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4일 화요일

디지털 HD에 일반 소비자 빼앗긴 디스크는 영화 콜렉터 노려야

"Buying physical copies of movies seems to make little sense these days..."

지난 2013년 CNET에 올라온 "Keep your Blu-rays and DVDs, Hollywood -- I've gone digital"이라는 기사는 "요새는 피지컬 카피(디스크)로 영화를 구입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는 글로 시작한다.

CNET의 기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들이 디지털 다운로드로 쏠리는 현상은 이제 더이상 뉴스도 아니다. 블루레이가 가장 퀄리티가 우수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일반 소비자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이 그걸 몰라서 디지털 다운로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점에 직접 가서 구입할 필요도 없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넣고 배달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아이튠스, 아마존닷컴 등 디지털 무비를 판매하는 스토어에서 즉석에 영화를 다운로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여러 기기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여러 편의성 때문에 디지털 다운로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게다가 요샌 헐리우드 영화사들은 미국서 디지털 포맷을 디스크 포맷보다 먼저 출시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디지털과 디스크가 같은 날 출시되었으나 최근에 와선 디지털이 디스크보다 몇 주 앞서 출시되는 게 관행이 되었다. 미국서 곧 홈 비디오 포맷으로 출시될 워너 브더러스의 밀리터리 드라마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도 미국서 4월21일 디지털 HD로 먼저 출시되고 블루레이 포맷으로는 5월19일 출시된다. 요즘엔 거의 또는 전체의 헐리우드 영화들이 이런 패턴으로 홈 비디오로 출시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디지털 판매가 치솟을 수밖에 없으며 "피지컬 카피로 영화를 구입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요새는 블루레이 + DVD + 디지털 카피로 무장한 컴보팩이 저렴한 가격대로 나오므로 평균 15 달러 정도 하는 디지털 HD를 구입하는 것보다 몇 푼 더 주고 디스크 컴보팩을 구입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디지털 HD의 가격이 블루레이보다 더 높은 경우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등 블루레이로 구입하는 것이 오히려 돈이 적게 들 때도 있다.

그.러.나...

한 번 보면 그만인 영화들까지 구입해서 DVD/블루레이 진열장에 꼽아놓고 썩힐 것을 생각하면 다시 생각이 바뀌어서 조금 비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짐이 안 되는 디지털 HD를 선택하게 되곤 한다. 음반, 영화, 비디오게임 디스크가 쌓이고 쌓이면 나중에 상당한 짐이 된다는 점을 직접 경험한 바 있다는 점도 디스크 구입을 꺼리게 만드는 큰 원인 중 하나다. 수십 개 단위에선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못하지만 수백장 단위가 되면 골치가 아파진다.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음반, 영화, 비디오게임 디스크들이 꼴보기 싫은 존재가 됐다.

