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 브러더스의 전쟁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가 2014년 북미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2014년 12월25일 미국서 제한 상영으로 시작해 2015년 1월16일 전국적으로 개봉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헝거 게임: 모킹제이 - 파트 1(The Hunger Games: Mockingjay - Part 1)'과 '가디언스 오브 갤러시(Guardians of the Galaxy)'를 모두 제치고 2014년 북미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이번 주말까지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북미 누계 수익이 3억 3천 7백만 달러로 잠정 집계되었다고 한다. 3억 3천 696만 달러로 2위인 '헝거 게임: 모킹제이: 파트 1'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최종 집계 결과 다시 순위가 바뀔 가능성이 열려있으나,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이번 주말 역전에 실패했더라도 늦어도 월요일이 되면 다시 1위로 올라설 것이 분명하므로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2014년 북미 흥행작 1위에 올랐다는 사실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헝거 게임: 모킹제이 - 파트 1'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는 성수기에 개봉한 틴에이저-프렌들리 빅버젯 블록버스터다. 2014년 11월 개봉한 PG-13 레이팅의 '헝거 게임: 모킹제이 - 파트 1'의 제작비용은 1억 2천 5백만 달러이고, 2014년 7월 개봉한 PG-13 레이팅의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는 1억 7천만 달러로 알려졌다.
반면, 비수기로 꼽히는 1월에 전국적으로 개봉한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제작비용은 6천만 달러이며, 17세 이상 관람가 등급인 R 레이팅을 받았다.
여러모로 따져봐도 '아메리칸 스나이퍼'에 블록버스터급 흥행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청소년 관객을 겨냥한 '헝거게임: 모킹제이 - 파트 1'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를 모두 제치고 2014년 북미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단순한 기대 이상의 흥행성공 정도가 아니라 R 레이팅의 밀리터리 바이오픽이 청소년을 겨냥한 SF-판타지-수퍼히어로 영화를 모두 제치고 3억 3천 7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2014년 북미 최고 흥행작에 오르는 대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걸까?
오스카 노미네이션 효과가 흥행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또한, 멋진 예고편으로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고, 인기있는 영화배우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가 주연으로 출연했다는 점도 흥행에 도움을 줬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3억 달러 돌파까지 가능했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예상치 못했던 블록버스터로 만든 걸까?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흥행성공 첫 번째 요인으로는 2014년 개봉 영화들이 시원찮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2014년 북미 박스오피스 수익이 2013년보다 5% 하락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2014년 여름철 박스오피스 수익도 8년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2014년에도 청소년층을 겨냥한 시각효과 위주의 SF-판타지-수퍼히어로 영화들이 여러 편 개봉했으나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흥행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북미서 3억 달러 선을 넘은 영화는 '헝거 게임: 모킹제이 - 파트 1'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2편이 전부였다. 일부 헐리우드 애널리스트들은 비슷비슷한 쟝르의 영화들이 촘촘하게 개봉하면 수익을 서로 조금씩 나눠갖는 데 그치게 되고,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면 비싼 제작비용의 부담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2014년 개봉작의 퀄리티가 대체적으로 기대 이하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14년 개봉작 중 북미지역에서 크게 흥행성공한 영화가 없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2013년만 해도 북미서 4억 달러 선을 돌파한 영화가 세 편이나 있었지만, 2014년엔 단 하나도 없었다.
청소년층을 겨냥한 SF-판타지-수퍼히어로 영화가 포화상태에 도달했고, 2014년 개봉작 중 눈에 바로 띌 만한 빅네임 타이틀이 부족했다는 점 등은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비슷비슷한 청소년용 블록버스터에 식상한 미국 관객들이 보다 새롭고 신선한 영화로 눈길을 돌렸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1월달에 전국적으로 개봉한 R 레이팅의 바이오픽이 흥행 1위에 오르게 된 요인이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R 레이팅을 받은 성인용 드라마가 박스오피스에서 청소년용 블록버스터를 추월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서다. '헝거게임: 모킹제이 - 파트 1'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면 납득이 가도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이들을 모두 꺾고 1위에 올랐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3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사실부터 믿기지 않는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흥행성공의 또다른 요인으로는 새로운 관객들을 찾아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좌파-리버럴 성향이 짙은 헐리우드는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와 TV 시리즈에서 미군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적이 없었다. 전쟁에 반대한다는 코드에 맞추는 데만 급급하면서 군의 긍정적인 면은 보여주지 않고 부정적인 부분만 집중 조명했다. 헐리우드가 영화에서까지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색을 드러내자 군인 가족들과 보수 성향의 미국인들은 이라크전, 아프간전을 소재로 한 헐리우드 영화를 외면했다.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면서 군까지 비판하는 정치색이 짙은 영화는 볼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 헐리우드의 '군 껴안기'가 시작되는 듯 하더니, 2011년 미 해군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 붐을 예고했다. 그 이후로 현역 네이비 실스가 주연을 맡은 '액트 오브 밸러(Act of Valor)', 오사마 빈 라덴 작전을 그린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 아프가니스탄 산악지역에서 수적 열세에 몰린 상태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홀로 생환한 네이비 실 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의 실화를 그린 '론 서바이버(Lone Survivor)' 등이 잇다라 개봉했다.
