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8일 화요일

'그래비티', 그럭저럭 볼 만해도 대단하진 않은 우주 배경 재앙영화

샌드라 블럭(Sandra Bullock),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 주연의 '그래비티(Gravity)'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은 샌드라 블럭의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신음, 비명소리였다. '그래비티'의 트레일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그런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비쥬얼은 분명히 우주인데 사운드는 좀 다른 게 연상됐다. 왠지 '스페이스 포르노'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이처럼 '그래비티'의 트레일러는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비쥬얼 파트는 알겠는데 '영화 내내 저런 사운드만 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비티'의 스토리는 단순했다.

베테랑 우주 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와 함께 처음으로 우주 미션에 나선 라이언 스톤(샌드라 블럭)이 우주에서 수리 작업을 하던 중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를 당하게 된다. 폭파된 러시아 위성의 잔해와 파편들이 날아오면서 스톤과 코왈스키가 타고 온 스페이스 셔틀을 비롯한 주위의 거의 모든 것을 파괴한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스톤과 코왈스키는 지구와의 교신마저 끊기자 근처에 있는 인터내셔널 스페이스 스테이션(ISS)으로 피신하기로 하는데...

 '그래비티'는 망망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스톤과 코왈스키의 이야기를 그린 우주 재앙영화다.


스토리는 매우 단순했다. 이미 다른 영화에서 여러 차례 봤던 낡은 트릭을 반복한 것을 제외하곤 반전이나 서프라이즈 같은 것도 없었다. '우주에서 작업 중 사고를 당한 주인공들이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외로운 사투를 벌인다'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스토리는 단순해도 볼거리는 풍부했다.

'그래비티'는 거대한 우주선과 외계인 등이 나오는 판타지 SF 영화가 아니라 NASA 소속 우주인들이 우주에서 작업을 하던 중 예상치 못했던 사고를 당한다는 줄거리의 우주 배경 재앙영화였으므로 다른 SF 영화들처럼 크게 화려한 것은 없었다. 그 대신 '그래비티'엔 리얼함이 있었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의 최대 매력 포인트였다. '그래비티'는 '만약 실제로 우주에 나가 작업을 한다면 저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리얼함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지금까지 본 우주 배경의 영화 중에서 우주의 환경 등을 가장 리얼하게 묘사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한편으론 여러 잡다한 물건들이 둥둥 떠다니는 인터내셔널 스페이스 스테이션 내부의 모습 등이 침몰한 선박 내부의 모습과 겹치기도 했으며 영화의 줄거리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정확한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리얼한 우주 환경 묘사와 비쥬얼엔 흠잡을 데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래비티'는 메이저 영화 시상식에서 촬영, 시각효과 부문 노미네이션을 노리고 만든 영화로 보였으며,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보였다.

이처럼 비쥬얼로는 관객들이 우주의 환경을 리얼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사운드였다. 샌드라 블럭의 숨소리, 신음소리 등은 인내할 만했으나 문제는 음악이었다.

'그래비티'는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 내내 샌드라 블럭과 조지 클루니가 함께 나오지 않으면 샌드라 블럭 혼자였을 정도로 많은 등장 캐릭터로 북적이는 영화가 아니었다. 어두운 우주에서 통신마저 두절된 상태로 생존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다시 말하자면 '어둠'과 '적막'이 키워드인 영화였다. 그런데 여기서 적막함의 공포와 외로움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배경음악 때문이었다. 우주미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홀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우주 배경의 재앙-서바이벌 영화인 만큼 불편하게 밀려오는 고요함, 적막함도 제대로 묘사되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래비티'는 클리셰 스페이스 뮤직으로 분위기를 망쳤다. 이런 영화에선 배경음악을 절제하는 쪽이 좋았을 텐데, '그래비티' 제작진은 앰비언트 스페이스 뮤직으로 비슷비슷한 분위기를 그럴싸하게 흉내내는 쪽을 택했다. 리얼한 비쥬얼과 함께 불편한 고요함과 적막함도 만끽할 수 있기를 기대했으나 '그래비티'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90분이라는 짧은 런타임 동안 그저 보고 즐기는 게 전부였지 느껴지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내의 아기, 탯줄, 출생 등을 빗댄 듯한 'Artsy-Fartsy' 씬을 넣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앰비언트 스페이스 뮤직과 'Artsy-Fartsy' 씬들로 무언가 있어 보이는 듯한 '작품'을 억지로 만들려 한 것처럼 보였을 뿐 약간 어처구니 없어 보였다.

샌드라 블럭이 올바른 선택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샌드라 블럭이 좋은 연기를 보여준 것만은 사실이라고 해야겠지만, 강하고 활달한 이미지가 워낙 강한 배우라서 인지 그녀가 처한 절망적인 위기상황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점점 뜨거워진다"며 블럭이 긴박한 상황을 전하는 씬에서도 서스펜스 대신 웃음이 퍽 나왔을 정도로 영화의 긴장감을 날려버리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고 샌드라 블럭이 진지한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공포와 절망 속에 모든 걸 포기하려는 생각까지 하는 'Vulnerable'한 라이언 스톤 역에 썩 잘 어울려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 '그래비티'는 썩 맘에 드는 영화는 아니었다. 리얼한 우주 묘사와 멋진 비쥬얼은 볼 만했으나 그것이 전부였을 뿐 나머지는 건질 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90분이라는 짧은 런타임 동안 지루함 없이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서바이벌-재앙영화로는 나쁘지 않았다. 아주 대단한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도 그럭저럭 볼 만한 괜찮은 우주 배경 재앙영화였다.

트레일러를 보고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주위에서 많은 기대를 하도록 만들길래 혹시나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제법 볼 만한 영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큰 기대를 할 만한 영화가 아니었던 것은 맞았던 것 같다. 조난당한 캐릭터, 아름다운 비쥬얼 등 작년의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와 겹치는 데가 더러 있지만, 두 영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래비티'를 보면서 한가지 의아스러웠던 점은 스탠다드 2D보다 3D와 아이맥스 3D 상영 횟수가 훨씬 많았다는 점이었다. 2D, 3D, 아이맥스 3D로 동시에 개봉한 영화들을 지금까지 많이 봤어도 이번 '그래비티'처럼 3D와 아이맥스 3D는 하루에 5~6회씩 상영하면서 스탠다드 2D는 하루에 고작 세 차례밖에 상영하지 않는 경우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비쥬얼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라서 3D나 아이맥스 3D로 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치더라도 저렇게 한눈에 차이가 보일 정도로 스탠다드 2D 상영 횟수를 크게 줄이면서까지 3D, 아이맥스 3D 장사를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혹시나 해서 Fandango를 통해 다른 지역 영화관들의 쇼타임을 확인해 봤더니 다들 마찬가지였다. 아래 이미지는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영화관의 쇼타임인데, 이미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탠다드 2D는 하루에 2~3차례밖에 상영하지 않는 반면 3D와 아이맥스 3D는 각각 5~6차례 상영하고 있다.



'Mandatory'를 좋아하더니 이젠 3D 영화도 'Mandatory'를 만들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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