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0일 화요일

드디어 케이블 TV를 끊었다!

몇 년전 오랫동안 피워왔던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끊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담배가 떨어지는 것까지 체크하며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경 쓸 데가 가뜩이나 많은데 담배 떨어지는 데까지 신경을 쓰자니 귀찮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담배보다 더 끊기 힘든 강적을 만났다 - 케이블 TV다.

나는 1주일 평균 TV 시청 시간이 2~3시간을 넘지 않는다. NFL 시즌이 시작하면 약간 달라지긴 하지만 평상시엔 거진 TV를 보지 않는다.

TV 드라마도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만약 내게 "TV 드라마를 보느냐"고 묻는다면 "거진 안 본다와 아예 안 본다의 중간"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어렸을 때 부터 영화관에 가는 건 좋아했지만 TV는 자주 보지 않았는데, 그 버릇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ABC의 '로스트(Lost)', Fox의 '24' 정도만 간신히 챙겨보곤 했는데, 요샌 두 드라마가 모두 종영된 바람에 TV를 볼 일이 더욱 없어졌다.

케이블 채널은 몇몇 케이블 뉴스 채널들과 스포츠 채널 ESPN 정도를 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뉴스 채널은 큰 사건이 터졌을 때 보는 게 전부였고, ESPN 역시 풋볼 시즌에만 보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면 뭐하러 케이블 채널을 신청했냐고? 뉴스는 인터넷으로 보고, 풋볼 경기 몇 개는 못 보는 셈 치고 넘어가면 되지 않냐고?

그러게 말이다. 처음엔 이것이 쓸데 없는 낭비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대로 보지도 않는 케이블 TV 사용료를 매달 꼬박꼬박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끊으면 아쉽긴 하겠지만 케이블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는 게 실속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끊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금년 풋볼 시즌까지만 보고...', '올림픽까지만 보고...', '월드컵까지만 보고...' 하면서 계속 미루기만 했지 칼을 빼들지 못했다.

미국에 와서 20년 넘게 살면서 케이블 TV 없이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일까?

그러다가 드디어 해결을 봤다.

사실 나는 4월말에 있는 NFL 드래프트까지만 보고 5월이 되면 케이블을 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5월1일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파키스탄에서 사살당하는 빅뉴스가 터지면서 또 무너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이번엔 아니었다.

아니 도대체 이번엔 무슨 바람이 들어서 케이블 서비스를 단칼에 베어버렸냐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홧김이었다고 해야 할 듯 하다.

요 며칠간 나는 전화회사와 전투를 벌였다. 잡음이 크게 들린다고 수리를 신청했는데 두 번씩이나 "못 찾았다", "시간이 늦어서 못 갔다"며 수리공이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이면 해결될 줄 알았던 간단한 문제였는데 실제로 해결되기까지 2주가 넘게 걸렸다.

처음에 전화회사에 전화를 걸어 좋게 얘기했을 때엔 두 번 내리 물을 먹이더니 세 번째 통화에서 약간 열받은 티를 내자 바로 다음날 와서 고쳐주는 센스도 참... 때려야 말을 듣는다 이거지?

성질 같아선 집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어딘가 화를 풀어야지 그냥은 못 넘어가겠더라.

바로 이때, "아하!".

버서크(Berserk) 모드 일 때 덤비면 다 죽는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바로 전화기를 집어들고 케이블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당장 내일부터 케이블을 끊어달라고 했다. 전화에 뺨맞고 TV에 분풀이한 것처럼 됐지만 idongivashit.

사실 케이블 회사에도 감정이 있다.

케이블이 디지털로 바뀌었을 때 이들은 "아날로그 TV를 사용하는 우리 회사 고객들은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광고했었다. 컨버터 같은 것을 설치해야 하는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광고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비록 무료이긴 했으나 결국엔 컨버터를 사용해야만 하는 쪽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다. 이들이 무료로 준 컨버터는 문자 그대로 컨버터 기능 하나가 전부였을 뿐 다른 기능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벽 -> 컨버터 -> TV로 연결해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전부였지 DVD 플레이어 등 다른 기기들을 연결하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했다. 그래서 약간 불편하다고 했더니 HDTV로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자사 셋톱 박스를 대여하면 해결이 된다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TV에 돈을 더 쓰라는 소리였다. TV를 자주 보지 않아서 케이블 서비스를 끊을까 말까 고민하는 판인데 TV에 돈을 더 쓰라고?