그러더니 북미서 3억 달러를 돌파한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등장했다.
전쟁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보수 성향이 강한 미국 중부지역과 미군부대 밀집지역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그들만을 위한 영화'로 치부하며 넘어가곤 했던 좌파-리버럴 성향의 헐리우드 전문 매체들은 '아메리칸 스나이퍼'도 비슷한 수법으로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좌파-리버럴-민주당 성향이 강한 미국 북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전국적으로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그들만의 잔치'로는 3억 달러를 돌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정치색이 짙은 영화와 미군의 잘못만을 열거하는 영화에 싫증을 느낀 미국인이 상당히 많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일부 헐리우드 전문 매체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흥행성공 요인을 "미국인들이 이라크전에 대한 영화를 드디어 받아들일 만큼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라는 데서 찾으려 했으나, 2000년대에 개봉한 정치색 짙은 이라크전, 아프간전 소재 전쟁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던 것과 달리 '론 서바이버', '아메리칸 스나이퍼' 등 미군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전쟁영화가 연속으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다수의 미국인들이 군대에 비판적인 영화를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라고 해야 보다 정확할 듯 하다. 해외에선 미국에 비판적인 영화가 잘 팔리겠지만 미국내에선 그런 영화에 대한 불만이 깊게 쌓여있었던 것이다. 반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요즘엔 이러한 영화를 '반성'이 아닌 '반미' 영화로 받아들이는 미국인이 늘었다. 정세는 갈수록 어지러워지는데 현재 미국엔 리더쉽이 강한 정치인이 없다 보니 다수의 미국인들이 가공의 '수퍼히어로'가 아닌 실재의 '리얼히어로'에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도 풀이된다.
또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군과 미군 가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였다. 실제로 전쟁터에 다녀온 군인과 그들의 가족이 겪었던 비슷한 경험을 다룬 영화였기 때문이다. 많은 군인과 군인 가족들이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호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헐리우드가 이라크전, 아프간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의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며 "또 하나의 보지 말아야 할 영화" 정도로 기대를 거의 하지 않던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군인 뿐만이 아니다. 요즘엔 거의 모든 헐리우드 영화가 리버럴 성향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서 헐리우드 영화 자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보수-우파 성향 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띈다. 이들은 좌파-리버럴 헐리우드가 정치, 사회 문제와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이는 어린이-청소년용 영화에까지 리버럴 메시지를 심어놓는다고 비판한다. 헐리우드 영화인들의 정치 성향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지만 최근 들어 그들의 정치 성향이 지나칠 정도로 영화에 반영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일부 보수 성향 미국인들의 불평이 아니다. 지난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미셸 오바마가 등장하자 당시 데드라인에서 활동했던 베테랑 헐리우드 전문 블로거 니키 핀크(Nikki Finke)는 헐리우드가 우파 성향 시청자들을 의도적으로 열받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헐리우드 스튜디오가 미국의 절반만을 상대로 영화 장사를 하려는 게 분명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사정이 달랐다. 헐리우드 영화에 대체적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미국의 보수-우파 진영으로부터도 찬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평소에 영화관을 즐겨 찾지 않던 미국인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성공을 지켜본 헐리우드는 많은 미국인들이 보길 원하는 영화가 어떤 건지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메리칸 스나이퍼' 스타일의 전쟁영화가 쏟아져나오는 것일까?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미국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성공을 거두면서 비슷한 전쟁물이 여러 편 제작될 예정이다.
