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5일 목요일

케이블 끊으려 했더니 오사마 빈 라덴이 방해를...

이번엔 진짜로 케이블을 끊으려 했다. 1주일에 TV 시청 시간이 평균 2~3시간 정도 밖에 안 되는 데다 케이블 채널은 거의 보지 않는 만큼 케이블을 끊어도 크게 아쉬울 게 없었다. 물론 풋볼 시즌 동안엔 매주 월요일 밤마다 하는 ESPN의 먼데이 나잇 풋볼을 볼 수 없게 되겠지만 한 경기 못 본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금년엔 정상적인 NFL 정규시즌 개막이 불확실한 상태이므로 더더욱 아쉬울 게 없어 보였다.

그래서 4월말까지만 케이블을 사용하고 5월부터는 끊어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을 하고 있었다. 4월말에 NFL 드래프트가 있는 만큼 이것까지만 보고 미련없이 끊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ISU 대회와 NFL 드래프트가 겹치는 바람에 양쪽 눈알이 따로 놀아야만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시청한 케이블 프로그램이 NFL 드래프트가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흥미진진한 사건이 터졌다.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사살된 것이다. 드디어 미군들이 빈 라덴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해결될 일이었으므로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미국의 추적이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이렇게 끝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5월1일이 바로 그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뉴스가 나를 케이블 뉴스 앞에 묶어놓은 이유는 빈 라덴이 사살된 장소가 예상과는 다른 곳이기 때문이었다. 빈 라덴은 이 계곡에서 저 계곡으로 이동하는 '계곡맨'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불과 30여 마일 떨어진 인구 밀집 도시의 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빈 라덴이 사살된 저택 바로 코앞에 파키스탄 밀리터리 아카데미(사관학교?)가 있고, 바로 그곳에서 미군들이 파키스탄 군에게 테러 진압 훈련 교육을 시켰었다는 것. 빈 라덴이 살던 집 바로 코앞에 미군들이 몰려가 테러리스트 소탕 교육을 했으나, 그 바로 옆에 테러리스트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더더욱 흥미로운 점은, 빈 라덴의 저택이 위치한 아보타바드(Abbottabad)라는 도시가 파키스탄 군 출신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 동네에서 가장 큰 집에 높은 담을 쌓고 비밀스러운 생활을 하는 이상한 이웃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빈 라덴이 이웃이라는 사실을 진짜로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으면서도 몰랐다고 하는 건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간에 파키스탄이 맡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한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파키스탄에 사전 통보 없이 빈 라덴 사살 작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워 진 건, 빈 라덴이 어떻게 사살되었냐는 사실을 놓고 말이 자꾸 바뀌면서다. 처음엔 마치 액션영화의 한 장면처럼 빈 라덴이 한 여성을 인간방패로 삼고 총을 쏘며 저항하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뻗었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두가 부정확한 정보로 알려졌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빈 라덴은 당시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고, 여성을 인간방패로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장하지도 않은 빈 라덴을 그냥 가서 쏴죽였단 얘기?

내 생각엔 그렇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빈 라덴 양측 모두가 원하던 결과였을 것 같다. 미국은 생포한 빈 라덴을 미국으로 데려와 변호사까지 붙여주며 재판을 벌이는 데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빈 라덴 역시 미국에 체포되어 법원과 구치소를 오락가락하는 초라한 신세가 되는 것 보다 전사답게 총에 맞아 죽는 쪽을 바랐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교전 중 사살이냐, 아니면 생포 후 총살이냐는 논란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정부 측이 빈 라덴 사살 직후 너무 많은 말을 한 게 쓸데 없는 문제를 만든 건 사실인 듯 하지만, 빈 라덴이 현장에서 사살된 건 양측 모두에게 깔끔한 엔딩이 되었다고 본다.

자, 그렇다면 빈 라덴 시신 사진은?

오바마는 이마에 총상을 입은 사진 속 빈 라덴의 모습이 너무 처참하며, 이 사진이 오히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며 사진 공개를 거부했다.

물론 일리있는 말이다. 그러나 빈 라덴 사살부터 아라비아 해에서의 수장에 이르기까지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마무리 짓는다는 데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오바마는 "We didn't need to spike the football"이라면서 빈 라덴 시신 사진을 마치 전리품인양 자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건 'Touch Down Celebration'이라기 보다 'Replay Review' 쪽에 보다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한편 로이터는 빈 라덴이 사살된 건물내에서 발견된 3명의 시신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들 중에 빈 라덴은 없었다.

사실 이 사진들을 보는 데도 쇼를 했다.

로이터에 이 사진들이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로이터 웹사이트로 달려갔으나 사이트가 거진 마비 상태였다.

몇 차례 시도 후 겨우 프론트 페이지가 떴다.


로이터 특종은 'Exclusive: Photos Show Three Dead Men at Compound (Warning: Graphic Content)'였다.


그 기사 링크를 클릭했더니 해당 페이지가 열렸다.

페이지 상단에 이미지들을 모은 갤러리가 있었는데, 문제가 있었다. 화살표 버튼을 눌러도 다음 이미지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며 이미지를 클릭해 봤다.

그랬더니...

메, 메갠 폭스??


로이터에 낚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시 해당 기사 페이지로 돌아갔더니 이젠 'Page Not Found'가 떴다.

