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8일 목요일

스파이 소설 '레드 스패로우' 영화로 성공할 수 있을까?

얼마 전부터 스파이 소설 '레드 스패로우(Red Sparrow)'가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문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처음엔 대런 애러너프스키(Darren Aronofsky)가 연출을 맡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레드 스패로우' 프로젝트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이후엔 '걸 오브 드래곤 타투(Girl of Dragon Tattoo)'에서 함께 했었던 영화감독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와 영화배우 루니 마라(Rooney Mara)가 '레드 스패로우' 프로젝트에 흥미를 보였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 이후론 별다른 추가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지만 헐리우드가 '레드 스패로우' 영화화에 관심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레드 스패로우'는 무슨 소설일까?

미국에서 2013년 출간된 '레드 스패로우'는 CIA에 33년간 몸담았던 베테랑 CIA 오피서 출신 작가 제이슨 매튜스(Jason Matthews)의 첫 번째 소설이다. 매튜스는 지금은 내셔널 클랜데스틴 서비스(National Clandestine Service)로 이름이 바뀐 디렉토레이트 오브 오퍼레이션(The Directorate of Operations)에서 외국 요인을 CIA 에이전트로 포섭하는 작전을 지휘했었다. 매튜스가 그 때 쌓은 경험을 토대로 집필한 소설이 바로 '레드 스패로우'다. 그러므로 '레드 스패로우'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나 제이슨 본 소설 등과 같은 액션 어드벤쳐 소설이 아니라 존 르 카레(John Le Carre) 스타일의 사실적인 스파이 스릴러 소설이다.

'레드 스패로우'는 러시아의 해외 정보수집 기관 SVR 거물을 에이전트로 포섭한 젊은 CIA 오피서 네이트 내쉬와 그로부터 SVR 거물의 정체를 빼내기 위해 접근하는 러시안 미녀 SVR 오피서 도미니카 에고로바의 스파이 게임을 그린 스파이 스릴러 소설이다.

도미니카의 미션은 네이트를 유혹해 그가 포섭한 SVR 거물의 정체를 빼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미니카는 내키지 않는 섹스피오나지(Sexpionage) 전문 요원 양성소인 '스패로우 스쿨'에서 훈련을 받는다. 도미니카는 자신이 섹스 스파이가 된 것을 영 내키지 않아 하면서 불만이 쌓이기 시작하지만 명령대로 CIA 오피서 네이트 내쉬를 찾아간다. 이들 둘이 만나면서부터 네이트 vs 도미니카, CIA vs SVR의 스파이 게임이 시작된다.

네이트 내쉬는 20대 후반의 '꼬마'이지만 만만치 않은 CIA 오피서다. 뿐만 아니라 그의 뒤엔 산전수전 다 경험한 베테랑 CIA 오피서들이 버티고 있다. 따라서 SVR의 작전대로 네이트가 도미니카의 미모에 녹아내리지 않고 거꾸로 CIA가 도미니카에 '작업'을 걸고 들어갈 가능성도 열려있다. 도미니카만 스파이인 게 아니라 네이트도 스파이이기 때문이다.

'레드 스패로우'는 네이트와 도미니카, CIA와 SVR,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SVR이 벌이는 오퍼레이션을 지켜보는 암호명 '마블(MARBLE)'의 SVR 몰 등이 연루된 흥미진진한 스파이 게임을 그린 소설이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A- 내지는 B+ 정도?

4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은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스파이 픽션 쟝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레드 스패로우'에 실망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첫 부분에서 전개가 약간 더뎠던 것은 사실이지만, 첫 번째 고비를 넘긴 이후부턴 걸림돌이 거의 없었다. 요새 나오는 현재 배경의 스파이 소설들이 거의 전부 중동 테러리즘에 관한 내용인 것과 달리 '레드 스패로우'는 현재를 배경으로 삼았으면서도 냉전시대 스파이 스릴러를 연상케 했다는 점부터 맘에 들었다. 또한, 상대편 정보부가 벌이는 미행과 감시를 따돌리며 포섭한 에이전트와 접선하는 부분에선 33년간 CIA에서 쌓은 작가의 풍부한 트레이드크래프트 노우하우를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딱딱한 스파이 소설과 달리 '레드 스패로우'는 의외로 유머도 풍부한 편이었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 위트 있는 대화도 자주 눈에 띄었으며, 실제로는 심각한 스파이 오퍼레이션이지만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려 보면 상당히 코믹할 때도 많았다.

