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오심에 운 그린 베이 패커스, 비디오 판독도 소용없음을 보여줬다

NFC의 강호, 그린 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가 시애틀 시혹스(Seattle Seahawks)에 충격패를 당했다. 12대7로 간신히 리드를 지키고 있었던 패커스는 경기 종료와 함께 터진 시혹스의 헤일 매리(Hail Mary) 터치다운 패스를 얻어맞고 뻗었다.

파이널 스코어는 시혹스 14, 패커스 12.

그런데 '헤일 매리 패스'가 무엇이냐고?

'Hail Mary'는 라틴어로 'Ave Maria'로, 캐톨릭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것이 미식 축구 용어로 둔갑하게 된 것은 1970년대에 달라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를 두 차례 수퍼보울 챔피언으로 이끌었던 쿼터백 로저 스타우바크(Roger Staubach)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장거리 패스를 던지면서 "Hail Mary"를 외쳤다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공을 던지고 나서 패스가 성공하기를, 다시 말하자면 리씨버가 공을 받기를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했다는 얘기였다. 그 이후부터 '헤일 매리'는 전-후반이 끝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관치 않고 이판사판으로 던지는 롱 패스를 일컫는 풋볼 용어로 자리잡았다.

헤일 매리 패스가 극적인 터치다운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로는 전직 NFL 쿼터백 덕 플루티(Doug Flutie)가 보스턴 칼리지(Boston College) 선수 시절에 유니버시티 오브 마이애미(University of Miami)를 상대로 성공시킨 헤일 매리 터치다운 패스를 꼽을 수 있다. 이는 가장 유명한 헤일 매리 터치다운 패스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히며, 최근엔 TV 광고에도 사용되고 있다.


잠깐! 그렇다면 무작정 엔드존으로 던진 패스가 시애틀 시혹스의 역전 터치다운으로 이어졌단 얘기냐고?

그렇다. 12대7로 패색이 짙었던 시혹스가 경기 종료와 함께 이판사판으로 엔드존으로 집어던진 패스가 극적인 역전 터치다운으로 연결됐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시혹스의 헤일 매리 터치다운은 오심에 의한 터치다운이란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축복을 받은 게 아니라 오심의 축복을 받은 터치다운이었던 것이다.

시애틀 시혹스의 루키 쿼터백 러셀 윌슨(Russel Wilson)이 엔드존을 향해 이판사판으로 던진 헤일 매리 패스는 그린 베이 패커스의 수비수 M.D. 제닝스(Jennings)의 품으로 날아들었으나 제닝스의 바로 옆에 서있었던 시혹스 와이드리씨버 골든 테이트(Golden Tate)가 제닝스가 품고 있었던 공에 함께 매달리면서 넘어졌다.

얼핏 보기엔 제닝스와 테이트가 함께 공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공격수와 수비수가 공시에 공을 붙잡고 있는 상황, 즉 '듀얼 포제션(Dual Possession)' 상황에선 공격수의 손을 들어주도록 되어있으므로, 만약 제닝스와 테이트가 함께 공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 맞다면 터치다운이 맞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제닝스와 테이트가 함께 공을 붙잡고 있었다기 보다 제닝스가 완전히 붙잡은 공에 테이트가 매달려 있었던 게 전부였다. 누가 공을 받았는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양 선수가 공을 붙잡고 서로 엉켜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실상 제닝스가 인터셉트한 공에 테이트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판사판으로 매달렸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번 경우는 '듀얼 포제션'이 아니라 '인터셉션'이었던 것이다.

제닝스(흰색 유니폼)가 공을 양손으로 받고 있다

제닝스(흰색 유니폼)가 공을 양손으로 받고 있다

제닝스(흰색 유니폼)가 공을 품고 넘어지자 테이트(파란색 유니폼)가 제닝스를 끌어안는다

제닝스(흰색 유니폼)가 공을 품에 안고 있는 것이 보인다 (붉은 원 안)

제닝스(흰색 유니폼)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테이트(파란색 유니폼)에 내주지 않았다
만약 시혹스 와이드리씨버 골든 테이트가 마지막 순간 제닝스의 품에서 공을 빼앗았다면 또 다른 얘기가 된다. 그러나 공은 마지막 순간까지 제닝스의 품에 안겨 있었으며, 테이트는 공을 품고 있는 제닝스를 붙들고 있는 게 전부였다.