와인스타인 컴퍼니(The Weinstein Company)는 미육군 특수부대 레인저스의 스나이퍼였던 니콜라스 어빙(Nicolas Irving)의 동명 회고록을 기초로 한 미니시리즈 '더 리퍼(The Reaper)'를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더 리퍼'는 미국의 NBC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소니 픽쳐스는 스캇 매키원(Scott McEwen)의 밀리터리 소설 시리즈 '스나이퍼 엘리트(Sniper Elite)'를 영화화할 계획이며, 파라마운트는 2012년 9월11일 리비아 뱅가지에서 발생했던 영사관 테러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시큐리티 팀이 쓴 회고록을 기반으로 한 마이클 베이(Michael Bay) 연출의 밀리터리-폴리티컬 스릴러 '13 아워(13 Hours)'를 오는 4월부터 촬영한다.
파라마운트 뿐만 아니라 릴레이티비티 미디어도 뱅가지 사태 당시 현장에서 전사한 2명의 전직 네이비 실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준비 중에 있으며, 또다른 네이비 실 애덤 브라운(Adam Brown)의 전기 '피어리스(Fealess)'를 기반으로 한 영화도 제작할 계획이다.
'헛 라커(The Hurt Locker)', '제로 다크 서티' 등 밀리터리 영화로 유명해진 영화감독 캐스린 비글로(Kathryn Begelo)와 스크린라이터 마크 볼(Mark Boal)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부대를 벗어나 탈레반의 포로가 됐다가 일명 '탈레반 파이브'로 불리는 5명의 탈레반 포로들과의 포로교환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와 논란이 됐던 보 버그달(Bowe Bergdahl)의 영화를 준비 중이다.
캐스린 비글로/마크 볼 프로젝트와 별개로 20세기 폭스 서치라이트도 롤링 스톤 매거진의 기사를 기초로 한 보 버그달 영화를 계획 중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로 만루홈런을 때린 워너 브러더스도 전쟁터를 누비고 다닌 여성 종군 사진기자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전쟁영화를 준비 중에 있다. 워너 브러더스의 '이츠 왓 아이 두(It's What I Do)' 프로젝트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와 여배우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가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중에서 얼마나 많은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것인가는 두고볼 문제다. 하지만 새로운 '밀리테인먼트(Militainment)' 쟝르의 유행이 헐리우드에 부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2014년 12월25일 미국서 제한 상영으로 시작해 2015년 1월16일 전국적으로 개봉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헝거 게임: 모킹제이 - 파트 1(The Hunger Games: Mockingjay - Part 1)'과 '가디언스 오브 갤러시(Guardians of the Galaxy)'를 모두 제치고 2014년 북미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이번 주말까지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북미 누계 수익이 3억 3천 7백만 달러로 잠정 집계되었다고 한다. 3억 3천 696만 달러로 2위인 '헝거 게임: 모킹제이: 파트 1'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최종 집계 결과 다시 순위가 바뀔 가능성이 열려있으나,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이번 주말 역전에 실패했더라도 늦어도 월요일이 되면 다시 1위로 올라설 것이 분명하므로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2014년 북미 흥행작 1위에 올랐다는 사실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헝거 게임: 모킹제이 - 파트 1'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는 성수기에 개봉한 틴에이저-프렌들리 빅버젯 블록버스터다. 2014년 11월 개봉한 PG-13 레이팅의 '헝거 게임: 모킹제이 - 파트 1'의 제작비용은 1억 2천 5백만 달러이고, 2014년 7월 개봉한 PG-13 레이팅의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는 1억 7천만 달러로 알려졌다.
반면, 비수기로 꼽히는 1월에 전국적으로 개봉한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제작비용은 6천만 달러이며, 17세 이상 관람가 등급인 R 레이팅을 받았다.
여러모로 따져봐도 '아메리칸 스나이퍼'에 블록버스터급 흥행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청소년 관객을 겨냥한 '헝거게임: 모킹제이 - 파트 1'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를 모두 제치고 2014년 북미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단순한 기대 이상의 흥행성공 정도가 아니라 R 레이팅의 밀리터리 바이오픽이 청소년을 겨냥한 SF-판타지-수퍼히어로 영화를 모두 제치고 3억 3천 7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2014년 북미 최고 흥행작에 오르는 대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걸까?