매우 만족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A+가 아닌 이유는 '레드 스패로우' 또한 스파이 소설 클리셰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레드 스패로우'가 제이슨 매튜스의 첫 번째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훌륭한 데뷔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레드 스패로우'를 읽으면서 제이슨 매튜스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을 쓰면 굉장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렇다. 역시 픽션 파트에서 약간 부족했다. CIA 경험이 풍부한 양반이 쓴 책인 만큼 디테일은 풍부했으나 스토리 파트에 물음표가 붙었다. 몰 헌팅과 허니 트랩(Homey Trap), 섹스피오나지를 결합시킨 것은 흥미진진했으나 몰 헌팅과 허니 트랩 모두 스파이 픽션 쟝르에서 흔히 쓰이는 소잿감이지 크게 색다를 건 없었다. 몰 헌팅 대표작으론 존 르 카레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가 있고 허니 트랩 대표작으론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제임스 본드 소설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를 들 수 있다.

또한, 제이슨 매튜스 역시 많은 CIA, MI6 출신 소설가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한 '오피서와 애셋(Asset) 사이의 로맨스' 설정을 피해가지 못했다. MI6 출신 작가 매튜 던(Matthew Dunn), CIA 출신 작가 겸 FX의 스파이 TV 시리즈 '아메리칸(The Americans)'의 프로듀서 조셉 와이스버그(Joseph Weisberg) 등을 비롯한 정보부 출신 작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설정이 CIA 또는 MI6 오피서와 그가 포섭한 에이전트 사이의 위험한 로맨스인데, 제이슨 매튜스도 바로 이 클리셰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들이 필드에서 활동하면서 그런 감정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겠지만, 정보부 출신 작가가 아닌 일반 스파이 소설 작가들도 즐겨 사용하는 아주 흔한 설정이라서 'HERE-WE-GO-AGAIIN'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이와 같이 '레드 스패로우'는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디테일은 풍부했지만 몰 헌팅, 허니 트랩, 오피서와 애셋 사이의 로맨스 등의 스파이물 클리셰 또한 유감스럽게도 풍부한 소설이었다.

또 한가지 문제는 소설이 1부와 2부로 나뉘어진 것 같았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덩어리의 소설이 아니라 1부와 2부로 나뉘어진 소설을 하나로 연결시킨 것 같았다. 1부는 네이트와 도미니카가 처음 만나는 헬싱키 에피소드였고 2부는 러시아를 위해 스파이 행위를 하는 미국 정치인이 등장하는 미국, 이탈리아, 그리스 파트였다. 네이트, 도미니카의 몰 헌팅 메인 플롯은 계속 이어지긴 했으나 헬싱키 파트가 끝나면서 흐름이 다소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시리얼 TV 시리즈의 시즌 1이 헬싱키에서 클리프행어 스타일로 막을 내리고 줄거리를 이어받은 시즌 2가 미국, 이탈리아, 그리스 등지로 무대를 바꿔 새로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흐름이 심하게 끊기는 건 아니었으므로 크게 신경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단락됐다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을 뚜렷하게 받을 정도는 됐다.

그렇다. '레드 스패로우'는 영화보다 TV 시리즈에 적합한 소설 같았다. TV 시리즈로 옮긴다면 소설과 똑같이 옮겨도 문제될 게 없겠지만, 영화로 옮긴다면 약간 변화를 줘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자면, 서브 플롯이 미국, 이탈리아, 그리스 파트가 더 나은 만큼 헬싱키 파트를 없애고 미국, 이탈리아, 그리스 파트만을 기초로 옮기면서 네이트와 도미니카의 만남부터 마지막까지의 스토리가 모두 그 안에서 계속해서 긴장감 있게 진행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어떻게 하든 간에 '레드 스패로우'는 각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밋밋하고 클라이맥스가 없는 영화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영화가 아닌 TV 시리즈로 만든다면 시즌 1과 시즌 2 스토리는 이미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다. 헬싱키 파트에서 시즌 1을 마치고 나머지는 시즌 2에 넣으면 될 것 같아서다. 시즌 3? 문제 없다. '레드 스패로우'의 후속편이 머지 않아 나올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 메시지를  뚜렷하게 남기며 마무리되었으니 이어지는 소설이 분명히 곧 나온다. 실제로, 매튜스는 2013년에 가진 퍼블리셔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벌써 후속편의 절반 정도를 완성한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I’m halfway into a second book, which continues the narrative with the same characters (and some new ones)." - Jason Matthews

따라서, 여러모로 봤을 때 '레드 스패로우'는 TV 시리즈에 적합한 소설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까지 나온 '레드 스패로우' 소식은 영화화 얘기만 있을 뿐 TV 시리즈 얘기는 없다. 그러므로 TV 시리즈가 아닌 영화로 옮겨질 가능성이 현재로썬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누가 네이트, 도미니카 역을 맡으면 잘 어울릴까?