이 순간을 2명의 심판이 바로 코앞에서 지켜봤다. 그러나 이들의 판정도 제각각이었다. 뒷쪽에서 제닝스가 공을 계속 붙들고 있었던 것을 본 심판은 인터셉션을 선언한 반면 앞쪽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심판은 터치다운을 선언한 것이다.

뒤에 있는 심판은 인터셉션을 선언하고 앞에 있는 심판은 터치다운을 선언한다
물론 '듀얼 포제션' 상황이 판정을 내리기에 애매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작년 시즌부터 NFL은 모든 득점 순간을 비디오 판독으로 무조건 재확인하고 있으므로 오심을 정정할 기회가 있었다. 선심들이 순간 오심을 했더라도 득점 순간은 무조건 비디오 판독을 거치도록 돼 있으므로 그것을 통해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심은 비디오 판독을 한 이후에도 '터치다운'을 선언했다. 먼데이 나잇 풋볼 중계방송을 한 ESPN의 스포츠캐스터 마이크 티리코(Mike Tirico)와 전직 NFL 헤드코치 존 그루덴(Jon Gruden) 모두 터치다운이 아니라 제닝스의 인터셉션이 맞는 것 같다고 했지만 주심의 최종 판정은 달랐다. 중계방송에서 보여준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리플레이를 반복 재생하면서 비디오 판독을 했는데 주심은 '터치다운'으로 본 것이다. 리플레이 리뷰를 통해 문제의 순간을 여러 차례 재확인하고서도 어떻게 저것이 터치다운으로 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주심의 최종 판정은 터치다운이었다.

그렇다. 임시 심판들이 한 건 크게 하나 올렸다. 정규 NFL 심판들의 파업으로 칼리지 심판들이 NFL 경기를 맡으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더니 드디어 결정적인 순간 승패를 뒤집어 놓는 대형 사고를 내고 말았다.

임시 심판들의 미숙한 경기운영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승패가 걸린 결정적인 순간에 비디오 판독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심을 바로 잡지 못한 것은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물론 임시 심판들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지만 NFL은 17주 동안의 정규시즌에 16개 경기를 갖는 것이 전부라서 매 경기가 매우 중요하므로 이런 식으로 미숙한 심판들로 인해 다 이겼던 경기를 놓치는 일이 벌어져선 절대 안 된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심판들도 NFL 레벨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으론, 비디오 판독이 오심을 잡아내는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NFL은 작년 시즌부터 모든 득점 순간을 비디오 판독으로 재확인하고 있으며, 금년 시즌부턴 득점 뿐만 아니라 펌블, 인터셉션 등 턴오버 순간도 무조건 비디오 판독을 거치도록 룰을 수정했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을 거치더라도 심판이 다른 판단을 내리면 별 소용이 없는 경우도 많다. 관중과 시청자, 풋볼 애널리스트들의 생각과 주심의 생각이 완전히 다른 경우들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은 리플레이를 봤는데도 주심은 완전히 다른 판정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명백한 오심으로 보이는 것을 주심이 비디오 판독을 거친 이후에도 정정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시청자들이 보기엔 명백한 골인데도 주심이 리플레이를 통해 비디오 판독을 하고서도 계속해서 "노 골"이라고 우기는 꼴이다. 공이 들어갔다는 명백한 증거가 리플레이에 담겨있는데도 심판이 아니라고 버티면 그만이다. 비디오 판독을 해도 최종 판정은 주심의 판단에 달렸기 때문이다. 비디오 판독 후 판정을 내리는 것은 주심의 권한이므로 그가 일단 판정을 내리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비디오 판독을 거치면 보다 많은 오심을 바로 잡을 수 있겠지만,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주심이 똑바로 보지 못하면 비디오 판독 할아버지를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물론 이번 시애틀 시혹스의 헤일 매리 터치다운 패스는 비디오 판독을 해도 판정을 뒤집기 애매한 바람에 터치다운 판정을 그대로 유지했을 수도 있다. 비디오 판독을 해도 판정을 뒤집기 애매한 경우엔 '증거 불충분'으로 애초의 판정을 그대로 인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번 시애틀 시혹스 헤일 매리 터치다운은 이러한 케이스도 아니다. 리플레이를 보면 패커스의 제닝스가 인터셉트를 한 것으로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패커스의 제닝스가 공을 양손으로 가슴에 품고 있었으므로 제닝스가 공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듀얼 포제션이 성립되려면 양 선수가 공을 함께 나눠 갖고 있어야 하지만 이번 경우는 아무리 봐도 제닝스의 싱글 포제션이었지 듀얼 포제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랴, 주심이 비디오 판독을 하고서도 터치다운이라고 하는데...