오스카 노미네이션 효과가 흥행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또한, 멋진 예고편으로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고, 인기있는 영화배우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가 주연으로 출연했다는 점도 흥행에 도움을 줬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3억 달러 돌파까지 가능했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예상치 못했던 블록버스터로 만든 걸까?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흥행성공 첫 번째 요인으로는 2014년 개봉 영화들이 시원찮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2014년 북미 박스오피스 수익이 2013년보다 5% 하락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2014년 여름철 박스오피스 수익도 8년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2014년에도 청소년층을 겨냥한 시각효과 위주의 SF-판타지-수퍼히어로 영화들이 여러 편 개봉했으나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흥행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북미서 3억 달러 선을 넘은 영화는 '헝거 게임: 모킹제이 - 파트 1'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2편이 전부였다. 일부 헐리우드 애널리스트들은 비슷비슷한 쟝르의 영화들이 촘촘하게 개봉하면 수익을 서로 조금씩 나눠갖는 데 그치게 되고,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면 비싼 제작비용의 부담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2014년 개봉작의 퀄리티가 대체적으로 기대 이하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14년 개봉작 중 북미지역에서 크게 흥행성공한 영화가 없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2013년만 해도 북미서 4억 달러 선을 돌파한 영화가 세 편이나 있었지만, 2014년엔 단 하나도 없었다.
청소년층을 겨냥한 SF-판타지-수퍼히어로 영화가 포화상태에 도달했고, 2014년 개봉작 중 눈에 바로 띌 만한 빅네임 타이틀이 부족했다는 점 등은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비슷비슷한 청소년용 블록버스터에 식상한 미국 관객들이 보다 새롭고 신선한 영화로 눈길을 돌렸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1월달에 전국적으로 개봉한 R 레이팅의 바이오픽이 흥행 1위에 오르게 된 요인이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R 레이팅을 받은 성인용 드라마가 박스오피스에서 청소년용 블록버스터를 추월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서다. '헝거게임: 모킹제이 - 파트 1'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면 납득이 가도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이들을 모두 꺾고 1위에 올랐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3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사실부터 믿기지 않는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흥행성공의 또다른 요인으로는 새로운 관객들을 찾아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좌파-리버럴 성향이 짙은 헐리우드는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와 TV 시리즈에서 미군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적이 없었다. 전쟁에 반대한다는 코드에 맞추는 데만 급급하면서 군의 긍정적인 면은 보여주지 않고 부정적인 부분만 집중 조명했다. 헐리우드가 영화에서까지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색을 드러내자 군인 가족들과 보수 성향의 미국인들은 이라크전, 아프간전을 소재로 한 헐리우드 영화를 외면했다.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면서 군까지 비판하는 정치색이 짙은 영화는 볼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 헐리우드의 '군 껴안기'가 시작되는 듯 하더니, 2011년 미 해군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 붐을 예고했다. 그 이후로 현역 네이비 실스가 주연을 맡은 '액트 오브 밸러(Act of Valor)', 오사마 빈 라덴 작전을 그린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 아프가니스탄 산악지역에서 수적 열세에 몰린 상태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홀로 생환한 네이비 실 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의 실화를 그린 '론 서바이버(Lone Survivor)' 등이 잇다라 개봉했다.
그러더니 북미서 3억 달러를 돌파한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등장했다.
전쟁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보수 성향이 강한 미국 중부지역과 미군부대 밀집지역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그들만을 위한 영화'로 치부하며 넘어가곤 했던 좌파-리버럴 성향의 헐리우드 전문 매체들은 '아메리칸 스나이퍼'도 비슷한 수법으로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좌파-리버럴-민주당 성향이 강한 미국 북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전국적으로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그들만의 잔치'로는 3억 달러를 돌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정치색이 짙은 영화와 미군의 잘못만을 열거하는 영화에 싫증을 느낀 미국인이 상당히 많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일부 헐리우드 전문 매체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흥행성공 요인을 "미국인들이 이라크전에 대한 영화를 드디어 받아들일 만큼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라는 데서 찾으려 했으나, 2000년대에 개봉한 정치색 짙은 이라크전, 아프간전 소재 전쟁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던 것과 달리 '론 서바이버', '아메리칸 스나이퍼' 등 미군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전쟁영화가 연속으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다수의 미국인들이 군대에 비판적인 영화를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라고 해야 보다 정확할 듯 하다. 해외에선 미국에 비판적인 영화가 잘 팔리겠지만 미국내에선 그런 영화에 대한 불만이 깊게 쌓여있었던 것이다. 반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요즘엔 이러한 영화를 '반성'이 아닌 '반미' 영화로 받아들이는 미국인이 늘었다. 정세는 갈수록 어지러워지는데 현재 미국엔 리더쉽이 강한 정치인이 없다 보니 다수의 미국인들이 가공의 '수퍼히어로'가 아닌 실재의 '리얼히어로'에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도 풀이된다.