일단 도미니카 역으론 루니 마라 얘기가 이미 나온 만큼 마라를 빼고 넘어갈 수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루니 마라를 도미니카로 떠올린 적은 없었지만, 영화 프로젝트 기사를 읽고 나니 과히 나쁘지 않은 초이스 같았다. 소설에서의 도미니카는 전형적인 본드걸 - 특히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의 타티아나 로마노바 - 스타일의 아주 섹시한 여성이었으므로 깜찍한 이미지의 루니 마라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의외로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네이트 역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루니 마라를 제외하곤 나머지 출연진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부턴 내맘대로 한 번 뽑아보기로 하겠다.

남자주인공인 네이트는 소설에서 도미니카에 비해 존재감이 다소 딸리는 캐릭터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우 중요한 캐릭터다.

아직 후보로 거론된 배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굳히 하나 꼽아보자면 찰리 허냄(Charlie Hunnam)이 될 듯 하다.


조금 정돈하면 찰리 허냄은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에도 올려놓을 만한 배우다. 물론 부잣집 귀공자 타잎은 아니지만 블루컬러 숀 코네리(Sean Connery)는 부유한 젠틀맨 스파이로 성공적인 변신을 하는 데 성공했으며 또다른 블루컬러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는 부유한 젠틀맨 스파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별 탈 없이 제임스 본드 역을 맡고 있으므로 찰리 허냄에게도 제임스 본드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러나 '레드 스패로우'의 네이트는 물론 제임스 본드와는 거리가 먼 캐릭터다. 도미니카는 전형적인 본드걸에 가까운 반면 네이트는 젊고 평범한 CIA 케이스 오피서다. 한 주먹 하는 액션맨도 아니고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오히려 진탕 얻어맞아 멍든 얼굴로 절룩거리며 돌아다니는 캐릭터다. 그래도 여전히 예리한 CIA 오피서인 만큼 완전히 나사가 풀린 캐릭터는 아니지만, 살짝 설익은 듯한 'DUDE' 스타일의 젊은 CIA 캐릭터다. 그러므로 인상이 너무 어둡거나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베테랑 스파이 이미지를 풍기는 배우는 네이트 내쉬 후보에서 제외시켜야 할 듯 하다. '레드 스패로우'의 두 남녀주인공은 베테랑 CIA 오피서와 SVR 오피서가 아니라 비정한 스파이의 세계에 휘말린 젊은이들에 가까우므로 그쪽 세계의 물이 덜 든 듯한 배우가 더욱 잘 어울릴 듯 하다. 이런 맥락에서 청순한 이미지의 루니 마라가 도미니카 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찰리 허냄은 TV 시리즈 '선스 오브 애너키(Sons of Anarchy)' 덕에 긴 머리와 수염을 기른 터프가이 모터싸이클 갱 멤버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머리와 수염을 조금 짧게 하고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성처럼 변화를 준다면 네이트 역에 꽤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

▲2013년 영화 '퍼시픽 림'에서의 찰리 허냄
아래는 찰리 허냄의 켈빈 클라인 광고.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암호명 마블은?

SVR 장군이면서 미국에 정보를 넘기는 암호명 마블을 네이트는 삼촌이라고 부른다. 암호명 마블은 첩보세계에 오래 몸담았으면서도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의 캐릭터이며 유머 감각도 갖췄다. 그러나 마블은 단지 인자한 아버지상이 아니라 노련한 베테랑 스파이다. 그러므로 인자함과 날카로움을 모두 갖춘 캐릭터다.

어떻게 보면 TV 시리즈 '홈랜드(Homeland)'에 사울 역으로 출연 중인 맨디 패티킨(Mandy Patikin)과 여러모로 비슷한 데가 많은 듯 하다. '레드 스패로우'를 읽으면서 머릿 속에서 그려봤던 마블의 얼굴이 맨디 패티킨이었다.


하지만 좀 더 유명한 빅 스크린 스타 중에서 골라보자면, 바로 이 양반이 있다.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로버트 드 니로라면 인자함과 날카로움, 그리고 유머감각까지 갖춘 암호명 마블 역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을 듯 하다. 특히 마블이 그의 집에서 여유롭게 파스타 요리를 하면서 엄청난 비밀 이야기를 다 안다는 듯 태연스럽게 묻고 답하는 부분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얼굴이 번쩍 떠올랐다.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어느 파트를 이야기하는 지 잘 알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레드 스패로우' 출연진에 대한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20세기 폭스가 '레드 스패로우'를 영화로 제작할 계획이며, 루니 마라와 데이빗 핀처, 스크린라이터 에릭 워런 싱어(Eric Warren Singer) 등을 비롯한 몇몇 이름들이 나오긴 했어도 확정적인 보도는 아직 없었다.

'레드 스패로우'는 영화보다 TV 시리즈에 더욱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는 생각엔 여전히 변함없지만 20세기 폭스의 '레드 스패로우'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