2012년 시즌 세 째주 마지막 경기였던 그린 베이 패커스와 시애틀 시혹스의 먼데이 나잇 경기에서 발생한 헤일 매리 오심 사건은 앞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역사적인 NFL 오심 사건으로 기록될 듯 하다.

그렇다면 그린 베이 패커스의 제닝스는 잘못한 게 없을까? 무조건 심판들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일까?

아니다. 아마도 가장 큰 실수는 제닝스가 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왜냐, 저런 헤일 매리 상황에선 수비수들은 인터셉션을 노리지 말고 공을 아무도 받지 못하도록 쳐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제닝스가 저 상황에서 공을 받으려 하지 않고 배구 선수가 스파이크를 때리듯 공을 쳐냈더라면 패스 실패가 선언되면서 경기가 그 자리에서 종료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제닝스가 공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공을 쳐냈더라면 듀얼 포제션 터치다운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물론 공을 쳐내기가 여의치 않아서 할 수 없이 공을 받으려 했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제닝스에게도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골치아픈 것은 임시 심판들이다. 팬들과 선수들, 헤드코치들까지 임시 심판들의 미숙한 경기운영과 반복되는 실수를 인내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인 만큼 어쩌다 한 번 정도는 이해하고 넘길 수 있지만, 거의 모든 경기들에서 심판들의 크고 작은 실수들이 눈에 띄다 보니 그냥 넘기기 힘들어졌다. 게다가 이와 같은 큼직한 사고까지 터졌으니 임시 심판들에 대한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노골화될 것으로 보인다.

불평과 불만은 둘 째 치더라도 과연 임시 심판들과 함께 2012년 시즌을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겠는지가 더욱 걱정된다. 지금은 아직 시즌 초반이라서 임시 심판들이 경기를 망쳐도 이후에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시즌 중반에 들어서도 정규 심판들이 복귀하지 않는다면 임시 심판들의 미숙한 경기운영으로 인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피해를 보는 팀들이 속출할 수도 있다. 잘못하단 한 시즌 전체를 날리는 팀들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임시 심판들의 예측하기 어려운 엉뚱한 판정들이 오히려 경기를 더 재밌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NFL이 갑자기 길거리 풋볼 레벨로 추락하면서 매 경기가 코메디 영화처럼 웃겨졌기 때문이다. 혼란 속의 임시 심판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관중들은 목이 터져라 야유를 퍼붓고 NFL 선수들과 코치들은 멍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리고 서 있는 광경은 웃지 않고는 볼 수 없다. 심판들이 어수선하게 헤매니까 선수들과 코치들도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이 잘 안 되는 듯 했다. 헐리우드에서 풋볼을 소재로 한 코메디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잘 봐두는 게 좋을 듯.

정규 심판들이 빨리 돌아오지 않는 한 2012년 시즌은 정상적으로 즐기기 힘들 듯 하다.

댓글 2개 :

  1. http://www.nfl.com/videos/nfl-network-total-access/0ap1000000065984/Was-Seahawks-final-play-really-a-touchdown
    여기서도 사뭇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네요. 심판들에 대한 원성도 댓글에 녹아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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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즌 세 째주 들어서 다들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판국에 MNF에서 저런 실수를 했으니...^^
    미숙한 경기운영으로 경기가 지연되고 흐름이 끊기는 정도는 짜증나도 참을 수 있지만,
    결정적인 터치다운을 비디오 판독까지 해놓고도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한 건 웃어넘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NFL 팀들은 임시 심판들이 파울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는 점을 거꾸로 이용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죠...^^
    정상적으론 안 되겠으니까 상황에 맞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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