이렇다 보니 요즘은 음악은 100% 아이튠스와 아마존닷컴 등 디지털 스토어에서 구입하고 있으며, 책 또한 킨들 버전으로 출시되지 않은 일부의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킨들 버전으로 구입하고 있다. 영화도 요샌 피지컬 카피로 꼭 소장하고 싶은 타이틀만 블루레이로 구입할 뿐이며, 별 애착이 가지 않는 영화들은 아이튠스에서 디지털 HD로 구입하고 있다. 디지털 의존도를 높힌 덕분에 영화 디스크가 예전처럼 빠르게 불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DVD와 블루레이를 전혀 구입하지 않는 건 아니다. 지난 2000년대에 하던 것처럼 싼맛에 아무 영화나 이것저것 마구 구입하던 데서 벗어났다는 것이지 DVD와 블루레이에서 완전히 멀어진 것은 아니다. 요샌 디스크로 꼭 갖고 싶은 영화들만 구입하는 쪽으로 바뀌었고, 나머지 영화들은 디지털 HD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극장에서 못 본 영화나 흥미가 끌리는 영화가 있으면 별 생각 없이 DVD로 구입하곤 했으나, 요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구입한 DVD 영화들이 짐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엔 이런 영화들은 모두 디지털 HD로 해결하고 꼭 소장하고 싶은 영화만을 골라서 블루레이로 구입한다. 갖고 있어도 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한 영화들만 골라서 블루레이로 구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단지 내게만 해당되는 케이스는 아닌 듯 하다. 최근 들어 미국 홈 비디오 시장 조사 결과를 훑어 보면 DVD/블루레이의 판매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디지털 HD의 판매가 치솟고 있다고 한다. 디스크 시장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곧 디지털 HD가 디스크 포맷을 제치고 미국의 홈 비디오를 대표하는 포맷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MP3가 CD를 밀어버렸고 아이팟이 디스크맨을 밀어냈듯이 이번엔 디지털 HD가 DVD/블루레이를 밀어내고 홈 비디오를 대표하는 포맷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과거에 DVD를 구입하던 일반 소비자 상당수가 디지털 포맷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아이튠스와 아마존닷컴이 부상하면서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서점, 음반, 영화 판매점 등도 거의 모두 사라졌다. 이처럼 디지털 포맷이 일반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얻는 지금 디스크 포맷이 디지털 포맷을 꺾고 재기에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한 번의 클릭으로 간단하게 영화를 구입해 즉석에서 볼 수 있는 디지털 영화에 맛들인 일반 소비자들이 단지 화질, 음질 등의 퀄리티 때문에 다시 디스크 포맷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로 빠져나간 소비자들은 "적당한 퀄리티로 영화를 편리하게 볼 수 있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들이므로 대부분이 디스크 포맷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디스크 포맷은 주로 영화 콜렉터를 노려야 한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평범한 뉴 릴리즈 타이틀들은 디지털 HD 포맷 쪽에 중점을 두고,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거나 명작으로 꼽히는 유명한 영화들은 영화 콜렉터들을 겨냥한 블루레이 패키지로 출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실제로, 최근들어 헐리우드 영화사들은 영화 콜렉터들을 겨냥한 한정판 등 콜렉터 에디션을 종종 출시하고 있으나 콘텐츠와 패키징 모두 영화 콜렉터들의 흥미를 끌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매번 반복되는 스페셜 보너스 콘텐츠만으로는 더이상 흥미를 끌기 어려우며, 텅빈 케이스에 디스크만 덜렁 들어간 성의 없는 패키징 역시 수집욕을 일으키지 못한다. 따라서 패키지만 봤을 때에도 "특별하다", "수집할 만한 가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 만한 콜렉터 에디션이 20 달러 미만에 출시돼야 한다. 물론 단지 영화 만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영화 콜렉터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 콜렉터들은 영화 프로그램, 로비카드, 포스터 등 인쇄된 콜렉티블에 익숙하므로 디지북(Digibook) 스타일의 '고스트버스터즈(Ghostbusters)' 30주년 기념 세트 정도가 가장 이상적이 않나 싶다. 너무 비싸 보이는 박스세트까지는 필요 없고 디지북 스타일이라면 색다르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책자까지 들어있으므로 구입할 맛이 난다. 디지북 패키징이 나온 지는 꽤 되었으나 디지북 스타일로 출시된 타이틀 수가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일반 케이스는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그럴 바엔 디지털 HD를 택한다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스틸북(Steelbook)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 듯 한데 열어보면 텅 비어있어서 '빈깡통' 이상으로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따라서, 내 경우엔 가장 구입욕을 일으키는 패키징 스타일은 디지북이다.


지난 주말엔 '스타 워즈(Star Wars)'가 디지털 포맷으로 출시되었다. '스타 워즈' 디지털 포맷은 디지털 영화를 판매하는 전세계의 디지털 무비 스토어에서 현재 판매 중이다. '스타 워즈'는 DVD와 블루레이 등 디크스 포맷만을 고집했을 뿐 디지털 포맷으로의 출시를 주저해왔으나, 결국 '스타 워즈'도 디지털 포맷으로 나오고야 말았다.

일각에선 디스크 장사로 울궈먹던 '스타 워즈'가 이젠 디지털 포맷으로 울궈먹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일리는 있다. 그러나 서로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무성의하게 만든 새로운 세트로 울궈먹는다는 게 문제이긴 해도 '스타 워즈', 제임스 본드 시리즈 등 유명 영화들이 주기적으로 출시되는 새로운 홈 비디오 버전으로 돈벌이를 한다는 걸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스타 워즈' 측은 지난 주말 출시된 '스타 워즈' 디지털 HD 버전에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보너스 콘텐츠들을 포함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스타 워즈' 매니아들이 디지털 포맷을 또 구입하게끔 유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디지털 HD 콘텐츠도 수집할 만한 콜렉티블로 간주해야 하나?

콜렉티블로써는 솔직히 '글쎄올시다'다. 아직은 피지컬 아이템이 아닌 디지털 콘텐트를 수집한다는 게 선뜻 와닿지 않는다. 음반의 경우도, 모든 음악을 디지털 파일로 들어도 소장하고 싶은 앨범은 CD로 별도로 구입하고 있다. MP3 파일을 '수집'한다는 게 아직은 어색해서다.

하지만 이젠 디지털 HD도 디스크 포맷과 마찬가지로 스페셜 보너스 콘텐츠로 특정 영화 팬들을 겨냥한 장사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아이튠스의 경우엔 몇 해 전부터 '아이튠스 엑스트라(iTunes Extra)'를 통해 스페셜 보너스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디스크 포맷이 디지털 HD와 확실하게 차별화되려면 보너스 콘텐츠만으로는 부족하며, 디지북과 같은 세련된 패키지 디자인으로 "달랑 디스크만 들어있는 게 아닌 수집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이미지 변화를 줘야하지 않겠나 싶다. 그렇지 않는다면 영화를 구입하려는 소비자 대부분을 앞으로 계속해서 디지털 HD에 빼앗기기만 할 것이다. 디스크 포맷 영화의 시대가 빠르게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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