사실 나도 HDTV 구입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 TV를 자주 보지 않기 때문에 그쪽에 돈을 쓰기는 싫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의미에서 한 번 바꿔볼까 했었다. 그런데 점점 비싸지는 케이블 사용료에 HD 셋톱 박스 렌탈까지 할 걸 생각해 보니 도대체 누굴 위해서 HDTV를 구입하는 건지 헷갈리더라. HDTV를 구입해서 내가 얻는 것 보다 엉뚱한 것들이 얻는 게 더 많아 보였다. 물론 TV를 자주, 많이 보는 사람들에겐 별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처럼 1주일에 TV를 2~3시간 볼까 말까 하는 사람들에겐 좀 웃기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케이블 서비스를 끊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끊어야겠다로 결심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로 케이블을 끊기까지 오랫동안 망설였다.

Not any more...

이거 원, 축하하는 의미로 빤스를 내리고 동네라도 한바퀴 돌아야 할 것 같다.

댓글 6개 :

  1. 드디어 단행하셨군요.
    잘 하셨어요... ㅎㅎㅎ
    축하는 저 혼자 뿐인가요? ㅋㅋㅋ
    저도 케이블을 설치는 했지만, TV를 오공님과 마찬가지로 거의 보질 않는데, 저도 언젠가 성질나면 확? ㅋㅋㅋ
    아무튼 전화때문이라도 6월이 아닌 지금 보지도 않는 케이블을 끊은 것 Congratulations~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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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 맘 바뀌시면 또 신청하면 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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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케이블은 TV 많이 보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 같습니다.
    채널 많이 나온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더라구요.
    채널이 100개 넘어도 즐겨 보는 채널이 없으니...^^
    아쉬운 건 ESPN 딱 하나인데요,
    이것도 뭐 시간 지나면 잊혀지겠죠...ㅋㅋㅋ
    케이블 설치는 하셨는데 TV를 자주 안 보신다면 왠지 저와 비슷한 엔딩이 될 가능성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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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컥! 언제든지 다시 신청하면 된다...는게 참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올가을 풋볼 시즌이 개막했을 때가 최대 고비가 될 듯 합니다.
    일단 이 고비만 무사히 넘기면 될 것 같은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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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빈라덴에 발목을 잡히시더니 결국 끊으셨군요!
    저의 경우도 케이블은 아닙니다만...유선방송인데
    채널만 많았지 뭐 볼게 없더군요! 저도 뭐 TV시청을
    거의 안하고 사는지라...ㅋ 뉴스만 가끔 YTN이나 MBN정도
    시청합니다. 암튼 대단한 결심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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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구글 블로거가 점검을 한다며 다운되었는데요,
    그 사이에 올라온 글 또는 코멘트가 삭제되었습니다.
    구글은 점검기간 동안 사고로 삭제된 글을 복구하겠다고 한 것 같았는데요,
    지금 보아하니 다른 건 정상화 되었는데 삭제글은 복구가 안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제가 직접 토나님의 코멘트를 다시 올렸습니다...^^

    여기까지는 해명글이구요...^^

    저와 비슷하신 듯 한데요. 저도 케이블 볼 때 채널만 많았지 즐겨 보는 채널이 없었거든요.
    스포츠 시즌에 ESPN 조금 보고, 큰 사건 터지면 뉴스 채널 보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케이블 채널은 고사하고 한달 내내 TV 자체를 안 보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케이블 사용료를 아주 오랫동안 꼬박꼬박 내고 있었죠.
    그래도 없으니까 괜히 서운한 감도 들지만...
    이렇게 안 보면서 케이블 서비스를 유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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