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9일 일요일

'퓨리', 새로울 것 없는 클리셰 투성이의 평균 수준 전쟁영화

전쟁영화 중에서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가장 많다. 2차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미군의 활약을 그린 영화, 영국군 영화, 특수부대 영화, 프랑스와 그리스 등지의 레지스탕스 영화, 러시아군 영화, 독일군 영화, 홀로코스트 영화, 유대인 레지스탕스 영화,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 전쟁 영화 등등 2차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는 다른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보다 월등히 많다.

그런데 헐리우드 톱스타 브래드 핏(Brad Pitt)이 또 2차대전으로 돌아갔다. 몇 해 전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2차대전 영화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Inglorious Basterds)'에 출연했던 브래드 핏이 이번엔 데이빗 에이어(David Ayer) 감독의 2차대전 영화에 출연했다.

그렇다. 2차대전 영화가 또 나왔다.

지난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에서 유대계 미군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지휘하는 리더 역을 맡았던 브래드 핏이 그의 새로운 2차대전 영화 '퓨리(Fury)'에서 맡은 역할은 다섯 명으로 구성된 미 육군 M4 셔맨 탱크 승무원 리더.

브래드 핏과 같은 탱크를 타는 승무원 역은 '트랜스포머스(Transformers)' 시리즈로 유명한 샤이아 라버프(Shia LaBeouf), 데이빗 에이어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었던 마이클 페나(Michael Pena), 아역 배우 출신 로갠 러맨(Logan Lerman), 존 번설(Jon Bernthan)이 각각 맡았다.

주로 미국 L.A 근교를 배경으로 한 범죄 영화로 널리 알려진 데이빗 에이어의 2차대전 영화 '퓨리'의 스토리라인은 매우 단순하다. 2차대전의 끝이 보이던 1945년 독일에 진격한 미군 부대가 마을을 돌면서 독일군과의 전투가 한창일 때 군에 입대한 지 몇 주 되지 않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신병 노맨(로갠 러맨)이 컬리어(브래드 핏)의 탱크 '퓨리'의 새로운 승무원으로 발령나 베테랑 병사들로 구성된 '퓨리' 탱크 승무원들과 함께 최전방에서 전투를 경험하다 5 대 300의 수적 열세에 몰린 전투를 겪게 된다는 줄거리다.


그렇다. '퓨리'는 시놉시스만 봐도 어떠한 영화인지 바로 짐작이 가는 영화다. 스포일러고 뭐고 따질 것도 없다. '퓨리'의 줄거리는 예고편과 시놉시스에 다 나와 있다.

관객들이 승무원들과 함께 탱크를 타고 치열한 전투를 체험한다는 정도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퓨리'를 보면서 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기대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왜냐, 영화 '퓨리'는 배틀 씬 하나가 전부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처절하고 광기어린 전투 씬은 나름 오케이였으나 이것 하나를 제외하곤 볼 것 없는 영화였다. 독일과 벌이는 탱크 배틀은 익사이팅했고 전쟁으로 크게 파괴된 독일 마을을 돌면서 남아있는 독일군과 전투를 벌이는 씬도 스릴있었다. 하지만 리얼하고 익사이팅한 배틀 씬을 제외하곤 메인 캐릭터들이 탱크를 타고 독일의 이 마을과 저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탱크 부대를 다룬 전쟁영화가 한동안 없었기 때문인지 탱크 배틀 씬이 눈에 띄었던 건 사실이지만 영화 '퓨리'는 그것 하나를 빼곤 없는 영화였다. 전쟁의 비극과 참혹함, 광기와 긴장감 등을 제법 리얼하게 그렸으나 이전에 나온 전쟁영화들에서 이미 다 본 것일 뿐 새로운 게 없었다. 이렇다 보니 결국 남은 것은 배틀 씬 하나가 전부인 영화가 된 것이다.

영화 '퓨리'의 가장 큰 약점은 스토리와 캐릭터에 있었다.

'퓨리'처럼 메인 플롯이 지극히도 단순한 전쟁영화에선 흥미를 끄는 서브 플롯과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퓨리'의 서브 플롯과 등장 캐릭터들은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제작진이 등장 캐릭터들을 나름 개성 있게 꾸리려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출연진은 이 정도면 훌륭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퓨리'의 메인 캐릭터들은 이런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 캐릭터들이었을 뿐 특별히 흥미를 끄는 캐릭터가 없었다. 제작진은 신병과 베테랑 병사와의 관계, 생애 처음으로 실전 경험을 하고 공황 상태에 빠진 노맨(로갠 러맨)을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다독이며 적응을 도와주는 컬리어(브래드 핏), 독일의 마을에서 만난 소녀와 노맨의 로맨스 등등 전투 이외의 드라마적인 요소를 넣으려 노력했지만 워낙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선에 그친 바람에 효과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으나 제대로 와 닿지 않았다. 나름 구색을 갖추긴 했지만 클리셰 투성이의 뻔하고 밋밋한 서브 플롯에 불과했다. 독일의 한 마을의 집에서 노맨이 피아노를 치자 독일 소녀(알리씨아 본 리트버그)가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씬을 예로 들 수 있다. 어떤 분위기의 씬을 연출하고자 한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워낙 뻔한 이야기인데다 억지스럽게 급하게 넣은 것처럼 보이면서 다소 엉뚱해 보였다. '퓨리'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드라마적인 요소도 억지로 집어넣은 듯 했고 5 대 300의 수적 열세에 놓인 채 혈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도 일부러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 놓은 게 전부였다. 이렇다 보니 차라리 억지로 준비한 듯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극적인 파트를 걷어내고 전투 씬에만 올인한 볼거리 위주의 액션 영화로 만들었더라면 더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영화가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다. '퓨리'는 그럭저럭 볼 만했다. 스토리 전개가 형식적이고 때로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등 여러모로 아주 만족스럽진 않았으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가 약간 길게 느껴졌지만 지치게 만들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이는 전적으로 긴장감 넘치는 배틀 씬 덕분이었다. 스토리와 드라마 파트 등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즐기는 단순한 액션 영화로 본다면 과히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땐 평균 수준 정도였다. 아주 나쁘지도 않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걸작도 아니었다.브래드 핏을 비롯한 유명한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는 2차대전 영화라니까 기대치가 다소 높았던 것 같지만 '퓨리'는 기대했던 만큼의 '작품'은 아니었다. '퓨리'는 '플래툰(Platoon)'이나 '세이빙 프라이빗 라이언(Saving Private Ryan)' 등과 같은 걸작 전쟁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수준의 전쟁영화가 아니었다. 그런 전쟁영화를 따라하려 한 흔적은 보였으나 그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그런 걸작 전쟁영화를 모델로 삼은 것이 분명했지만 '퓨리'는 강한 인상과 여운을 남길 만한 전쟁영화가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엔 제법 묵직하고 튼튼해 보였는데 막상 실제로 사용해 보니 가볍고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퓨리'도 그런 케이스에 해당하는 영화였다. 

댓글 1개 :

  1. 그냥 밀리터리 덕후들을 위한 영화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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