아니, 그 사이에 기사를 내렸단 말인가!


그러다가 얼마 지나서 'Photos form the Bin Laden Coumpound'라는 새로운 기사가 떴다. 이 기사엔 다른 사진들은 제쳐 두고 시신 사진 3장만을 보여줬다. 지금 다시 가보니 갤러리 형태로 다시 바뀌었는데, 처음엔 기사 내용과 함께 시신 사진 3장이 포함된 게 전부였다.


로이터 웹사이트에서 한바탕 소동을 치루고 나니까 문제의 시신 사진들이 어지간한 뉴스 사이트에 다 퍼져 있었다.


테러리스트로 위험한 삶을 살던 이들의 최후는 피바다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미군에 의해 사살된 3명 중 가장 젊어 보이는 티셔츠를 입은 친구는 빈 라덴의 아들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살된 3명의 시신 근처에서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파키스탄 전통 복장을 입은 시신 어깨 근처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어린이용 장난감 물총 같은 게 있었지만, 미군과의 교전에 사용했던 총기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당시 건물내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누군가가 쓰러진 테러리스트가 떨어뜨린 총을 집어들고 미군을 향해 쏠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살 즉시 미군들에 의해 무기가 수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빈 라덴 사살 작전에 투입됐던 네이비 실스(Navy SEALs) 부대원들이 전원 미국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비밀스러운 친구들이라서 꽃다발 환영식 같은 건 없었다.

비록 지금은 임무를 마치고 'Home, Sweet Home'에 돌아왔지만, 여러모로 별 도움이 안 되는 인간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만큼 조만간 또다시 청소에 나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작전 성공 덕에 네이비 실스 관련 서적, 영화, 비디오게임(예: 소니의 SOCOM)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 않을까 기대된다. 당장 나부터도 이번 작전에 투입된 네이비 실스 팀 식스가 도대체 어떤 친구들인가, 누가 만들었는가 등에 관심이 쏠리는 판이니 다른 미국인 상당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살짝 알아봤더니, 팀 식스를 만든 양반이 리처드 마신코(Richard Marcinko)였다. 오래 전에 그가 쓴 책 'Red Cell'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이 양반이 팀 식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 네이비 실은 어떤 핸드건을 사용하는 지도 궁금했다. 핸드건에 관심이 좀 있는 편이라서 내친 김에 이들의 홈페이지를 살짝 둘러보니 이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핸드건 이미지가 있었다. 정확한 모델은 모르겠으나 내 눈엔 독일의 Sig Sauer 사가 만든 핸드건으로 보인다.

디자인은 별로인 것 같지만 이 친구들이 디자인을 보고 핸드건을 고르진 않을 테므로...ㅋ 아무튼 그리 탐나는 핸드건은 아니다.


아무튼 네이비 실스의 이번 작전으로 인해 골치아픈 인간 하나가 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문제는 빈 라덴을 제거했어도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점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One Down'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빈 라덴 사살은 축하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빈 라덴 덕분에 케이블 서비스를 또 못 끊게 되는 분위기다. 5월 초에 날 잡아서 케이블 회사에 전화를 걸어 서비스를 끊기로 맘을 굳힌 상태였는데 흥미진진한 빈 라덴 관련 뉴스를 그냥 놓칠 생각을 하니 좀 섭섭...

그럼 5월까지만 보고 6월에 다시...?

댓글 6개 :

  1. 저도 뉴스를 봤습니다. 음.. 보복 테러가 야기될 가능성이 많겠습니다. 죄없는 사람들이 테러에 희생되는 것은 반대입니다. 예전 쌍둥이 빌딩 테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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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런 식으로 계속 주거니 받거니 해선 안 되겠죠.
    보복 테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테러 위협은 항상 존재했으므로 크게 달라진 건 없을 듯 합니다.
    항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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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공님 잘 지내시죠?
    드래프트 소식이 있을까 해서 와봤는데 ^^
    오공님도 많이 바쁘셨는듯.
    잉그램이 세인츠로 갔다는 기쁜 소식이 들렸네요 레지 부시가 긴장 좀 탈까요? 아니면 상대진영을 양쪽으로 흔들어 놓을 수 있을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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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랜만입니다...^^
    레지 부시는 다용도 플레이메이커지 러닝백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때문에 마크 잉그램과 레지 부시의 포지션 싸움은 그리 심하지 않을 듯 합니다.
    저도 금년 NFL 드래프트를 다 봤습니다만 락아웃 때문에 맥이 빠져서 인지 재미가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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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ㅎㅎㅎ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5월까지만 진짜 케이블 시청하고 다음 달엔 끊을 수 있는 건가요? ㅋㅋㅋ
    빈 라덴을 사살할 수 있었다니...
    어쨌건 잘된 일이죠...
    보복을 조심해야겠지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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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정말 케이블 때문에 미치겠다니까요...^^
    TV를 진짜 거진 안 보는데 케이블 사용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으니...
    그래서 이번엔 NFL 드래프트까지만 보고 끊는다 다짐을 했는데...
    제가 케이블을 끊으려니까 네이비 실스가 움직일 줄이야...ㅡㅡ;
    빈 라덴 제거는 참 잘했는데 내 케이블 사용료는...ㅠㅠ
    케이블 끊는 게 담배 끊기 보다 힘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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