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4일 화요일

'론 서바이버', 오랜만에 나온 걸작 전쟁영화

2005년 6월 네 명으로 구성된 실(SEAL) 팀이 아프가니스탄의 북동부 지역에 침투한다. 이들의 미션은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악명 높은 탈레반 반군 리더를 체포 또는 사살하는 것. 그런데 산에 매복 중이던 실 팀이 염소를 돌보는 아프가니스탄 주민들과 마주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뜻하지 않게 염소를 치는 주민들에게 발각되어 미션이 뒤죽박죽되었을 뿐만 아니라 붙잡은 세 명을 풀어줘야 하는지 아니면 사살해야 하는지도 큰 고민거리가 된다. 적개심이 가득한 눈빛의 주민들을 풀어주면 마을로 내려가자마자 미군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탈레반에 바로 보고할 것이 분명하므로 자살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교전수칙을 따르자면 비무장 주민을 사살하는 건 살인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사살하는 것도 곤란한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본부에 연락해 조언을 구하려 해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20대 중-후반의 청년 마이클 머피(Michael Murphy), 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 매튜 액셀슨(Matthew Axelson), 대니 디츠(Danny Dietz) 네 명이 그들 스스로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왼쪽부터: 마이클 머피, 마커스 러트렐, 매튜 액셀슨, 대니 디츠
그렇다.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피터 버그(Peter Berg) 연출, 마크 월버그(Mark Wahlberg), 테일러 키치(Taylor Kitsch), 벤 포스터(Ben Foster), 에밀 허시(Emile Hirsch) 주연의 전쟁영화 '론 서바이버(Lone Survivor)'는 네 명의 실 팀 멤버 중 하나였던 마커스 러트렐이 쓴 동명의 회고록을 기초로 한 영화다.

영화에선 테일러 키치가 마이클 머피 역을 맡았고, 마크 월버그가 마커스 러트렐, 벤 포스터가 매튜 액셀슨, 에밀 허시가 대니 디츠 역을 각각 맡았다.

▲왼쪽부터: 테일러 키치, 마크 월버그, 벤 포스터, 에밀 허시
2007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러트렐의 회고록처럼 영화 버전 '론 서바이버'도 훌륭한 작품이었을까?

물론이다.

'론 서바이버'는 요 근래 보기 힘들었던 오랜 만에 나온 걸작 전쟁영화였다.

2000년대 들어 발발한 이라크 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을 배경으로 한 헐리우드 전쟁영화는 대부분 반전(反戰) 색을 띈 영화들일 뿐 미군의 활약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한 박스오피스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곤 했다. 매일같이 뉴스에서 보는 전쟁 이야기를 영화에서까지 보고싶지 않다는 사람들과 군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헐리우드에 불만이 있던 사람들이 헐리우드 전쟁영화를 외면한 것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론 서바이버'는 달랐다. '론 서바이버'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총을 내려놓지 않은 네 명의 네이비 실스 멤버들의 용맹함, 전우애, 희생 정신 등에 포커스를 맞춘 프로-밀리터리 영화였다. 2005년에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을 기초로 한 영화라서 '론 서바이버' 역시 실화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줄거리와 결말을 모두 알면서 보는 영화이긴 했지만 뉴스 보도와 회고록 등을 통해 이미 잘 알고있는 이야기였음에도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산악 지역에서 벌어지는 네이비 실스와 텔레반의 격렬하고 처절한 전투 씬은 스크린에서 눈을 뗄 틈을 주지 않았다. 영화 제작진은 마커스 러트렐이 기억하는 대로 최대한 사실적으로 영화로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는데, 기대했던 대로 전투 씬은 인텐스하고 케이오틱했으며 아주 리얼해 보였다.

실제로 전투에 참가했던 네이비 실스 마커스 러트렐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러트렐은 영화 제작에 깊숙이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대사가 있는 네이비 실스 역으로 영화에도 출연했다. 영화 '론 서바이버'의 주인공이 마커스 러트렐인 만큼 러트렐 역은 전문 배우인 월버그가 맡고 '진짜' 러트렐은 또다른 네이비 실스 역을 맡아 카메오로 출연한 것이다.

특히 카메오로 출연한 '진짜' 러트렐이 아프간 산에서 위기에 처한 네 명의 실 팀을 지원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급히 출동했다 사고를 당하는 네이비 실스 중 하나로 등장할 땐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러트렐 역은 마크 월버그에게 맡기고 카메오로 출연한 '진짜' 러트렐은 자신을 구하러 오다 불행한 사고를 당한 네이비 실스 전우들과 함께 한 것이다.  '진짜' 러트렐의 얼굴을 모르거나 그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놓쳤을 수도 있지만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비록 출연량이 적었어도 카메오로 출연한 '진짜' 러트렐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운데 검정색 비니를 쓴 친구가 '진짜' 러트렐

▲맨 왼쪽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친구가 '진짜' 러트렐
출연진은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좀 더 잘 어울리는 배우들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2005년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마커스 러트렐 역을 현재 40대인 마크 월버그가 맡았다는 것도 좀 어색해 보였다. 월버그가 네이비 실스 역에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가 아니라 2005년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러트렐 역을 맡기엔 나이가 약간 많아 보였다. 하지만 2030대 헐리우드 배우 중 네이비 실스 역에 잘 어울림과 동시에 스타파워까지 갖춘 남자 배우를 찾는 게 쉽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므로 베테랑 마크 월버그를 리딩맨으로 세우고 테일러 키치, 벤 포스터, 에밀 허시를 나머지 네이비 실스로 선택한 것도 과히 나쁘진 않아 보였다.

'론 서바이버'에서 한군데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마지막 전투 씬이다. 전체적으로 러트렐이 쓴 회고록에 충실하게 영화화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마지막 전투 파트에서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된 것이 마지막에 와서 '람보 3(Rambo III)'로 둔갑한 것처럼 보였다. 실화를 기초로 한 영화이더라도 다큐멘타리가 아닌 영화인 만큼 사실과 다소 차이가 나는 부분이 더러 있게 돼있으므로 시시콜콜하게 '팩트 vs 픽션' 놀이를 하고픈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마지막에 와서 지나치게 헐리우드화 된 것 같았다. 마지막 파트를 픽션을 섞어가며 드라마틱하게 꾸미려 한 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람보 3' 엔딩은 조금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람보 3' 엔딩이 이해가 갔다. 어떻게 보면 그런 엔딩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수적 열세에 몰린 네 명의 네이비 실스가 몰려드는 탈레반에 사냥당하듯 쫓기며 힘겨운 전투를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영화 막판에 약간이나마 스트레스를 풀어줄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팔, 다리가 절단된 미군 부상병들을 만날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 비록 사실과 다르긴 했어도 '론 서바이버'의 마지막 배틀 씬에서 후련함을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사실 그대로 영화로 옮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과 다르다는 점에 약간 당황스러우면서도 후련한 기분이 달콤했으니까.

FUCK 'EM ALL!

이렇듯 '론 서바이버'는 기대 이상으로 볼 만한 영화였다. 마커스 러트렐의 회고록을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 영화 퀄리티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보기로 결심하고 있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은 영화였다.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잘 된 영화까지는 아니었지만 오랜 만에 아주 잘 된 전쟁영화를 본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는 됐다.

최근에 나온 피터 버그와 마크 월버그의 영화들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 '론 서바이버'는 흠잡을 데가 많지 않았다.

벌써부터 '론 서바이버'가 홈 비디오로 출시될 날짜가 기다려진다. 영화도 맘에 들지만 무엇보다도 보너스 콘텐츠가 상당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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