 지구에서 새로 사귄 친구 제인(나탈리 포트맨)과 옛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잃어버렸던 파워를 되찾는 과정을 그린 게 전부다.

그렇다. '토르'도 뻔할 뻔자의 무척 단순한 스토리와 영화인지 비디오게임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3D 특수효과로 도배한 SF-판타지 영화였다. CG가 너무 과하면 영화가 아니라 비디오게임처럼 보이게 되는데, '토르'도 그런 생각이 드는 영화 중 하나였다. 배틀씬은 너무 게임틱하게 보였고, CG로 만든 세계는 '파이널 판타지(Final Fantasy)' 등과 같은 판타지-RPG에서 그대로 빌려온 듯 했다.

유머엔 나름 신경 쓴 티가 났지만 유치한 어린이용 유머가 전부였다. 주연을 맡은 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가 생각보다 코믹연기에 잘 어울렸고, 전반적으로 유머도 풍부한 편이었다. 하지만 덩치만 산 만할 뿐 살짝 어리버리한 토르가 낯선 지구에 와서 컬쳐쇼크를 겪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안 봐도 비디오 유머'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리 싫지 않았다.

해머를 들고 있는 토르의 이미지만 봐도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유치해 보이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는 얘기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토르'는 진짜 피하고 싶었던 영화였다. 근육질의 남자 캐릭터가 해머를 휘두르는 스타일의 영화는 입맛에 맞지 않아서다. 근육질 남자가 웃통을 벗고 검을 휘두르는 것만 봐도 웃을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판인데 토르는 한 술 더 떠 해머를 휘두르니 긴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그런데 '토르'는 달랐다. 스토리 전개가 시작부터 끝까지 부드럽고 매끄러웠으며, 너무 지겹다거나 유치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래봤자 틴에이저들을 겨냥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인 것엔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믹북을 기초로 한 비슷비슷한 영화들을 워낙 많이 봤기 때문인지 이젠 이런 류의 영화를 끝까지 참고 보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데 '토르'는 생각했던 것 보다 볼 만 했다. '토르'에도 다른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보았던 뻔하고, 한심하고, 유치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 만큼 신경에 거슬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맘에 들었던 것은 영화 제작진이 무언가 대단한 작품을 만들려는 시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유럽 신화에도 나오는 캐릭터를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제작진이 원했다면 어두운 톤의 나름 진지하고 심오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간지러운 작품 만들기 놀이를 하지 않았다. 단순무식해도 순수한 엔터테인먼트에만 촛점을 맞췄을 뿐 불필요하게 요란-거창하게 부풀리지 않았다. 해머를 휘두르는 수퍼히어로에 대한 영화가 너무 진지해지면 되레 매우 유치해진다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토르 역에 호주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가 아닌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캐스팅되었다면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되었을 것이다. 몇 해 전 '토르'가 제작 준비 단계였을 당시 제임스 본드 스타, 다니엘 크레이그가 토르 역 제의를 거절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만약 크레이그가 토르 역을 맡았더라면 완전히 다른 색의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사고뭉치의 젊고 쾌활한 토르에서 어둡고 진지한 워리어 토르로 캐릭터가 크게 바뀌었을 테니까. 나사가 서 너개 빠진 듯한 'Hunky-Young-Dude' 캐릭터의 매력이 없었다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겠는지 모르겠다.

사실 크리스 헴스워스가 토르 역에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왠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아주 멋진 수퍼히어로가 또 하나 탄생한 듯 하다. 체격이 좋은 녀석이 건들거리면서 살짝 코믹하기까지 한 게 제법 괜찮아 보였다. 코메디 영화에도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지난 90년대에 브랜든 프레이저(Brendan Frazer)가 출연했던 스타일의 코메디 영화에 헴스워스도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토르'도 시리즈화를 노리고 있다. 엔드 크레딧이 다 올라간 이후에 나온 사무엘 L. 잭슨이 나오는 '토르' 속편 예고 영상을 본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지 않았더라도 곧 속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정도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에 그리 호의적인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토르'는 속편을 한 번 기대해보련다. '트랜스포머스(Transformers)' 시리즈는 3편으로 막을 내리고 '아이언 맨(Iron Man)' 시리즈는 디즈니에 넘기면서 여름철 블록버스터 타이틀 수가 줄어들게 된 파라마운트의 새로운 대표작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마지막은 '토르'의 엔드 타이틀 곡으로 사용된 Foo Fighters의 'Walk'로 하자.



댓글 4개 :

  1. 토르는 저도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엔딩 곡 멋진데요~~~
    죽여줍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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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럭저럭 볼 만 하던데요.
    근데 음악은 트랜스포머 만큼 화려하진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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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고편 나올때 한번 볼까.... 하다가 흐지부지 넘어간...ㅎㅎ;;
    기존에 봐 왔던 히어로물과는 살짝 달라서 좀...
    뭐라고 해야 하나... 애들영화가 아닐까 싶었는데...
    저도 한번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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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애들영화 맞습니다...^^ 수퍼히어로 영화가 뭐 다 거기서 거기니...
    그래도 그럭저럭 볼 만 하더라구요.
    아주 웃기는 영화 아닌가 했는데 제겐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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