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4일 수요일

2011년 시즌 수퍼보울 vs 2014년 시즌 수퍼보울 - 공통점과 차이점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New England Patriots)와 시애틀 시혹스(Seattle Seahawks)의 2014년 NFL 시즌 수퍼보울 경기는 지난 2011년 시즌 수퍼보울 경기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특히 비슷한 것은 마지막 4쿼터였다. 시혹스가 4쿼터 마지막에 기적같은 장거리 패스를 성공시키며 엔드존 코앞까지 바로 진격하는 것을 보면서 지난 2011년 수퍼보울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1년 수퍼보울 경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지난 2011년 시즌 수퍼보울은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의 대결이었다.

마지막 4쿼터 스코어는 패트리어츠 17, 자이언츠 15.

4쿼터 공격을 진행하던 뉴욕 자이언츠는 경기 종료 1분30여초를 남겨놓고 레드존에 진입했다. 2점차로 뒤지던 자이언츠는 필드골만으로도 역전이 가능했으므로 조급할 게 전혀 없었다. 이미 필드골 사정권 내에 진입했으므로 필드골은 일단 굳은 상태였기 때문에 시간을 소비하면서 패트리어츠에 반격의 기회를 남겨주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골이었다.

한편 자이언츠 오펜스가 엔드존 코앞까지 진격하자 패트리어츠는 자이언츠에 터치다운을 빨리 내주고 공격권을 넘겨받아 역전을 하자는 작전을 세웠다. 자이언츠가 시간을 끌도록 내버려두면 역전 필드골을 허용하고 1점차로 패할 수 있었으므로 아예 터치다운을 빨리 내주고 남은 시간 동안 재역전을 노리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패트리어츠는 자이언츠가 1st and Goal 시도에 런 플레이를 하자 바로 타임아웃을 신청하며 시계를 정지시켰다.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1분4초. 이제 패트리어츠는 타임아웃 1개만 남았다.


한 번만 더 시간을 끌면 무조건 자이언츠의 승리였다. 패트리어츠가 남은 마지막 타임아웃을 사용하고 나면 더이상 시계를 멈출 수 없으므로 자이언츠는 골라인 앞에서 시간을 다 소비해버린 다음 필드골만 성공시키면 그것으로 게임오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nd and Goal 플레이에서 자이언츠의 러닝백 아마드 브래드샤(Ahmad Bradshaw)는 시간을 더 끌지 않고 터치다운을 했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브래드샤는 터치다운을 하지 않고 엔드존 앞에서 멈춰서려 했으나 엔드존 안으로 넘어지며 원치 않는(?) 터치다운을 했다.

그렇다면 당시 아마드 브래드샤의 엉거주춤한 엉덩방아 터치다운을 다시 한 번 보자.


이것은 아마드 브래드샤의 실수였다. 터치다운을 하는 것보다 시간을 소비하는 게 더 중요했는데 터치다운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2점차로 뒤지던 자이언츠에겐 역전 터치다운이 중요했다. 하지만 자이언츠의 역전 터치다운 이후 공격권을 넘겨받은 패트리어츠가 남은 1분여 동안 재역전을 성공시킬 가능성이 열려있었으므로 자이언츠는 패트리어츠에게 그런 기회 자체가 돌아가지 않도록 적절하게 '클락 매니지먼트(Clock Management)'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브래드샤가 시간을 끄는 데 실패하고 너무 일찍 터치다운을 하는 바람에 브래디는 타임아웃이 1개 남아있는 상태에서 57초의 반격 기회를 갖게 됐다. 2미닛 오펜스 상황엔 득점 못지 않게 클락 매니지먼트가 중요한데, 자이언츠가 여기서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톰 브래디와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는 남은 57초 동안 역전에 실패하고 17대21로 패했다.

2014년 시즌 수퍼보울 4쿼터도 2011년 시즌 수퍼보울과 상당히 비슷하게 전개됐다.

시혹스의 저메인 커스(Jermaine Kearse)가 경기 종료 1분 10여초를 남겨두고 믿어지지 않는 서커스 캐치를 하면서 엔드존 코앞까지 진격했을 때 패트리어츠는 지난 2011년 수퍼보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상황이 워낙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아래 이미지를 비교해 보면 남은 경기 시간과 필드 포지션, 남아있는 타임아웃 개수 등 패트리어츠가 처한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11년 시즌 수퍼보울 4쿼터 상황

▲2014년 시즌 수퍼보울 4쿼터 상황
물론 이번엔 점수차가 4점이었으므로 시혹스가 필드골만으로 역전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시혹스는 반드시 터치다운을 해야만 역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패스 한 방으로 바로 레드존에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시혹스엔 '비스트 모드(Beast Mode)'라 불리는 러닝백, 마샨 린치(Marshawn Lynch)가 버티고 있었으므로 시혹스가 역전 터치다운을 하는 건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패트리어츠는 이번에도 지난 번처럼 타임아웃을 소비하면서 터치다운을 내주고 반격 기회를 노리는 작전을 택했을까?

이번에도 그렇게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엔 패트리어츠가 타임아웃을 사용하지 않았다.