또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군과 미군 가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였다. 실제로 전쟁터에 다녀온 군인과 그들의 가족이 겪었던 비슷한 경험을 다룬 영화였기 때문이다. 많은 군인과 군인 가족들이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호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헐리우드가 이라크전, 아프간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의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며 "또 하나의 보지 말아야 할 영화" 정도로 기대를 거의 하지 않던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군인 뿐만이 아니다. 요즘엔 거의 모든 헐리우드 영화가 리버럴 성향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서 헐리우드 영화 자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보수-우파 성향 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띈다. 이들은 좌파-리버럴 헐리우드가 정치, 사회 문제와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이는 어린이-청소년용 영화에까지 리버럴 메시지를 심어놓는다고 비판한다. 헐리우드 영화인들의 정치 성향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지만 최근 들어 그들의 정치 성향이 지나칠 정도로 영화에 반영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일부 보수 성향 미국인들의 불평이 아니다. 지난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미셸 오바마가 등장하자 당시 데드라인에서 활동했던 베테랑 헐리우드 전문 블로거 니키 핀크(Nikki Finke)는 헐리우드가 우파 성향 시청자들을 의도적으로 열받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헐리우드 스튜디오가 미국의 절반만을 상대로 영화 장사를 하려는 게 분명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Oh My God – the Academy actually fans the fire by drafting First Lady Michelle Obama to help present Best Picture from presumably the White House? So unnecessary and inappropriate to inject so much politics into the Oscars yet again. Hollywood will get pilloried by conservative pundits for arranging this payoff for all the campaign donations it gave the President’s reelection campaign. I don’t understand this very obvious attempt to infuriate right-leaning audiences. Clearly the studios only want to sell their movies to only half of America. - Nikki Finke
그러나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사정이 달랐다. 헐리우드 영화에 대체적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미국의 보수-우파 진영으로부터도 찬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평소에 영화관을 즐겨 찾지 않던 미국인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성공을 지켜본 헐리우드는 많은 미국인들이 보길 원하는 영화가 어떤 건지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메리칸 스나이퍼' 스타일의 전쟁영화가 쏟아져나오는 것일까?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미국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성공을 거두면서 비슷한 전쟁물이 여러 편 제작될 예정이다.
와인스타인 컴퍼니(The Weinstein Company)는 미육군 특수부대 레인저스의 스나이퍼였던 니콜라스 어빙(Nicolas Irving)의 동명 회고록을 기초로 한 미니시리즈 '더 리퍼(The Reaper)'를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더 리퍼'는 미국의 NBC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소니 픽쳐스는 스캇 매키원(Scott McEwen)의 밀리터리 소설 시리즈 '스나이퍼 엘리트(Sniper Elite)'를 영화화할 계획이며, 파라마운트는 2012년 9월11일 리비아 뱅가지에서 발생했던 영사관 테러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시큐리티 팀이 쓴 회고록을 기반으로 한 마이클 베이(Michael Bay) 연출의 밀리터리-폴리티컬 스릴러 '13 아워(13 Hours)'를 오는 4월부터 촬영한다.
파라마운트 뿐만 아니라 릴레이티비티 미디어도 뱅가지 사태 당시 현장에서 전사한 2명의 전직 네이비 실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준비 중에 있으며, 또다른 네이비 실 애덤 브라운(Adam Brown)의 전기 '피어리스(Fealess)'를 기반으로 한 영화도 제작할 계획이다.
'헛 라커(The Hurt Locker)', '제로 다크 서티' 등 밀리터리 영화로 유명해진 영화감독 캐스린 비글로(Kathryn Begelo)와 스크린라이터 마크 볼(Mark Boal)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부대를 벗어나 탈레반의 포로가 됐다가 일명 '탈레반 파이브'로 불리는 5명의 탈레반 포로들과의 포로교환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와 논란이 됐던 보 버그달(Bowe Bergdahl)의 영화를 준비 중이다.
캐스린 비글로/마크 볼 프로젝트와 별개로 20세기 폭스 서치라이트도 롤링 스톤 매거진의 기사를 기초로 한 보 버그달 영화를 계획 중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로 만루홈런을 때린 워너 브러더스도 전쟁터를 누비고 다닌 여성 종군 사진기자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전쟁영화를 준비 중에 있다. 워너 브러더스의 '이츠 왓 아이 두(It's What I Do)' 프로젝트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와 여배우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가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중에서 얼마나 많은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것인가는 두고볼 문제다. 하지만 새로운 '밀리테인먼트(Militainment)' 쟝르의 유행이 헐리우드에 부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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