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3일 일요일

'아이 인 더 스카이', 한눈 팔 틈 주지 않는 드론 공격 밀리터리 스릴러

요즘 뉴스를 보면 미군이 드론 공격으로 테러리스트를 제거했다는 기사가 종종 눈에 띈다.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하면서 미군은 드론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드론은 현대전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무기 중 하나로 자리잡았으며, 정찰 뿐만 아니라 테러리스트 근거지를 조준 폭격하는 공격용으로도 맹활약을 하고있다. 몇 해 전엔 예멘에 숨어있던 미국 출신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를 헬파이어로 제거한 바 있으며, 가장 최근엔 미군이 드론 공격으로 소말리아 테러조직, 알-샤밥의 리더를 제거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스파이-밀리터리 영화와 TV 시리즈에서도 드론을 자주 볼 수 있다. '시리아나(Syriana)', '바디 오브 라이스(Body of Lies)' '24: 리브 어나더 데이(Live Another Day)'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얼마 전 개봉한 이든 호크(Ethan Hawk) 주연의 '굳 킬(Good Kill)'도 드론 공격에 관한 영화다.

최근에 개봉한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도 그 중 하나다.

영국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테러리스트 제거를 위해 드론 공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밀리터리-폴리티컬 스릴러 영화다.

출연진은 화려하다. '아이 인 더 스카이'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국 여배우 헬렌 미렌(Helen Mirren),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영국 배우 앨런 릭맨(Alan Rickman), AMC의 TV 시리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로 유명한 미국 배우 애런 폴(Aaron Paul), 영화 '캡틴 필립스(Captain Philips)'의 소말리아 해적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 후보에 올랐던 소말리아 출신 미국 배우 바카드 압디(Barkhad Abdi), 스코틀랜드 배우 이언 글렌(Iain Glen), 영국 여배우 피비 폭스(Phoebe Fox) 등이 출연한다.

헬렌 미렌은 드론 공격 작전을 지휘하는 캐더린 파월 영국군 대령 역을 맡았으며, 앨런 릭맨은 드론 공격 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영국 정부 관료들과 격론을 벌이는 프랭크 벤슨 중장으로 출연했다. 애런 폴과 피비 폭스는 작전에 동원된 드론을 조종하는 미군 파일럿 역을 맡았으며, 바카드 압디는 영국 정부를 위해 아프리카 현장에서 활동하는 필드 오퍼레이터 역으로 출연했다.

연출은 '렌디션(Rendition)', '엑스맨 오리진스: 울버린(X-Men Origins: Wolverine)' 등을 연출한 남아프리카 영화감독 개빈 후드(Gabin Hood)가 맡았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영국군, 미군, 케냐군 등이 케냐 나이로비의 안가에 집결한 것으로 판단되는 알-샤밥 테러리스트 체포 작전을 진행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안가에 모인 테러리스트들이 자폭 테러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생포에서 사살로 작전을 급히 바꾸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테러리스트 생포를 원하는 일부 영국 정부 관료들이 드론 공격으로 사살 작전을 벌인다는 것에 반대하고 나선 것. 격론 끝에 해결 기미가 보이는 순간 또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터진다. 어린 여자아이가 테러리스트 안가 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빵을 팔기 시작한 것. 미군 드론이 테러리스트 안가를 폭파시키면 담 근처에 앉아 빵을 팔던 죄없는 여자아이까지 함께 죽게 되는 골치아픈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엔 죄없는 여자아이를 살리기 위해 작전을 취소하는 게 옳은가, 안가에 모인 테러리스트들이 죄없는 많은 사람들을 살상할 자폭 테러를 준비 중인데 어린 여자아이 하나 때문에 작전을 취소하는 게 옳은가, 공격을 감행할 경우 법적으로 하자는 없는가 등을 놓고 격론이 벌어진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드론으로 테러리스트를 추적, 사살하는 게 전부인 액션 스릴러 영화가 아니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드론 공격 작전 중에 겪는 여러 가지 딜레마에 포커스를 맞춘 폴리티컬 드라마다.

그러나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슈에 대한 영화는 아니었다.

드론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 등의 이유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오락가락한다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스토리는 친숙한 편이었다. 테러와의 전쟁 발발 이후부터 드론 공격의 장단점과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에 "드론 공격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라면 애매한 상황과 어려운 결정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될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정확하게 여기에 해당하는 영화였다.

영화에 등장한 테러리스트 중 하나는 미국 출신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디스트와 결혼한 영국 여성이란 점도 매우 친숙하게 들렸다. 예멘에서 미군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미국 태생 테러리스트, 안와 알-아울라키(Anwar al-Awlaki)와 '화이트 위도우'로 불리는 영국 태생 백인 여성 테러리스트, 사만사 루스웨이트(Samantha Lewthwaite)와 바로 겹쳐졌다.

이처럼 '아이 인 더 스카이'는 대체적으로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였다. 어디선가 보고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을 종합한 예측 가능한 밀리터리-폴리티컬 스릴러 영화였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가"는 등 드론 공격을 둘러싼 도덕적 딜레마는 사실 더이상 새로운 논쟁거리라고 하기 어려웠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 결정을 내리기 더욱 어렵고 애매한 상황으로 전개되는 과정도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한눈 팔 틈을 주지 않는 흥미진진한 스릴러 영화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이 끊이지 않으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한 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이슈를 다룬 영화였으므로 크게 새로울 건 없었지만 현재진행형 이슈였기 때문에 영화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의외로, 유머도 풍부했다. 영화의 성격상 유머와는 거리가 있는 영화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가 빛났다. 테러리스트들이 수십명 이상의 사상자를 낼 자폭 테러를 준비 중인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드론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로 불어닥칠 법적, 정치적, 외교적, 도덕적 재앙을 계산하면서 딜레마에 빠진 정치인들이 결정권을 서로 떠넘기는 모습, 격론을 벌이는 정치인들과 같은 데스크에 앉아 공격을 승인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벤슨 중장(앨런 릭맨)의 모습 등이 수시로 쓴웃음을 짓게 했다. 여러 해 동안 추적해오던 거물급 테러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인 데다 자폭 테러까지 준비 중인 만큼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드론 공격을 해야 한다는 데서 물러서지 않는 파월 대령(헬렌 미렌)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정치인 사이에 낀 벤슨 중장은 "ARE WE THERE YET?"이라고 계속 물어보며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드론 공격을 소재로 한 영화라서 뻔한 얘기를 반복하는 뻔할 뻔자 영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이 인 더 스카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매우 흥미진진했으며, 출연진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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