NBC 중계방송 팀은 사이드라인에 서있는 빌 벨리칙(Bill Belichick)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가 곧 타임아웃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했다. 2014년 수퍼보울 경기 중계방송을 맡은 NBC가 지난 2011년 수퍼보울 중계방송도 맡았었기 때문에 중계방송 아나운서 알 마이클스(Al Michaels)와 해설자 크리스 콜린스워스(Cris Collinsworth) 모두 2011년 수퍼보울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벨리칙은 타임아웃을 신청하지 않았다. 지난 번처럼 터치다운을 내주고 남은 시간 동안 반격을 하려는 게 아니라 디펜스로 막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2011년 시즌 수퍼보울엔 필드골만으로도 역전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타임아웃을 사용하면서 재역전 기회를 준비할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14년 시즌 수퍼보울엔 점수차가 4점이라서 필드골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시혹스의 터치다운만 막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지난 2011년 시즌 수퍼보울처럼 터치다운을 우선 내주고 재역전 기회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이번엔 시혹스의 터치다운을 디펜스로 막아보자는 쪽으로 결정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혹스엔 마샨 린치가 버티고 있는데, 이런 골라인 상황에서 패트리어츠가 마샨 린치를 막을 수 있겠는지 의심스러웠다. 패트리어츠 수비가 아무리 탄탄하더라도 시혹스의 피지컬한 러닝백 마샨 린치를 저지한다는 건 매우 힘들어 보였다. 패트리어츠 디펜스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상황에선 패트리어츠 디펜스가 0.5 야드라인에서 마샨 린치를 막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터치다운을 내주고 남은 시간 내에 쿼터백 톰 브래디가 재역전하기를 기대하는 편이 보다 현명해 보였다.

그러나 패트리어츠는 끝내 타임아웃을 신청하지 않았다. 따라서 엔드존 코앞에서 벌어지는 패트리어츠의 골라인 디펜스와 시혹스의 '비스트 모드'의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이 때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시혹스가 세컨드 다운에 마샨 린치로 밀어붙이지 않고 패스를 시도한 것이다. 그 패스는 패트리어츠의 수비수에 의해 인터셉트됐고, 그것으로 사실상 경기가 끝나버렸다.

시혹스의 패스가 인터셉트 당했다는 것도 쇼킹했지만 시혹스가 그 상황에 패스를 시도했다는 게 더욱 쇼킹했다. 러닝백 포지션에 자신이 없는 팀이라면 보다 이해가 쉬웠겠지만, 시혹스는 마샨 린치라는 NFL 베스트 러닝백 중 하나를 보유한 팀이다.

그런데 0.5 야드라인에서 패스를 했다?

시혹스가 그 때 왜 패스를 했는가를 놓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시혹스 헤드코치 피트 캐롤(Pete Carroll)은 이 질문에 대해 세컨드 다운 당시 공수 매치업이 런 공격에 불리해 보였기 때문에 패스를 지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제의 세컨드 다운 패스가 인터셉트 당하면서 모든 게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런/패스 공격의 유/불리를 떠나 인터셉션으로 경기가 사실상 끝나버린 것이다.

일각에선 패트리어츠 헤드코치 빌 벨리칙이 지난 2011년 수퍼보울에서 했던 것처럼 타임아웃을 부르면서 터치다운을 내주고 반격 기회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이번엔 디펜스로 정면 승부를 결정한 것이 시혹스 헤드코치 피트 캐롤의 플레이 컬링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 놓였던 패트리어츠가 디펜스로 정면 승부를 선택한 것이 시혹스의 세컨드 다운 패스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2쿼터 마지막에 피트 캐롤이 필드골에 만족하지 않고 과감하게 터치다운 패스를 시도해 성공시키더니 4쿼터 마지막에도 또 한 번 과감한 패스 플레이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시혹스가 그 상황에 리스크가 따르는 패스 공격을 시도한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패트리어츠 디펜스가 시혹스의 움직임을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게 치명타였다. 시혹스가 세컨드 다운에 런이 아닌 패스 플레이를 시도하려는 낌새를 눈치챈 패트리어츠 디펜스는 시혹스가 어떤 패스 공격을 준비하는지 바로 알아차리고 준비하고 있었으며, 결국 말콤 버틀러의 인터셉션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패트리어츠 디펜스가 기다리고 있었던, 또는 바라고 있었던 패스 공격을 했다가 인터셉트를 당한 셈이다. 0.5라인에서 밀고 들어오는 마샨 린치의 피지컬한 돌파를 방어하는 것보다 패스 공격을 방어하는 편이 패트리어츠 디펜스 입장에선 훨씬 수월했을 것이므로 시혹스가 패트리어츠 디펜스가 바라던 바를 들어준 셈이 됐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말콤 버틀러가 시혹스가 준비 중인 패스 플레이가 무엇인지 이미 꿰뚫어보고 패스가 날아오는 위치로 날렵하게 달려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버틀러는 시혹스 오펜스가 세컨드 다운에 픽 플레이 패스를 하려는 것을 읽고 준비하고 있다가 인터셉트를 한 것이다.


수퍼보울 중계방송 해설을 맡은 전직 NFL 와이드리씨버 출신 크리스 콜린스워스는 시혹스의 세컨드 다운 패스 플레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If I lose the Super Bowl because Marshawn Lynch can't get it in from  the 1 yard line, so be it. But there's no way... I don't believe the call..."

콜린스워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패트리어츠는 시혹스의 세컨드 다운 패스 덕분에 2011년 시즌 수퍼보울 패배 악몽이 재현되는 데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14년 시즌 수퍼보울도 지난 2011년 시즌 수퍼보울과 마찬가지로 패트리어츠가 마지막 순간에 역전패를 당하는 씨나리오처럼 보였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4쿼터 마지막 2분여는 '2011년 시즌 수퍼보울 파트 2'로 보일 정도로 공통점이 많았지만 엔딩에서 차이가 났다. 2011년 시즌 수퍼보울의 악몽이 재현되는 듯 했으나 패트리어츠는 이번엔 디펜스로 정면대결을 선택했고, 위기의 골라인 디펜스 상황에서 시혹스의 세컨드 다운 패스를 인터셉트하면서 승리를 굳혔다. 수퍼보울 프리게임 쇼에서 전 패트리어츠 세이프티였던 로드니 해리슨(Rodney Harrsion)이 "벨리칙이 세 번 연속으로 수퍼보울에서 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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